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가우어, 파스칼리스 Fangauer, Paschals(188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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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 성 오틸 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파스 칼리스. 세례명은 요 한. 1881년 1월 8일 독 일 바이에른(Bayem)의 레겐스부르크(Regens- burg) 교구 엑글핑(Eg- glfing)에서 태어난 판 가우어는 형인 바르나 바(Barnabas Fangauer, 1876~1967) 수사를 따 라 1906년 정원 관리사(Gintnemeicicer)로 성 오틸리엔 수 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07년 10월 20일에 유기 서약을 하였다. 1909년 11월 7일 2명의 신 부와 4명의 수사로 구성된 한국 진출 제1진에 포함되어 서울 백동(현 혜화동) 성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파견, 포도 등 과일을 가꾸며 승공학교 원예과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에는 청도(靑島)로 징집되 었다가 1914~1920년까지 일본군의 감옥에 갇혀 있었 다. 1923~1949년까지 그는 원산 본당에 기거하면서 농 사 일을 하였는데, 특히 채소와 과일을 많이 재배하였으 며 당시에는 비싸고 귀한 작물이었던 포도를 재배하여 팔기도 하였다.
판가우어 수사는 1949년 5월 11일 북한 공산당에 체 포되어 평양 인민 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8월 5일 옥사 독 수용소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만성 설사, 영양 실조, 수종증, 복수증, 심장 기능 장애 등으로 고생하다 1950 년 4월 16일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 승공학교 ; 원산 본당) ※ 참고문헌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왜관 수도원 편, 《옛 등걸에 새순이》, 분도 출판사, 1984/ Todesanzeige von Abtei Schweiklberg, 1950. 第一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