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平和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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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은 복음 정신에 따라 사회 문제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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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은 복음 정신에 따라 사회 문제를 조명한다.


서울대교구 산하 재단 법인 평화방송에서 발행하는 주간 신문.1987년 11월 20일 서울대교구 사제 총회에서 방송사설립 및 신문 발행을 결의함에 따라 창간되었다. <평화신문>은 창간사에서 "이 땅의 진실을 드러내는 정직한신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진리와 사랑에 의한인간다운 사회, 보다 인간다운 세계로 만들어 나가려는선의에 장애가 되는 그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독립된 신문, 그리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우리 모두의 소망인 정의가 넘치는 사회, 여기 이 땅의 평화, 인류의 평화, 그리고 이러한 평화에 전제가 되는 인간의 내적 평화, 곧 그리스도 평화의 실현을 지향하는 <평화신문>을 창간한다"라고 하며 참 평화를 지향하기 위한 참 언론을 펴 나가는것이 <평화신문>의 사명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평화신문>은 진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기쁜 소식을온 세상에 전하는 가톨릭 정론지임을 표방하고, 기쁜 소식의 발굴과 전파, 소외된 이들의 대변자 역할, 올바른목소리를 통한 간접 선교를 기본 편집 방향으로 삼고 있다. 특히 교회와 사회 문제를 심층 분석하고, 복음 정신에 따라 사회 문제를 조명하며, 일선 사목자들의 가르침과 사목 제언, 신앙인들의 삶의 현장, 기타 실용적이고풍부한 내용의 문화 · 생활 · 과학 · 건강 · 오락 등 다양한 기사를 취재 · 보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평화신문>은 매주일을 발행일로 하고, 연 50회 발행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2004년 1월 현재 대판 20개면을 기본으로 하되 대축일 및 대내외 기념일 등 특정한주간에는 24개 면에서 36개 면까지 증면하여 발행하고있다. 인쇄는 서울신문사에서 하며, 발송은 대행 업체를통하여 우편 집중국 분산 발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평화신문>은 창간 이후 현재까지의 과정을 초창기(1988~1992), 정착기(1992~1996), 도약기(1996~현재)로나누어 볼 수 있다.〔초창기〕1987년 11월 21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 서울대교구 사제 총회는 '평화방송 · 평화신문' 의 창립을결의하고, 1988년 1월 19일 평화방송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위원장에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김병도(金秉濤, 프란치스코) 신부, 부위원장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함세웅(咸世雄,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각각 선임하였다. <평화신문>은 1988년 3월 31일 특수 주간지로 등록(등록 번호 다-506호)을 마치고, 5월 15일 발행인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 편집인 김병도 신부로 하는창간호 대판 12개 면 10만 부를 발행하였다. 또한 같은해 8월 14일자 제14호인 성모 승천 대축일 특집호는 12개 면으로, 12월 25일자 제33호인 예수 성탄 대축일 특집호는 16개 면으로 증면 발행하는 등 의욕적으로 신문을 제작하였다. 1989년 1월 15일자 제35호부터는 편집인을 함세웅 신부로 교체하였으며, 2월 17일부터 22일까지 제1차 미주 가톨릭 신자 북한 방문단에 동행하는등 폭넓고 다양한 소재를 발굴 · 취재함으로써 신문 발행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노력하였다.1989년 3월 2일 재단 법인 평화방송 설립이 인가되면서 초대 재단 이사장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임되었고, 초대 사장에 함세웅 신부가 취임하였다. 