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대륙 서안 중앙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페루 공화국(Repubilica del Peri). . 북서쪽으로 에과도르, 북동쪽으로 콜롬비아, 동쪽으로는 브라질 · 볼리비아, 남쪽으로는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면하고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세 번째 큰 나라로 면적은 1,285 220km고, 인구는 26 ,350,000명(2003)이며, 수도는 리마(Lima)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와 케추아어(Quechua), 아이마라어(Aymara)이다. 원주민인 케추아 인디언이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며,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mestizo)가 37%, 백인이 15%, 흑인과 동양인 등이 있다. 국교는 가톨릭이며, 인구의 89%가 가톨릭 신자이다.
페루의 여러 지역 문명은 11세기부터 잉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1438년 잉카 제국은 50년에 걸친 정복 사업의 결과 지금의 페루, 볼리비아, 칠레, 에과도르, 아르헨티나 북부에 해당하는 모든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성기의 잉카 제국은 정비된 정치 조직을 바탕으로 관개 농업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거석을 이용한 건축술, 도시 계획, 의술에도 뛰어났다. 그러나 1531년 스페인의 피사로(F. Pizarro)가 소규모 군대를 이끌고 와서 잉카 제국을 정복한 후 약 300년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18세기 말부터 인디오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1821년 7월 '페루의 보호자' 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in, 1778~1850)이 리마를 점령한 후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독립 이후 페루는 지리적 여건과 자본주의를 강력하게 추진할 부르주아 계급의 부재 등으로 인해 낙후되었으나 1845~1851년, 1855~ 1862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한 카스티야(Ramon Castilla y Marquesado, 1797~1867)의 지도 아래 노예 정책을 폐지하는 등 진보정책을 실시하고 공공 교육을 발전시키면서 근대 국가의 기초를 확립해 나갔다. 그러나 1879~1883년까지 초석과 구아노(guan) 등 자원이 풍부한 아타카마(Atacama)사막의 소유권 분쟁으로 칠레와 치른 전쟁(태평양 전쟁)에서 패하면서 인적, 영토적, 재정적 손실을 감당해야 하였고 국가적 위신도 크게 추락하였다. 패전 이후 곤살레스 프라다(Manuel González Prada, 1848~1918)가 주창한 '페루의 인디어니즘 운동' 은 원주민들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켰으며, 훗날 페루 사회당을 결성한 마르크스주의자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José Carlos Mariátegui, 1895~1930)와 아메리카 민중 혁명 동맹(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 : APRA)을 결성한 빅토르 라울 아야데 라 토레(Víctor Raúl Haya de la Torre, 1895~1979)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08~1912년과 1919~1930년에는 재무장관을 역임한 아우구스토 베르나르도 레기아(Augusto Bernardo Leguia, 1863-1932)가 집권하면서 강력한 독재 정치를 폈다. 레기아가 집권하던 1920년대에는 페루에도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사상이 전파되어 사회당과 반제국 주의를 표방하는 APRA당이 결성되었다. 또한 토착주의, 즉 인디헤니스모(Indigenismo)가 성행하여, 페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였다. 1930년 쿠데타를 일으킨 루이스 산체스 세로(Luis Miguel Sánchez Ce-rro)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39년에는 마누엘 프라도(Manuel Prado)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후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다가 1963년 인민행동당의 벨라운데 테리(Fernando Belaúnde Terry)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68년 진보적인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Juan Velasco Alvarado)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혼합주의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적이고 혁명적인 사회 개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알바라도 장군의 토지 개혁과 국유화와 같은 급진적인 정책은 군부 내 보수파의 반발을 불러와, 1975년 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새로이 권력을 장악한 모랄레스 베르무데스(Francisco Morales Ber-mudez) 장군은 1978년 제헌 의회를 소집하여 1980년에 선거를 실시하였고, 다시 벨라운데 테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5년에는 APRA의 알란 가르시아 페레스(Alan Garcia Pérez)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창당 60년만에 APRA가 집권에 성공하였다. 1990년에는 일본계 후지모리(Alberto Kenyo Fujimori)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군부와 결탁하여 3선 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을 개정하는 등 독재 정치를 펼치다가 민중의 반발에 부딪히자 결국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2001년에 원주민 출신의 알레한드로 톨레도(Alejandro Tolredo)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기대를 받았으나, 극심한 경제난과 반정부 시위로 지지율이 급감하여 2002년 7월 내각이 총사퇴하기도 하였다.
