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그리스도인> 平信徒 ㅡ 人〔라〕Christifideles Lai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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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평신도의 사 명과 역할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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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평신도의 사 명과 역할을 알려 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8년 12월 30일 발표한 사도적 권고.
이 문헌은 1987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20년을 지낸 교회와 세상에 있어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 을 주제로 개최된 주교 대의원 회의 제7차 정기 회의(10. 1~30)의 후속 문헌이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에 관한 교회의 가장 유권적인 가르침을 제시한다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이 문헌은 서론 및 5개의 장, 64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용〕 서론(1~7항) : 교황은 우선 1987년 주교 대의원 회의의 배경과 의의에 관하여 설명한다. 교황은 주교 대의원 회의에 참여한 평신도 대표들이 기여한 바에 사의를 표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전개된 교회의 새로운 현실에 대한 주교들의 평가와 인식을 소개한다. 또한 1987년 주교 대의원 회의의 과제는 평신도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풍부한 '이론' 을 새로운 현실에 대응하여 진정한 교회적 '실천' 으로 옮겨 놓는 일이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 주교 대의원 회의의 기본적 의의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선교 3천년대에 들어서는 역사적 시점에서 더욱 긴박해진 교회의 사명에 능동적이고 의식적이며 책임 있게 참여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하는 데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교황은 세상을 주님의 포도원에, 평신도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하느님의 백성을 포도원 일꾼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왜 당신들은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습니까? · · · 당신들도 포도원으로 가시오"(마태 20, 6-7)라는 주님의 분부대로 평신도들은 현대 세계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신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평신도들의 행동을 긴박하게 필요로 하는 가장 심각한 분야는 세속주의와 종교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욕구(4항), 인간의 존엄성(5항) 및 분쟁과 평화(6항)라고 지적하였다. 특히 교황은 종교적 무관심과 무신론이 세속주의의 형태로 만연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서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러한 각 분야에 투신하는 것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평신도들은 여기서 본질적이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역할을 지니고 있고, 평신도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의 각 분야에서 희망과 사랑의 표지요 원천으로 현존하게 된다고 역설하였다(7항).
제1장(8~17항) : 이 장에는 '신비인 교회에 있어서 평신도의 존엄성'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즉 평신도의 신원이 '성직자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니다' 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서술된 데 대한 이의와 불만이 1987년 주교 대의원 회의의 개회 초부터 제기되었기에, 교황은 평신도의 신원을 '긍정적' 으로 서술하는 문제부터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포도나무의 신비를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이용하여 교회는 포도나무라고 밝혔다(교회 6항). 교회의 내적 성격을 강조하는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평신도는 단지 포도원 일꾼일 뿐만 아니라 포도원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즉 평신도들은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참 포도나무인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들인 것이다. 교회의 친교의 신비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평신도의 신원이 알려지고 그들의 기본적 존엄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존엄성의 맥락에서 보아야 비로소 교회와 세상에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8항).
교황은 "평신도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기 위한 출발점은 세례성사라고 밝혔다(9항).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서술함에 있어서 세례성사로부터 나오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움' 의 세 가지 기본적인 면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 세례성사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즉 세례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11항). 둘째,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세례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지체, 교회의 지체들로서 서로 결합되어 있다(12항). 셋째, 세례성사는 성령의 도유로써 세례받은 사람들을 영적 집으로 축성한다(13항).
그리하여 세례받은 사람들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명, 즉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 사명에 참여한다. 교황은 모든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이 삼중(三重)사명에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14항). 이 참여는 평신도가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한 몸을 이루는, 즉 친교를 이루는 정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 참여는 친교인 교회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친교 안에서 그리고 친교를 위하여 생활화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움' 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의 평등성의 토대이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남에 따른 품위도 같고, 자녀되는 은총도 같고, 완덕의 소명도 같다(교회 32항).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동일한 존엄성으로 말미암아 평신도는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교회의 사명에 대한 책임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신도에게 있어서 세례성사의 이 동일한 존엄성은 평신도를 성직자나 수도자와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구별지어 주는 생활 양식, 즉 '세속성' 이라는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평신도는 세속에 살고 있으며, 세속에서 부름을 받아 세속의 온갖 직업에 종사하고 가정과 사회 생활의 일상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들의 소명을 수행하는 터전이며 수단이고, 평신도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활동하는 것은 인간학적 · 사회학적 현실만이 아니라 신학적 · 교회적 실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신도의 세속성은 사회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정의되어야 한다(15항).
