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청등록》
捕盜廳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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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1775년(영조 51년)에서 1890년(고종 27년)까지 포도청에서 처리한 사건을 정리한 기록. 체포된 죄인들의 심문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우포도청등록> 30책, <좌포도청등록> 18책, <좌우포도청등록> 2책이 남아 있다. <우포도청등록> 30책 중, 1책은 순조 7년(1807)과 8년(1880)의 기록이며, 2책은 중간에 30년을 건너뛰어 헌종 5년(1839)부터 시작된다. 이후로는 한두 해씩 앞뒤의 연도 순서가 바뀌기는 하지만, 고종 18년(1881)까지 비교적 매년 처리한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좌포도청등록>의 경우 1책은 영조 51년(1775) 한 해의 기록이며, 2~4책은 <우포도청등록>과 같이 30년을 건너뛰어 순조 7년부터 순조 24년(1824)까지의 기록이다.그리고 5~18책은 헌종 9년(1843)부터 고종 21년(1884)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좌우포도청등록>의 1책은 고종 25년(1888)부터 고종 27년(1890)까지의 기록이며, 2책은 고종 19년(1882)부터 고종 24년(1887)까지의 기록으로, 순서상 1책과 2책의 시대가 바뀌어 있다. 한편 <우포도청등록> 1책과 2책 사이에 비어 있는 30년의 시기(1809~188)는 <좌포도청등록>의 3책 과 4책의 기록(1818~1824)이 보충해 주며, <우포도청등록>의 마지막 30책 이후 즉 고종 19년부터 고종 21년까지 기록은 <좌포도청등록> 18책에, 1885년 이후의 기록은 <좌우포도청등록>에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등록>은 내용상 서로 보완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포도청등록>에는 420건, <좌포도청등록>에는241건, <좌우포도청등록>에는 29건의 사건이 실려 있는데, 이 중 <좌포도청등록>의 2책은 대부분 <우포도청등록>의 1책과 일치하며, <좌포도청등록>의 5~17책에 있는 사건은 <우포도청등록>의 3~30책의 내용과 중복된다. 따라서 실제 《포도청등록》에 수록된 사건수는 약566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포도청등록》에 실려 있는 사건 중에는 금제(禁制)와 관련된 단속 건수가 가장 많다. 즉 농우(農牛)를 보호하기 위해 소 도살을 법으로 금지한 우금(牛禁), 식량을 확보하려는 측면에서 술 빚는 것을 금지한 주금(酒禁),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한 송금(松禁)에 대한 내용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아울러 교자(轎子)를 타는 것, 무인(武人)들의 도박 활쏘기, 도고(都庫), 잠상(潛商) 등에 대한 단속도 금제와 관련된 포도청의 주된 업무였다. 다음으로 절도, 투절(偸竊) 사건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등록>에 실린 경우는 단순한 절도 사건이 아니라 국가 기관이나 궁궐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다가 잡힌 경우이다. 예를 들면 선혜청(宣惠廳) 내탕고(內帑庫)와 광흥창(廣興倉)에서 포목과 곡식을, 경희궁 · 창덕궁 · 각사(各司) 등지에서 철물(鐵物), 제기(祭器), 도장, 청판(廳板), 기와 등을 훔치다가 적발된 경우를 볼 수 있다. 아울러 국가와 관련된 일을 언급하거나 모반 · 반역 등과 관련된 부방(付榜) · 괘방(掛榜) 행위, 이양선(異樣船)과 접촉하거나 장사를 한 사람, 그리고 임오군란(壬午軍亂)과 같은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내용도 실려 있다. 이외 포도청의 기본적 임무인 구타, 사기, 강도, 살인에 대한 조사 기록, 화재 사건, 사주(私鑄) 및 어보(御寶) · 인신(印信) · 홍패(紅牌) · 교지(敎旨) · 체문(帖文) 등을 위조한 사건들도 보인다. 이처럼 《포도청등록》에는 일반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범죄 사건들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자료는 당시의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19세기 사회의 다양한 실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사 · 사상사 자료이기도 하다. 아울러 포도청, 형조, 의금부, 한성부, 사헌부 등 법사기관의 역할 분담과 기능을 알 수 있으므로 법제사 연구의 기본 자료도 될 수 있다. 〔천주교 관련 기록〕 《포도청등록》에는 천주교인들을 사학 죄인(邪學罪人)이라 하여 체포하고 처형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즉 <우포도청등록>과 <좌포도청등록>에는 1866년부터 1879년까지 천주교에 연루되어 체포된 500여 명의 신문 기록이 실려 있는데, 이 500여명 중에는 《치명일기》 ·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 《병인치명사적》 · 《박순집 증언록》 등 교회 측 기록에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중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서로 겹치는 경우라도 이 기록이 당사자의 직접 진술이라는 점에서 교회 측 자료보다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 특히 신문을 받은 연 · 월 · 일, 신문을 받은 사람의 성명, 세례명, 나이, 거주지, 교리를 배우고 영세한 시점, 신앙에 대한 입장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밝혀져 있다는 것과, 또 1878 · 1879년의 기록에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압수하였다가 돌려주거나 불태운 물품들과 천주교 서적들의 목록인 <양인물건출납기>(洋人物件出納記), <양인사학책진안등본소화가>(洋人邪學冊眞言謄本燒火紀) <양인최올돌물건환출급기>(洋人崔兀乭物件還出給記) 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포도청등록》은 19세기 천주교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포도청) ※ 참고문헌 《捕盜廳謄錄》/ 이이화, 〈解題〉, 《포도청등록》, 보경문화사, 1985/ 石井壽夫, <고종조의 조선 천주교와 그 박해 - 특히 《포도청등록》을 소재로 하여>, 《한국 천주교회사 논문 선집》 2, 한국교회사연구소, 19771 고흥식, <병 인교난기 신도들의 신앙 - 《포도청등록》을 중심으로>, 《교회사 연구》 6, 한국교회사연구소, 1988. 〔趙允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