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개인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 치우침이 없이 모두가 한결같은, 차별이 없는 상태.
서양의 근대 이후, 특히 프랑스 혁명(1787~1799) 이후 인류의 이상, 즉 최고 가치는 자유, 평등, 박애(이웃 사랑)였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이상 중에서 특히 많이 주장되고 실천되었으며 시행 착오를 거듭한 것은 평등이었다. 그러나 평등은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생겨난 새로운 가치는 아니다.
평등은 '모두가 다 고르다' , '사람은 다 같은 값어치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차별이 없이 동등하다' 라는 의미이다. 예컨대 법률적으로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 사회 윤리적으로는 '특권의 철폐와 기회 균등 , 곧 남녀 간의 평등 및 기회 균등 등을 뜻한다. 심지어 재산까지 균등하게, 즉 빈부 격차가 없도록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근대 이후 평등을 실천하려는 사상과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며, 특히 근대 이후의 정치는 인간을 동등하고 평등하게 대접하는 것을 으뜸가는 목표로 삼고 있다.
〔기원과 발전〕 평등에 대한 사상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teles, 기원전 384/383-322/321)는 《정치학》(Politica) 5장에서 평등에는 모든 사람을 평등 · 대등하게 여기는 수의 평등' 과 개인의 공적을 비교하여 고려하는 '비례적 평등' 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하였으며,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등에 유의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평등과 정의의 관계에 대해 명예, 금전, 기타 사항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을 '배분적 정의' 라고 하였으나, 그는 당시의 노예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에 그의 평등 사상은 근대적인 의미와는 큰 차이가 있다.
가톨릭 교회의 견해 : 근대적인 의미의 평등 사상은 그리스도교에서 생겨나, 로마 시대에 박해를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하면서 널리 확산되었다. 이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하느님의 모습대로"(창세 1, 26-27) 창조되었다는 것과,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아버지이며(1고린 8, 5-6 ; 에페 4, 5)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사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요 딸들" 로서,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다 같고 평등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교회의 역사는 모든 신자들이 평등하였음을 알려 준다. 교회가 갓 설립되었을 때 사회에는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즉 왕족, 귀족, 평민, 노예라는 계급이 있었으나 이렇게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던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그 구별이 사라지고,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평등하게 하느님을 경배하고 예배하였다. 노예라고 해서 하느님을 공경하지 못하거나, 하느님을 덧덧하게 대하지 못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사회적인 계급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따르고 실천하면 되었다. 그래서 노예 출신이 주교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교황 갈리스도 1세(217~222)처럼 교황으로 즉위하기 전에 노예였던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교회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한 형제로서 절대적인 평등을 누렸다.
교회의 설립 이후 현재까지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이 인격에서는 완전히 동등하지만 존재의 특성에서는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였다고 가르친다. 또한 '남자됨' 과 '여자됨' 은 하나의 선(善)이고 하느님이 원하신 것이며, 빼앗길 수 없는 존엄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69항).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 간에는 품위와 행위에 관하여 진정한 평등이 있다고 말한다(교회법 208조). 이러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는 아직도 남녀 간의 절대적인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특히 여성 사제에 대한 서품 요구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여성 목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사회에서의 개념 발전 : 근대 이후 생겨난 평등 사상과 평등 운동은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계급간의 평등은 많은 진전을 해 왔다. 완전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까지 노예 제도나 계급 차별이 남아 있는 사회는 거의 없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수세기 동안 크게 문제되어 왔던 인종 차별도 거의 사라지고 있으며, 민족 차별도 차층 없어져 가고 있다. 또한 국력으로는 비교조차 될수 없을 만큼 큰 나라들과 작은 나라들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외교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이런 차별이 남아 있다고 외치는 국가나 약소 민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법상으로는 모든 나라들의 평등권이 인정되고, 어떤 나라도 차별당하지 않고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게 되었다. 물론 국력이 약하면 권리는 같아도 의무를 다하기가 쉽지 않아 차별 아닌 차별을 감수해야 할 경우도 있다.
