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김천시 평화동 406-1 소재. 1958년 10월 25일 김천 황금동 본당에서 분리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은 김천시 평화동, 부곡동, 성내동 남산 일부 지역과 대항면, 봉산면 전역.〔교 세〕1958년 1,300명, 1965년 2,100명,1969년 2,357명, 1975년 2,878명, 1980년 2,441명, 1985년 2,947명, 1990년 4,104명, 1995년 5,842명,2000년 6,658명, 2004년 3,300명.〔역대 신부〕초대담(F. Damm, 卓世榮) 파비아노(1958. 10~1964. 7), 2대 김영근(金永根) 베다(1964. 7~1968. 8), 3대 퓌테르(M.Fuetterer, 곽미걸) 미카엘(1968. 8~1981. 2), 4대 노규채(盧奎彩) 아우구스티노(1981. 2~1984. 1), 5대 김용길(金 容吉) 바오로(1984. 1~1987. 1), 6대 장태식(蔣泰植) 리노 (1987. 1~1989. 6), 7대 이재명(李在命) 바오로(1989. 6~ 1991. 3), 8대 정성해(鄭成海) 베드로(1991.3~1996. 8), 9 대 김충(金忠)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6. 8~1999. 11), 10대 여창환(呂昌煥) 라우렌시오(1999. 11~현재). 1950년대 김천 지역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였던 김천 (현 황금동) 본당은 관할 지역이 넓었을 뿐만 아니라 교세 도 빠르게 증가하여 사목 활동을 전개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황금동 본당 7대 주임 담 신부는 이러 한 점을 고려하여 관할 구역에 새로운 성당 건립을 계획 하였고, 모국 독일의 신자들과 본당 신자들의 도움을 받 아 평화동 406-1번지를 성당 부지로 매입하였다. 그리 고 1958년 3월 독일인 성직자이자 건축가인 슈미트(A. Schmid, 安) 신부의 설계를 바탕으로 성당 건축 공사를 시작하여 10월에 완공한 후 비테를리(T. Bitterli, 李聖道) 몬시놀의 집전하에 봉헌식을 거행함으로써 평화동 본당 이 설립되었고, 김천 본당은 행정 구역 명칭을 따라 '김 천 황금동 본당' 으로 이름을 바꿨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담 신부는 본당의 기틀을 다져 나가는 한편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종합 병원의 설립을 계획하였으나, 1964년 7월 심장 마비로 선종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대 주임 김영근 신부 재임기인 1964년에는 아천 공소 등을 신축하였고,1965년에는 본당 전교 수녀회가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교체되었다. 3대 주임 퓌테르 신부 재임기인 1969년에는 여름과 겨울에 계절 학교와 방학 교리반을 열어 주일학교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1975년 9월에는 신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교리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리실을 신축하였다. 4대 주임 노규채 신부 재임기인 1981년 5월에는 부곡동에 새 성당 건립 부지를 마련하였고, 교리실 4칸을 신축하였다.
1984년 2월 본당 관할권이 왜관 감목 대리구에서 대구대교구로 이관됨에 따라 베네딕도회 소속 노규채 신부가 전임되고, 대교구 소속 김용길 신부가 5대 주임으로부임하여 활동하였다. 6대 주임 장태식 신부 재임기인1988년 9월에는 본당 설정 30주년을 기념하여 교육관을 준공하였다. 8대 주임 정성해 신부는 1991년부터1995년까지 '본당 사목 5개년 계획' 을 세워 실천하였다. 1991년은 '조직의 해' 로 본당 공동체 형성을 위해친교와 사귐을, 1992년은 '교육의 해' 로 공동체 쇄신을위해 선교 지향적 자세 전환을, 1993년은 '활동의 해' 로공동체 향상을 위해 선교의 방법 연구 및 실천 강화를,1994년은 '내실의 해' 로 공동체 표현을 위해 선교하는교회의 참모습 모색을, 1995년은 '사랑의 해' 로 공동체사랑을 위한 나눔과 섬김을 실천 방안으로 정하였다. 9대 주임 김충 신부는 1996년 11월 레지오 마리애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였던 회합실을 마련하기 위해 교육관을 증축하였고, 1999년에는 본당을 초월한 지역 복음화를 위해 김천 지역의 5개 본당 사목자들과 함께 평화동 성당 구내에 '공동 사제관' 을 신축하였다.10대 주임 여창환 신부 재임기인 2000년에는 본당 조직을 사목 평의회,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재무 평의회로재편하였고, 2002년에는 신자들의 재교육을 위해 본당신앙 학교를 개설하였다. 2003년 11월에는 주임 신부및 보좌 신부 집무실, 수녀 사무실, 본당 사무실 등을 갖춘 사목 회관(2층 건물, 약 200평)을 건축하고, 대구대교구장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2004년 현재 평화동 본당은 매월 마지막 주일을 가정 주일로 정하여 가정의 복음화를 이루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 김천 본당 ; → 대구대교구 ; 황금동 본당)
※ 참고문헌 http:/ph.tgcathoic.or.kr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1089호(1958. 12. 1)/ <가톨릭시보> 1964년 7월 26일자/ <평 화신문> 1999년 5월 9일자 · 2002년 11월 3일자/ 《천주교 대구대 교구총람》,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6/ 《빛》 157호(1996. 5), 천주교 대구대교구. 〔梁仁誠〕②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1가 589-26 소재. 1987년 1월 14일 서학동 본당에서 분리 ·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관할 구역은 전주시 완산구 평화1동 전역, 서서학동 · 평화2동 · 삼천동 일부.〔교 세〕1988년 997명, 1995년2,868명, 2000년 4,508명, 2004년 4,174명.〔역대 신부〕초대 박병준(朴炳俊) 필립보(1987. 1~1991. 1), 2대이재후(李載厚) 토마스(1991. 1~1996. 1), 3대 이상섭(李相變) 모세(1996. 1~1999. 8), 4대 김동준(金東俊) 야고보(1999. 8~2004. 1), 5대 박인호(朴寅虎) 베드로(2004. 1~현재).
