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방송 平和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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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제작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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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제작 현장.

서울대교구 산하 재단 법인 평화방송에서 편성 · 제작 · 송출하는 케이블 TV, 위성 TV, FM 라디오 방송.재단 법인 평화방송은 1987년 7월 서울대교구청 간부사제 회의 및 9월 지구별 사제 회의의 검토를 거쳐1987년 11월 21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 교구 사제 총회가 방송사 설립 및 신문 발행을 최종 결의함에 따라 설립되었다.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 김옥균(金玉均, 바오로) 주교, 김병도(金秉濤, 프란치스코) · 백민관(白敏寬, 테오도로) · 김택암(金澤岩, 베드로) · 함세웅(咸世雄, 아우구스티노) · 최서식(崔瑞植, 라우렌시오) 신부, 유현석(柳鉉錫, 베드로), 이관진(李寬鎮, 베드로), 오현주(吳賢珠, 베르나데트)를 발기인으로 하는 재단 법인 평화방송 발기인 창립 총회가 1987년 11월 27일 서울대교구청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이 총회에서평화방송 설립 계획 승인, 정관 채택, 이사 및 감사 선출등 부의 사항이 의결되었으며, 법인 기본 재산 출연 및사업 계획서가 통과되었다. 또한 초대 이사장에 김수환추기경이 선임되고, 발기인 중 최서식 신부는 감사, 나머지 전원은 이사에 각각 선임되었다. 이때부터 평화방송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재단 이사회는 서울대교구장을 비롯한 소속 주교단 전원과 고위 성직자 및 평신도 지도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실무 경영 조직상 최고 경영자인 사장 등 경영진도 교구 사제 인사에 따라 파견된 사제들로 구성되는 특수한 경영 형태를 띠기 시작하였다.1987년 12월 2일 재단 법인 평화방송 설립 신청서를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에 제출하였으며, 이듬해 1월 19일 방송사 설립을 위하여 평화방송 설립 추진위원회를구성하였다. 그리고 서울대교구 사제 전원을 창립 위원으로, 서울대교구 사제 평의회 위원 사제를 상임 위원으로 위촉하고, 위원장에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김병도 신부, 부위원장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함세웅 신부를 각각 임명하였다.
1988년 2월 11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평화방송 설립과 <평화신문> 창간을 위한 종합 계획안을승인함에 따라, 평화방송 설립 추진위원회는 3월 31일특수 주간지로 등록을 마친 <평화신문>을 같은 해 5월15일 창간하였다. 또한 평화방송 개국을 위하여 천주교서울대교구청 구내 사도회관에 임시 사무실을 개설하고방송 실무 소위원회와 기획실을 가동시켰다. 방송 실무소위원회는 방송 스튜디오용 건물 확보 계획, 송신소 설치 계획, 방송 기자재 도입 및 설치 계획, 기본 편성 계획, 사업 계획, 방송 인력 충원 계획, 자금 조달 및 운용계획 등 평화방송 설립의 기본 계획을 수립하였다.평화방송은 1989년 3월 2일 정부로부터 재단 법인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이어 3월 18일 법인 설립 등기를필하였다. 그리고 초대 재단 이사장에 김수환 추기경이,초대 사장에는 함세웅 신부가 취임하였다. 법인 설립 및개국 자금은 설립 주체인 서울대교구의 재단 전입금 10억원, 당시 서울대교구 소속 성직자 전원과 27,000여명의 창립 회원을 포함한 1992년 10월 말 기준 총36,689명의 회원이 약정한 헌금 38억 1,900만원, 그리고 차입금 30억원 등으로 충당되었다. 프로그램 제작을위한 스튜디오 시설은 서울 중구 저동 1가 2-3번지 서울대교구 소유 건물인 평화빌딩에 설치되었고, 송신 시설은 남산타워에 가설되었다. 7월 1일에는 기존의 방송 실무 소위원회를 폐지하고 새로 채용된 언론인들이 중심이되어 함세웅 신부를 위원장으로 하는 개국 준비위원회를발족, 편성 · 제작 · 보도 기술 · 영업 등 부문별로 일제히 개국 준비 업무를 재검토하고 추진하였다.1989년 7월 10일 제2대 재단 이사장에 서울대교구총대리 김옥균 주교가 선임되었으며, 10월 27일 제2대사장에 조덕현(曺德鉉, 야고보) 신부가 취임하면서 기존직제를 정지시키고 새로운 개국 준비위원회 체제로 전환하여 개국 업무를 추진하였다. 당시 사장의 교체는 신문의 휴간 등 노동 조합 사태와 관련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인사로 평가되고 있다.
