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救援
〔라〕salvatio · 〔영〕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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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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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은총의 결핍 상태에 놓이게 한 아담과 에와의 범죄(샬트르 성당 스테 인드 글라스).
일반적 의미로는 단지 '도와 건져 줌' 을 뜻하지만, 신 학에서나 종교적 입장에서는 더 다양하고 넓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부활 · 해방 · 구속(救 贖, redemptio),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 · 열반(涅槃, nirvana), 또 구제 · 속죄 등의 모든 의미가 구원으로 해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원죄(原罪)나 속 세의 죄악과 고통에서 건져 준다는 것, 본래의 상태나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 새롭고 올바른 세계로 이끌어 준다는 것 등이 모두 '구원' 의 속성으로 이해되 기도 한다. I . 교의 신학에서의 구원 인류는 자신들의 고통과 범죄성에 대한 체험이 일반화 되어짐에 따라 어떤 절대자의 힘에 의해 이러한 상황이 극복되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구원' 이란 개념은 비록 그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많은 종교들 안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공통적인 요소이다. 가톨릭 신학에 있어서도 '구원' 은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단어임이 분명 하다. 가톨릭 교회에서의 '구원' 은 한마디로 "아담의 죄 로 인해 은총의 결핍 상태에 놓인 인류를 당신의 신적 권 능과 자비로운 사랑으로 다시금 창조 때의 은총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신적 활동을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개념"이라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가톨 릭 교회의 '구원' 을 단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가 톨릭 교회의 구원은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는 거대한 역 사적 흐름 속에 발생한 하느님 계시의 발전에 따라 다양 한 의미를 지니고, 따라서 보다 풍요롭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타난 구원〕 구약성서의 구원 개념은 히브리 어 야샤(יָשַׁע)를 어근으로 하는 여러 파생어들을 번역한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 안에서 체험한 다양한 형 태의 위험에서 야훼 하느님이 베푸신 구체적인 '보호' , '해방' , '구출' , '승리' 등을 지시하는 단어이다. 즉, 구 약성서의 '구원' 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황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개념들이다. 예를 들어서 출애굽 사건(출애 14, 13. 30), 막강한 외세로부터의 승리 (판관 3, 9), 바빌론 유배로부터의 귀환 등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형상화되는 결정적인 역사적 구원 사건이었다. 따 라서 이런 배경 때문에 시편 저자는 죽 을 위험에서의 구출, 병의 치유, 억압으 로부터의 해방, 포로 생활로부터의 자 유, 전쟁의 승리 그리고 정치적 협상 후 의 평화 등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에 '구 원' 이란 단어를 적용시킬 수 있었다(시 편 7. 11 ; 18, 28 ; 22, 22 ; 34, 7. 19 이 하 ; 55, 17 ; 69, 2 ; 86, 2 ; 107, 13. 19. 28). 한편 신약성서에서 '구원' 의 의미 로 사용된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 하는 구약성서의 히브리 표현과는 달 리, 육체적 복락과 그것에 상응하는 영 적 생활을 의미하는 단어인 '소테리아' (σωτηρια)로 통합하여 사용한다. 또한 신약성서의 '구원' 은 종교적인 단어로 서 대부분의 경우 절대로 어떤 순수 지 상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비록 이 단어가 병의 치료나 환난으로부터의 도 움, 윤리적 위험으로부터의 구출 등을 지시한다 하더라 도, 사실은 신앙과 연관된 보다 심오한 실재를 지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마르 5, 23. 28 ; 마태 8, 25 ; 14, 30). 특별히 영과 육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성서의 인간학적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육체적 치유도 예수 그리스 도에 의한 구원 증여의 한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루가 10, 19 ; 18, 42). 구약성서 : 구약성서에 나타난 '구원' 이란 단어는 앞 서 살펴보았듯이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이루는 구 체적인 구원 역사를 언제나 인격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로 묘사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를 하나의 민족으로 자각하게 되면서부터 출애굽 사건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야훼 하느님의 계획된 구원 활동 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출애 15, 2 ; 14, 13. 20). 우선 모세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구해낸 사 건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언제나 당신의 약 속에 충실한 야훼 하느님만이 친히 백성의 지도자를 세 워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 들었다(1사무 14, 39 ; 시편 68, 20 ; 예레 3, 23). 더 나아 가 이러한 신앙은 단지 300명만을 이끌고 전쟁에 나아 간 기드온의 승리를 두고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덕분임을 분명히 의식하였고(판 관 7장),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민족을 곤궁과 억압으로 부터 구해냈던 출중한 판관(판관 2. 