파피아스, 히에라폴리스의 Papias Hierapolitamus(?~?)
글자 크기
11권
성인. 2세기 초에 활동한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ia) 지방 히에라폴리스(HErappolis)의 주교. 사도 교부. 축일은 2월 22일. 리용의 주교였던 이레네오(Ireneus Lugdunensis, 130/ 140?~202?)의 증언에 따르면, 파피아스는 스미르나(Smymna, 현 Izmir)의 주교 폴리카르포(Polycapus Smyrnensis, 69~155)의 친구로서 직접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단 논박》 5, 33, 4). 그러나 파피아스가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는 점에 관해서는 교부 시대부터 주장이 엇갈린다. 교회사가인 체사레아의 주교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는 파피아스가 사도들을 직접 보 았거나 설교를 들은 것은 아니라고 증언하였다(《교회사) 3, 39, 2). 또한 파피아스는 사도 요한의 제자가 아니라, 똑같은 이름을 지닌 '장로 요한' (Joannes presbyter)의 가 르침을 받았다고 하였다(《교회사) 3, 39, 2-7). 그러나 파 피아스가 자신의 단편에서 두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장로 요한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그가 사도 요 한의 제자였는지, 아니면 장로 요한이라는 인물의 제자였 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쟁 중에 있다. 하지만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에서는 파피아스가 "성 요한 장로의 제자" (Sancti Joannis Senioris auditor)라고 기 록한 반면 "복된 요한 복음사가의 제자" (Beati Joannis Evangelistae discipulus)라고도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 파 피아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파피아스는 125년 또는 130년경에 《주님의 말씀 해 설》(Explanatio sermonum Domini, 전 5권)을 저술하였는데, 이 작품은 에우세비오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와 이레네오의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에 단편(fragmenta)으로만 남아 있다(《이단 논박》 5, 33, 4 ; 《교회사》 2, 15, 2 3, 36, 2 ; 3, 39, 2-17). 《주님의 말씀 해설》은 예수의 행적과 말씀에 관한 정 보를 여기저기서 모아서 해설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은 이 미 쓰여진 주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비록 기록되지는 않 았지만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던 주님의 말씀과 행적도 함께 모아 기록하였다(《교회사) 3, 39, 3-4). 구전으로 물 려받은 예수의 가르침들을 사도들의 직계 제자들의 증언 을 통하여 일일이 수집하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많지 않은 파피아스의 단편 가운데 마르코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에 관한 정보를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에 서 전해 준다. 파피아스에 따르면, 마르코는 예수의 가르 침을 직접 듣지도 못하였고 예수의 제자도 아니었으나, 후에 베드로의 동료가 되어 그의 통역자로 일하였으며,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하여 가르친 것을 순 서 없이 기억나는 대로 기록하였다(《교회사) 3, 39, 15). 파피아스의 이러한 진술과 신약성서에 나오는 마르코에 대한 증언을 바탕으로, 마르코 복음서는 바오로의 협조 자요 베드로의 통역이던 마르코가 썼다는 통설이 만들어 졌다. 그러나 그의 증언과는 달리, 마르코 복음서의 필자 는 바오로나 베드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날 성서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마태오 복음서에 관해서 파피아스는 다음과 같이 증언 하고 있다. "마태오는 주님의 말씀들을 히브리어로 편찬 하였는데, 제각기 힘닿는 대로 그 말씀들을 번역하였다" (《교회사》 3, 39, 16). 그의 이 주장을 받아들여, 리용의 이레네오는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있을 때, 마태오는 히브리인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의 고유한 언어로 복음서를 펴냈다" 라고 하였 다(《이단 논박》 3, 1, 1). 이러한 파피아스와 이레네오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오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복음서를 집필하였으며, 후대에 누군가가 그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는 설이 생겨났다. 그러나 누군가가 예수 어록(Q)과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하여 직접 그리스어로 마태오 복음서를 썼다는 것이 현대 신학계의 정설이다. 파피아스는 구전으로 내려오던 예수의 비유와 가르침, 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전해 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천년 왕국설' (millenarismus)이다. 천년 왕국설은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의인들이 먼저 부활하여 1,000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으로서 초기 그리스도교 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 에우세비오에 따르면, 파피아스도 '천년 왕 국설' 을 주장하였다(《교회사) 3, 39, 11-12). 사도 시대에 맞닿아 있는 파피아스 주교가 천년 왕국설을 주장한 탓 에 유스티노(Justinus, 100/110?~165), , 이레네오, 테르툴리 아노(Q.S.F. Tertullianus, 155?~230/240?)와 같은 많은 그리 스도교 저술가들도 그와 같은 견해를 따랐다. 특히 이레 네오는 천년 왕국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파피아스를 직접 인용하기도 하였다(《이단 논박》 5, 33, 3). 천년 왕국설이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에우세비오는 파피아스의 천년 왕국 설을 이렇게 비판하였다. "내 생각에 파피아스가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사도들이 신비적이고 상징적 인 의미로 말한 것을 잘못 알아들어 사도들의 가르침을 오해한 까닭인 것 같다"(《교회사) 3, 39, 12). 이러한 이유 로 말미암아 에우세비오는 파피아스를 일컬어 '빈약한 지성' 을 지닌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교회사) 3, 39, 13). 파피아스는 히에라폴리스에 살았던 사도 필립보의 딸들이 전해 준 놀라운 이야기들을 수집하였는데, 죽은 사 람이 다시 살아난 이야기 및 바르사바라고 불리는 유스 토(사도 1, 23)가 독을 마시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으 로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등이다 (《교회사》 3, 39, 8-10). 그 밖에도 그의 작품에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 고발된 여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교회사) 3, 39, 16). 그러나 이 이야 기가 요한 복음서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붙들린 여인의 일화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분명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 사도 교부 ; 천년 왕국설) ※ 참고문헌 Eusebius, Historia ecclesiastica, KGCS》9-1~21 Ireneus, Adversus Haereses, (PG) 7, 437~ 1224/ G. Bardy, Introduction, Trois livres a Autolycus, SC 20, pp. 7~561 P. Bruns, 《LThK7, 1998, p. 1326/ H.J. Körtner, (TRE) 25, pp. 641 ~6441 G. Peters, I Padri della Chiesa 1, Roma, 1984, pp. 144~151/ J. Quasten, Patrology 1, Westminster, 1950, pp. 82~85/ L. Vany, (DPAC》2, 1984, p. 2667. [崔元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