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와 아다욱토 Felix et Adauctus(?~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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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와 아다욱토.

펠릭스와 아다욱토.

성인들.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와 막시미아누스(286~305)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축일은 8월 30일.
855년경에 쓰여진 《아도 순교록》(Matyrologium Ado-nis)에 이 두 성인의 전기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로마의 사제인 펠릭스는 이교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를 위해 집정관 드라쿠스(Dracus)가 그를 세라피스(Serapis)와 메르쿠리우스(Mercurius), 디아나(Diana) 등 로마의 신들을 모신 신전으로 데려갔는데 그가 기도를 하자 우상들이 떨어져 부서져 버렸다. 그로 인해 그는 곧장 처형장으로 압송되었다. 그가 압송될 때, 길에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한 사람이 합류했는데 그 사람도 함께 처형되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에게 신자들은 '추가된 인물' 이라는 의미의 아다욱토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러한 내용의 전기는 교황 다마소 1세(366~384)의 묘비를 오해한 것에서 생겨난 전설로 여겨진다. 당시 로마의 집 정관 중에는 드라쿠스라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 두 성인들에 대한 공경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두 성인은 로마의 초기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들과 순교자 전기들 속에 등장한다. 두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은 오스티아 가(Via Ostiensis)의 콤모디야(Commodilla) 공동 묘지에 있는 무덤 위에 세워졌고, 교황 레오 3세(795~816)가 바오로 대성전 근처에 대성전으로 재건축하였다. 850년에 교황 레오 4세(847~855)는 이 성인들의 유해를 프랑크의 황제인 로타르 1세(817~855)의 부인인 이르멘가르트(Imenngad)에게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성인들의 유해를 알자스(Alsace) 지방에 있는 에쇼(Eschau)의 수도원에 주어 모시도록 하였다. 1361년에 유해는 다시 빈(Wien)의 스테파노 성당으로 옮겨졌으며, 성인들의 머리 부분은 앙주(Anjou)와 괄른(Koln)으로 옮겨졌다. 문헨 서쪽의 안데흐스(Andechs) 시에서 발간한 《안데흐스 연감》(Chronicle of Andechs)에 따르면, 그 지방의 마지막 공작이었던 하인리히가 교황 호노리오 3세(1216~1227)로부터 성인들의 유해를 받아 안데흐스 수도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 참고문헌  G. Bardy, 《Cath》 4, p. 1157/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176/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 1991, pp. 193.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