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로, 마르코 Polo, Marco(1254?~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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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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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 칸을 알현하고 통행증을 받는 마르코 폴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이자 위대한 여행가 중 한사람. 〔생 애〕 마르코 폴로는 1254년경 베네치아에서 니콜로 폴로(Niccolo Polo)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콜로는 크림(Krym)의 솔다야(Soldaja)에서 중개상을 하면서 동지중해를 폭넓게 돌아다니던 무역상의 한 회원이었다. 1261년에 그는 동생 마태오(Matteo 혹은 Maffeo)와 함께 남부 볼가(Volga, 현 터키 지역), 즉 당시 황금의 오르다(Orda)라고 불리던 나라들을 상업적 목적으로 여행하였다. 그 후 이 두 형제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부하라(Bukhara)에서 3년을 지내고 페르시아의 칸(Khan)인 훌라구(Hulagu 1217?~1265)가 몽골 제국의 황제인 쿠빌라이 칸(Kubilai Khan, 1215~1294), 즉 원(元)의 세조(世祖)에게 파견하는 사절단에 합류하여 유럽인들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동방 여정을 거쳐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수도 개평부(開平府)에 도착하였다. 세조는 이들을 최상으로 환대하였으며, 이들이 돌아갈 때 안전을 위해 통행증을 주고, 아울러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하게 하였다. 그 편지에는 유럽인 학자들과 기술자 그리고 선교사들까지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또한 세조는 선물도 보내 주었고, 예수가 묻혔던 예루살렘의 성묘에서 타고 있는 등잔의 기름을 조금 갖고 돌아오라는 부탁도 하였지만, 교황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는 않았다. 중국 여행 : 폴로 형제가 3년이 걸려 베네치아에 돌아왔을 때는 1269년이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2년간을 체류하면서 교황 글레멘스 4세(1265~1268)의 계승자인 새 교황이 선출되기를 기다렸지만 늦어지자, 니콜로 폴로는 1271년에 17세 된 아들 마르코 폴로와 함께 새로운 아시아 여행길에 올랐다. 팔레스티나에서 교황 특사인 테오발도(Teobaldo Visconti)는 원의 세조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들에게 주었다. 다시 여행길에 오른 지 며칠 후에 폴로의 가족들은 테오발도가 교황 그레고리오 10세(1271~1276)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아크레(Acre, 현 Akko)로 돌아가, 정식 신임장을 받고 2명의 수사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사들은 곧 용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폴로 가족만 여행을 계속하였다. 이들 일행은 중앙 아시아를 지나, 육로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통과하고 페르시아 만의 호르무즈(Hommuz)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육로로 북상하여 이란을 경유하고 상부 옥서스(Upper Oxus, Amudarya) 강과 파미르(Pamir) 고원을 넘어 현재 중국 신강(新疆)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카슈가르(Kashgar, 喀什喝爾)에 이르렀다. 여기서 비단길(silk road)을 따라 화전(和闐)을 지나로프 노르(Lop Nor, 羅布泊) 호수, 감숙(甘肅), 북산서(北山西)를 거쳐 내몽골에 도달하였다. 1275년 여름에 폴로 일행은 세조의 여름 수도로 내몽골에 있는 상도(上都, Shang-tu)에 도착하였다. 폴로 가족은 궁정에 들어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유와 교황의 편지를 그들의 후원자인 세조에게 바쳤다. 당시 19세였던 마르코 폴로는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나, 몽골 수도에 이르기까지의 각 지방 각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비상한 재질을 과시하였다. 그는 최단시일 내에 몽고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위구르어(Uyghur) · 서하어(西夏語, Hsihsia) · 탕구트어(Tan-gut Language) · 티베트어〔西藏語〕까지 습득하여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세조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았다. 세조는 그를 공식 특사로 임명하여 원 제국 내의 각 지방을 순회하게 하였고, 1279년 원이 송(宋)나라를 멸망시킨 후에는 중국 본토에까지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폴로는 황제의 겨울 수도인 대도(大都, Khanbalik, 현 북경)로부터 산서, 섬서(陝西), 사천(四川),운남(雲南) 등지를 순방하였고, 미얀마까지 여행하였다. 이러한 장거리 여행 중에 티베트인과 접촉하여 티베트에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오늘날 하북(河北), 산동(山東), 강소(姜蘇), 절강(浙江)을 거쳐 당시 동아시아의 중요 항구인 복건성(福建省)의 천주(泉州)까지 여행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여행을 통해 직접 여행한 곳뿐만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일본(Cipangu)을 비롯한 무수한 나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장기간의 중국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다음, 중국을 떠나 본국으로의 귀환 길에 오른 때는 1292년이었다. 폴로는 천주항을 출발하여 바닷길로 돌아왔는데, 당시 페르시아의 칸에게 보내는 사절단과 합류하여 베트남, 수마트라 섬, 실론, 인도 서해안을 거쳐 1293년 말에 호르무즈까지 항해한 후, 그곳부터는 육로로 터키 북동부의 트라브존(Trabzon, Trebizond)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지니고 있던 모든 수입금을 빼앗긴 후 1295년에 자신의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이들의 베네치아 출현과 그 가족들에 의해 퍼져 나간 소문들은 당시 저술가들에게는 공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또 그들이 언급한 긴 여행담들도 마치 우화처럼 들려 저술가들로부터 거절당하였다. 