평신도의 존엄성의 완전한 의미를 고찰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출발점은 교회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성화(聖化) 소명이다. 성화 소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기본적인 임무이며, 교회의 신비에서 솟아 나오는 절대적인 요구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일상의 가정, 직업 및 사회 생활에서 성화되어야 한다(16항). 성화소명은 세례의 새 생활이 지닌 본질적 요소이며, 평신도의 존엄성을 결정짓는 요소이다. 동시에 교회와 세상에서 평신도에게 맡겨진 사명과 긴밀히 연결된다. "성덕(聖德)은 교회 안에서 구원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기본전제이며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다"(17항).
제2장(18~31항) : 이 장에는 '친교인 교회 생활에 있어서 평신도의 참여'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즉 교황은 여기서 평신도의 교회 생활 참여 문제, 특히 1987년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 진지하게 검토된 바 있는 공의회 이후 새롭게 대두된 평신도의 직무 문제와 평신도 운동 문제를 다룬다.
그리스도와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은 포도나무와 가지로 상징되는 신비스러운 친교로 결합되어 있다. 이 친교의 생활이 교회의 신비이다. 교황은 친교인 교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바탕으로 해야 평신도의 사명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18항). "교회적 친교는 성령의 은혜이며 위대한 은사이다. 평신도들은 이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이를 생활화하여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대한 평신도들의 참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평신도들은 그들의 다양하고 보완적인 직무와 은사로써 교회에 봉사한다" (20항). 평신도가 행사하는 은사, 직무, 봉사는 친교 안에 친교를 위해 존재하며, 모든 이를 위해 그리고 사목자의 지도 아래 서로 보완된다. 특히 직무와 은사는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의 구원 사명을 위해 능동적으로 공동 책임을 지고 활동하도록 성령이 주는 은혜이다(교회 4항). 직무에는 우선 신품성사에서 나오는 서품에 의한 직무가 있는데, 이것은 역사 안에서 사도적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직무는 봉사의 정신으로 모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수행되는 것이다(22항).
평신도들은 세례에 의한 신분과 자신들의 고유한 소명에 따라 자신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적 · 예언자적 · 왕적 사명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사목자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그리고 혼인성사에서 나오는 평신도들의 직무와 역할을 인정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사목자들은 필요에 따라 교회법이 정한 대로, 교계적 직무와 관련되기는 하지만 성품(聖品)에서 나오지는 않는 직무와 역할을 평신도들에게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평신도가 사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평신도들에게 다양한 직무, 임무, 역할을 부여함에 있어서 성직자들은 세례를 기초로 시행하도록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목자들은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않거나 더 나은 사목 계획을 통해 다른 대안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긴급 상황' 이나 '대역 필요성' 을 쉽사리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평신도들이 전례와 신앙 전파 그리고 교회의 사목 구조에서 합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와 임무 및 역할은 성직자들의 직무와는 달리 세속 안에서 그들의 고유한 소명에 부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직무 사제직과 공통 사제직의 본질적 차이, 즉 성품성사에서 나오는 직무와 세례 및 견진성사에서 나오는 직무의 차이가 존중될 때, 평신도에게 맡겨진 직무가 더욱 질서 있고 효과 있게 교회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이다(23항).
은사가 참으로 성령에게서 나오는 은혜이고 성령의 진정한 인도에 따라 행사되는 한, 그것은 사도직의 활력과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성덕을 위한 매우 풍요로운 은총의 원천이다. 그러나 죄의 세력이 신자들과 공동체의 생활을 방해하고 어지럽히는 수도 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식별' 이 필요하다. 은사의 진실성과 온당한 행사에 관한 판단은 교회의 사목자들에게 속하는 일이다(교회 12항). 어떠한 은사도 교회의 사목자들에 대한 순종을 면제하지는 않는다(24항).