11월 10일 체신부(현 정보통신부)로부터 무선국 가허가(방송국 개설 허가)를 취득하였고, 1990년 3월 6일 시험 전파 발사를 거쳐 4월 13일 평화방송 FM 라디오의정식 허가를 얻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4월 15일 '맑은소리, 밝은 세상' 을 공식 캐치프레이즈로 하여 FM 주파수 105.3MHz, 호출 부호 HLQP, 출력 5kw로 평화방송라디오가 개국하였다. 그 후 1991년 10월 14일 가을 프로그램 개편과 함께 평화방송 라디오의 캐치프레이즈는'기쁜 소식, 밝은 세상' 으로 변경되었다.
평화방송 라디오는 종합 편성 정책에 따라 종교 · 보도 · 교양 · 음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새벽 5시부터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하루 21시간씩 방송하고 있다. 개국 당시 부문별 편성 비율은 종교 18.1%, 보도 12.7%,사회 교양 26.1%, 음악과 오락 프로그램이 43.1%를 차지하였고 광고 방송도 동시에 실시하였다. 그러나 라디오 개국 이후 일부 보도국 간부들이 회사의 정체성 · 편성권 인사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른바 '평화방송 사태' 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1991년 초부터 노동 조합이이에 동조하여 업무 거부 · 태업 · 농성을 함에 따라 정상업무 수행에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평화방송 사태' 는라디오의 경우, 종합 편성을 기본으로 한다는 전제하에선교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 편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4년 1월현재는 선교 · 교양 58.1%, 음악29.1%, 보도 12.8%의 비율로 방송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평화방송 <설립취지문>에서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복음화를 위하여 원죄 이전의 인간모습으로 회복시켜 올바른 인격을구비하도록 하는 인간화, '나' 위주가 아닌 '이웃' 을 존중하는 공동체의식의 실천을 지향하는 민주화,'내가' 가진 것부터 나누는 적극적인 나눔의 생활을 목표로 하는 사회정의 실천"을 천명하였고, 재단 법인 평화방송 <정관> 제1조 및 법인등기상 사업 목적에는 "그리스도의복음을 전파하고 자유, 평등, 정의,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행복 추구 및 사회의 민주적 발전"이라고 명시하였다. 또한1990년 4월 2일 제정하고 1994년 6월 3일 개정한 <평화방송의 이념>에서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잇는 소통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체현하여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다. 우리는 가톨릭 언론인으로서 방송과 신문을 통하여 부여된 사명을 다한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성실하게 봉사한다.우리는 윤리와 도덕성을 고양하여 자정 기능을 촉진하고사랑과 치유에 앞장선다. 우리는 모든 사실에 대하여 진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제작, 보도한다" 라고 규정함으로써 회사의 설립 이유와 이념을 재확인하였다.
'평화방송 사태' 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1993년 11 월 3일 제3대 사장에 박신언(朴信彥, 라파엘) 신부가 취임하였다. 평화방송 사장의 교체는 노사 간의 화합으로도약과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인사였다. 박 신부는 취임 직후 '신명나는 직장 분위기 조성' 을 선언하고출근부 철폐 및 '평화방송 사태' 를 포함한 기타 징계자의 인사 기록부상 징계 전력을 완전 삭제하는 전격적인사면 조치를 단행하였다. 또한 직원 복지 후생과 관련된정책을 적극 수용하는 등 종사자의 사기 진작과 화합 정책을 동시에 펴 나감으로써 신문 발행과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작 · 송출이 정상화되기 시작하였다.9월 28일 케이블 TV 프로그램 공급업 허가를 취득함으로써 평화방송은 전국망을 갖춘 TV 프로그램 제작 및공급 업체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세계 가톨릭 교회사상최초로 신문 · 라디오 · TV의 3개 매체를 동시에 겸비한종합 선교 매체의 위상을 갖추는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평화방송은 막대한 인적 · 물적 자원이 필요한 TV 매체가 새로운 복음화의 도구라는 공감대를 초교구적으로형성하였다. TV 매체의 원활한 출발과 운영 및 그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1994년 1월 29일에는 케이블 TV 재정위원회를 발족하여 본격적으로 평화방송 케이블 TV개국 