3월 18일에는 법인 설립 등기를 필함으로써 <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에서 공식적으로 재단 법인 언론사가 발행하는 신문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평화신문>이 창간된 지 6개월이 되던 1988년 12월 1일 <평화신문> 노동조합' 이 설립되면서 노사 간의 갈등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1989년 3월 19일 해고 기자 4명 등 직원 12명이 파업을 결의하면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이는 '평화방송사태' 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평화신문>은 이사태로 7월 30일자 제62호를 발행한 후 약 5개월간 휴간하게 되었다.7월 10일 제2대 재단 이사장에 서울대교구 총대리 김옥균(金玉均, 바오로) 주교가 선임되었으며, 10월 27일제2대 사장에 조덕현(曹德鉉, 야고보) 신부가 취임하면서 평화방송 노동 조합 사태의 수습과 사후 처리 및 신문속간을 준비하였다. 같은 해 12월 25일자 제63호 성탄호를 기점으로 신문 편집 체제를 타블로이드판 16개 면으로 축소하여 발행인 김옥균 주교, 편집인 조덕현 신부로 속간하였다. <평화신문>은 순수 종교지 성격을 띠는신문 제작을 확고한 편집 방침으로 천명하고, 신문의 정기 간행물 등록증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지로서 전례 및 교리와 교서 등 교회 문헌을 해설하고 국내외교회 동향을 수록하여 가톨릭 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것이 신문 발행의 목적임을 재확인하였다.1990년 1월 14일 편집국장에 이충우(李忠雨, 안드레아)를 임명하였고, 4월 15일자 제78호 예수 부활 대축일 특집호를 24개 면으로 증면 발행하였다. 그 후 9월16일자 지령 제100호를 특집호로 발행하면서 편집국장에 신현응(申鉉應, 프란치스코)을 임명하였으며, 같은해 12월 23일 속간 1주년 기념 특집호를 발행하면서 편집국장에 이충우를 재임명하였다.1991년 1월 27일에는 속간 1주년 기념으로 400만원고료 제1회 신앙 체험 수기를 공모함으로써 독자를 위한신문 제작에 한 발 다가서고자 노력하였다. 이후 예수 부활 대축일, 평화방송 개국 제1 주년 기념, 신문 창간 제3주년 기념, 한국 전쟁, 성모 승천 대축일, 한가위, 평신도의 날, 속간 제2 주년 기념 특집호를 24개 면으로 증면 발행하는 등 제작 역량을 차츰 향상시켜 나갔다.〔정착기〕 1992년 2월 16일 직제상 주간 제도 도입 결정에 따라, 초대 신문 주간에 홍문택(洪文澤, 베르나르도) 신부가 임명되었다. 같은 해 4월 19일자 제179호부활 특집호부터 타블로이드 배대판(倍大版)으로 판형을 변경하고 총 16개 면 발행을 단행하였으며, 5월 3일자 제181호부터 제호를 창간 당시의 예서체 로고(C100,M70백자)로 환원하였다. 5월 10일에는 제2회 신앙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5월 24일에는 제1회 청소년 평화 대축제를 개최하는 등 이후 생동감 있는 신문 제작에 전력을 기울였다. 8월 2일에는 명예 기자 제도를 도입, 전국각 교구에서 명예 기자 36명을 선발 · 교육 · 파견하여전국 각 지역의 소식 수렴에 박차를 가하였다. 한편1991년 말 기획하여 1992년부터 전국 신자들을 대상으로 본격 추진되었던 신문 구독 부수 증가 운동은 유가 구독 부수 7만 부를 넘기는 커다란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일명 뉴 체인지 운동' 이라 명명한 이 운동에는 임직원전원이 동참한 전사적(全社的)인 신문 홍보 활동이었다.1993년 1월 1일자 제214호 신년 특집호부터 제호는각 지면의 중간에, 날짜는 각 지면의 오른쪽에 평화방송로고체로 통일하여 배치하는 등 신문 머리 디자인을 변경하였다. 또한 5월 16일자 제233호 창간 제5 주년 기념 특집호부터 신문부수공사(ABC)에 가입하여 국내 언론사상 최초로 신문 발행 부수를 공개하였는데, 당시 공개 부수는 발행 부수 83,000부, 유가 부수 75,211부로기록되고 있다. 5월 29일에는 일본 가톨릭 중앙협의회가 발행하는 일본 가톨릭 신문(당시 발행인 : 오카다 다케오주교)과 제휴하였다. 10월 17일에는 미국 뉴욕 시에 <평화신문> 미주 지사를 개설하고 지사장에 안상인(安商仁,요셉) 신부, 주간에 장기풍(張基豊, 스테파노)을 임명하였으며, 이어 10월 31일 오스트리아 소재 가톨릭계 종합 통신사인 카스프레스(Kathpres)와 뉴스 공급 계약을체결하는 등 해외 보급뿐만 아니라 해외 뉴스의 취재 기반을 확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미주 지사는 2001년10월 5일부터 제2대 김인성(金仁成, 요한 비안네) 신부가 재임하였으며, 2002년 10월 1일에는 제3대 박용일(朴勇一, 타대오) 신부가 취임하였다.1993년 제3대 사장에 박신언(朴信彥, 라파엘) 신부가취임함으로써 <평화신문>의 편집인이 변경되었다. 또한자체 CTS 제작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기기들을 마련하였으며, 이듬해 1월 1일부터는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시행한 신앙 체험 수기 공모를 '신춘 평화 문학상' 으로승격시키고 유명 문학가들을 심사 위원으로 위촉하는 등문학상의 면모를 갖추어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1994년 4월 3일자 제276호부터 1면 머리 디자인을일부 수정하여 돌출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하였고, 9월 4일 신문 주간에 김윤태(金允泰, 세례자 요한) 신부가 임명되었다. 