평신도는 직무와 은사의 행사만이 아니라 그 밖의 여러 방법으로 교회 생활에 참여한다. 이러한 참여는 우선 개별 교회, 즉 교구의 생활과 사명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구 사목 평의회' 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교황은 언급하였다. 사실 교구 차원에서 이 조직은 협력과 대화와 식별의 기본 형태가 될 수 있다. "이 평의회에 대한 평신도들의 참여가 광범위하고도 확고한 방법으로 적용된다면, 이 참여는 협의의 수단과 협력의 원칙을 확장시킬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의사 결정의 방법도 확대시킬 수 있다" (25항). 반면 본당은 어떤 조직이나 지역이나 건물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결합된 형제적 가정, 하느님의 가정, 성찬의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 유기적 공동체이다(26항). 그런 본당의 조직은 평신도의 사목 책임 참여를 촉진하도록 교회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신축성 있게 조정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평신도들과 사목자들이 사목적 문제들을 "모든 이의 의견을 모아서" 함께 검토하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의회의 가르침(평신도 10항)에 따라 본당 사목 평의회를 적절하게 구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27항).
평신도의 교회 생활 참여는 개인적인 것과 단체에 의한 형태로 구분된다. 평신도 각자는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그리고 모든 이의 이익을 위해 해야 할 고유한 임무를 떠맡고 있는 교회의 일원임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평신도들의 생활 환경은 매우 다양하므로 그 안에서 수행되는 개인 사도직은 복음을 더욱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실효성 있게 전파할 수 있게 된다(28항). 근년에 와서 "단체 활동의 새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할 만큼 평신도들이 다양한 단체, 운동 등을 조직하는 현상이 활기를 띠어 왔다. 이러한 평신도 단체들은 외적 구조, 수련 방법, 활동 분야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다양하지만, 모두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에 참여하여 책임을 다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평신도들의 단체 결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친교와 일치를 드러내는 표지"(평신도 18항)로 인정한 교회론을 근거로 볼 때,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리고 오직 교회 권위와 합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교회의 친교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29항). 그러므로 결사의 자유를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친교와 사명의 관점에서 평신도 단체들을 식별하고 인정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 이른바 '교회성의 기준' 이 필요하다. 교황은 다음의 다섯 가지를 기본적인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화 소명을 으뜸으로 삼는다. 둘째, 교도권에 순종하여 가톨릭 신앙을 고백할 책임을 다한다. 셋째, 교황과 지역 주교의 관계에서 확고하고 진정한 친교를 증언한다. 넷째, 교회의 사도직 목적을 따르고 이에 참여한다. 다섯째, 인간 사회에서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른 현존을 위해 투신한다 등이다. 이러한 기준들이 여러 단체에서 충실히 지켜지느냐 하는 점은 그 조직의 생활과 활동의 실제 성과에서 드러난다(30항).
한편 사목자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통해 지도하고 격려함으로써, 그리고 몇몇 새로운 단체나 운동을 공인함으로써 평신도 단체들이 교회의 친교와 사명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한다. 사실 사목자와 평신도들은 모두 다양한 평신도 단체들 간의 더욱 확고한 유대와 상호 존중 및 협력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은사와 은총이 공동의 집을 짓는 데 효과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친교의 "은총에 대한 자각은 그 사용에 있어서 강한 책임감을 수반하여야 한다. 친교의 은총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도직의 책임을 진 그리스도인 생활에 반대되는 모든 분열과 대립의 유혹을 극복하는 데 투신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친교 생활은 온 세상을 위한 표지가 되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인도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친교는 선교의 문을 열어줌으로써 그 자체가 선교가 된다"(31항).
제3장(32~44항) : 이 장은 '선교하는 교회에 있어서 평신도의 공동 책임'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교황은 이 장에서 친교의 교회로서 세상에 파견된 평신도들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활동해야 할 여러 분야를 다루었다.
