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본당 平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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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강원도 평강읍 서변리 소재. 1924년에 이천 본당(伊川本堂, 혹은 '沓本堂' 이라고도 함)에서 분할 · 설립되었다가 1950년에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1884년에 이천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천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평강 지역에도 복음의 전파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1924년경 신자수가 500여 명에 달하였다. 이와 같이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1924년 평강군 현내면 문산리, 속칭 솔모루(松里)에 평강 본당이 설립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이보환(李普煥, 요셉) 신부가 부임하였다. 1933년에는 성당 신축 공사를 완공하여 1934년 4월에 서울 대목구장 라리보(A.J. Larribeau, 元亨根)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본당을 서변리(西邊里)로 이전하였는데, 1937년 당시 신자수는 1,009명이었다.
1939년 4월에 '춘천 지목구 가 서울 대목구에서 분리 · 설정되고,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강원도에 진출하여 사목 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골롬반회 매긴(J. Maginn, 陳) 신부가 평강 본당의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한 뒤 본국 아일랜드가 연합군 측에 가담하자 매긴 신부를 비롯한 골롬반 외방선 교회 신부들은 일제 당국으로부터 많은 고초를 겪었다. 1941년 12월 매긴 신부는 맥고원(P. McGowan, 元) 보좌 신부와 함께 평강 감옥에 감금되었다가 춘천으로 압송된 뒤 이듬해에 석방되었다. 1942년 5월에 이보환 신부가 주임 신부로 다시 부임하여 활동하다가 1944년 3월에 황해도 재령 본당의 해성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양분되면서 평강 본당은 공산 정권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1946년 7월에 평강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한 백응만(白應萬, 다마소) 신부는 북한 정권의 박해를 받는 와중에도 사목 활동을 전개하다가 1949년 4월 초에 체포되어 원산을 거쳐 평양으로 압송된 후 1950년 1월 초에 옥사하였다. 이로써 평강 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 침묵의 교회)
※ 참고문헌  Statistics of Columban Mission to Korea 1933~1999/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춘천교구 50년사 편찬위원회, 《춘천교구 5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1989.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