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 및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성품(聖品)의 구성원(clergy)과 교회가 인정한 수도 신분(religious)의 구성원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교회 31항).
〔어원과 개념〕평신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라이코스' (λαϊκός)는 3세기 이후부터 교회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성서적 근거는 있지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직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의 평신도라는, 이 용어의 개념은 3세기경에 생성된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많은 저술들에서 평신도라는 용어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속되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프랑스 혁명(1787~1799)과 연계하여 세속주의적인 사상을 확장시키고 교회를 거부하며 반성직주의적인 의도를 가미한 것이다. 이런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배경에 맞서 콩가르(Y.M.-J. Congar, 1904~1995)는 교회 안의 평신도 역할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라이코스'는 적어도 신구약성서에서 '속되다' 라는 뜻이 내포된, 이교 백성에 반대되는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라오스' (λαός)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신약성서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라오스' 는 구약성서의 '암' (עָם)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 이 용어는 특정한 민족적 주체성을 갖고 있는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하느님의 백성을 의미한다(출애33, 13 ; 신명 4, 6-7). 70인역에서도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특별한 지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군중, 사람들, 인구' 를 의미하기도 하고 지배자들이나 지도자들과 구분되는 일반 유대 백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루가 22, 2 ; 사도 6, 12 ; 13, 15),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언급할때는 특별히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더 나아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하는 교회에 대해서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이스라엘, 곧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이룬다는 보편적 교회관을 드러내고 있다(사도 15, 14 ; 로마 9, 25-26 ; 2고린 6, 16 등). 이 '라오스' 는 오늘날과 같이 교회내의 교역자(Λειτουργός)들과 구별하기 위해 평신도 신분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구분을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1베드 2, 9).
한편 이그나체 데 라 포테리에(Ignace de la Potterie) 등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서 이외의 고대 문헌에서 '라이코스' 라는 용어는 본래부터 '속인'(俗人)이나 '피지배 계급인 대중' 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라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의 그리스어 파피루스 문헌에 의하면 노예나 이민자나 외국인이 아닌 토박이 일반 이집트인들을 '라오스' 라고 불렀다. 또 사제 계급이 아닌 기술공이나 시골 농민, 상인이나 소작인 등 가난한 이들도 자신들을 '라오스' 라고 불렀다. 형용사 '라이코스' 는 왕족이나 군주, 대지주 등 지배 계급에 종속된 일반 이집트 백성에 속한(pertaining to Egyptian civilians) 사람들을 말한다. 한편 노예나 이민자나 외국인들은 지배 계급에 종속되기는 하였지만 '라오스' 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포테리에를 비롯한 다수 학자들은 피지배 계급에 주목하여 지배 권력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라이코스' 라 불린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라이코스' 의 의미는 노예나 이민자나 외국인이 아닌 이집트 태생이 다른 이집트 시민에게 소속된(belonging to laos) 경우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콩가르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70인역 성서에서도 '라오스' 는 이교 백성에 대립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동시에 정치인, 사제, 레위인, 예언자들을 제외한 이스라엘의 일반 대중을 지칭한다(출애 19, 29 ; 예레 26, 7). '라이코스' 라는 단어는 70인역 성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다른 세 가지의 번역본(Aqui-la, Symmachus, Theodotion)에서는 발견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이 아닌 물건에, 그것도 하느님께 봉헌되지 않은 속된 의미의 물건에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는 이 속된 의미로서의 '라이코스' 를 인정한 탓인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라이코스' 는 '라오스' 와 분명히 연결되고, 국외자, 외국인, 이방인과는 달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라이코스' 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다만 피지배 계급이라는 이차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것도 국외자, 외국인, 이방인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같은 백성이지만 지도층인 공직자들에 의해서 통제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역사적 변천〕 초대 교회 : 초대 교회는 하느님의 교회,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신자들은 하느님 백성 안에 모두가 한 형제자매라는 인식 아래 하느님이 선택한 자' , '성령의 궁전', '성도들' , '제자' , '형제들' 로서 사랑과 일치의 생활을 하였다. 