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葡萄

[히]יָיִן · [그]σταφυλή · [라]uva · [영〕gr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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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는 하느님이 내리시는 복과 풍요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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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는 하느님이 내리시는 복과 풍요의 상징이다.


포도나무과(Vitaceae) 포도나무속(Vitis)에 속한 낙엽성 덩굴 식물. 덩굴손이 있으며, 덩굴손은 종에 따라 연속 또는 단속적으로 잎과 마주 난다. 자웅 이주 또는 양성주로, 5~6월에 원추꽃차례(panicle)로 꽃이 달린다. 꽃잎은 5개이며 녹색이고, 위쪽이 융합한다. 살과 물이 많고 속에 씨가 들어 있는 열매는 8~10월에 익으며 그냥 먹거나 말려서 먹는데, 포도에서 짜낸 즙은 포도주나 식초로 만들어진다. 포도잎은 먹을 수 있고 나머지 부분은 짐승의 사료로 사용되었으며, 포도주는 일반적으로 마취나 체형(體刑)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사용되어 왔다. 〔기 원〕 포도 재배와 포도주 양조는 선사 시대 중앙 아시아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포도 재배에 관한 기록은 기원전 4000년경 근동 지방의 기록에서 발견되며, 예리고와 아라드(Arad)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자료는 포도주 양조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작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기원전 10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게 제르 달력(Gezer Calendar)에도 포도 재배에 관한 언급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에서 포도주 양조의 여러 단계가 묘사된 그림이 발견되었다. 근동에서 그리스로 전해진 포도주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의 이름과 더불어 기록되었다. 서유럽의 경우에는 기원전 58년 체사르(J. Caesar, 기원전 100~44)가 갈리아(Gallia, 현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벨기에 일부)를 침공하였을 때 포도가 재배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원생지에서 점차 지중해의 여러 나라로 포도가 전파되었다. 특히 로마인은 피정복 지역에 포도 재배를 적극 장려하여 포도 재배 경작지를 계속 확장시켰고, 그 결과 오늘날 유럽 포도주 생산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중국에는 기원전 126년경 한대(漢代)에 서역에서 포도 묘목이 전래되었으나, 포도주의 양조가 성행한 것은 당대(唐代)에 들어와서이다. 〔성서에 나타난 포도 용어〕 성서는 포도와 포도주의 생산과 소비를 일상 생활과 아주 친근한 요소로 다루며, 이를 대부분 긍정적으로 언급하였다. 일반적으로 포도나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게펜" (גֶּפֶן)이다(창세 40, 9 이하 ; 신명 8, 8 ; 판관 9, 12 ; 욥기 15, 33 ; 시편 78, 47 ; 애가 2, 13 ; 이사 7, 23 ; 16, 8 이하 ; 예레 6, 9 : 에제 17, 68 ; 미가 4, 4 ; 말라 3, 11). 그리고 붉게 빛나는 포도는 "야인"(יָיִן)과 “엔압”()으로 표기되며(창세 49, 11 ; 이사 5, 2 ; 예레 2, 21), 포도나무의 꽃은 "보세르" (, 이사 18, 5)와 "니자" (, 이사 18, 5)와 "세모다르" (, 아가 2, 13. 15 ; 7, 13), 그리고 포도밭은 "카람" (קָרַם, 예레 52, 16)으로 나온다. 구약성서에서 언급된 내용들 : 성서에서 포도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은 노아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성서 저자는 노아가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다(창세 9, 20-21). 가나안에서의 포도 재배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착 생활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빵과 포도주를 준 것(창세 14, 18)과 가나안 정탐꾼들이 포도를 따온 것(민수 13, 20), 모세가 묘사한 약속의 땅에 포도밭이 나오는 것(신명 6, 11)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포도 문화는 포도 경작에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는 사마리아와 유대의 비옥한 구릉 지역에서 가장 발달하였다(이사 5, 1 이하). 