16 ; 6, 14 ; 13, 5 ; 1 사무 7. 8), 왕들(1사무 9, 16 ; 11, 9. 13 ; 14, 45 ; 23, 5 ; 2사무 3, 18)은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위한 하나의 도구 로서 간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구약성서에서는 역사 안에서 발생한 구체적 구원 사건들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 전체를 간단히 동일시하지는 않는 다. 구약성서는 역사라는 범주 안에 소실될 수 없는 하느 님의 무한한 권능을 강조하면서도 시공을 초월하는 하느 님의 구원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신앙은 이 스라엘로 하여금 구원 희망의 완벽한 실현 곧 하느님 나 라의 완성을 지향하도록 만들고 있다(이사 51, 6). 구약성 서의 구원관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초월성과 배타 성이다. 일체의 구원 희망의 실현은 오직 야훼 하느님께 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 이외의 어떤 피조 물에 의한 구원 중개도 철저하게 배제한다(이사 43, 12 ; 63, 9 ; 호세 13, 4). 그러나 이러한 야훼 하느님의 구원 의지는 단순히 숙명적이며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야훼 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과 끊임없는 배반에도 불구하 고, 넘치는 사랑으로 당신이 약속한 구원 계획에 끝까지 신실한 분이다(호세 14, 5).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들의 이러한 체험은 대개의 경우 민족적인 차원에서 공유된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 구원의 일차적 대상은 하나인의 공동체로서의 하느님 백 성, 이스라엘이다. 하지만 구약의 구원 개념은 공동체나 민족적 차원의 체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체험된다(시편 7, 11 ; 18, 28 ; 22, 22 ; 34, 7 ; 55, 17 ; 69, 2 ; 107, 13 등). 구약성서에서 개인 혹은 민족을 위한 구체적인 구원 경험은 예언자들의 메시지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예견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 백 성은 바빌론 유배라는 최대의 고비를 체험하면서 자신의 구원관을 보편주의적 전망 하에서 확대시키고 내면화한 다. 즉 야훼는 당신 백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전 인류를 구원할 분이며(이사 45, 22 ; 다니 12, 1), 이러한 보편적인 구원은 세상 종말에 이뤄지고(이사 46, 13 ; 52, 7-10 ; 56, 1 ; 59, 17 ; 62장), 심판을 면할 의인 들 즉 '남은 자들' 에 의해 체험되게 될 것이라는(아모 3, 12 ; 5, 15 ; 9, 8 ; 이사 10, 20-21 ; 28, 5) 희망이 바로 그 것이다. 구원은 남은 자들의 귀환이라는 것, 즉 예루살렘 귀환은 출애굽과 함께 하느님 구원 활동의 징표(예레 23, 6-8)라는 관점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 안에서 의식화된 다(예레 31, 7. 31-33). 이러한 구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 은 "하느님이 통치하는 평화의 왕국" (이사 52, 7)으로 인 식되고, 유배 이후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야훼 하느님뿐 아니라 구원의 현실적인 수여자, 예를 들면 "평화의 왕 자" (즈가 9, 9)와 같은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새롭게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세상 종말에 올 임금이며 구 원을 완성할 그분은 구세주라 칭할 만 하며(스바 9, 9 ; 70인역본), 그분은 억압받는 가난한 사람을 구원할 분이 다(시편 72, 4). 야훼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당신의 충실한 종을 파견한다(이사 49, 6. 8). 즉 구세주는 다윗 가문의 왕이 될 것이고(미가 5, 1 ; 시편 110, 1), 놀라운 권능을 떨치며 하늘로부터 내려올 분이 지만(다니 7. 13 ; 이사 35, 4), 고난을 받음으로써(이사 52, 13-53, 12) 이스라엘의 충성스런 남은 자들을 구원 할 분이라는 것이다(이사 10, 20-22). 결국 구약성서에 나타난 '구원' 의 의미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실현할 최종적인 구원을 향해 발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 : 신약성서 전체가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 는 것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역 사가 역사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이다(루가 1, 69 ; 2, 30. 71. 77 ; 사도 5, 31 ; 13, 23). 사도들의 가르침의 핵심은 예수가 유일한 구세주라는 것이다(사도 4, 9-12 : 루가 4, 17-21). 본래 선하게 창조된 인간은 자유를 악용하여 하느님과의 관계 를 끊고 죄를 범하고 말았다. 따라서 인간들은 유죄 판결 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로마 5, 16). 하지만 하느님은 이 모든 사람이 모두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람으로써(1디모 2, 4 ; 4. 10), 당신 아들을 세상의 구세 주로 보내주었다(1요한 4, 14). 결국 하느님은 친히 사람 이 되어 당신의 가르침과 기적들, 삶의 모범, 수난과 죽 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당신의 성령의 파견을 통해 인 류를 구원한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의 말씀과 업적을 통 해서 자신이 구세주임을 계시하였다. 그분은 악마를 추 방하는 기적을 행하고(루가 11, 20), 죄인, 가난한 이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하고 치유하는 말씀과 업적을 통해 (마르 2, 1-12 ; 루가 7, 36-50) 세상에 구원이 이미 실현 되었음을 스스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구원은 육체적 구원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분은 인간들이 더럽혀졌을 때 당신 의 피로 씻고(묵시 7, 14), 하느님을 거슬러 지은 죄 때문 에 죽음의 판결을 받은 인간을 오히려 용서하여, 그들의 죄에 대한 처벌을 철폐하고 유죄 판결을 무효화한다(1요 한 2, 1 ; 3, 5 ; 골로 2, 14 ; 마태 8, 17 ; 사도 5, 31 ; 1베드 2, 22-25). 