교회는 다시 오실 주님을 증거하는 종말론적 실재로 자신을 이해하면서 세상 안에서 세상과는 구별되는 대조적인 사회를 이루었다. 초대 교회는 성직자 · 평신도의 분리 내지 구분에 앞서, 하느님의 백성이 이교 백성들 중에서 선택받고 분리되었으며 성화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 안에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의식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2세기 후반부터 3세기 전반의 교회는 그리스-로마(Greco-Roman)의 정치 · 사회 · 문화 안에서 이단과 박해로부터 정통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교회 구조를 발전시키면서 당시의 서열(ordo)화된 사회 구조를 모방하게 되었다. 이 계급이 교회 내에 들어오고, 계급이란 용어가 서서히 교회 내 용어로 정착하여 서품에 의한 계급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서열에 들기 위한 예식으로 서품식이 생기게 되었고, '라이코스' 와 '클레리코스' 의 구분도 분명해졌다. 이 서열은 그 후 신학자들에 의하여 교계 제도(hierarchy)로 확립되었다.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라이코스' 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교황 글레멘스 1세(90192~101?)의 편지이다(96년경). "대사제(Archiereus)는 자신의 고유한 직무를 가지고 있고, 사제(Iereus)들에게는 특수한 위치(임무)가 주어졌으며, 부제(Levites)들에게는 봉사직이 부과되었고, 일반 신자(Laikos)들은 그 신분의 고유한 계율에 따라 의무를 가지고 있다" (40, 6). 여기서 '라이코스' 는 처음으로 사람(평신도)을 가리키며, 교회 문헌에서 평신도를 지칭하는 전통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에 의해 사제, 레위, 평신도로 구분되던 유대적 문맥에서 사제, 부제, 평신도로 구분하는 그리스도교적 문맥으로 변하였다. 오리제네스(Origenes, 185~253)는 사제, 부제와 상대되는 범주의 사람들을 평신도라고 하였고, 이는 테르툴리아노(Q.S.F.Tertullianus, 155?~230/240?)에 의해 라틴어 '라이쿠스' (laicus)로 완전히 정립되었다. 결국 평신도는 교역자가 아닌 비성직자 개념으로 정의되었으며, 교역자들을 돕고 그들에게 순명하는 기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 교회에서는 이 단어가 직무를 강조한 것이었을 뿐 평신도를 경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며, 성직자와 평신도가 이원적으로 엄격하게 분리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평신도들은 교역자들과 함께 교회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교회의 주체들이었다. 교황 글레멘스 1세의 《제1 고린토 서간》에 따르면 교역자들은 전체 공동체의 동의 아래 임명되었으며, 평신도는 교역자들의 선출에도 관여하였다. 《디다케》는 신자들에게 "주님께 부끄럽지 않게 여러분의 주교와 부제를 선출하시오"(15, 1)라고 요구하였다. 교황 철레스티노 1세(422~432)는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주교로 선출하라고 백성에게 강요하지 마시오"라고 선언하였고, 458년 또는 459년에 교황 레오 1세(440~461)도 "그리스도인들의 뜻을 거슬러 그들의 분명한 요청이 없이는 그 누구도 주교로 서품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두머리가 되려는 사람은 모든 이들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중세 : 콘스탄틴 대제(306~337)가 밀라노 관용령(313)으로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고,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포(381)함으로써 교회는 대전환을 맞았다. 교회는 소집단에서 탈피하여 대규모의 종교 집단화됨으로써 그리스도교 국가(societas Ch-ristiana)로 변모하게 되었다. 또한 정치 · 지리적으로 로마제국의 영토와 일치하게 되었고, 제국의 정치 · 조직적인 분할과 구조 및 화려한 문화들과 의례 등을 교회 안에 흡수하였다. 교황은 황제의 서열에 이르게 되었고, 주교들도 국가 공무직의 높은 서열에 오르게 되어 특전을 누리게 되었다. 왕권과 신권(regnum et sacerdotium)은 공생 관계가 되었으며, 5~6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세속의 정치적인 일들까지 로마의 주교인 교황에게 돌아가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가의 모든 정책 결정은 성직자들과 세속 권력자들이 독점하게 되고 일반 국민과 신자들은 대중으로 전락하였다. 초대교회의 '교회와 세상' 이라는 구도가 교회 내부의 '성직자와 평신도' 라는 구도로 변화된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는 성직자들이 일반 신자들과 다른 고유한 형태의 생활을 함으로써 드러나게 되었다. 5세기 초부터 사제들은 고유한 복장을 착용하기 시작하였고, 5세기 말부터는 수도자들처럼 삭발을 하였으며, 6세기 이래 성직자들의 독신제가 관철되었다. 8세기경부터 신자들은 라틴어로 거행되는 전례를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듣기만 하는 수동적 참석자로 전락하였다. 그로 인해 평신도란 말은 '비전문가, 교육받지 못한 사람,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9세기경부터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분이 굳어졌으며, 10세기 초부터 수도원들이 융성하고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수도 생활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수도자와 성직자들을 '영적인 사람' 으로, 평신도들은 '육적인 사람' 으로 간주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73~1085)에 의해 성직자와 평신도가 두 계급으로 엄격히 구분되었고, 《그라시아노 법 령집》(Decretum Gratiani, 1140)은 두 가지 신분으로 구분하였으며,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교회의 구성 요소를 명문화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는 성직자들만의 교회가 되어 갔으며, 평신도는 성(聖)과 대립되는 속(俗)의 개념으로서의 세속인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근대 : 16세기의 종교 개혁가들은 당시 교회에 대한 정치적 · 사회적 불만을 등에 업고 교황의 교회로부터의 해방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은총과 신앙 그리고 성서를 강조하고 비가시적인 '영적 교회' 를 주장하며 교회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성직주의의 타파와 평신도의 위상 및 역할의 변화를 주장하였다. 