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소속 신학자. 교부학자. 라틴어 이름은 페타비오(Petavius).
〔생 애〕 1583년 8월 21일 프랑스 오를레앙(Orléans)에서 출생한 페토는 16세에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세부터 부르주(Bourges)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1603~1605) , 소르본(Sorbone)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카조봉(Isaac Casaubon)의 지도하에 교부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1605년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161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1~1621년까지 랭스(Reims)와 라플레슈(La Flèche)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사학을, 1621 1644년까지는 파리의 클레르몽(Cler-mont) 대학에서 긍정 신학(positive theology)을 가르쳤다. 은퇴한 후 페토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스페인의 국왕펠리페 4세(1621~1665)와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의 청을 모두 거절하고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1652년 12월 11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서와 사상〕 페토의 명성은 그의 저작인 《교의 신학》(Dogmata theologia, 1644~1650)의 긍정 신학에 대한 공헌에 있다. 그는 자신의 저술에서 카노(M. Cano, 1509~1560)와 말도나토(J. Maldonatus, 1534~1583)의 모범을 따르면서 교회의 가르침들에 대한 출전들을 성서와 성전에서 밝혀내고 있다. 계획된 10권 중 5권만 출판되었는데(De deo, De trinitate, De angelis, De mundi opificio, De incar-natione), 각 권은 그 주제의 역사에 관한 철저한 논쟁, 반대하는 이단들, 교회의 결정들, 유사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 파리 대학에 있던 얀센주의자들과 예수회 반대자들은 1644년에 출판된 1~3권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 외 학자들은 그 가치와 1650년에 나온 넷째 권을 인정하였다.
이 저서의 서문에서 페토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신학의 본질과 범위를 논하고, "많은 스콜라 신학자들이 가지고있던 논쟁하기 좋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신학하기를 다른 이들에게 위임한다"라고 밝혔다. 스콜라 신학의 방법들이 이단들에 대한 명료화와 논박에 유용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학자들이 오직 논리적 토론술의 훈련이라는 함정에 빠졌거나 학파들이나 옹호자들의 의견에 과도하게 의지하였음을 지적한 것이다. 페토의 목적은 교의 신학자들이 성서와 교부학의 증거를 더 진전된 연구와 발전을 위한 토대로 사용하기 좋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공적인 고백과 성령의 머무심에 대한 그의 공헌은 상당히 가치가 있었다. 시네시오(Synesius, 373?~414?)와 에피파니오(Epiphanius Salaminius, 310/320~402/403)의 작품들을 편집하는 동안, 페토는 초대 교회의 보속의 역사를 공부하였다. 1644년에 그는 신학자인 아르노(A.Arnauld, 1612~1694)의 얀센주의적인 주장들이 담긴 《잦은 영성체에 대하여》(De la fréquente Communion)를 논박하기 위해 《공적 고백과 영성체를 위한 준비에 대하여》(De la Pénitence publique et de la préparation à la commu-nion)를 출판하였다. 3세기의 교부들과 니체아 공의회를 인용하면서, 그는 어떤 죄가 비록 용서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더라도 죽음의 순간에 교회는 그 죄를 용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4세기까지 보속의 실천은 시기와 교회마다 다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주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인간의 영혼 안에 성령이 머물고 있음을 논함에 있어서, 페토는 당시 신학자들이 그리스 교부들의 성서적 가르침조차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의화(義化)가 영혼 안의 창조된 은총의 현존에 의해 발생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선 다른 위격들은 성령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을 통하여 영혼 안에 현존한다. 그리고 둘째로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성화시키는 힘' 으로 불려지기에 영혼 안에서 성령의 행위는 특별한 직위를 요구하며, 신성과 영혼의 합일을 이루는 특별한 방식은 성령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성령의 영혼과의 이 합일은 육화(肉化)의 본체적 합일과는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계속 실체적이며, "성령의 실체는 어떤 신비스럽고 진귀한 방식으로 우리와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페토의 이론은 대다수의 신학자들로부터 거부당하였지만, 몇몇 학자들로부터는 인정을 받았다. 최근의 일부 학자들은 페토의 설명을 수정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였다.
페토는 초기 교부들 중 많은 이들이 삼위 일체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거나 부정확한 주장을 한 것에대해 신학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의 작품은 수세기에 걸친 교리의 발전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로 인해 얀센주의자들과 성공회 신학자인 불(G. Bull)에 의해 "첫 3세기의 거의 모든 교부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신성을 부정하도록" 만들었다고 고발되었다.
※ 참고문헌 F.X. Murphy, 《NCE》 11, 1967, pp. 199~200. 〔金炳魯〕
페토, 드니 Pétau, Denis(1583~1652)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