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셀, 르네 Peschel, Rene(1887~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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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여자학원 학생들과 함께한 페셀 신부(1931. 3. 19)

혜성여자학원 학생들과 함께한 페셀 신부(1931. 3. 19)

전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 한국명은 백학노(白鶴老) 1887년 7월 9일 프랑스 칼바도스(Calvados) 주에 있는 비냐(Vignas)에서 출생하여 1911년 6월 29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1912년 12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리고 1913년 4월 전라북도 안대동(현 함열) 본당 5대 주임, 1914년 5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를 거쳐 이듬해 10월 부산 초량(현 범일) 본당 8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1916년 1월에 범일동을 성당 부지로 확정하고, 5월 말에 목조 성당을 신축하여 본당을 이전하였다. 또한 본당 관할 각 공소 회장들, 평신도 대표들과 함께 부산 지방 천주공교협회(天主公教協協會)를 창립하여 평신도 활동의 조직화 및 교회 재산 관리의 체계화에 노력하였고, 교육 사업에도 관심을 가져 50평의 목조건물로 된 학사를 건립하였다.
1924년 9월에 전북 정읍 신성리(현 시기동) 본당의 3대 주임으로 부임한 페셀 신부는 1925년부터 신자들에게 본당의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월보(月報)를 최초로 발간하여 각 공소에 배포하였고, 수류 본당의 뤼카(L. Lucas, 柳嘉鴻) 신부와 함께 두 본당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합동 특별 피정을 가졌다. 1928년에는 정읍 읍내에 전교실을 마련하여 전교회장의 활동을 활성화시켰고, 1929년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본당 관할 8개 공소에 야학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1931년 1월에 페셀 신부는 신성리 본당에서의 활동을 끝내고, 대구 계산동 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전임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 때 실시하였던 구역 분담제를 확대하여 4구역제를 도입하였고,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친애회(親愛會)를 확대 · 개편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계산동 본당에서 개최된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축하 행사' 를 준비하였고, 1932년 8월에 창립된 천주공교전교회(天主公教傳敎會)의 고문을 맡아 활동하였다. 페셀 신부는 1932년 8월 31일에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탈회하였고, 1972년 12월 5일 선종하였다. (→ 계산동 본당 ; 범일 본당 ; 시기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뮈텔 주교 일기》 5, 한국교회사연구소, 1998/ 《釜山 宣敎九十年史 : 凡一聖堂 發展史》, 天主教 釜山教區 凡一敎會, 1979/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大邱本堂 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전주교구 시기동 본당 10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 홍보 분과, 《시기동 성당 100년사》, 천주교 전주교구 시기동 성당, 2003.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