종교 개혁과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교회의 논리는 신앙의 객관화와 칠성사 그리고 합법적인 제도에 대한 순명이었다. 제국적 제도인 당국자들의 권리와 권한 개념이, 교회의 본질로 정의되는 교회의 가시적인 제도성과 단체성으로 부각되어 교회는 성도들이 모인 완전한 사회(societas perfecta)로 이해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이런 개념들을 법제화하여 교회의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가르치고 성화하고 통치하는 성직자와 이에 순명하는 평신도로 구분되어 피라미드형의 성직자 중심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종교 개혁과 18세기의 계몽주의 및 프랑스 혁명 이래 세속화는 탈그리스도교화를 촉진하여 인간의 영역이 교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인간과 세상은 자율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세기부터 성서와 교부라는 원천으로부터 가톨릭 신학의 부흥을 꾀하게 되었으며,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자 친교의 공동체라는, 교부 시대 이래 잊혀졌던 사실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졌다. 그 후 20세기에 들어서 제1 ·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전통은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 질서와 의식이 태동하자, 교회는 순례의 도정(道程)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종말에 완성될 하느님나라의 표지로서 세상에 살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교회는 성직자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없고, 따라서 평신도들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가톨릭 신앙을 복구하기 위한 평신도들의 운동은 활발히 전개되었고, 따라서 그들의 신원(身元)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평신도의 사도직은 여전히 '교회 교계 제도의 사도직에 평신도가 참여하는 것' 으로 성직자의 지도 아래 가능하였고 순명이 요구되었다. 많은 신학자들이 평신도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하여 활발한 연구와 토론을 전개하였고,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밑거름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쇄신하려는 시도들을 수용하여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는 속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수용하고 그들과 대화와 협력으로 만나며 연대하려 하였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삶과 성서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천으로의 복귀' 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이해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대의 징표' 를 통하여,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였다. 그 결과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성사(교회 1항)라고 밝혔다. <교회 헌장>(Lumen Gentium, 1964. 11. 21)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하느님의 백성(λαός)에 속한다는 성서와 교부들의 사상을 복구하고 평신도를 체계적으로 재평가하였다. 또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Apostolicam Actuositatem, 1965. 11. 18)을 통해 평신도들의 사도직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루었다. 그리고 1987년에 개최된 제7차 주교 대의원 회의는 평신도를 주제로 개최되었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후속 문헌으로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es Laici, 1988. 12. 30)을 발표하였다. 이 문헌들의 공통된 내용은 평신도의 신원과 그 사도직에 관한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 : 공의회는 <교회 헌장>에서 직분상의 교계 제도를 언급하기에 앞서 '하느님 백성' 이란 표제로 모든 믿는 이들의 '일반적 사제직' 이 '특수 사제직'에 우선함을 천명하였다. 이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분법적인 구별 이전에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으로써 평신도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보편성과 평등성을 지닌다는 선언이다(교회 7, 9항). 따라서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품위를 지니며, 하느님 자녀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지닌다. 그러나 직위(職位)와 직분(職分)상의 차이가 있다(교회 10, 32항). 성직자와 평신도는 같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왕직, 사제직, 예언직에 참여하여 교회의 사명에도 공동 책임을 지닌다. 특히 평신도는 그들의 세속성으로 인하여 세상 한가운데 있는 교회로서 능동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존재이다(교회 31항).