그분은 죄악의 어둠 속을 헤매는 인간들에게 세상사의 빛이 되어 주는 분이고(요한 8, 12), 인간들이 죽음의 공포와 고통 그리고 세속과 악마 의 타락한 권세의 노예가 되었을 때 당 신의 죽음과 부활로 인간의 죽음과 세속 과 악마를 쳐 이기고(루가 8, 12), 제2의 모세로서 승리의 해방자가 되어 주는 분 이다(사도 26, 18 ; 1요한 3, 8 ; 골로 1, 13). 그분은 인간들이 길 잃고 헤매일 때, 그들을 인도하는 착한 목자이며(요 한 10, 11),인간이 고통을 당하면 치료해 주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고(루가 10, 34), 참으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의 치유 를 통해 구원을 주는 분이다(루가 7, 1823). 물론 인간은 자신만의 힘으로 구원되 지 못한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은총일 뿐이다(사도 16, 17). 하지만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 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 하다. 우선 영원한 구원의 원천이요,유일한 구세주인(사 도 4, 1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루가 8, 48 : 17, 19 ; 18, 42 ; 사도 16, 30 이하 ; 로마 10, 9 이하) 회개하는 것이다 (사도 5, 31). 병자들은 믿음에 의해서 구원되었고(루가 8, 48 ; 17, 19 ; 18, 42), 제자들은 의심이 많다고 책망받았 다(마태 8, 26 ; 14, 31).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세례를 받 음으로써 결정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1베드 3, 21). 하느 님은 신자들을 그들의 업적과 상관없이 순수한 자비심으 로 구원하며(2디모 1, 9 ; 디도 3, 5), 세례 때 그들에게 성 령을 보내어 은총을 줌으로써 구원한다(2데살 2, 13 ; 에 페 1, 13 : 디도 3, 5-6 에페 2, 5. 8). 또한 그리스도교 신 자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하고(야고 1, 21 ; 2디모 3, 15), 선행을 실천하며(야고 2, 14), 구원을 위한 여러 덕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야만 한다(1데살 5, 8 ; 히브 2, 3). 바로 이와 같이 응답하 는 인간들에게 그리스도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개인 그리 고 공동체 차원에서 점차 해방시켜 주고, 마침내 당신께 서 세상 종말에 다시 올 때에, 세상 모든 것을 당신 안에 서 성부께 결합시킴으로써, 낙원의 기쁨과 육신의 불멸 을 그들에게 되찾아 줄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하느님의 계시는 인간이 본래 하느님 과 다른 피조물들에 대해 바르게 질서지워진 상태로 창 조되었고(DS 1511), 현세에서의 시련이 끝난 후에는 천 상에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은총에 의해서, 마침내 신적 질서로 고양되도록 창조되 었다고 가르치고 있다(Ds 3005). 그러나 아담의 불복종 즉 인간의 자유 의지 남용 때문에 이러한 최초의 상태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인간은 혼돈된 세상에서 태어나게 되었고(DS 1513), 은총을 박탈당함으로써 하늘 나라를 차지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고통, 슬픔, 사 회 부정 등의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 의 욕구들은 죄로 유혹받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친히 인간에게 구원을 약속한 후에 (창세 3, 15),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느님 백성' 으로 뽑아 세움으로써 인간들의 구원을 준비케 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이 된 당신 아드님의 파견을 통해 세상의 구원을 결 정적으로 이루길 원하였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 도이다(1디모 2, 4). 그리스도는 인간을 본래의 상태로 회 복시켜 준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원수된 상태에서 하느 님과 화해시켜 주고(DS 1513 ; 1디모 2, 5 ; 로마 5, 10), 영적인 죽음과 상속권 박탈로부터 인간들을 하느님의 자 녀와 하늘의 상속자로 새로 나게 하고(로마 8, 17), 죄의 노예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당신의 피와 '하느님 백성'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통해 구속하고(디도 2, 14 : 1베드 1, 18 ; 1고린 6, 20), 유배당하고 흩어진 인간들을 당신 안에서 하느님과 다시 하나로 결합되게 하고(요한 17, 20-23), 영적인 혼돈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하느님의 모 상으로 재창조한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인간들의 죄를 온전히 갚는 것이었고(DS 1529), 그분의 삶과 죽음 은 모든 사람을 구원할 만한 것이었으며(Ds 1560), 그의 희생으로 인간들이 포기했던 창조주께 대한 충성을 다시 되돌려 놓았다(DS 1739~1740).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 었으나 다시 살아난 당신과 결합하는 모든 사람들을 죄 에서 죽어 새로운 은총의 삶으로 다시 살린다(로마 6장 ; 에페 2, 15).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업적들 은 과거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 업적들은 교회 안에서 당신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신비체, 54~56항), 성사들을 통해서(DS 1607), 당신의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당신의 희생 제사의 전례적 재현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의 마음에 새겨진 당신의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DS 1525), 천상으로부터 계속해서 각 개별 영혼들에게 그 효과를 드러낸다(DS 1546 ; 신비체, 50항). 〔교회와 구원〕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 고,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기 시작하시며 그 신비를 우리 에게 계시하셨으며, 당신 순명으로 구원을 성취하셨다. 