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중리 355-5 소재. 1965년 10월 7일 본당이 대화(大和)에서 평창으로 이전되면서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모후. 관할 구역은 평창군 평창읍과 미탄면 전 지역. 〔교세〕 1968년 679명, 1973년 758명, 1978년 708명, 1983년 757명, 1988년 573명, 1995년 619명, 2000년 621명, 2004년 665명. 〔역대 신부〕초대 머레이(B.Murray, 咸) 브랜든(1965. 10~1968. 2), 2대 스미스(J.Smyth, 천) 요한(1968. 2~1969. 9), 3대 하인즈(F. Hynes, 하) 프란치스코(1969. 9~12), 임시 이흥근(李興根) 마르코(1969. 12~1970. 4), 4대 하인즈(1970. 4~1971. 6), 5대 케네디(O. Kennedy, 계) 올리버(1971. 6~1974. 11), 6대 엘리스(G. Ellis, 엄) 제라르도(1974. 11~1977. 2), 7대 드완(S. Dwan, 원) 요한(1977. 2~1978. 5), 8대 스미스(P.Smyth, 천) 파트리치오(1978. 5~1981. 9), 9대 백승치(白承治) 요한(1981. 9~1985. 6), 10대 이병돈(李丙敦) 요한보스코(1985. 6~1988. 9), 11대 한상용(韓相龍) 디도(1988. 9~1991. 4), 12대 홍금표(洪今杓) 알비노(1991. 4~1995. 2), 13대 배도하(裹除河) 베네딕도(1995. 2~1999.2), 14대 이대식(李大植) 야고보(1999. 2~2003. 1), 15대 조규남(曹奎男) 구니베르토(2003. 1~현재).
1931년 5월에 설립된 대화 본당은 한국 전쟁으로 성당이 파괴되고 신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전교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휴전 직후인 1954년 4월에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응환(曹應煥, 타대오) 신부의 주도로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신자수가 1954년 341명에서 1962년 924명으로 증가하였다. 평창 지역 천주교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한 조 신부는 보다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군청 소재지에 본당을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추진하여, 1964년 춘천 대목구 총대리 스튜어트(T. Stewart, 朴) 신부의 승낙을 받아 평창면 중리 355-5번지의 세무서 자리 762평을 매입하고,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성당이 완공되어 초대 주임으로 머레이 신부가 부임하였으며, 로사리오 축일인 10월 7일에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본당이 대화에서 평창으로 이전되면서 평창 본당이 설립되었고, 대화 본당은 관할 공소가 되었다.
본당이 설립되었을 당시 평창면에는 신자가 5~6세대 10여 명에 불과하였으나, 머레이 신부와 전교회장 박순욱(미카엘)의 노력으로 30~40명의 예비자들을 모아 교리 공부를 시작하였다. 평창 본당이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관할 지역이 평창군 전 지역이었으나, 1968년 9월 29일 진부 본당을 분리 · 설정하면서 도암면, 진부면, 봉평면을 분할하였고 봉평 · 흥정리 · 약수 · 장평 · 용전 · 소사리 · 횡계 공소를 이관하였다. 그해 머레이 신부가 진부 본당 초대 주임으로 전임되고, 2대 주임으로 스미스 신부가 부임하였다. 1969년 5월 춘천교구와 원주교구 간의 관할 구역 조정으로 인해 평창 본당의 관할 지역인 평창면, 미탄면, 대화면, 방림면이 원주교구 소속으로 변경되었고, 진부 본당의 관할 지역은 춘천교구에 남게되었다.
같은 해 9월에 3대 주임 하인즈 신부, 12월에 임시 주임 이흥근 신부가 각각 부임하여 활동하였고, 1970년 4월에 하인즈 신부가 4대 주임으로 재부임하였다. 1971년 6월 5대 주임으로 부임한 케네디 신부는 '청송회' 라는 청년회를 조직하여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고, 1973년 4월에는 평창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다. 1974년 11월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엘리스 신부는 은인들과 본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장궤틀을 마련하였다. 1977년 2월에는 7대 주임으로 드완 신부가 부임하여 1978년 2월 대화 공소에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고, 같은 해 5월 8대 주임으로 스미스 신부가 부임하여 1979년 1월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 처음으로 '원죄 없으신 모후' 를 창단하였다.