공의회는 평신도에 대한 정의는 내리지 않고 소극적으로 평신도의 신원과 사명을 규정하면서 적극적인 설명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하였다. 또한 평신도를 성직자 및 수도자와 구별하여 '평신도는 성직자도, 수도자도 아니다' 라는 식으로 규정하였지만, 이는 소극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평신도의 신원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여 평신도는 축성(祝聖)된 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로 인식하는데, 이는 공의회의 가장 특징적인 발전으로서 축성과 사명의 연관성을 재발견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이는 평신도의 사명, 즉 사도직이 교계에 의해서 주어지는 법적인 질서에 바탕을 두는 위임(委任)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존재 자체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견진 그리고 성체성사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로 결속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교회의 사명인 사도직(apostolate)을 지니게 된다(교회 33항 ; 평신도 3항 ; 선교 36항).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의 기초를 그리스도의 몸에 결합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에 두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평신도 사도직을 이야기할 때 평신도 신학의 출발점인 세례성사와 관련시킨다(교회 10, 31항). 세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은 신자들은 견진성사를 통하여 교회의 친교에 더욱 결속되어 교회의 사명에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며, 말씀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신앙을 전파하며 수호하게 된다. 또한 성체성사는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을 전달해 주고 길러 주며 일치를 이루어 주는 모든 사도직 활동의 원천이요 정점이다.
평신도와 성직자 :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례와 견진을 통해 똑같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교회와 교회의 사명의 주체라고 강조하였다(교회 33항). 교회의 사명은 복음 전파와 인간의 성화 그리고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화로서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이에 참여하는 사도직을 수행한다. 이 사도직 수행을 위해 성직자와 평신도는 각각 어느 한 분야에 주도권이 부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협력하고 상호 보완해야 한다. 특히 성직자들은 모든 신도들이 공동의 과업에 협력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은사를 인정해 주고 격려하며 조화와 일치를 도모해야 한다. 공의회는 평신도들이 사목자들로부터 교회의 영적인 보화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또한 자신의 능력에 합당하게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밝힐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였다(37항) .
평신도의 세속성 : 공의회는 평신도와 세상의 관계에서 평신도의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 하였다. 성직자나 수도자와 구별되는 평신도의 '세속적 성격' 은 그들의 삶의 자리가 세속이고 그 속에서 부르심을 받으며 사도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교회 31항 ; 평신도 2, 7항). 그러나 이세속성이 평신도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속성은 세속 안에서 일어나는 세례에 선행하는 조건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원초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공의회는 세계를 전체 교회의 활동 영역으로 보고있으며, 교회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평신도는 세속적인 삶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들의 소명을 완수해야 한다(평신도 5항).
