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라트, 게르하르트 Von Rad, Gerhar(1901~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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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루터교 목사. 20세기 대표적인 구약성서 신학자 중 한사람. 〔생 애〕 1901년 10월 21일 뉘른베르크(Nümberg)에서 태어난 폰 라트는 의학과 고전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였으나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정한 후, 1921~1925년까지 에를랑겐(Erlangen) 대학교와 튀빙겐(Tübingen)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921년에 설립된 반유대주의 성향의 '독일 교회 연합' (Bund für Deutsche Kirch)에 대한 토론의 필요성을 역설한 메르츠(G. Merz, 1892~1959)의 영향을 받아 구약성서를 연구하기로 결심, 1925년 바이에른(Bayem) 지방의 루터교 목사가 되었다. 그는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프록쉬(O. Procksch, 1874~1947)의 지도로 학위 논문을 썼고, 1928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9년에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잠시 복습 지도 교사를 한 후, 1930년에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교의 구약성서학 교수인 알트(A. Alt, 1883~1956)의 조교가 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학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된 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하였다(1930~1934). 1934년에 그는 예나(Jena)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10년 동안 재직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학문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널리 외부 강의를 다니며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에 대해 설교하면서 루터교 목사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폰 라트는 사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 참전하였지만, 곧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후 종전될 때까지 미국의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 몇 달 동안 지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수용소의 체험을 엮은 이야기가 공개되었다. 종전 후 그는 괴팅겐(Göttingen) 대학교에서 구약성서 신학 강의를 하였으며(1945~1949), 이후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대학교에서 가르쳤다(1949~1967) . 그는 1967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정년 퇴임하였고, 1971년 1월 31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업적과 저술〕 폰 라트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그를 가르친 스승 알트와, 알트의 제자 중 한 사람이자 그의 전임자였던 노트(M. Noth, 1902~1968)의 연구에서 적잖은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알트와 노트가 사용한 역사적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알트의 영향으로 형성된 체계적인 작업 방식과 자신의 미학적-문학적 성향을 결합시켜 성서 본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폰 라트는 1929년 첫 논문 <신명기에 나타난 하느님의 백성>(Gottesvolk im Deuteronomium)에서 히브리어 성서의 가장 중요한 문예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를 발견하였다. 그는 군켈(H. Gunkel, 1862~1932)의 양식 비평 방법론을 신명기에 일관되게 적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계약 법전과 신명기 법전을 병행 대조시킴으로써 내용상 중첩이나 단절이 있는지 점검하였다. 그 결과 그는 신명기가 종족적인 의미의 이스라엘과 정치적인 의미의이스라엘을 청중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하느님의 백성인 동시에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에 선포되는 이중적인 특징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제의(祭儀)가 중앙에 집중되면서도 하느님의 이름을 특별히 강조하고, 또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느냐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좌우됨을 강조하는 신명기 신학의 독특성을 파악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신명기를 '하느님 백성' 이라는 착상에 깊은 인상을 받아 완결된 작품으로 파악한 그의 통찰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가톨릭 신학에서 강조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상' 에 영향을 미쳤다. 폰 라트는 1930년에 <역대기 작품의 역사상>(Das Geschichtbild des chronitischen Werks)이라는 교수 자격 논문에서 역대기에 담긴 사관(史觀)은 사제계 문헌보다는 신명기적인 역사물에서 기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1934년의 논문 <육경에서의 사제계 문헌>(Die Priesterschrift im Hexateuch)에서 그가 문학적으로 단일성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은 사제계 문헌에 우주 궤도, 노아 궤도, 아브라함 궤도 등 동심원 형태로 구원사의 윤곽이 담겨 있음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1938년에 발표한 네 번째 논문 <육경의 양식사 문제>(Das formgeschichtliche Problem des Hexateuch)에서 창세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의 육경을 연결지어 이해하는 새로운 열쇠를 제기하면서,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 이라는 양식 비평적인 가설을 내놓았다. 육경의 기원과 야훼계 문헌의 역할을 자리매김한 이 논문은 아주 영향력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폰 라트는 이 논문에서 다양한 원천들을 연구하는 원천 비평(자료 비평)이 더이상 실효가 없음을 보여 주면서, 육경의 '최종 형태' 에서 연구를 시작할 것을 제안하였다.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이 육경을 구성하는 자료들의 형태와 그 자료를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었다면, 폰 라트는 그 자료들이 어떤 목 적으로 기록되었느냐에 초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서 과거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그들이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군켈의 방법에 따라 육경의 '형태' 와 '삶의 자리' 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현재의 육경이 초기의 단순하고 짧은 신앙 고백문(신명 26, 5 ㄴ-9 ; 6, 20-23 : 여호 24, 2ㄴ-13)에서 확장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명료하고 소박한 본문인 신명기 26장 5ㄴ-9절은 이스라엘 농부가 성소에서 첫 소출을 봉헌할 때 말하던 전례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응집된 육경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이집트에 들어갔다가 탈출(출애급)하여 땅을 차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폰 라트는 이 사실에 주목하여 시나이 부분은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과는 다른 문학 유형이며, 별도의 삶의 자리를 가진 완전히 분리된 전승 요소에 속한다는 가정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는 세겜 성소에서 거행되었고, 길갈에서 가나안 정착 축제와 연결되어 거행되었음직한 고대의 '계약 축제'를 작업 가설로 내세웠다. 