9대 주임 백승치 신부 재임기인 1982년에는 낡은 강당을 개축하고, 유아 교육을 위해 소화유아원을 개원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성서 읽기를 독려하기 위해 '성서 40주간' 을 실시하였다. 또한 평창 본당은 1984년 11월부터 1987년 2월까지 서울 성가 소비녀회가 평창면 마지리에서 보건지소를 운영하는 데 협조하여 지역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0대 주임 이병돈 신부 재임기인 1986년에는 루르드의 성모 동굴을 재현한 동산을 만들어 성당 앞 도로 옆에 있던 성모상을 이전하였다. 11대 주임 한상용 신부 재임기인 1989년부터 매리지 엔카운터(M.E.)에 참가하였고, 7구역 9개 반으로 구역을 재편성하여 신자 간의 원활한 유대를 조성하였으며, 1990년 6월에는 성당 지붕과 사제관 보수 공사를 시행하였다.
12대 주임 홍금표 신부 재임기인 1992년 12월에는 본당 설정 30주년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유아원을 포함한 교육관, 수녀원의 건립과 신자 배가 운동을 통한 교회의 활성화를 기념 사업의 목표로 세우고 이를 추진하였다. 또한 1993년 3월 대화 공소를 본당으로 재설립하였고, 4월 교육관 및 유아원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9월에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2월에는 '소화유아원' 의 명칭을 '소화 어린이집' 으로 변경하였다. 1994년 5월에는 수녀원 및 사무실을 착공하였고, 6월 19일에는 원주교구 영평정(영월, 평창, 정선) 지구 사도회 임원 연수회를 주관하였다. 같은 해 9월 3일에는 교구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임원 연수를, 9월 4일에는 제2회 영평정 지구 한당 잔치를 주관하였고, 12월에는 레지오 마리애팀을 개편하여 보다 적극적인 평신도 활동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13대 주임 배도하 신부 재임기인 1995년 3월에는 약 1년간의 공사 끝에 수녀원 및 사무실을 준공하여 6월에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10월에 본당 설정 30주년 기념 미사 및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1998년 3월에는 예비 신자와 냉담자 회두를 위한 대대적인 가두 캠페인을 벌였다.
14대 주임 이대식 신부 재임기인 2000년 4월에는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성서, 신학, 역사, 교리 등의 서적을 소장한 성당 도서관을 마련하였고, 5월에는 성서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고 생활화하는 것을 목표로 성서 통독반을 개강하였다. 2001년 3월 한 달 동안에는 사순절, 죽음과 종말, 하느님 등의 주제로 신앙 강좌를 실시하였고, 2002년 7월에는 새로 임명된 구역 · 반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대 주임 조규남 신부는 2003년 3월부터 4월까지 사순절 6주간 매주 금요일에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피정을 실시하였고, 8월에는 소화 어린이집이 3개 반에서 5개 반으로 증설됨에 따라 교육관 1 · 2층과 성모회 주방을 신축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1월에는 독거 노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2004년 8월에는 신자들의 정성으로 새 감실을 마련하였고, 10월 7일에는 본당 설정 39주년을 기념하여 본당 설정 40주년 맞이 미사 봉헌 및 선포식을 가졌다. 현재 평창 본당은 쇄신과 성화, 지역의 복음화, 나눔의 교회 실현 등 3대 목표를 실행해 나가고 있다. (→ 대화 본당 ; 원주교구)
※ 참고문헌 <들빛> 1077호(1998. 4. 5) . 1183호(2000. 4. 16) · 1198호(2000. 5. 28) · 1235호(2001. 4. 22) · 1299호(2002. 7. 14) · 1368호(2003. 11. 23), 천주교 원주교구 사무국/ 《가톨릭 사전》/ 원주교구 30년사 편찬위원회, 《원주교구 3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사무국, 1996. 〔梁仁誠〕
평창 본당 平昌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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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