1980년대 중반 서학동 본당 관할 지역인 평화동 일대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본당 설립의 필요성이대두되었다. 이에 서학동 본당에서는 본당 설립 준비 과정으로 1986년 3월 평화동 1가 417-1번지에 있는 건물2층에 제2 성당을 마련하고 7대 주임 강덕창(姜德昌,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주일마다 그곳에서 미사를 집전하였으며, 5월 초대 사목회를 발족하였다. 1987년 1월 전주교구에서는 자치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평화동 일대를 서학동 본당에서 분리하여 평화동 본당을 설립하고, 박병준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설립 당시 본당 관할 구역은 서서학동 공수내 다리를중심으로 서학동 본당 관할 구역과 나뉘었고, 수류 본당의 우름티 공소와 양생 공소 등이 본당에 귀속되었다.성당 신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박병준 신부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본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모금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신자들은 도자기를 제작 판매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교구 내 효자동 본당과 고산 본당에서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1988년 1월 평화동 1가 470-1번지를 성당 부지로 매입하였다. 같은 해 3월 1일 동정 성모회 수녀가 본당에 부임하였고, 3월 6일에는 전주교구장 박정일(朴正一, 미카엘) 주교와 교황 대사의 집전으로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88년 7월에는 1차 공사 단계인 지하 성당과사제관, 수녀원을 완공하여 본당을 이전하였다. 1989년8월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 문규현(文奎鉉, 바오로)신부의 방북과 관련하여 박병준 신부가 구속되자 본당신자들은 '본당 신부를 위한 기도회' 를 개최하고, 민족화해와 통일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였다.1989년 12월 박 신부의 출소를 환영하는 '민족 통일 염원 미사' 를 교구장 직무 대리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신부의 주례와 교구 사제 30여 명의 공동 집전으로 거행하였다. 그리고 1990년 8월 사무실 건물 공사를 완료하였다.
2대 주임 이재후 신부 재임기인 1991년 9월에는 본당수호 성인인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선포식을 이병호(李炳浩, 빈천시오) 주교의 집전으로 거행하였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평화동 일대에 거대 아파트 단지들이들어서자 신자수가 급증하여 미사를 집전하는 데 많은불편을 겪어야만 하였다. 이에 평화동 본당은 신자들을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새 성당 건립을 추진, 농산물 판매, 바자회, 작품 전시회 등을 통해 성당 신축 기금을 마련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1995년 7월 평화동 1가589-26번지에 913평의 부지를 마련하였다. 그 후 3대주임 이상섭 신부 재임기인 1996년 9월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1997년 10월에는 성당 신축 현장에서본당 설립 10주년 기념 미사를 가졌다. 마침내 1999년3월 1일 연건평 833평의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된 성당을 신축하고 이병호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4대 주임 김동준 신부 재임기인 2001년 8월 자본당인 문정 본당을 설립하여 신자 361세대 899명을 이관하였고, 2004년 1월에는 신자 모두가 사회 복지 시설과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돕는 사회 복지 후원회에 가입하도록 하여 따뜻한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5대 주임 박인호 신부는 전교 활동과 함께 친교 나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전주교구)※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1989년 8월 6일자 · 1989년 12월 17일자 · 1999년 3월 7일자 · 2001년 9월 16일자/ 천주교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II》, 천주교 전주교구, 1998.〔梁仁誠〕
평화동 본당 平和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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