즉 출애급-정착 전승은 판관 시대에 길갈의 주간절(오순절)에서 생겨난 반면, 시나이 전승은 중앙 고지대에 있는 세겜의 초막절에 기원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가설 안에서 폰 라트는 야훼계 저자를 오랜 편집 과정의 마무리 단계에서 그때까지 전해 내려온 일화들을모은 단순한 편집자로 보는 군켈과는 달리, 육경에 결정적인 모습을 부여하였던 천재적인 저자로 설정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야훼계 저자는 아주 빈약한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에 다양한 요소들을 연결시켜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우선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에 담긴 구원사에 별도로 전해 내려온 시나이 율법 전승을 통합시키고, 그 외의 여러 전승들을 자신의 신학적 계획에 맞게 재구성하였다. 성조들 가운데 야곱만 다루고 있는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에 아브라함과 이사악 전승들을 덧붙였을 뿐 아니라, 출애급 사건과 연결시키기 위해 '요셉 설화' 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폰 라트는 탁월한 행정 능력을 보여 준 요셉에게서 솔로몬 시대의 이상적인 슬기로운 행정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보았다. 아울러 아브라함의 소명 이야기(창세 12, 1-3)에는 이스라엘 왕국 덕분에 온갖 민족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야훼계 저자의 신학이 담겨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와 호응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약속과 가나안 정착이 한데 묶여진 육경 이야기의 서문으로 온 민족을 아우르는 태고사(창세 1-11장)를 덧붙인 인물도 야훼계 저자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 후로 다른 편집자(E, P)가 후대의 자료들을 많이 덧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야훼계 저자가 설정한 신학적 계획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작은 역사적 신앙 고백문에 담긴 결정적인 기본 동기도 바뀌지 않은 채 보존되었다고 보았다. 이 논문에서 선을 보인 양식과 제의라는 관점에서 구약성서에 접근하는 방식은 폰 라트의 이후 연구에서 주조를 이루었다. 1947년 논문 <신명기 연구>(Deuteronomium-Studien)에서 그는 신명기의 율법 설교의 특징을 밝히면서 알트가 율법 형태를 정언법과 결의법으로 구분한 견해를 받아들였고, 신명기의 구성이 노트가 지파 동맹으로 가정하였던 '주간절' 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1951년 논문 <고대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Der heilige Krieg im alten Israel)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이 지파 동맹의 뜻에 부합되게 거행된 제도라고 해석하였다. 폰 라트는 자신이 연구한 모든 것을 1957년과 1960년에 연달아 두 권의 《구약성서 신학》(Theologie des Alten Testament)에 집대성하였다. 여기서 그는 구약성서 전체를 역사적이거나 체계적으로 재구성해서 연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구약성서의 증언을 신학적 차원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비판적으로 회고하며 재현하려고 하였다. 그는 이 책의 제1권인 《이스라엘의 역사적 전승 신학》에 언급된 '야훼 신앙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종교제의 개관' 이라는 항목으로 당시의 연구 상황을 개관한 후, '이스라엘 전승사의 신학' 을 제시하였다. 이런 구성에서 시사되듯이, 그는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을 모두 담으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느님과 그분에게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 현장으로서의 역사를 '숨겨진 중심' 으로 삼아 핵심적인 신앙 진술과 주변적인 내용을 구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하느님의 인격적인 신비가 드러나는 장소였으며, 하느님의 계시 장소로서의 역사는 구약성서의 개별적인 신앙 증언의 척도로 작용하였다. 또 제2권 《이스라엘의 예언적 전승 신학》에서도 예언자들을 더 오래된 전승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야훼의 사건이 펼쳐지는 장소로서의 역사라는 지평에서, 대예언자의 예언은 전해 내려온 선민 전승을 무너 뜨리지 않은 채 이스라엘의 역사적 의미에 간여하는 거대한 담화이자 중요한 지식으로 간주되었다. 예언자들은 그들에 의해서 새롭게 형성된 야훼의 권능을 혁신적으로 선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예배 전승의 대변자이자 실제적인 해석자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이해로 말미암아 육경, 시편, 지혜 문학, 예언서 등의 구약성서는 해석이 필요한 경전으로서 역사와의 관계에서 점검되었다. 폰 라트는 말년에 와서 초기에 이차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였던 지혜를 연구함으로써 역사와 제의에 치우친 초기 작품의 구약성서 이해를 보완하는 데 의식적으로 전력을 기울였다. 그가 1970년에 펴낸 《이스라엘의 지혜》(Weisheit in Israel)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 구약성서 : 노트, 마르틴) ※ 참고문헌 J. Blenkinsopp, The Pentateuch-An Introduction to the firstfive books ofthe Bible, SCM Press, 1992/ H. Cazelles, La Torah ou Pentateuque, Introduction critique a I'Ancien estament, tome 2, Paris, 1973, pp. 95~244(서인석 역, 《모세의 율법 -오경의 비판적 입문》, 성바오로출판사, 1980)/ B.S. 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Fortress Press, Philadelphia, 1980(김갑동 역, 《구약 정경개론》,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M. Honecker, Zum Verständnis der Geschichte in G. R.s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EvTh》 23, 1963, pp. 143~168/ S.J. Alberto,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John Bowden trans. by, SCM Press, 1980/ Jean-Louis Ska, Introduction a la lecture du Pentateuque. Clés pour l'interprétation des cinq premiers livres de la Bible, Centro Editoriale Dehoniano, 2000(박 요한 영식 역, 《모세 오경 입 문 - 오경 해석을 위한 지 침》, 성바오로출판사,2001)/ 0. Kaiser,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Eine Einführung in ihre Ergebnisse und Probleme, Gütersloher Verlagshaus Gerd Mohn, Gütersloh, 1969(이경숙 역, 《구약성서 개론-그 연구 성과와 문제점들》, 분도출 판사, 1995)/ R. Smend,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John H. Hayes ed., Abingdon Press, 1999, pp. 364~365/ -, 《TRE》 28, pp. 89~91. 〔李禹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