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布敎 聖 - 修女會 [라]Congregatio Sororum Benedictinarum Missionarium de Tutzing(O.S.) [영]Missionary Benedictine Sisters ofTutzing [독]Missions- Benediktinerinen von Tut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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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Benedictus, 480?~547?)의 수도 전통에 선교 활동을 하던 안드레아스 암라인(Andreas Amrhein,1844~1927) 신부가 1885년 독일 라이헨바흐(Reichenbach)에서 설립한 수녀회. 현재 총원은 로마(Roma)에 있으며 한국 본원은 대구시 북구 사수동 135번지와 서울시 성북구 돈암2동 413-79번지 두 곳에 있다.〔설립 배경과 발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설립자인 암라인 신부는 1844년 2월 4일 스위스 루체른(Luzern) 군츠별(Gunzwil)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외방 선교를 희망하던 그는 6~9세기에 활발하였던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의 북유럽 선교와 문화적 선도에서 영감을 얻어 아직 그리스도교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선교 활동을 하는 베네딕도회 수도 생활을 착안하였다. 특히 19세기는 외방 선교에 대한 관심이한창 일고 있을 때였다. 이에 암라인은 1870년 신학생으로 독일 보이론(Beuron) 연합회의 베네딕도 수도원에 입회하여 이듬해 서원을 하였고, 1872년 7월 16일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성 베드로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시대적 부름에 강한 자극을 받아 12년의 노력 끝에 외방 선교를 위한 베네딕도회의 설립 허락을 수도원 장상으로부터 받았다. 이후 암라인 신부는1884년 6월 29일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허가를받고 독일 라이헨바흐에 포교 활동을 위한 베네딕도회를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9월 24일에는 4명의 여성 지원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를 출범시켰다. 수녀원은 1888년 상트 오틸리엔(St. Ottilien)으로 이전하였는데, 증가하는 지원자들로 인하여 새로운 모원 자리를 물색해야 하였다. 그 결과 1897년 독일 남부지역의 소도시인 투칭(Tutzing)에 새 수녀원 부지를 마련하여 1904년 7월 29일 이곳에 정착하였다. 현재의 '투칭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라는 명칭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1887년부터 동아프리카에 수녀들을 파견하기 시작한 수녀회는 수많은 순교적 희생과고난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충실성에 의지하여 복음 전파에 대한 자신들의 소명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브라질 ·필리핀 · 스위스 · 미국 · 한국 등에 잇달아 진출하였다.1924년 3월 20일 교황청 소속회로 인가되었으며 ,2004년 현재 총 18개국에서 1,400여 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영 성] 암라인 신부는 당시 많은 선교사들이 개인적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것과는 달리 수도 공동체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자 하였다. 그는 수도 가족들이베네딕도의 규칙을 따라 살며 선교 소명에 따르는 노고와 희생 안에서 '하느님과 모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모든 일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참으로 하느님을 찾아 만나고, 이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이 영혼과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체험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영성은 베네딕도회적 수도 삶을 통하여(참으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 규칙서 58, 9) 세상의 복음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기도' , '공동 생활' , 王文 '일' (선교 활동)을 통해서 표현된다.수녀들은 공동 기도를 매우 중시한 베네딕도회의 전통에 따라 전례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실천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구원의 신비를 재현한다. 