엔게디 포도원(아가 1, 14)은 예레미야가 그 몰락을 탄식하였던 시브마 포도밭(예레 48, 32)처럼 유명하였다. 에제키엘은 헬본의 포도주가 띠로에 수출되었다고 전하며(에제 27, 18), 호세아는 레바논 포도주의향기를 전하고 있다(호세 14, 8). 반(半)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이상적인 정착 생활은 '모든 사람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것' 으로 묘사되었으며, 약속의 땅을 대표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인 포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경제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신명 8, 8 ; 여호 4, 13 ; 느헤 9, 25). 따라서 바빌론 유배 기간 동안에도 땅이 완전히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남겨 두어 포도밭을 가꾸게 하였다(2열왕 25, 12 ; 예레 52, 16).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외국인들이 포도밭을 가꾸게 된다(이사 65, 5). 포도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땅을 고르고 돌을 골라내야 하였다(이사 5, 1 이하 ; 마르 12, 1). 포도 경작 초기에는 땅이나 담장 또는 바위 위에 그냥 자라게 하였으나(창세 49, 22), 나중에는 포도덩굴이 자라 올라갈 수 있도록 막대기와 받침대를 놓아 주었다(1열왕 4, 25 : 미가 4, 4 ; 즈가 3, 10). 품질 좋은 포도를 거두어들이기 위해서는 가꾸는 이의 끊임없는 손길이 필요하였다. 비가 온 다음에는 손상된 땅을 다시 손질하고 잡초를 제거해야 하였으며 이사 5, 2. 6), 환경에 민감한 포도나무를 위해 폭풍우나 동물에 의한 피해를 막아 주고 약탈꾼들의 손길에서 나무를 지켜 주어야 하였다(이사 5, 5). 여우와 승냥이가 포도송이를 위협하고(아가 2, 15), 멧돼지들이 포도밭을 휩쓸기도 하였기 때문이다(시편 80, 8. 12 이하 ; 마태 9, 13 이하). 포도밭 한가운데에는 망대를 세우고 포도원지기가 살았다(이사 5, 2 ; 마태 21, 33 ; 마르 12, 1).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질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를 잘 쳐 주어야 하였다. 가지치기에는 "낫" (מַזְמֵרָה,이사 2, 4 : 18, 5 ; 요엘 3, 10 ; 미가 4, 3)이라는 기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본래 장닭의 가운데 꼬리 모양을한 작은 칼로 전쟁 시에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포도나무의 죽은 가지는 봄에 잘라내어(레위 25, 3 이하 ; 이사 5, 6) 모아서 불에 태워 버렸다(요한 15, 6). 보통 9월에 시작되는 포도 수확철에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포도밭에 머물렀기 때문에 성읍들은 텅 비었다. 거두어들인 포도는 바구니나 마차에 실어, 2개의 커다란 돌을 겹쳐 놓아 만든 포도즙 짜는 술틀(요엘 3, 13 ; 이사 5, 2 ; 마태 21, 33 ; 마르 12, 1)로 운반하였다. 자연적인 포도의 무게에 눌려 술틀 아래 놓인 술통에 흘러내린 포도즙은 '햇' 포도주, '달콤한' 포도주로서(호세 4, 11 : 아모 9, 13 ; 사도 2, 13), 찌꺼기를 눌러 짠 포도즙과는 분리하여 보관하였다. 맨발의 남자들이 술틀 위에 올라가 포도를 밟아 짜며 서로를 격려하는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이사 16, 9 이하 ; 예레 25, 30 ; 48, 33) . 그들의 발과 다리와 허리 아래 옷은 포도즙으로 붉게 물든다(창세 49, 11 ; 이사 63, 2 이하). 이렇게 모아진 포도즙은 통에 저장하였다. 발효되기 이전의 포도즙을 음료로 마시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포도주 발효 효소에 의해 발효 과정을 거치게 된다. 묵은 포도주는 여과기에 걸러 내놓았으며(이사 25, 6), 향신료와 식용 풀을 넣어 만든 혼합 포도주는 축제나 중요한 모임에 내놓았다(잠언 9, 2. 5 : 23, 30 ; 이사 5, 22 ; 요한 2, 1-11).포도주 생산 때에는 세금을 걷는 이들이 자신들의 몫을 주장하였고(이사 3, 14), 빚을 포도주로 갚기도 하였다(2역대 2, 10). 또한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징병이 면제되기도 하였다. 포도밭에서는 포도 이외의 다른 식물을 가꿀 수 없었으며(신명 22, 9), 6년 동안 수확한 포도나무는 그 다음해에는 놀려 쉬게 하였다(출애 23, 11 ; 레위 25, 3). 포도 수확이 끝나면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남은 열매를 따먹도록 포도밭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레위 19, 10 ; 신명 24, 21). 