예수와의 친교는 그리스도인 서로 간의 친교를 가져오며 열매 맺음의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는 가지들이 맺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열매이다. 친교는 친교를 낳고 본질적으로 선교하는 친교를 낳는다.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교호 작용을 하며, 서로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기에 친교는 선교의 원천이요 결실이며, 친교는 선교적이고 선교는 친교를 지향하고 있다"(32항). 교회 사명의 맥락에서 볼때, 주님은 책임의 커다란 몫을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친교를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에게 맡긴다.
평신도들은 교회의 일원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복음을 선포할 소명과 사명을 지니고 있다. 교회의 사명 전체가 '복음화' 로 집중되어 나타난다.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명령은 항상 절대적 가치와 긴박한 의무를 담고 있다. 세상은 물론 교회 여러 곳의 현재 상황을 볼 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즉각 아낌없이 따라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33항). 그래서 교황은 '새로운 복음화' 만이 분명하고 깊은 신앙의 성장을 보증해 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사회의 그리스도교적 바탕을 고치는 일은 세계의 모든 곳에서 긴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이들 나라들에 존재하는 교회 공동체 자체의 그리스도교적 바탕을 개조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평신도들의 책임은 복음과 생활을 일치시킴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고 성숙한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평신도는 이러한 증언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그리고 세례 때에 받은 신앙으로 생활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선교 열의와 활동을 통해서도, 그리고 체계적인 교리 교육 활동을 통해서도 성숙한 교회 공동체의 형성에 이바지한다(34항). 새로운 복음화가 긴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지속적인 사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수의 선교사들이 필요하며, 기도와 활동을 통하여 평신도는 물론 성직자, 수도자의 선교 지향적인 성소를 특히 계발하여 성장시킬 책임을 느껴야한다(35항).
교회는 복음화 사명으로 모든 사람들의 완전한 해방과 구원을 추구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모든 이의 종' 이 된다. 이로써 교회는 인간 실존의 의미를 밝혀 주고 인간에게 타인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 준다. 인간은 교회 사명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이다. 인류 가족에게 봉사하는 일은 교회 전체가 책임지고 있으며, 평신도들은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불어넣어야 할 특수한 임무를 지닌다(36항).
모든 인간의 신성한 존엄성을 재발견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재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교회와 평신도의 본질적 임무이다(37항). 인간의 존엄성은 일차적이고 근본적으로 인간 생명의 신성함으로 나타난다. 가장 기본적 권리이자 그 외 다른 모든 권리의 조건인 '생명권' 이 확고부동하게 보호되지 않는 한 인권을 위한 외침은 허구요 환상이다.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사명과 책임은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평신도들 특히 부모, 교사, 보건 의료인 및 경제적 · 정치적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의학, 과학, 사회, 입법, 경제 분야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평신도들은 생명 윤리의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하는 도전을 과감히 받아들여 인간이 과학과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38항). 인간 존엄성의 존중은 개인의 종교적 차원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 자유의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이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선익을 확보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중대한 의무이다(39항).
인간은 자신을 타인과의 '친교' 로, 그리고 타인에게 '내어 줌' 으로 부름을 받는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사회적 차원의 기본적 표현은 부부와 가정이다. 사회에 대한 평신도의 의무는 우선 결혼과 가정에서 시작된다. 이 의무는 가정이 사회와 교회의 발전에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비로소 적절하게 수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이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의 고귀한 터전이며, 이를 위하여 가정은 사회 생활에서의 진정한 성장과 참여를 위한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터전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40항). 사회에 대한 봉사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여러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평신도들의 고유한 의무인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불어넣게 되는 가장 즉각적이며 일상적인 방법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한다. 사랑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그리고 자발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연대성을 활성화시키고 지속시킨다(41항). 그러나 사랑은 결코 '정의' 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경제, 사회, 입법, 행정, 문화 분야에서 공동선을 이룩하기 위한 공직 생활에 참여하여야 한다(42항).