전례 행사는 공동체의 내적 기쁨의 원천이 되고, 각 개인의 영성을 형성해 가는 데 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하느님의 현존을드러냄으로써 선교의 기본 도구가 된다. 그리하여 분원에서도 최소한 4명 이상의 수녀들이 함께 거주하며 공동기도를 한다. 또한 성서를 심도 있게 읽으며 기도하고 관상하는 거룩한 독서(LectioDivina) 역시 기도의 본질적인부분을 차지한다(기도)베네딕도회의 회원들은 '정주' (stabilitas) 서원을 통하여 장상을 도와 회원들이 함께 화목하게 사는 공동체를이루도록 노력한다. 회원간의 깨끗한 사랑은 수도자의삶이 하느님과 일치되도록 하며 공동체를 지탱해 주는힘이 된다(공동 생활). 또한 수녀회는 교회가 필요로 하는모든 분야에서 베네딕도회의 공동 생활과 기도 생활에조화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도직에 종사한다.모든 일이 선교 정신과 더불어 이루어지지만, 그리스도가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의 복음화와 신자들이 냉담해진 곳에서의 재복음화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기울인다(일).[한국 진출의 동기와 과정] 원산 수녀원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한국 진출은 덕원 면속구장이며 덕원 베네딕도 대수도원의 아빠스인 사우어(B. Sauer, 辛上院)주교의 초청으로 1925년 11월 21일 투칭 모원으로부터파견된 4명의 독일인 수녀들(마틸다 히르쉬, 크리소스토마슈미트, 다니엘라 카르츠 비크러, 헤르메티스 그로호)이 원산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곧 한국인 지원자들이 입회하였으며, 독일 수녀들도 계속 파견됨으로써 원산 수녀원은 1927년 6월 6일 원장좌 수녀원(Pioratus)으로승격됨과 동시에 히르쉬(M. Hirsch, 1882~1952) 수녀가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후 신고산 · 회령 · 청진 ·함흥 · 흥남에 분원을 설립하였다. 이들은 본당 선교 · 청각 장애인 선교 · 유치원과 초등학교 및 무료 초등학교 ·시약소 · 의원 · 무료 진료소 등의 사도직 활동을 펼쳤다.1945년 광복과 더불어 북한에 소련군이 주둔하고, 후에인민 공화국이 설립됨에 따라 전교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수녀들은 조심스럽게 활동을 지속하였다.그러나 결국 1949년 5월 북한 정부에 의해 수녀들이 체포되고 수녀원은 폐쇄되었다. 북한 정부에 끌려간 서양인 수녀들(독일인 19명, 프랑스인 1명)은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의 독일인 수도자 39명과 함께 자강도 강계군 국경산악 지대인 전천(일명 옥사독)에서 5년 동안 강제 노동을하였다. 강제 노동 중 사망한 2명의 독일인 수녀를 제외한 18명의 수녀들은 1953년 11월 19일 해방되어 1954년 1월 독일로 송환되었다.공산 정권에 체포되었던 한국인 수녀들은 얼마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감하여 흩어져 온갖 고생을 하며 숨어 살았다. 그중 17명이 한국 전쟁을 전후로 제각기 남하하여1950년 12월 9일 임시 피난민 수용소인 부산 중앙 본당에서 재회하였다. 부산에서 재회한 수녀들 중 7명은1951년 7월부터 광주 남동과 북동 본당에서 선교 활동과 유치원 교육을 하였고, 나머지 수녀들은 10월 23일대구대교구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의 초청으로 대구주교관 내에 정착하였다. 대구에 정착한 수녀들은 남북통일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베네딕도 수도회의 비테를리(T. Bittlerli, 李聖道) 몬시놀의 도움으로 1952년 10월 12일 대구 공평동에 남한 첫 분원을 마련하였다. 1955년3월부터 지원자들을 받으며 수련소가 개설되었고, 독일로 송환되었던 독일인 수녀들이 1955년 11월부터 한국으로 재파견되어 대구로 왔다. 6월에는 대구시 동구 신암동에 수녀원을 신축하였으며, 5월 14일 축복식과 함께성 베네딕도 원장좌 수녀원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956년 7월에는 분원 경내에 '파티마 의원' 을 개원하였다.대구 · 서울 수녀원의 분리와 재정립 전후 피폐해진 사회와 지역의 요구에 응답하여 수녀회는 다양한 사도직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정신에 따라 영성의 쇄신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또한회원 수가 증가하여 다양해진 사도직 활동에 대처하며파티마 병원을 확장하고, 베네딕도회적 영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대구시 북구 사수동에 새로 수녀원을 지어 1985년 12월 9일에 본원을이전하였다. 이후 제11차 대구 수녀원 총회(1986. 9)의결정에 따라 1987년 11월 16일 서울 성북구 돈암2동에있던 상지회관을 중심으로 새 원장좌 수녀원이 설립되었고, 초대 원장으로 이춘이(요안나) 수녀가 취임하였다.서울 · 인천 · 수원교구에 있는 분원을 중심으로 독립수녀원이 된 서울 수녀원은 분가 후 수익 사업체를 지양하고 기도와 일의 조화를 이루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공동 기도와 공동 생활 양식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수도승의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리고 미국 스카일러에있는 남자 베네딕도회의 도움으로 본원 건물을 신축하여1989년 11월 16일 성녀 제르트루다(Gertudis, 1256~1302)를 주보로 하는 새 수녀원을 완공하였다.