그리고 열매를 전혀 내지 못한 포도나무는 버려지고(이사 19, 8), 시든 포도나무는 연료와 불쏘시개로 사용되었다(에제 15, 4 ; 요한 15, 6). 오래전부터 포도주는 손님을 접대하는 중요한 음식이었고(창세 14, 18), 율법에서는 매일 바치는 제물 가운데 한 가지였으며(출애 29, 38-40), 햇곡식을 바치는 예물의 제사주이자(레위 23, 10. 12 이하), 다른 제물을 바칠 때 함께 바치는 제물이기도 하였다(민수 15, 5).성서에서 포도주는 국가의 평화와 번영(1열왕 4, 25 ; 아가 4, 4 ; 즈가 3, 10), 정착 생활의 상징(2열왕 19, 29 ; 시편 107, 37 : 아모 9, 14 등)이었다. 또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신명 11, 14 : 요엘 1, 10)으로 표현된 것처럼 포도주는 인간이 사는 데 필수적인 물질로 묘사되기도 하였다(집회 39, 26). 그것은 인간(코헬 10, 19 ; 집회 31,27-28 ; 32, 5-6 : 40, 20)과 하느님(판관 9, 13) 모두를 기쁘게 하는 음료였다. 그러므로 포도밭을 가꾸었으나열매를 맛보지 못하는 것은 재난(신명 20, 6 ; 1고린 9, 7), 또는 야훼의 진노의 표시였다(신명 28, 30 ; 아모 5, 11). 포도의 산물인 포도주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신명 7, 13 : 시편 104, 15 ; 호세 2, 8)로, 마지막 때에 풍성하게 주어질 것으로 묘사되었다(예레 31, 12 ; 요엘 3, 18 : 아모 9, 13-14). 한편 포도주는 "포도의 피" (דָּם-עֵנָב 창세 49, 11 ; 신명 32, 14 ; 집회 39, 26 ; 50, 15)로 표현되기도 하였으며, 포도를 짓밟는 것은 노여움에 가득찬 하느님의 분노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이사 63, 1-6 ; 묵시 19, 15). דָּם-עֵנָב 포도주를 만드는 것 이외에 포도는 유대인들에게 철분과 필수 무기질을 제공하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수확한 포도의 일부는 지붕 위에 널어 놓고 뜨거운 태양 아래 건조시켜 건포도를 만들었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팔레스티나 지역의 필수 양식 가운데 하나였다(민수 6, 3). 질 좋은 포도당의 보고로서 가난한 이들에게 환영받는 양식이었던 건포도(1사무 30, 12 ; 1역대 12, 40)는, 여행객들이 가지고 다니기 편하며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로도 활용되었다(1사무 25, 18 ; 2사무 16, 1). -דָּם 포도나무는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하느님이 내리는 복과 풍요를 상징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이는 선택받은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 요셉은 "열매 많은 나무" (창세 49, 22)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포도나무로 묘사된다(시편 80, 8 이하 ; 예레 2, 21 : 12, 10). 그러나 최상급의 포도를 생산하도록 하느님의 온갖 보호를 받은 그들이 들포도만 맺었을 때, 그들은 적들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이사 5, 1 이하) . 신약성서에서 언급된 내용들 : 신약성서에는 포도와 관련된 비유가 적어도 5개 이상 예수님의 말씀 안에 등장한다. 곧 포도밭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의 비유(루가 13, 6-9), 포도원 일꾼의 품삯 비유(마태 20, 1-16),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은 새 포도주의 비유(마태 9, 18),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 28-32),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 33-41 ; 마르 12, 1-11 ; 루가 20, 9-18) 등이다. 신약성서에서 포도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점은 예수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인 예수와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들입니다. 내 안에 머무는 사람,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머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 없이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15, 5).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식사 중에 거행한 최후 만찬에서 포도주는 인간을 위해 흘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피가 되었다(루가 22, 19-20 ; 1고린 11, 23-26) . 