평신도들의 사회에 대한 봉사는 사회 경제 생활에서 본질적으로 이루어진다. 노동, 사유 재산,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관련된 문제들이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 평신도의 의무의 핵심이다. 평신도들은 증가하고 있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일, 노동 조직의 여러 가지 불의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일, 직장을 사람들의 유일성과 참여권이 존중되는 공동체로 만드는 일, 공동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새로운 연대성을 계발하는 일, 새로운 형태의 기업가 정신을 육성하는 일, 상업, 재정 및 기술 교환의 체제를 다시 검토하는 일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평신도들은 자신들의 일을 전문적 능력과 인간적 정직성 및 그리스도교 정신을 가지고, 그리고 특히 자기 성화의 방법으로 수행하여야 한다(43항).
인간에게 봉사함은 모든 민족의 공동 소유이며 그들의 존엄성과 자유와 창조성 및 역사의 표현인 문화를 창조하고 전달함을 의미한다. 신앙은 문화를 통해 역사 속에 자리잡게 되므로, 문화가 생활화되고 표현되는 다양한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목적으로 긴박한 일이다. 문화의 창조와 전달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사회 홍보 수단이다. 이를 이용함에 있어서 평신도들은 진리를 위한 고유한 소명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44항).
제4장(45~56항) : 이 장은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을 관리하는 충직한 관리인들'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교황은 교회의 사명에 부름을 받은 다양한 집단들, 즉 젊은이, 어린이, 노인, 여성과 남성, 병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주님의 다양한 은총의 착한 관리인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모든 사람은 소명과 상황, 은사와 직무의 다양성에 따라 하느님의 나라가 오도록 일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부름받은 시간이 다양한 것은 거룩한 생활로 인도된 시기가 아동기, 청년기, 노년기 등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45항). 젊은이들은 교회의 미래를 위한 커다란 도전이다. 하지만 그들을 단지 교회의 사목적 관심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은 복음화의 주역이요 사회 개혁의 참여자로서 교회를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하도록 하여야 한다(46항). 또 어린이들은 예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어린이들은 인간의 공로로는 전혀 요구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함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해 주며, 그들 나름대로 부모들의 성화(聖化)와 교회의 성화에 이바지한다(47항) 반면 노인들은 지혜와 하느님을 두려워함과 신앙 전통에 대한 증언과 인생의 교훈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 노인의 수가 날로 늘어가고 다양한 직업에서 은퇴하는 오늘의 현실은 노인들에게 사도직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48항).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존엄성을 신장시킬 임무를 맡아야 할 사람은 바로 여성 자신이다. 교회는 온갖 형태의 여성 차별과 학대에 결연히 대항하고 단호한 사목 활동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여야 한다. 공의회(평신도 9항)가 교회의 사도직 중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광범위한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래, 여성이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게 참여할 '고유한 소명' 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이 더욱 심화되어 왔다. 여성은 초대 교회와 그 이후 교회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고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여성의 이러한 역할은 '새로운 복음화' 의 절박성에 비추어 더욱 확대, 강화되어야 한다(49항). 그런데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의 올바른 현존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인간학적 · 신학적 기초에 대하여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다(50항). 여성도 남성과 함께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예수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 사명에 참여하므로 교회의 사도적 사명에 참여함에 있어서 남녀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여성도 교회의 근본적 사도직, 즉 '복음화' 에 부름을 받은 것이다. 여성은 신품성사를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직무 사제직의 고유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기능' 의 문제이지 '존엄성' 과 '성덕' 의 문제는 아니다. 비록 예수가 한 일이나 여성의 소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복음화 사명과 교회 생활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을 인정하고 증진시킬 수는 있다. 여성의 교구 및 본당 사목 평의회 참여가 그 한 예이다. 여성은 또한 자신의 존엄성과 소명에 부합되는 일과 '존엄성' , '자유' , '진보' 라는 미명으로 인간과 환경 및 사회의 참된 가치를 손상시키는 일을 식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특히 두 가지 중대한 임무, 즉 결혼 생활과 모성의 존엄성을 충실히 실현할 임무 및 문화의 도덕적 차원을 확보할 임무가 여성에게 맡겨져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다른 모든 인간에게 맡겼지만, 인간과 생명의 기본 가치를 비롯한 인간의 참된 행복을 이루는 모든 것에 대한 여성 특유의 감수성 때문에 인간을 특별히 여성에게 맡겼다(51항).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과 더불어 남성의 현존 또한 고려하여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공존함으로써 평신도의 교회 구원 사명에 대한 참여가 더욱 풍요롭고 조화 있고 완전하게 되도록 할 절박한 사목적 필요성이 있다.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현존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길은 혼인 성사를 통하여 부부와 그리스도인 가정이 그 임무와 책임을 다하는 데 있다(52항).