[사도직 활동]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외방 선교를 위해 창설된 수도회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지역에서 베네딕도회의 공동 생활 및 기도 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온갖 종류의 사도직에 종사한다. 특히 창립자의 가르침에 따라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곳과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의 봉사를 우선으로 하고, 시대와 지역의요구에 따라 본당 선교 · 교육 · 의료 · 사회 복지 · 문화 · 예술 활동 등 다양한 사도직에 투신한다. 현재 대구수녀원 회원들은 대구대교구를 비롯한 전국 7개 교구의본당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대구(1956)와 창원(1969) 파티마 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김천 성의여자중 · 종합고등학교와 함창 상지여자중 · 종합고등학교 및 여러 곳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며 교육 사도직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사회 복지 분야에서는경남과 창원의 장애인 종합 복지관 청주의 충북 재활원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제의나 전례 용품을 제작하는일도 하고 있다. 수녀회는 설립 이념에 따라 해외 진출도활발하여 미국과 브라질에서 교포들을 위한 선교 활동과교육 활동을, 독일 · 나미비아 · 인도 등지에서 현지인들을 위한 파견 선교를, 케냐 및 중국에서는 의료 사도직활동을 수행하고 있다.서울 수녀원은 성 베네딕도가 강조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규칙서 57, 9)를 생활화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늘 의식하며 '기도하고 일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미 하고 있던 사업을 보다 충실히 하고자하였다. 이에 서울 수녀원에서는 전례의 삶과 공동체 삶을 강조하며 상지 피정의 집을 중심으로 신자 재교육을위한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성미술 작업을 통하여 성당 및 가톨릭 건물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서울 · 인천 · 수원교구의9개 본당에서는 유치원 · 노인 무료 급식소 · 사회 사목을 함께하며 4인 이상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본당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청각 장애자들을위한 서울 애화학교를 운영하며 특수 교육을 포함한 유아 교육과 초 · 중등 교육 및 직업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성남에서는 공동 생활을 하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본당 ·교정 · 빈민 · 유아 교육 등의 다양한 사목 활동을 하고있고,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층이 한마을에 사는 포천의 분도 마을에서는 유치원과 요양원을운영하며 환경 친화적인 사목을 펼치고 있다. 또한 대구수녀원과 마찬가지로 로마 · 독일 · 미국 · 케냐 · 우간다등지에 수녀들을 파견하여 현지의 수도 공동체 활성화를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동부의 뉴어크(Newar)에도진출하여 데마레스트와 맨해튼에서 교포들을 위한 본당사목 · 성서 강의 · 거룩한 독서 · 성서 익히기 및 신자 재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교포 어린이들의 미국적응과 언어 교육을 담당하며 활발한 국외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4년 현재 대구 수녀원에는 종신 서원자281, 유기 서원자 40, 수련자 15, 청원자 11명이 있으며, 서울 수녀원에는 종신 서원자 118, 유기 서원자 15,수련자 7, 청원자 5명이 있다. 1 서울 애화학교 ; →선교회 ; 성의여자중 · 종합고등학교)※ 참고문헌  F. Renner, Der,fufarmige Leuchter, Bd. I. St. Ottilien,1971/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이정순 엮음, 《원산 수녀원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8/ 이형우 역,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 분도출판사, 1991/ 베르니타 발터, 배은주 역, 《하느님의 충실성에 의지하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96/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회헌>.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