신비에 싸여 이미 현존하는 그리스도 왕국인 교회는 하 느님의 능력으로 세상에서 볼 수 있게 자라고 있다. 이 기원과 성장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옆가슴이 열려 피와 물이 흘러내릴 때에 표현되었고, 십자가에서 당하실 당신 죽음에 대한 주의 말씀으로 예고되었다···" (교회 3항). 교회가 십자가에서 수난하는 그리스도의 피 와 물에서 생겨났다는 신학적인 해석이 지닌 의미는 의 미 심장하면서도 분명한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원을 인류의 역사 안에서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의 담당자이며, 그 구원 의 주역인 그리스도가 직접 세운 그분의 체현, 즉 그분의 몸이라는 것이다. 마치 피가 혈관을 통해서 몸 구석구석 에 생명을 전달하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사라는 혈관을 통해서 구원의 은총을 각 지체에 전달하면서, 그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인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느님과의 완전한 은총의 관계를 회복하는 지복직관(至福直觀)을 향해 나아간다. 이처럼 구원의 보관자이며 전달자인 교 회의 입장에서 볼 때 구원론은 자신의 존재 근거와 의미, 나아가서 사명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신앙적, 지성적, 실천적 대답을 찾아내는 과정 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스럽게도 교도권은 성서와 성전에 근거 해서 이러한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하느 님이 구원의 유일한 원천인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렸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구원 을 받을 것이다(로마 10, 9).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정 상적으로 따르는 길은 그가 세운 교회와 합체되어 교회 와 함께 사는 것이며, 교회를 따르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라는 것이다(루가 10, 16 ; 마태 18, 17 ; 요한 13, 20). "그리스도만이 중개자이시며 구원의 길이시고,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현존하시 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명백한 말씀으로 가르치심으로써(마르 16, 16 ; 요한 3, 5), 사람들이 마치 문을 통하는 것처럼, 세례를 통하여 들어가는 교회의 필요성을 동시에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으로 세웠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 안에 들어 가지 않는 사람과 그 안에 항구하게 머물지 않는 사람은 구원될 수 없다" (교회 14항). 즉, 교회를 알면서도 믿지 않는 미신자와, 자기 스스로 교회를 이탈하는 이단자와 이교자는 구원될 수 없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라는 전통적인 격언을 '그리스도의 신비체' 라는 개 념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즉 자기 탓 없이 복음을 받지 못한 자라도, 참 하느님을 예배하는 타종교인이나 참 하느님을 모르고서도 양심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 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교회 16 항)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참으 로 희박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라는 범위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개념의 범위를 더 크게 인 정하여(교회 8항) , 이 사람들이 신비체 로 지향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에도 관련 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가톨 릭 신자는 교회와 완전히 합체되고(incorporantur), 기타 그리스도교 신자는 불완 전하게 연결되고(conjunguntur), 기타 선 의의 신앙인과 구도자는 교회에 관련된 다(condinantur)고 설명하고 있다. 〔구원과 종말론〕 구약성서에서 이스 라엘의 구원은 확실하다. 그것은 출애 굽 사건과 시나이 계약, 유배지로부터 의 예루살렘 귀환 등의 역사 안에서 하 느님의 계속적인 구원 행위를 통해 현 실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 는 세상 끝날에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 이다. 이러한 구원의 종말론적 성격은 특별이 제2 이사야의 예언서에서 대표 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구약의 예언서 는 세상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의 최종적 인 구원이 이루어질 것임을 다양하게 서술하고 있다(예레 31, 7 ; 이사 45, 22). 따라서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이 러한 최종적 구원에 합당한 필수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회개를 권유한다(이사 30, 15 ; 예 레 4, 14). 한편 구약성서 중 후기 작품 들에서는 심판의 날이 오면 이스라엘은 최종적인 구원을 희망할 수 있고, 이스 라엘을 억압했던 다른 이방 민족들은 최종적인 멸망에 이를 것이라는 관점이 나타난다(지혜 5, 2 ; 요엘 3, 5 ; 다 니 12, 1 이하). 즉 후기 유대주의 안에서는 모세 오경을 하느님의 구원적 선물로 간주하게 되고, 그 도움으로 인 간은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킬 수 있고, 스스로 공로 를 쌓을 수 있으며, 하느님은 이러한 공로에 따라 후세에 보상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약성서에는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의 상황이 구 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현재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의 구속적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죄와 율법으 로부터의 해방(로마 6장 이하 ; 1디모 1, 15 ; 에페 2, 1-10), 죄의 용서(사도 10, 43 ; 13, 28), 하느님의 자녀 됨(로마 8, 14-17), 은총에 의한 의화(로마 3, 24 ; 8, 29)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느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구원을 마련 하고(1데살 5, 9) 구원의 상속자가 되게 하였다(히브 1, 1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느님의 구원은 결정적으로 '이미' 실현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구원은 아직은 희망으로서 주어진 것이고(로마 8, 24), 세상 마지막 날에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1베드 1, 5). 