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2월 17일 서울대교구 사제 평의회는 각 본당별로 분담금을 할당하여평화방송 케이블 TV가 하루빨리 정착하여 본연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2월 21일 교구 내 전 본당에 공문을 발송하여 이 사실을 알리고 교구민들에게 TV 매체를통한 선교 활동의 실효성과 조속한 개국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10월 7일 김수환 추기경 및 평화방송 이사장김옥균 주교와 사장 박신언 신부는 교회 내 실업인 등 유지들과의 만찬석상에서 TV 매체의 확보는 선교 3세기를 맞아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값진 신앙을 보다 효과적이며 새로운 방법으로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그 당위성을 설명하기에 이르렀고, 그자리에서 케이블 TV 설립 헌금 50억원을 약정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같은 해 7월 말 평화빌딩 1층에 TV 스튜디오를 완공하고 대형 TV 중계차를 도입하는 등 TV 프로그램 제작과 송출을 위한 방송 기기 및 시설을 설치하였다. 8월19일에는 평화방송 케이블 TV 채널 번호가 '33번' 으로확정되었으며, 9월부터 방송 기기 시험 및 '파일럿 프로그램' 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5년 1월 5일케이블 TV 첫 시험 방송을 시작하여 1일 4시간 이상 편성, 운행하였다. 이어 '시대의 빛, 가정의 벗'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뉴미디어 시대의 총아라 불리는 평화방송 케이블 TV가 3월 1일 정식 개국함으로써 전국전송망을 통하여 TV 프로그램을 방송하게 되었다.한편 평화방송 라디오의 출력 증강 및 가청 권역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개국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1996년 6월 2일에는 광주 평화방송(초대 사장 김재영〔金在營, 아우구스티노〕신부, 2대 사장 송종의〔宋鍾儀, 야고보〕신부)이 FM 99.9MHz로, 9월 9일에는 대구 평화방송(초대사장 최영수〔崔榮壽, 요한〕신부, 2대 사장 이용호〔李龍浩, 가브리엘〕신부)이 FM 93.1MHz로, 2000년 5월 3일에는 부산 평화방송(초대 사장 이영묵(李英默, 안드레아] 신부)이FM 101.1MHz로, 12월 1일에는 대전 평화방송(초대 사장 방윤석〔方潤錫, 베르나르도〕신부)이 FM 106 3MHz로 속속 개국하면서 평화방송 FM 라디오를 전국에서 청취할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 연이어 광주 지방국에는 여수 중계소가, 대구 지방국에는 포항 · 안동 중계소가, 부산 지방국에는 울산 중계소가 설치되면서 지역별 난청을최소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평화방송 지방국은 본사에서제작한 프로그램을 대부분 활용하고 있으며, 인사 및 재정 등 제반 관리는 소속 교구에서 담당하고 있다.평화방송 라디오는 프로그램 제작 능력 향상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 개국 이듬해인 1991년 제18회 한국 방송 대상 시상식에서 청소년 부문 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라디오는 다큐멘터리 부문, 청소년 부문, 어린이 부문, 교양 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년 1개 부문 이상의 한국방송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완성도 측면에서인정을 받았다.
2001년 3월 6일 제4대 사장에 오지영(吳智英, 세례자 요한) 신부가 취임하면서 기존의 라디오 방송과 케이블 TV 방송 및 평화신문 3개 매체에 더하여 위성 TV 채널의 확보를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국내외의 급변하는방송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전면적 조직 정비로 자생력 향상을 기하고, 방송 기기 및 설비의 디지털화와 노후설비, 기기 및 집기의 전면 교체 등 제작 환경 및 근무환경을 일신하기 시작하였다.
6월 15일 위성 방송 채널 사용 사업자 허가를 얻은후, 11월 30일 SKY-평화 채널 번호가 '705번' 으로 확정(이후 163으로 조정)되면서 평화방송은 본격적으로 위성 TV 채널을 통하여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게 되었다. 2001년 12월 27일 제3대 재단 이사장에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廉洙政, 안드레아) 주교가 취임하였고, 2002년 3월 1일에는 SKY-평화 위성 TV 방송을 개국하였다. 평화방송 케이블 및 위성 TV의 기본 편성 방향은 삶의 올바른 가치관 제시,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적관심과 나눔 실천, 유익하고 수준 높은 가톨릭 교양 프로그램 보급, 심도 있는 교회 뉴스를 통한 교회 여론 형성에 두고 있다.
