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놀라의 Felix Nolae(?~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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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3세기경의 증거자. 신부. 축일은 1월 14일.
펠릭스는 나폴리 근처에 있는 놀라에서 시리아 출신 군인인 헤르미아스(Hemias)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뒤, 그는 거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주교인 막시모(Maximus)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데치우스 황제(249~251) 때인 250년에 박해가 일어나자 막시모 주교는 피신하였지만, 펠릭스는 박해자들에게 붙들려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사슬에 묶인 채 투옥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가서 주교를 도와 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려 마침내 그는 주교에게 갈 수 있었다. 펠릭스가 찾아갔을 때 주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박해자들은 펠릭스를 다시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의 은신처에 거미가 집을 지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그는 붙잡히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그 후 펠릭스는 6개월 동안 마른 우물 속에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에 박해가 그치자 다시 사제 직무로 돌아올수 있었다. 주교가 곧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펠릭스가 주교가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선배 사제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그들을 설득하였다. 또한 그는 박해 기간 중에 몰수당한 재산을 다시 돌려받는 것을 거절하고 생계를 위해서 약간의 땅을 빌려 손수 가꾸었다. 펠릭스는 외투가 두 벌이면 어김없이 더 좋은 것을 남에게 주는 등, 남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260년 1월 14일에 선종하였는데, 서거한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많다.
펠릭스를 기념하여 봉헌된 성당 중 대표적인 곳이 놀라에 세워진 성당으로, 이곳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놀라의 주교(409~431)였던 바울리노(Paulinus de Nola, 353~431)가 펠릭스의 무덤 위에 큰 성당을 지어 성서 내용의 벽화로 내부를 장식하였다. 바울리노는 많은 순례객들이 펠릭스 성인을 기리며 찾아왔다고 증언하였으며 그가 펠릭스 성인에 대해 쓴 많은 시와 편지들은 이후에 만들어진 전기의 자료가 되었다. 펠릭스 성인의 유해 일부는 로마와 베네벤토(Benevento)에 모셔져 있다. (→ 바울리노, 놀라의)
※ 참고문헌  A.C. Rush, INCE》 5, 2003, p. 670/ G. Bardy, (Cath) 4,p. 1155. 〔宋炯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