남녀 간의 불평등도 없어져 가고 있으며 남녀 간의 차별은 급격히 줄어들고 기회의 균등이 주어지고 있다. 이제 여성이 정치나 기업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서양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위스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에야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으나, 지금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여성의 정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 대통령이 있는 국가도 적지 않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현재 여권 문제가 매우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정부에 여성부가 설치되어 여성의 정치적인 권리는 물론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며, 학문 분야에서도 '페미니즘' (Femi-nism)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어 큰 발전이 예견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남성 못지않게 활약할 날도 멀지 않았다. 본래 남녀 간의 차이는 신체적인 몇 가지뿐이므로, 남녀가 다 같은 기회를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 평등의 근거와 모순〕 평등이 긍정적으로 발전한 것은 그리스도교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에서의 평등은 모든 사람이 다 인간으로서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평등 운동이 긍정적인 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평등이 하느님 앞에서의 평등을 뜻한다면, 사회적인 평등은 무엇을 근거로 주장되는 것일까?
우선 법률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다는 사상에서 평등사상이 생겨났다. 헌법은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해 주고있다. 예컨대 국민은 헌법이 정한 선거법에 따라 모두 평등하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은 상급 학교에 갈 평등한 권리, 즉 기회 균등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 모든 국민은 평등하게 직업에 종사할 권리, 즉 직업에 종사할 균등한 기회를 가지며, 많은(무한정으로) 재산을 모을 권리도 가진다. 이렇게 법률에 따라 국민들은 평등한 권리, 즉 평등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평등한 권리가 오해 또는 곡해되어 남용 또는 오용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우선 교회적 · 법률적으로 인정된 평등권을 능력의 평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를 권리는 평등하지만, 합격 여부는 평등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도 모두가 다 합격해야 평등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고위 경영인들과 평직원이나 단순 노동자는 능력이 같을 수 없고, 따라서 수입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렇게 능력에 따라 임금 차이가 나는 것이 평등이며 공평한 것이다. 능력과 직종은 차이가 있는데 누구나 다 같은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평등이 아니며 정의롭지도 못한 일이다.
과거에 평등을 혁명의 기치로 내세우고, 온 사회를 평등하게 하였던 공산주의 국가가 80년도 넘기지 못하고 허물어진 것은 평등을 곡해한 데서 생긴 결과였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라던 공산주의의 이상은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혁명 초기에는 혁명의 열기에 들떠 열심히 능력껏 일하고 남들보다 적은 보수를 받고도 만족하였으나 차츰 자신이 손해본다는 생각에 꾀를 부리면서 그들의 능력도 저하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국민 전체의 능력이 하향 평준화되어 생산성이 낮아졌고, 평등하게 나누어 주려 해도 그럴 것이 없게 되어 결국 평등 지상주의였던 공산주의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평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공산주의가 잘못 추구하였던 평등이 인간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소련이 몰락한 뒤 잘 증명되었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 5. 15)에서 이런 사실을 이미 예견하였다. "국가의 개입은···개인의 재능과 근면을 고취시키는 자극이 전혀 없어져 재화의 원천이 근원적으로 고갈되어 버리고 그토록 염원해 온 평등의 꿈은 결국 굶주림과 헐벗음이 만연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11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무조건적인 평등에 환상을 가진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일 것이다.
공산주의처럼 억지로 평등을 실현시키려고 하면 자유와 평등이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여 자력으로 재산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도 억지로 평등을 구현하려고 하면 이와 같은 이율배반이 생길 수 있다. 교회는 유기체이다. 그런데 머리, 몸통, 팔다리 등 여러 지체들이 있는 몸에서 머리가 가장 고귀한 일을 한다고, 팔다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몸의 균형은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몸의 모든 지체들은 평등하며, 다만 하는 일(능력)이 다를 뿐이라고 보아야 한다. 머리가 없는 몸이 온전한 몸이 아니듯이 팔다리가 없는 몸도 온전한 몸은 아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구성원들도 평등하되, 다만 맡은 일이 각기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제는 사제대로, 수도자는 수도자대로, 평신도는 평신도대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할 때 교회가 일치되어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평등하되, 교회와 사회에서 하는 일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평등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 교회와 여성 ; 노예 제도 ; 페미니즘)
※ 참고문헌 C. 메베스 외, 강성위 외 ,《평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서광사, 1994/ 막스 물러 외, 강성위 역, 《철학 소사전》, 이문출판사, 2004/ Walter Brugger, Philosophisches Wörterbuchl Herders Theologisches Taschenlexikon, Herder, 1986/ J. Gremillion, The Gospel of Peace and Justice, Orbis Books, 1976/ J. de Finance, Grundlegung der Ethik, Herder, 1968/ 0. Hoffe, Lexikon der Ethik, C.H.Beck, 2002/ V. Hösle, Praktische Philosophie in der modemen Welt, C.H. Beck, 1995. 〔姜聲渭〕
평등 平等 〔라〕aequalitas 〔영〕e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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