따라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래한 구원 현실에 세례를 통하여 동참하지만, 동시에 세상 마지막 날에 재림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미래의 구원 현실에 대한 희망과 기대 속에 살아가게 된 다(히브 9, 28 ; 로마 8, 24 ; 13, 11 ; 필립 3, 20 ; 1데살 5, 9 ; 1베드 1, 5). 성서에서는 이렇게 세상 마지막 날에 완 성될 미래적 구원을 주님의 날에 있을(1고린 3, 15 ; 5, 5) 하느님의 노여움으로부터의 구원(로마 5, 9 ; 마르 13, 13), 이스라엘 조상들의 잔칫상에 함께 참여함(마태 8, 11 이하), 다가올 세상에서의 영원한 삶(마르 10, 30) 등 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구원의 종말론적 성격이란, 단지 미래의 사건 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역사적인 구원과 종말적 구원 사 이에는 괴리나 모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 적인 구원이 단순히 과거에 지나간 사건으로 끝나는 것 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현재화되고, 이것은 다시 종말에 이루어질 최종적인 구원의 전형(典型)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말론적인 구원이란 이미 실현된 역사적 구원이 예시하고 약속해 주는 역사 저 너머에서 최종적으로 완 성될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 현재 · 미 래는 서로 다른 세 가지 구원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하나 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한편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깨달 음에 도달하기를 원하십니다"(1디모 2, 4)라는 말과 "예 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실 것입 니다"(2데살 1, 8)라는 말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즉 하느님은 유죄 판 결을 면할 수 없게 된(로마 5, 16. 18) 죄 속에 살아온 인 류(로마 3, 10-20)가 거저 베푼 당신의 구원(1디모 1, 9)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유죄 판결이 없게 만들어 주었다(로마 8, 1). 그러나 이 기회를 거부하는 자는 역사를 끝맺는 최후의 심판을 면할 수 없 다(마르 3, 29 ; 9, 43-48). 따라서 지옥에 가는 자는 이중 죄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후 심판은 창조주를 거부하 고 그분이 주는 구원을 거부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세상 에서 진행 중인 구원의 과정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느님은 죄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을 일단 포기 하고 구원의 길을 터줌으로써 인류의 역사를 활성화시킨 다. 하느님은 인간의 창조와 종말이라는 양극 사이에 당 신의 아들을 보내어 역사 한가운데 규범과 기준을 세우 고, 인간의 일반 역사를 이용하여 당신의 구원 의지를 이 루려고 한 것이다. (→ 구원론 ; 그리스도론) ※ 참고문헌 E.L. Peterman, Redemption, 《NCE》 12/ K. Rahner, 《SM》 6/ F.S. Florenza, Redemption, 《NDT》, Gill and MacMilian, 1990, pp. 836~851/ M. Eminyan, 《NCE》 12/ 박상래, <구원의 '무엇' 과 '누구' (2)>, 《사목》 35호(1974. 9), pp. 83~91/ C. Lesquivit, 김경환 역, <구원>, 《신학 전망》 43호(1978, 겨울호), pp. 84~91. 〔金利均〕 II . 종교학에서의 구원 인간이 병이나 자연적 · 사회적 재난을 인간의 힘으로 모두 극복할 수 있다면 구원의 종교적 의미는 제기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재난을 혼자의 힘이나 혹은 인간들이 협력한 문화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동양 사상에서는 이 재 난이 자연의 부조화에서, 혹은 성(聖)으로부터 속(俗)이 분리되는 데서 온다고 함으로써 완전성으로부터의 분열 이 모든 재난의 원인이라고 믿는다. 위기(cisis)라는 말의 그리스어 크리시스(κρισις)가 분열(to separate)을 뜻하고 라틴어 체르네레(cernere)도 역시 분열을 뜻하는 데서 많 은 암시를 받을 수 있다. 한편 성(聖)을 뜻하는 'holy' 는 앵글로-색슨어의 'hal' 을 어근으로 한 말인데, 이 말은 '건강한' (sound) '온전함' 혹은 '전체' (whole)라는 의미 를 지니고 있다. 동일한 어근에서 나온 'hale' 이란 단어가 '강건한' (healthy)이란 의미를 지닌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또 '온전함' , '전체성' 을 뜻하는 영어의 'whole' 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하파스(ἅπας)는 독일어의 'Heilen' 이란 동사로 남아 병을 '치료한다' (heal)는 의미 가 첨가되었다. 이와 같이 healthy, hail, hale, holy, whole 등 은 모두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고대의 인간들 은 병이나 재난의 원인이 성(聖) 혹은 완전성(전체성)에 서 분리된 결과라고 보았으며 이것은 낙원으로부터 쫓겨 난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속 (谷)으로부터 성(聖)으로, 분열로부터 전체성으로 회귀 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속 종교, 민족 종교, 세계 종교의 차원에서 이런 구원의 열망이 어떤 경 우에는 어렴풋하게 어떤 경우에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 음을 발견할 수 있다. 