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세례명은 스타니슬라오. 한국 성은 권(權). 1827년 2월 22일 프랑스 동프롱(Domfront)에서 태어났다. 세즈(Séez)의 대 · 소신학교에서 수학하고 1850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플레르(Flers)와 아르장탕(Argentan)에서 사목하였다. 1854년 10월 1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수련한 뒤, 1856년 1월 23일 프랑스를 출발하여 14개월 만에 조선에 도착하였다.
1861년부터는 경상도 남부 지역을 담당하는 다블뤼(M.N.A. Daveluy, 安敦伊) 주교, 서부 지역을 담당하는 칼레(A.-N. Calais, 姜) 신부와 더불어 경상도 서북부 지역을 맡아 전교 활동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인해 많은 신자들과 함께 베르뇌(S.F. Berneux, 張敬一) 주교, 다블뤼 주교 등 2명의 주교와 7명의 선교사가 순교하자 경상도 지역 공동체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선교사들의 장상이 된 페롱 신부는 프랑스 공사와 극동 함대에 박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우선 리델(F.C. Ridel, 李福明) 신부를 1866년 7월 중국으로 피신시키고, 이어 10월 칼레 신부와 함께 어렵게 조선을 탈출하여 체푸(芝罘, 현 煙台)에 도착하였다.
이후 조선으로의 재입국을 시도하던 페롱 신부는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E.J. Oppert)가 조선 원정을 감행하여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부친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도굴한 '덕산 굴총 사건' 을 일으켰을 때, 그배에 안내자로 동승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페롱 신부는 본국으로 송환되었다가 1870년 다시 인도의 풍디세리(Pondicher)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선교 활동을 수행하였다. 1900년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뮈텔(G.C..-M. Mutel, 閔德孝) 주교의 요청에 따라 잠시 조선을 방문하였다. 1903년 6월 비리우르(Viiour)에서 선종하였고, 유해는 비리우르의 성당에 안장되었다. (→대구대교구 ; 덕산 굴총 사건 ; 리델, 펠릭스 클래르 ; 병인양요)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Répertoire des membres de la société des missions étrangères 1659~2004, Archives des missions étrangères, Paris, 2004. 〔金善美〕
페롱, 스타니슬라스 Féron, Stamislas(182~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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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신자들과 담소하는 페롱 신부( 900. 5. 6, 명동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