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교회 음악 작곡가. 신부.
〔생 애〕 1872년 12월 20일 토르토나(Tortona)에서 출생한 페로시는 토르토나 주교좌 성당의 오르간 주자이자 이탈리아 교회 음악 개혁의 선구자였던 아버지 주세페(Giuseppe)로부터 음악 수업을 받았다. 그는 로마의 성체칠리아 음악 학교를 마치고 1890년 몬테 카시노 수도원 학교의 음악 교사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그레고리오 성가에 깊이 매료되었다. 1892년에 밀라노 음악원에서 공부하게 된 그는 화성법과 대위법, 푸가 등을 배우고 학위를 받았다. 1893년부터 독일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가톨릭 교회 음악 학교에서, 1874년에 이 학교를 설립한 하베를(F.X. Haberl)과 할러(M. Haller)로부터 직접 배운 후 귀국하였다.
귀국 후 페로시는 이몰라 신학교의 악장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탁월한 합창 지휘자와 작곡가로 명성을 얻은 그는 1894년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전의 악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에는 후에 교황 비오 10세(1903~1914)가 된 베네치아의 총대주교 사르토(G.M.Sarto) 추기경으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898년 시스티나 경당(Cappella Sistina)의 악장으로 취임하였다. 1905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교황 경당인 시스티나 경당의 '종신 악장' 이라는 최고의 지위를 얻었다. 1922년 정신 질환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지만, 이듬해에 복직하여 1956년 10월 12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시스티나 경당에서의 전례를 위하여 일하였다. 음악가이자 신부인 페로시의 대표적인 교회 작품들은 모두 이 시스티나 시기에 창작되었다.
〔작 품〕 페로시는 교회 음악 작곡가로서, 오라토리오는 그의 창작의 중심이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오라토리오의 명지휘자로도 유명하였으며, 오라토리오라는 17세기의 전통적 · 대중적 교회 음악 분야를 통해 신자들의 성화(聖化)를 이루고자 하였다. 이몰라(Imola)와 베네치아(Venezia)에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칸타타와 모테트, 미사곡을 작곡하면서 오라토리오 창작을 착실하게 준비한 그는, 1897년 첫 오라토리오 <마르코 수난곡>을 발표하였다. 이 곡은 1897년 베네치아에서 초연하였던 자신의 칸타타 <주님의 만찬에서>를 확대한 것이다. 이어서 1912년까지 15년 동안 교향곡 반주의 대규모 작품을 포함한, 13곡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다. 그는 쇤베르크(A. Schoenberg, 1874~1951) 중심의 제2 빈(Wien) 악파가 시작한 무조성(無調性, atonality) 음악 등 당시의 음악 언어를 교회로 수용하기를 포기한 채, 그레고리오 성가 및 16세기 다성 음악과 깊은 관련성을 유지하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페로시의 오라토리오들이 그레고리오 성가와 팔레스트리나(G.P. da Palestrina, 1525~1594)의 폴리포니(Polyphony) 그리고 바흐(J.S. Bach, 1685~1750)의 양식적 바탕 위에 바그너(R. Wagner, 1813~1883)와 마스카니(P.Mascagni, 1863~1945)의 음악 기법을 무차별적으로 혼합한 절충주의 작품들이라고 펌하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라토리오 <모세>(교향시, 1901)가 이집트 군대에 추격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긴박한 상황을 극적인 장엄함으로, <영혼의 변화>(1907)가 사선(死線)의 영혼들이 겪는 고통을 감정적 진지함과 대중적 감각으로 표현한 탁월함을 제시하며, 페로시의 오라토리오들이 신선하고 고결한 영성과 격조 높은 음악 언어로 청중을 감동시킨다고 말한다.
오라토리오 : 페로시는 <마르코 수난곡>, <거룩한 변모>(La Transfigurazione, 1898), <라자로의 부활>(1898), <그리스도의 부활>(1898), <구세주의 탄생>(1899),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1900), <무고한 이들의 살해>(1900), <모세>, <공심판>(1904), <영혼의 변화>, <조국을 기억하며>(1910),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1950, 로마에서 출판), 〈저녁 기도>(1912) 등 13곡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다.
미사곡 : 총 40여 곡의 미사곡은 주로 4성부 합창이 주도한다. 가끔 2~3성부, 그리고 드물게 5~6성부의 곡도 있다(성부 수는 괄호 안에 표기한다). 주요 미사곡으로는 <대주교 대미사곡〉(4), <레퀴엠 코랄 미사곡>(4+오케스트라), <카롤로 미사곡〉(2), <암브로시오 미사곡〉(5), <주교 대미사곡 I · II>(3), <레퀴엠>(3), <제르바소와 프로타소 미사곡〉(2), 〈다윗 미사곡〉(3), <주 찬양 미사곡>(Benedicamus Domino, 4), <카롤로 미사곡 II >(4, 5, 6), <비오 12세를 위한 미사곡>(4, 5, 6 : 후에 3성부로 편곡)등이 있다.
기타 : <우리 아버지>(1901), <고통의 어머니>(Stabatmater, 1901), <분노의 그날>(Dies irae, 1904) 등의 칸타타와 1~4성부의 시편 및 모테트 150여 곡이 있다. 그리고 관현악 및 실내악으로 이탈리아 도시들에 헌정한 7개의 오케스트라 모음곡, 18개의 현악 4중주, 5개의 현악 5중주, 200개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곡, 오케스 트라 합창곡 <파스토랄레)(Pastorale) 등을 남겼다. 그러나 이 기악곡들은 현재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페로시의 작품들은 대부분 밀라노(Milano)에서 출판되었고, 그의 수서본은 페로시 가문이 보관 중이다.
〔평 가〕 페로시는 전통적 · 교회적 음악 언어로 이탈리아의 교회 음악을 수호하며, 시대를 주도하던 오페라와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음악을 말씀의 시녀' (Musica ancilla Verbi)로 규정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교회 음악관을 실천하며, 팔레스트리나와 그레고리오 성가를 교회 음악의 이상으로 앞세우는 성 체칠리아 협회(Societas Sanctae Caeciliae, 1868년 비트가 결성)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 앞장섰으며, 교황 비오 10세의 자의 교서 <트라 레 솔레치투디니>(Tra le sollecitu-dini, 1903. 11. 22)의 발표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그는 교회의 전통적 · 고전적 정신을 승계, 보존, 육성한 공로로 이탈리아 교회 음악의 개혁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유명하였던 교회 작품들은 현재 소수만 연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 가톨릭 음악 ;비오 10세 ; 오라토리오 ; 전례 음악)
※ 참고문헌 J.C.G. Waterhouse, 《NGDMM》 14, pp. 539~540/ A.Paglialunga, 10, pp. 1076~1078/ W. 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 Personenteil 2, Schott's Soehne, 1961, pp. 388~389. 〔趙善字〕
페로시, 로렌초 Perosi, Lorenzo(1872~1956)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