〔종교상의 구원〕 민속 종교 : 민속 종교는 특별한 교조 (敎祖)나 교리, 혹은 교단 조직과 같은 것들이 형성되지 않은 단계의 종교를 말하는데, 그런 면에서 성립 종교 (established religion)라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종교는 지역 사회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지방색이 풍부하고 조직화의 영역도 대단히 협소 하다. 민속 종교의 일차적인 바탕은 자연 종교적인 면으 로 산이나 물, 나무, 돌 등의 자연물 자체를 숭배의 대상 으로 삼거나 비나 바람, 우뢰, 불, 태양 등의 천연 현상 을 일으키는 영감적 존재를 외경하는 정령 신앙(精靈信 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원시 신앙은 인간 사회 의 진전에 따라 생활의 분화가 이루어져 종교 영역도 그 에 따라 정착하게 된다. 민속 종교의 특성은 현세적인 것 과 주술적인 것이 연결된 점에 있다. 그 가운데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열망이 숨겨져 있으며, 이는 특히 성 (聖)과 속(俗)의 분명한 구별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성 과 속의 구분은 민족 종교나 세계 종교에서도 보이지 않 는 것은 아니지만, 그 둘 사이의 보편적 관계는 민속 종 교적인 차원에서 흔히 살필 수 있고, 성을 향하고자 하는 열망도 볼 수 있다. 성은 영속적, 혹은 일시적 특성으로 서 어떤 사물 · 인간 · 공간 · 시간 등에 두루 퍼져 있는데 어떤 신비적인 사건에 의해 성으로 되면, 그 순간부터 하 나의 변질을 겪고 두려움과 숭배의 감정을 불러일으킨 다. 원시인들에게는 그 성을 접촉하는 것이 위험시되기 도 하였다. 반면에 속은 부정적 성격으로 확인되며, 빈약 한 생명력이나 허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민속 종 교인들은 성과 속을 구분한 뒤 속의 허무를 극복하고 성 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다. 민속 종교인들이 성에 대하여 갖는 감정은 두려움과 동시에 신뢰감과 같은 양극 감정이었다. 그러므로 그들 도 성소(聖所)를 한두 개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곳은 도피의 장소로 사용됨은 물론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곳은 이 지상의 속된 곳과 달리 생명력이 솟 아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성을 유지하기 위한 소극적 방법은 터부의 현상에서도 관찰된다. 터부 는 우주를 규율과 안정성 가운데서 지배한 성스러운 법 이 있음을 암암리에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 지 않는 성스러운 질서가 속된 것과 혼동되는 것을 막으 려는 세심한 주의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자연 질서가 사 회 질서를 계속하고 반영한다는 생각은 민속 종교인들이 믿은 대표적인 내용이다. 그뿐 아니라 민속 종교인들도 기쁨이나 환희를 포기하고 금욕을 지키는 행위를 하기도 하였으니, 그들도 현실의 환희나 부(富)를 포기하는 것 이 보이지 않는 질서에서 힘을 획득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최초로 생산된 것을 봉헌하는 행위도 민 속 종교에서 나타난다. 이 경우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일부분이 포기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무엇 보다도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믿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행위들이 바로 구원을 열망하는 민속 종교인들의 몸짓이었다. 민족 종교 : 민족 종교는 글자 그대로 특정한 민족이 나 국가에서만 신봉되는 종교를 말한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는 미개 민족의 종교도 그 안에 포함시켜 세계 종교에 대칭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대체로 민족 종교 는 혈연적 혹은 지연적인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반 드시 그렇지는 않으며, 운명이나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 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한 경우도 많은데, 이러한 것으 로는 고대의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유대교, 그 리이스 · 로마, 멕시코 종교, 일본의 신도(神道)나 한국 의 대종교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부족 연합에 의해 민족 이나 국가가 성립되면, 그때까지 여러 지방에서 유지되 었던 종교들은 보다 유력한 종교에 의해 통합되거나 하 나의 새로운 종교로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신들의 위 계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과 함께 민속 종교에 비하여 신 관념이 보다 명확해지고, 그 신을 중심으로 한 신화나 혹 은 신학이 체계화되기 시작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과 인간이 구분됨과 함께 그 사이를 연결하는 제사 제도가 발달하며, 인간 사회에는 계급 분화가 이루어지고 그렇 게 해서 출현된 군사적 · 정치적 지배자는 동시에 종교적 지배자이기도 하고, 왕은 바로 신이거나 혹은 그 신의 자 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종교적인 전문 집단 도 형성된다. 이처럼 민족 종교는 그 민족 특유의 문화 전통이나 풍 속 습관으로 인하여 타민족의 종교와 다른 고유한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에 그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 서 다른 곳으로 확산되기 어렵다. 구원의 대상은 자연히 그 민족이나 국가에 한정되고, 그 민족의 단결과 통합을 강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능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종교 윤리로서 개인보다는 집단이 항상 우위에 서고 배타적이며 비관용적인 성격이 강해진다. 민족 종 교는 그것이 아무리 높은 단계로 발전한 것이라 해도 하 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존립, 혹은 그 복지와 번영을 위 한다는 궁극의 목적에 의하여 제한되고 있다. 민족의 신 은 그 집단 성원에 대하여는 엄한 준수를 요구하는 데 비 해 다른 민족은 그것을 타당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 민족이 받는 여러 재해나 불행은 그 민족 신에게 바치는 의례를 통해 신과 화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간주한 다. 