1995년 1월 1일자 제313호 신년 특집호를기하여 본문 활자를 확대 조정(18.5급, 장3)하였다. 한편1월 7일부터 16일까지 필리핀에서 개최되는 제10차 세계 청소년 대회 동행 취재를 시작으로 해외 동행 취재가늘었다. 이는 1994년 7월 1일부터 30일까지 성심여대(현 가톨릭대학교 성심 교정) 김정(金淨, 소피아) 교수를 통한 아일랜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를 비롯하여 아일랜드전역의 성지 취재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이 계기가 된 것으로, <평화신문>이 교회 매체로서 그 시야를 세계 전역으로 넓혀 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8월 27일에는 로스앤젤레스, 남가주, 시애틀, 텍사스, 시카고, 토론토 등미주 <평화신문> 지사 산하 지국 6개소를 개설하여 재미교포 신자들의 <평화신문> 접근 기회를 한층 확대하는계기를 마련하였다.같은 해 9월 17일 신문 주간에 조형균(趙亨均, 요한)신부가 임명되었다. 조 신부는 <평화신문>이 제작 부수,제작 능력, 독자 호응도 등의 측면에서 일정한 수준에 다다랐다고 판단하고, 교회 신문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신앙과 영성의 측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신부 순교 150주년을 맞이하여 1996년 4월 10일부터29일까지, 성인의 해외 발자취를 따라 마카오부터 흑룡강까지 중국을 종단하는 대형 취재 계획을 수립 · 실행하였다. 또한 5월 12일 창간 8주년 특집호를 기하여 특집면을 대폭 확대하고 신앙 · 영성 · 해설 · 기획 면을 더욱강화하는 지면 쇄신을 단행하였다. 신문 발행 부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6월 2일자 제382호부터 유가 부수 10만 부를 기록하였다.〔도약기〕 1997년 12월 16일 편집국장에 최승호(崔昇鎬, 요한)가 임명되었다. 1998년 1월 1일부터 가톨릭뉴스 통신 CNS를 구독하기 시작하였고, 5월 15일자 제479호 창간 10주년 특집호를 기하여 제호를 확대(16cm×5cm)하고 편집 체제를 7단 체제로 변경하였다. 그리고10월 9일 신문 주간에 박동호(朴東浩, 안드레아) 신부가 임명되었다.1999년 4월 4일자 제522호 부활 특집호를 기하여 경향신문 서체로 본문 및 제목 서체를 변경하고, 1면 제호하단에 인터넷 주소를 병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신문 편집 체제를 화상 편집 체제로 전환하기 위하여 해당 시설의 도입 및 편집 요원들의 실무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마침내 MAC 시스템으로 조판 체제를 갖추었다.그리고 7월 1일 편집국장에 이윤자(李潤子, 루치아)가임명되었다.2000년 1월 1일자 제560호 신년 특집호는 28개 면으로 증면 발행하고, 1면에 한하여 광고 규격을 5단 크기에서 4단 크기로 축소함으로써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기사량 극대화를 꾀하였다. 또한 5월 14일자 제577호창간 12주년 기념 특집호부터 본문 서체를 한양신문 명조체로 변경하고 전면 화상 편집 체제로 전환하였다.2001년 3월 6일 제4대 사장에 오지영(吳智英, 세례자 요한) 신부가 취임하면서 편집인이 변경되었고, 10월 5일 신문 주간에 하형민(河亨珉, 시몬) 신부가 임명되었다. 같은 해 12월 27일에는 재단 이사장으로 염수정(廉洙政, 안드레아) 주교가 취임하면서 발행인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02년 6월 1일부터 서울신문사와 인쇄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인쇄처를 경향신문사에서 서울신문사로 변경하였으며, 10월 1일 신문 주간 제도를 폐지하였다.2003년 5월 18일자 제724호 창간 15주년 기념 특집호는 원색 12개 면을 포함하여 32개 면으로 증면 발행하면서 회사 로고체를 제호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동시에 신문 제작 작업의 용이성과 편의성을 감안하여 전산 조판 시스템을 MAC 시스템에서 IBM 조판 체제로 교체하였다. 또한 10월 12일자 제743호인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재위 25주년 특집호부터는 연속 3회에 걸쳐24개 면으로 증면 발행하는 등 취재 및 증면 편집의 역량을 늘려 나갔다. 이후 2004년 5월 16일자 제773호창간 16주년 기념 특집호는 창간 이후 처음으로 원색14개 면을 포함한 36개 면을 발행하였다. → 평화방송)〔具裁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