병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통과 결합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쇄신으로부터 나오는 힘과 부활의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사랑을 보여 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살아 있는 표지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53항) 그러므로 병자와 고통받는 자를 위한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하는 쇄신된 사목 활동, 즉 병자와 고통받는 자를 단지 교회의 사랑과 봉사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복음화와 구원 사업의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주체로 보는 사목 활동이 필요하다(54항).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은 다양하지만 서로 보완적인 직무와 은사를 지닌 주님의 포도원 일꾼들이다. 다양한 생활 신분은 교회 친교 안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래서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동등한 존엄성과 사랑의 완덕 안에서 보편적 성화 소명을 살아가는 것이다(55항). 각 생활 신분에도 다양성이 존재한다. 평신도의 공동 소명 안에도 다양한 특수 소명이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근년에 와서 성장하고 있는 재속회(在俗會)가 그 좋은 예이다(56항).
제5장(57~63항) : '평신도의 교육'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장에서 교황은, 평신도의 교육 문제를 다루면서 이 문헌의 결론을 맺는다,
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평신도의 생활과 사명의 또 다른 근본적인 면을 드러내 보여 준다. 즉 평신도는 성장과 지속적 성숙 과정으로 나아가도록, 항상 많은 열매를 맺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목활동 계획의 우선 순위를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평신도 교육에 두어야 한다(57항). 평신도 교육의 근본 목표는 평신도로 하여금 자신의 소명을 더욱 분명하게 알아내고 그것을 생활화하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위한 능력과 그 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들 각자가 하느님의 은총에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협력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58항). 자신의 고유한 소명과 사명을 알아내고 생활함에 있어서 평신도들은 영적 생활과 세속 생활을 확고히 일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성격과 인간 사회의 시민이라는 성격의 전반적인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59항).
오늘날 교리, 문화 및 사회 교리에 대한 평신도 교리 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이는 특히 사회 및 공직 분야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평신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특히 이들은 반드시 교회의 사회 교리에 대한 더욱 정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교회의 사회 교리에 따른 사회적 양심 교육을 제공하여야 한다. 전반적인 통합 교육은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는 교육을 포함하는 것이다(60항). 이러한 평신도의 전반적인 통합 교육은 개인과 공동체에 의해, 그 고유한 환경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의 진정한 스승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이다(61항). 평신도는 보편 교회, 개별 교회, 본당, 소공동체, 그리스도인 가정, 교회 학교 및 대학교에서, 그리고 단체 및 운동에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고 증언함으로써 전달한다(62항).
교육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이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사목 활동을 위해서는 교육을 담당할 교육자들의 교육을 적절한 과정이나 학교를 통해 개발하여야 한다. 교육 사업에 있어서 지역 문화를 합당하게 존중해야 하며, 몇 가지 확신이 특별히 필요하다. 즉 개인이 교육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 효과적인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점, 우리들 각자가 교육의 대상이자 주체라는 점, 교육은 하느님 자신으로부터의 교육을 받아들이고자 할 때 더욱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점에 대한 확신이다(63항).
호소와 기도(64항) :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 의식에 투철하여야 하며, 선교 3천년대에 즈음하여 복음 선교 소명에 응답할 책임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선교 노력을 새로이 하여야 한다. 평신도는 교회에 맡겨진 새로운 복음화의 능동적이며 책임 있는 주역이다. 이 문헌은 전교회가 자신의 소명에 효과적인 응답을 하도록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로 끝맺는다. (→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운동 ; 복음화 ; 새 복음화 ; 평신도;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 참고문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강대인 역, <평신도 그리스도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D. Gibson, 《NCE》3, 2003, p.549. 〔韓弘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