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는 아직 개개인의 인격이나 '이방인에의 전도' 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종교의 보편적 진리나 인류애의 원리가 자각되지 못하고 있고, 민족이 나 국가의 성립을 부정하는 죄는 용납되지 않는다. 만약 그와 같은 죄를 범하면 추방되지 않을 수 없으며, 반대로 민족을 위하여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운 자는 민족 전체의 구원을 일층 향상시킨 것이 된다. 따라서 구원은 민족 전 체와 연관되어서만 생각되고 개인의 구원을 생각하는 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세계 종교 : 세계 종교에서는 인류 전체의 구원과 개 인 영혼의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 원을 이야기한다. 세계 종교에 대한 관점은 학자들마다 다른데,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만을 세계 종교로 보는 경우가 있고, 위의 3대 종교 외에 유 교, 힌두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도교 등도 세계 종교 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세계 종교는 일반적으로 창시 자의 혁신 운동을 배경으로 하면서 창시자의 인격을 중 심으로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 또 민족 종교에서 찾을 수 없는 현세 초월의 원리가 개인의 인격 가운데서 깊이 있 게 추구되는데, 세계 종교의 특색을 현세 거부 사상에서 찾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현세와는 다 른 곳에 가치를 두고 있는 세계관, 즉 이 세상과 저 세상 을 확연히 구분하는 이원적 세계관이 이로부터 출현하게 된다. 민속 종교가 생활 공동체를 바탕으로 성립하고, 민족 종교가 민족이나 국가를 바탕으로 성립한 종교라고 한다 면, 세계 종교는 영원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 자체 를 바탕으로 성립한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 종교는 인종이나 민족, 국적, 성별, 계급을 초월하 여 인간 자체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병을 예로 든다면, 민속 종교인들은 병을 완전성으로부터의 분리라는 개념 아래 이해하여 병의 치료가 종교적인 행위와 밀접한 관 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병의 원인이 성 (聖)의 모독이나 악마의 간섭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그것을 제거하는 의례를 통하여 완전성을 회복하여 치료 하려 한다. 여기에서 만약 병이 치료되면 병의 고통도 잊 어버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종교에 서는 이 문제가 그렇게 평면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 인간은 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되는가? 인간이 살아 있다 는 것과 병이나 늙음이나 죽음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등의 문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성의 근거 를 자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고뇌는 고통의 상태가 사라 진다고 해도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결코 해결되 지 않으며, 그 해결은 인간이 자기의 유한성을 여러 방법 으로 극복함으로써만 성취될 것이다. 석가모니가 생로병 사의 도리를 깨달은 사실은 바로 이와 같은 차원에서 이 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민족 종교의 신에 대한 화해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하여 자기 가 지은 죄를 자각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원죄의 실존적 체득으로까지 깊어지지 않으면 안되고, 교조의 종교적 자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영혼에서 영혼으 로 감응하면서 서로서로 공감하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 다. 이처럼 이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세 거부적인 세 계 종교의 사상은 현세적 질서 안에 있는 인간을 무가치 한 것으로 여기고 대신에 참 자기가 있는 곳을 가르친다. 현세와 다른 세계가 강조되기 때문에 천국이나 지옥 등 타계(他界) 관념이 발전하고, 그 타계와의 관련 아래 구 원의 문제가 관심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세계 종교라고 하여 민속 종교나 민족 종교의 요소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세계 종교는 민속 종교나 민족 종교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으므로 그 안에 이미 두 가지 종교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결국 세계 종교라는 것도 민족 종교를 바 탕으로 성립된 것이므로 어느 한 측면으로만 볼 수는 없 고 역사적으로 발전하여 온 넓은 층을 모두 포괄하고 있 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포괄의 능력은 내면의 자각을 통해 인류 전체에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생성되며, 교조의 종교적 자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영혼에서 영혼으 로 감응하는 놀라운 전파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은 보편 종교 혹은 세계 종교에 의해 성립되고, 이는 모든 사람을 참 종교적 실존으로 각성시킨다고 할 수 있 다. 구원은 이제 외적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실 존적 자각의 문제로 귀착된다. 구원을 위해 옛날의 자기 를 죽이고 새로운 실존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며, 동시에 현재의 상황을 초월하지 않으면 구원을 기대할 수 없다. 〔구원의 방식〕 인간은 현세의 문제를 넘어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사회 문제에서 생기는 것들을 뛰어넘어 더 근본적인 문제, 즉 우주와의 관련 아래 생각해야 하는 문제도 해결하려고 한다. 