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센티, 가브리엘 Possenti, Gabriel(1838~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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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성인. 예수 고난회(Congregatio Passionis Jesu Christi) 소속 수사이자 신학생. 수도명은 통고의 성모의 가브리엘(GabrielaVirgine Perdolente). 축일은 2월 27일. 1838년 3월 1일 이탈리아의 아시시(Assisi)에서 산테포센티(Sante Possenti)와 아네스 프리쇼티(Agnes Frisciotti)의 열세 자녀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시시의 행정관이었다가, 후에 스폴레토(Spoleto)의 세액 사정관(assessor)이 되었다. 포센티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856년까지 스폴레토의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춤과 연극, 외모와 겉치레 등에 관심이 많은 학생으로 유명하여, '일 다메리노' (Ⅱ Damerino, 여자에게 상냥한 남자)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중병을 앓았는데, 그때마다 병이 나으면 수도회에 입회하겠다고 하느님께 약속을 하였다가 매번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스폴레토의 기적을 일으키는 이콘을 기리는 행렬에 참가하였을 때, 수도회에 입회하여 성직자가 되야겠다는 강한 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856년 9월 21일 모로발레(Morovalle)의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였다. 1857년 9월 22일에 첫 서약을 한 그의 수도명은 통고의 성모의 가브리엘' (Gabriele dell'Addolorata)이었다. 이후 그는 모범적인 신학생으로서 기도와 보속에 열중하며 수도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특히 주님의 수난과 성체에 대한 신심이 깊었으며, 성모의 고통을 깊이 묵상하였다. 1861년에 소품들을 받은 그는 대품을 받을 준비를 계속하였지만 6년 동안의 수도 생활로 체력이 소진되어, 1862년 2월 27일 이탈리아 테라모(Teramo) 주의 이솔라 델 그란 사소(Isola del Gran Sasso)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수도회가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성당에 안치되었으며, 지금까지 그곳에 남아 있다. 이후 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받은 영적 은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특이한 점 없이 단지 철저히 규칙을 지키며 수도 생활을 하였던 신학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복자로 선포되면서부터 높은 덕을 실천하며 살았으며 그의 중재로 많은 이들이 회개를 하였음이 드러났다. 그의 시복식은 1908년 5월 31일 로마의 바티칸 대성전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 중에는 생전에 그를 알았던 사람들도 많았으며, 그중에는 그의 영성 지도자이며 고해 신부였던 노르베르트(Norber), 포센티의 중재 기도로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한 도미니코 티베리(Dominico Tiberi) 경도 있었다. 포센티는 1920년 3월 13일 시성되었고 아브루치(Abruzi) 지방의 수호 성인이며, 청소년, 특히 수련자와 신학생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 예수 고난회) ※ 참고문헌 E. Burke, 《NCE》 11, 2003, p. 548/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406/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aire hagiographique, Brepols, 1991, pp. 210.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