폴로는 1298년에 일어난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의 전투에 해군 함장의 고문관으로 참전하였다가 쿠르졸라(Curzola) 해전에서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곧 풀려나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이후 그의 가족들은 좀 더 안락하게 살기 위해 후에 카 밀리온' (Cà Million)이라 불린 저택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약 30년간 은둔 생활을 하던 폴로는 1324년 1월 8일 약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폴로의 중국 여행기〕 마르코 폴로는 제노바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감옥에서 만난 피사 출신의 루스티차노(Rusticiano 또는 Rustichello)에게 자신의 중국 여행담을 이야기하였고, 루스티차노는 이를 프랑스어로 정리하였다. 이 글의 프랑스어 제목은 《세계의 불가사의들》(Les merveilles du Monde)이며, 이탈리아어 번역판과 《밀리오네》( Milione)라는 제목의 베네치아 방언으로 된 번역판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용과는 무관한 제목이지만 단지 저자의 이름을 붙여 '마르쿠스 파울루스 밀리오니' (Marcus Paulus Milioni)라는 제목의 글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1310년 폴로가 살아 있을 때 선교사들을 위해 볼로냐의 도미니코회 회원인 피피노(Francesco Pipino)가 감수한 라틴어판이 가장 많이 알려졌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The Description fthe World)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책은 오늘날까지 지리학에서 가장 귀중한 문서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여행 보고서 중 하나로서, 당시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유럽에 처음 소개한 책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폴로는 세계 역사상 최대의 제국, 그것도 전성기를 맞이한 원 제국의 각지를 직접 여행하면서 겪은 체험담을 기술하였을 뿐만 아니라 송나라 때의 중국 문화까지 소개하였던 것이다. 이민족 지배하의 중국은 정치적으로 허약하였지만, 남송 시대의 중국 문화는 높은 수준이었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동방견문록》은 중국 본토를 제국령의 일부로 장악하고 있었던 원 제국에 관한 가장 귀중한 자료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원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의 기술 내용에 대한 신빙성은 몽골과 중국 측의 당대 서적들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몽골의 국가 조직, 재정 및 화폐 제도, 광대한 모든 제국령을 연결하는 교통 체계 및 수송 체계의 우수성 등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큰 특징이다. 폴로는 중국 각지를 여행하던 중, 1234년부터 몽골 제국에 병합된 북중국, 중원(中原), 남중국 일대까지의 모든 풍물(風物)을 접촉할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중국 문화의 정수인 정신 생활, 종교, 철학, 문학, 미술 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물질 문명에 무지하였던 유럽인들의 직접적인 견문과 관찰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신빙성 있는 체험담을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이다. 그러나 폴로가 고국으로 돌아와서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동양 최강의 대제국을 소개하였을 때, 그가 견문록의 장본인임을 믿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기록은 모두 환상적인 기사로 간주되었고, 심지어 그에게 이 견문록의 내용 일부를 취소하도록 종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폴로의 경이적인 기록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라고 인정하면서도, 실재적인 진실을 묘사한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당시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또 하나의 문명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었다. 따라서 폴로의 견문록은 유럽의 각 언어로 번역되어 필사되는 과정에서 원전과는 다르게 자의적으로 윤색, 과장되고 상상적인 내용이 첨가되어 마치 환상적인 동화집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일부 학자들은 이 견문록의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 그리고 고도로 발전한 문명 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시대가 흐르면서 차차 다른 지역에서도 진실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무튼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세 서구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 주었으며, 그가 기록한 풍성한 새로운 지리적 정보는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대양을 항해한 15세기 말과 16세기에 널리 이용되었다. (⇦ 마르코 폴로 ; → 중국) ※ 참고문헌 Marco Polo, Il Milione, 1st ed., Firence, 1928/ L.F. Benedetto, Il libro di messer Marco Polo cittadino di Venezia detto Milione, Milano, 1932/ W. Marsden, The travels ofMarco Polo theVenetian, London, 1818/ P. Zurla, Di Marco Polo e degli altri viaggiatori veneziani più illustri, Venecia, 1824/ G.B. Baldelli Boni, I viaggi di Marco Polo, illustrati e commentati, 2 vols., Firence, 1827/ G. Pauthier, Le livre de Marco Polo citoyen de Venise, Paris, 1865/ H. Yule, Cathay and the Way thither, 2nd ed., London, 1915/ Moule-Pelliot, Marco Polo, The Description of the World, 2 vols., London, 1938/ H. Cordier, Les voyages en Asie au XIV siecle du bienheureux frère Odorico de Pordenone, Paris, 1891/ W. Franke, 김원모 역, 《동서문화 교류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5. [全壽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