평신도 사도직의 목표 : 이 목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과 교회의 구원 활동이 추구하는 목적과 동일하다. 교회의 모든 사도적 활동은 교회와 세계 안에서, 영적인 질서와 현세 질서 안에서 자기 임무를 실행하는 것이다(평신도 2, 5항). 복음 전파와 성화를 위한 평신도 사도직은 생활의 증언과 초자연적 정신의 선행 그리고 말로 전파함으로써 가능하다(6, 16항).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화는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완성하는 것으로, 거의 전적으로 평신도들에게 속하는 것이다. 이는 가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제도들과 국제적 기구들이 공동선에 기여하고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도록 행동하는 것이다(7항). 자선 사업은 복음의 가장 큰 계명인 이웃 사랑의 실천이며 그리스도 제자의 표지이다(8항).
평신도 사도직의 실천 분야 : 이것은 가정과 사회 환경 및 국가적이며 국제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11, 13, 14항). 사도직의 수행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개인 사도직과, 오늘날 강조되는 가정 안의 사도직뿐 아니라 현대 사회 구조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적 사도직으로 나아가야 한다(11, 16, 18항).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 평신도들은 성직 위계와의 일치를 보전하여야 하며, 사도직 단체들은 상호 존경과 일치의 정신으로 상호 협력하여야 한다(23, 24, 26항).
〔과 제〕 공의회의 교회론에 기초하여 1983년에 발표된 교회법전에서는 평신도의 성격과 직무를 새롭게 규정하고 부여하였으며, 이를 통해 평신도의 법적 지위를 회복시켜 교회를 진정한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로 구성하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평신도가 없다면 교회도 없다. 평신도는 더이상 기도하고(pray) 돈 내고(pay), 복종하는(obey) 보잘것없는 속된 신분이 아니라, 교회와 세상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사명을 자신의 고유한 사명으로 알고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신분이다. 현재 평신도들은 자신의 신원에 대한 자각과 부여된 사명 및 역할에 대한 인식을 더한층 요구받고 있다. 그래서 제도주의적인 교회관의 성직주의를 극복하고, 상호적이고도 대내외적인 대화와 협력 그리고 연대로서 협력 사목(collaborative ministry)을 실천함으로써 친교로서의 교회를 건설하고, 성사로서의 교회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 성직자 ;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운동 ; 반성직주의 ; 사제직 ; 성직주의 ; 예언직 ; 왕직 ; <평신도 그리스도인> ;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 평신도주의)
※ 참고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강대인 역, <평신도 그리스도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주교 회의 교회법위원회, 《교회법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0/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1995/ A.A. Hags-trom, Laity, Theology of, 《NCE》 8, 2003, pp. 290~293/ J. Gilchrist, Laity in the Middle Ages, 《NCE》 8, 2003, pp. 293~297/ E. Niermann · M. Benzo · F. Klostermann, 《SM》 2, pp. 259~268/ X. Leon-Dufour eds.,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교 전망편집부, 1984/ K.B. Osbome, Ministry : Lay Ministry in the R.C. Church, Paulist Press, 1993/ Y. Congar, Lay People in the Church, The Newman Press, 1967/ ―, <제2차 바티칸과 평신도>, 《신학 전망》 6호, 광주 가톨릭대학교, 1969, pp. 4~12/ 정하권, 《교회론 1》, 분도출판사, 1991/ 犬養道子, 윤원호 역, 《살아 있는 돌 - 신도 신학》, 가톨릭출판사, 1991/ 이재민, 《교회는 누구인가》, 분도출판사, 2001/ 정 일, 《산다는 것이란 되어 간다는 것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읽기》, 분도출판사, 2000/ 박동균, <평신도의 신분>, 《신 학과 사상》 13호(1995. 6),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29~551 박상대, <교회와 평신도>, 《현대 가톨릭 사상》 24호(2001. 여름), 대구 가톨릭 대 학교 가톨릭사상연구소, pp.145~170/ 서인석, <평신도 신학의 성서적 배경>, 《신학 전망》 6호, pp. 13~24/ 손희송, <어제와 오늘의 평신도>, 《신학과 사상》 13호, pp. 5~28. 〔鄭 一〕
평신도 平信徒 [라]laicus [영]laity, lay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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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는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며 교회 사명의 주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