〔가톨릭의 역사〕 이 지역은 스페인의 정복과 함께 가톨릭이 전파되었는데, 1550년경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회, 예수회가 들어왔다. 각 수도회는 주민들을 개종시키고 보호하며 본국의 문화를 전파할 책임을 맡게 되었으나, 원주민의 전통적인 관습과 예식이 너무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 선교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도미니코회와 예수회는 특히 교육 사업에 매진하였는데, 도미니코회는 1548년경에 60개의 학교를 설립하였고, 1551년 리마에 산 마르코스(San Marcos) 대학을 설립하였다. 예수회도 쿠스코(Cuzco)의 성 이냐시오로욜라 대학을 비롯하여 곳곳에 학교를 설립하였다. 1536년 쿠스코, 1541년 리마 교구가 설립되었으며, 리마 교구는 1546년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6세기 말 페루의 사도' 라고 불리는 리마 대교구의 2대 교구장 토리비오 알폰소 데 모그로베호(Toribio Alfonso de Mogro-vejo)는 수만 명의 페루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1726년 시성). 1617년에 사망한 도미니코 제3회 수녀였던 리마의 로사(Rosa de Lima)는 1671년 신대륙에서 최초로 시성되었다.
크리올(criollos,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백인) 성직자 수는 유럽에서 온 성직자 수보다 많았으나, 메스티소는 1588년 이후부터에야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대륙에 독립의 기운이 한창 싹틀 무렵, 상당수의 크리올 출신 성직자들이 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독립초기에 스페인 태생의 주교들은 페루를 떠나야 하였지만,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직자들이 새로운 정부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교회의 안정에 기여하였다. 이로 인해 의회는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였고, 교회의 재산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 혼란한 상황 속에서 각 정파의 이해에 따라 교회의 재산이 사용되었으며 몇몇 수도원은 폐쇄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신학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가 계속되어 성직자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게다가 유럽의 정치적 경향인 자유주의와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중세주의적인 교회를 비난하고 로마에 대한 충성 때문에 주교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등 공공연한 반교회주의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엽에 유럽으로부터 선교사들이 유입되면서, 학교와 병원이 설립되고 폐쇄되었던 지방의 본당이 다시 문을 여는 등 침체된 교회는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1933년 헌법은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인 종교임을 더이상 인정하지 않았으나, 가톨릭의 특별한 지위는 인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페루의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전망을 갖고 사회 정의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업에 착수하였다. 이 시기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errez) 신부의 주도로 해방 신학이 태동하였는데, 구티에레스 신부는 페루와 같은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죄악으로 간주하고, 구원은 사회정의 속에서 하느님과 아울러 인간 상호 간의 친교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주장하였다. 1990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가동하기 시작할 때, 교회 지도자들은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돌보았다.
2003년 현재 신자수는 23,452,000명이며, 대교구 7, 교구 18, 본당 1,429개에, 추기경 1, 대주교 12, 주교53, 신부 2,749(교구 소속 1,443, 수도회 소속 1,306), 종신 부제 56, 수사 711, 수녀 5,662명이다. (→ 라틴 아메리카 ; 로사, 리마의 ; 해방 신학)
※ 참고문헌 강석영, 《라틴 아메리카史》 하,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6/ David B. Barrett,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vol. 1, Oxford Univ. Press, 2001, pp. 589~5921 G. Lohmann Villena, 《NCE》 11, 2003, pp. 158~165/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p. 316~317/ http://www.opkorea.org/saints/rosa.htm/ Annuario Pontificio 2004, Città del Vaticano, 2004. 〔金志煥〕
페루 [영]P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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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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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성 크리스토포로 본당 신자들의 시가지 행렬(1960년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