바꾸 어 말하면, 인간은 현세적인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 며, 그런 면에서 고통과 불만족스러운 조건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 조건의 원인을 어디서 찾으며, 그것 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해결 방법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 두 가지 대답을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초월 적 인격신을 믿는 종교의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는 종교의 방법이다. 대체로 전자 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예를 찾을 수 있 고, 후자는 힌두교, 불교, 노장 철학과 같은 동양 종교관 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인격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궁극 적인 존재인 신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와 질적으 로 다른 초월적 경지에 있다고 보며, 인격신을 믿지 않는 종교에서는 자연과 초자연을 구태여 구분하지 않는 경향 이 있다. 현세에서 인간이 받는 고통이나 인간 조건은 초월적인 인격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해석된다. 이는 우선 인간 이 범한 죄에 기인하며 더 근본적으로는 원죄에 기인하 고, 죄의 관념은 초월적 인격신 앞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 하느님에 대한 두려운 감정과 함께 구원을 갈망 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동양의 일원론적 종 교관에서는 죄의 관념이 좀체로 생겨나지 않으므로 만일 죄가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사 회적인 성격의 것일 뿐이다. 인간 조건에서 오는 고통은 초월적인 존재와 현존하는 존재로 나누었을 때는, 죄와 벌이나, 두려움과 신앙으로 나타나지만, 동양 종교들에 서는 이것이 하나의 존재 속에서 생겨난다. 뿐만 아니라 전자에서는 인간의 궁극적인 조건을 해결하는 구원 혹은 구제의 방식도 신앙의 형태를 취한다면, 후자에서는 깨 달음이나 앎의 문제로 귀착된다. 따라서 초월적 인격신 에 대한 신앙을 통해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 것을 '구 원' 이라 한다면, 일원론적인 종교에서는 글자 그대로 구 원이라는 말이 적합치 않으며 깨달음을 통한 자기의 '구 제' 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루돌프 오토(R. Otto)는 전자를 타력 신앙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자력에 의한 구 제(self-salvation)라)과 하였다. 전자는 항상 하느님이 구원 의 주도권을 가지고 인간을 지극한 사랑으로 구원하려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자연 상태의 인간, 즉 원죄를 가 지고 있는 상태로서는 구원의 희망이 없을 수밖에 없으 나 하느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여 인간을 비참함 속 에 영원히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결과 이성으 로서 알 수 없는 인격신의 계시를 신앙으로 겸손하게 받 아들이는 자세야말로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 다. 인간의 앎이나 깨달음은 하느님의 빛 아래서는 한갓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신앙을 통한 절대적 귀의와 순종 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교의 아브라함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하느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사실에서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격신을 인정할 경우에는 믿음과 앎의 관 계를 설명할 때, 앎을 넘어서 초월적인 것에 뛰어드는 '결단' 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앎과 깨달음의 절 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양의 종교관에서는 모든 악이 나 고통의 근원을 무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무지 (혹은 무명)를 깨닫는 것이 진정한 앎이고, 그 앎을 통해 서 인간 조건이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데, 이것은 어떤 정보의 체계를 많이 아는 것과 같은 '지 식' 이 아니라 일종의 '치료적인 앎' (therapeutic knowledge) 과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스스로의 문제를 깨닫 게 함으로써 고통의 원인을 발견하도록 하고, 스스로 고 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정신 분석 치료와 유사하 다. 물론 종교적인 깨달음은 개인의 특정한 심리적인 병 의 원인을 깨닫게 하는 치료적인 앎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 는 특정한 병의 원인이 아니라 무지 자체의 근원을 깨닫 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스로 무지를 깨달음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해탈을 얻는 다는 것은 신앙에 의해 구원을 얻고 자유롭게 되는 것과 방법상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로 대표되는 구원을 타력 신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동양 의 힌두교나 불교 혹은 도교와 같은 것을 자력적인 구제 라고 하여 그것과 구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에 자력적인 요소가 없고, 불교에 타력적인 요소가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하 느님의 절대 권력이 강조되는 구원의 섭리를 믿어 온 그 리스도교는 분명 동양의 여러 종교들에 비해 타력적인 면이 강조되어 왔다. (→ 열반 ; 해탈) ※ 참고문헌 Rudolf Otto, Mysticism East and West, The Theosophical Publising House, U.S.A., 1987/ 一, Das Heilige(길희성 역, 《성스러움 의 의미》, 분도출판사, 1987)/ Roger Caillois, L'Homme et le sacré, Gallimard, 1950/D.T. Suzuki, Mysticism Christian and Budhist(강영계 역, 《엑크하르트와 禪》, 도서출판 主流, 1989)/ Christopher Jay Jphnson · Marsha G. McGee eds., Encounters with Eterntiy, Philosophical Library, New York, 1986. 〔李恩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