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네, 장 샤를 Peynet, Jean-Chads(1873~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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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노 신학교에서 열린 페네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 은경축 행사 후.

유스티노 신학교에서 열린 페네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 은경축 행사 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가롤로. 한국명은 배가록(裴嘉祿) . 페네는 1873년 2월 8일 물랭(Moulins) 교구의 마르실 라(Marcillat)에에서 출생하였다. 1894년 2월 17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897년 3월 13일 신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조선 선 교사로 발령을 받고 같은 해 5월 5일 파리를 떠나 7월 20일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한글을 배우던 중 같은 해 10월 갓등이(현 왕림) 본당 주임인 알릭스(J.J.B. Alix, 韓若瑟) 신부가 병이 생겨 치료차 일시 귀국함에 따라 갓등이 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899년 4 월 22일 제주(현 제주 중앙 주교좌)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 명되어 5월 26일에 보좌인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 노) 신부와 함께 제주에 도착한 후, 6월 14일 제주 대로 동(현 제주시 삼도2동 108번지) 소재의 집을 매입하여 성당 과 사제관으로 활용하며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900년 2월에 서울로 돌아와 새 복사를 구하려다 실 패하자, 이에 실망한 나머지 뮈텔(G.-C.-M. Mutel, 閔德 孝) 주교에게 임지를 바꾸어 달라고 건의하였다. 이 건 의가 받아들여져 5월 김제의 수류 본당에서 활동하던 라 크루(M. Lacrouts, 具瑪瑟) 신부와 임지를 서로 바꾸어 수 류 본당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성당이 비좁 고 무너질 위험마저 있음을 깨닫고 1906년 1월 건축가 푸아넬(V.L. Poisnel, 朴道行) 신부의 도움을 받아 성당 신축 공사를 착공하였으며, 이듬해 8월에 48칸의 목조 성당을 준공하였다. 1909년 3월에는 성당 내에 인명학 교(仁明學校)를 설립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징집되어 본국으로 떠났다가 1918 년에 본당으로 돌아왔다. 1920년 6월에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2대 교장으로 부임하였고, 1930년 8월에는 홍콩의 나자렛 피정의 집 원장에 임명되었다. 1933년 6월에 다시 한국에 들어와 순정 본당의 초대 주임을 거쳐 1935년 6월 삼랑진 본당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3년여 동안 사목하다가 1938년 6월에 은퇴하였다. 그 뒤 마산(현 완월동) 본당에서 휴양 하다가 1944년부터 대구 수련원 담임 신부로 봉직하던 중 1948년 2월 23일 심장 마비로 선종하였다. → 수류 본당 ; 제주교구 ; 제주 중앙 주교좌 본당) ※ 참고문헌  《뮈텔 주교 일기》 II · 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3/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 구사 편찬위원회, 《교구사 연대표》,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4/ 《M.E.P. 선교사 약전》/ 김진소,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천주교 부산교구 편, 《부산교구 30년사》, 한국교회사연구 소, 1990/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 《제주 천주교 회 100년사》, 천주교 제주교구, 2001/ 왕림 본당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왕림(갓등이) 교회 본당 설립 100 주년 기념집(I)》, 천주교 왕림 교회, 1990.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