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의 주교. 앵글리아의 펠릭스(Felix in Anglia)라고도 한다. 축일은 3월 8일.
프랑스 중부의 부르고뉴(Bourgogne) 출신인 펠릭스는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언제 주교 서품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캔터베리(Canterbury)의 제5대 교구장인 호노리오(Honorius, ?~653)를 찾아가 앵글족(Angle)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이스트앵글리아의 왕인 래드월드(Raed-wald, ?~616/6277)에게 추방당하여 프랑크족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중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지게베르트(Sigebert, ?~635)가 630년부터 이스트앵글리아를 통치하게 되자, 호노리오 대주교는 이스트앵글리아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펠릭스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스트 앵글리아에서 주교직을 수행하였는지, 캔터베리에는 얼마나 머물렀는지, 영국으로 오기 전에 갈리아(Gallia, 현 프랑스) 지방에 머물면서 이미 지게베르트 왕과 알던 사이였는지 등은 모두 확실하지 않다. 펠릭스는 잉글랜드 동부에 있는 서팩 만(Suffolk Coast)의 던위치를 주교좌로 삼고 왕실의 지원을 받아 갈리아 지방과 같은 형태의 학교를 세우고 캔터베리에서 교사들을 데려왔다. 그가 주교직을 수행하는 동안 아일랜드 출신의 퍼시(Fursey, ?~650) 아빠스가 버그(Burgh)성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펠릭스의 활동은 갈리아 지역 교회가 앵글로 색슨족의 개종에 기여한 좋은 모범이었다. 그는 17년 동안 이스트앵글리아의 왕과 캔터베리의 대주교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면서 주교좌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의 유해는 소함(So-ham)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램지(Ramsey)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그에 대한 공경이 기록된 전례력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000년경의 것이며 여섯 개의 옛 성당들이 그에게 봉헌되었다. 서팩의 스토우(Feliixstowe) 성당은 펠릭스를 수호 성인으로 모신 것이 확실하고, 요크셔(Yorshire)의 펠릭스커크(Felixirk) 성당도 그럴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 참고문헌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Saints, Oxford Univ.Press, 1996, p. 175/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 1991, pp. 191~192. 〔宋炯萬〕
펠릭스, 던위치의 Felix de Dunwich(?~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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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