평화방송 케이블 및 위성 TV의 편성 비율은 주편성인선교가 70.6%, 부편성인 교양이 6.8%, 그리고 광고, 안내 방송 등 기타 22.6%로 구성되어 있다. 제작 비율은국내 85.8%, 해외 14.2%이며, 1995년 3월 개국 당시에는 1일 6시간 방송하였고, 1999년 9월부터는 평일16시간, 주일 18시간 방송하였으나, 2004년 1월 현재는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20시간을 방송하고 있다. TV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주요 시설로는 스튜디오 2개소, 부조정실 2개소, 종합 편집실, 더빙실 각 1개소가 평화빌딩 1층에 있다. 케이블 TV의 경우는 각종프로그램을 제작한 후 송출 중계 회사를 거쳐 무궁화 위성으로 전송하고, 무궁화 위성으로부터 각 지역 종합 유선 방송국의 통제 아래 광케이블 및 동축 케이블을 통하여 케이블 TV 가입자들에게 송출된다. 반면 평화방송 성 TV인 SKY-평화는 무궁화 위성에서 직접 가입자들에게 송출된다.위성 TV가 개국하기 1개월 전인 2002년 2월 1일을기하여 평화방송 라디오의 서울 송신소를 남산에서 관악산으로 이전하였다. 송신소를 이전함으로써 평화방송 라디오의 가청권 지역이 수도권 중심에서 경기도 전역과충청 · 강원 일부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현재 관악산 송신소는 자동화 설비에 의해 무인(無人) 운영되고있다.
오지영 신부는 2004년 1월부터 선교 매체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실효를 거두기 위하여 라디오, TV 방송과<평화신문>의 편성 및 편집 정책을, 기존의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극적 편성 및 편집 방향에서 탈피하여 국민 전체를 대상 수용자로 상정할 것을 제안하였다.그리고 이에 걸맞는 문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한 차원 승화된 편성 및 편집 방향으로 전환할 것을 천명한 후, 기존의 TV · 라디오 · 신문의 편성 및 편집 방향에전향적 변화를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평화방송은 대중성과 공익성을 강화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정신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밝은세상을 만드는 중심 축이 되고, 교양 프로그램을 통하여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과 물질적 · 문화적 나눔이 가능하도록 배려하며, 다양한 지식과 정보의 공유를 통한 건강하고 풍요로운 공동체 형성을 추구하고 다. 보도 프로그램은 사회 제반 현상들을 가톨릭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가치관 정립에 기여하고, 음악 · 오락 프로그램을 통하여 선교 매체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시청취자들의 일상에 활력과 희망을 주고 정서를 순화시키며, 세대 · 계층 간의 형평성 있는 문화적 혜택을 제공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TV 및 라디오 제작 송출 장비의 디지털화 사업은2003년부터 시작하여 2006년 내 마무리한다는 계획을수립 · 추진하고 있다. 라디오 시설 및 장비의 경우 디지털 오디오 파일 시스템(Digital Audio File System) 도입, 스튜디오를 포함한 연주 시설 교체 등 2004년 1월 현재80% 정도 완료하였으며, TV 시설 및 장비의 경우 디지털 종합 편집 및 송출 시스템 구성 · 중계차 제작 등2006년 말까지 교체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한 업무처리의 객관화, 정보화, 신속화를 위한 통합 정보 시스템(ERP system)은 2002년 4/4분기부터 2004년 1/4분기까지 집중 개발하여 가동함으로써 업무 전산화의 기틀을구축하였다.
오지영 신부는 2001년 7월 1일 각 매체 영업을 종합관리하는 기존의 영업국을 폐지하고, TV국 · 라디오국 ·신문국에 각 매체별 영업 조직을 흡수 편제하여 판매 효율의 극대화 및 전 임직원의 경영 마인드 제고를 위한 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2004년 1월 현재 재단 법인 평화방송의 기간 조직은 기획 관리국 · 라디오국 · 보도국· TV국 · 신문국 · 전산실 등 5개국 1개실 19개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자 · PD · 기술 · 관리 등의 분야에서175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평화방송은 2004년 4월 이후 회사의 모든 업무를 통합 정보 시스템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인터넷 홈페이지(www.pbc.co.kr)를 통하여 TV와 라디오의 인터넷 방송및 신문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 <평화신문>) 〔具裁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