이는 오늘날 미사 중 성찬 전례에서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성변화되는 성체성사를 통해 계속 기억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는 종종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일치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또한 포도송이는 보리 이삭과 함께 성체 성사에서 사용되는 포도주와 빵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포도는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이다. 그래서 포도주는 구세주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의 포도 재배〕 우리 나라에서는 포도가 도입된 지 오래되지 않아 포도주의 양조 역사 또한 길지 않다. 조선 시대의 도자기에 포도가 그려져 있고, 조선 후기의 학자인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정약용(丁若鏞, 요한, 1762~1836)의 《소림경제》(小林經濟)에 여러 가지 포도 품종이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포도나무가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품종을 찾아볼 수 없다. 포도와 포도주는 천주교회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미사를 봉헌할 때 반드시 포도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레(Ch. Dallet, 1829~1878)의 《한국 천주교회사》(Histoire de I'Eglise de Corée, vol. 2, Paris, 1874)에 의하면, 신부의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 1790년 7월 북경으로 파견된 윤유일(尹有一, 바오로, 1760~1795)과 함께 간 오(吳)라는 예비 신자가 포도주 담그는 법을 습득하여 돌아왔다고 한다. 또한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 1802~1839)의 인도로 선교사들을 만났고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1796~1839) 주교로부터 세례와 견진을 받은 최영수(崔榮受, 필립보, 1791~1841)는 미사주를 제조하였으며, 그로 인해 선교사들이 그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다고 한다. 현대적인 포도 재배는 1910년경 수원과 서울의 뚝섬에서 포도나무를 심은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성(현 구포동) 본당의 초대 주임(1900. 10~1932. 9) 공베르(A. Gombert, 孔安國, 1875~1950) 신부가 1910년 이전에 포도를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가 1908년 3월 27일 작성한 보고문에 따르면, 1907년경 자신의 집에 놀러온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심은 "유럽 과실을 맛보게" 하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 또한 폐병으로 거의 죽어가는 20세의 아들을 둔 부인이 찾아와 포도송이를 달라고 요청하여 이를 주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을 볼 때 공베르 신부는 자신이 재배한 포도를 이용하여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여겨지며, 이것이 한국에서 최초이자 현대적으로 양조된 포도주였다. (→ 미사주) ※ 참고문헌  E. Boissier, Flora Orientalis, Geneva, 1867~1888/ 0. Borowski, Agriculture in Iron Age Israel, Winona Lake, IN, 1987/ M.D. Coogan, Vine, The Oxford Companion to the Bible, Oxford, Oxford Univ. Press, 1993, pp. 799~800/ A. Goor, The history of the grapevine in the Holy Land, Economic Botany 20, 1966, pp. 46~66/ A. Goor & N. Nurock, Fruits ofthe Holy Land, Israel, 1968, pp. 18~45/ N. Hareuveni, Ecology in the Bible, Kiryat Ono, Israel, 1984/ R.K. Harrison, 2, pp. 554~555/ F.N. Hepper, Planting a Bible Garden, London, 1987/ H.N. & A.L. Moldenke, Plants ofthe Bible, New York, 1952, pp. 28ff., 239f./ Y. Waisal, Trees ofthe Land oflsrael, Tel Aviv, 1980/ M. Zohary, Plants ofthe Bible, New York, 1982. 〔美善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