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네스, 데안 그레고리오 Funes, Deán Gregorio(1749~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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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네스 신부.

푸네스 신부.


아르헨티나의 신부. 독립 운동가. 〔생 애〕 1749년 5월 25일 아르헨티나 중부에 있는 코르도바(Córdoba)에서 출생한 푸네스는, 1774년 코르도바대학교(당시 산 카를로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스페인의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에서 시민법과 교회법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778년에는 국가로부터 법률가 자격을 획득하였다. 푸네스 신부는 교회의 여러 가지 직책을 두루 역임하며 주교좌 성당의 본당 신부(1804)와 교구의 총대리 및 행정 담당 직무를 수행하였다. 또 1808~1813년에는 몬세라트(Montserrat) 신학원과 코르도바 대학교의 원장을 맡았다. 교육에 관한 그의 사상과 목표는 저서 《교육 계획》(Plan de Estudios, 1813)에 담겨 있는데, 이 책에서 푸네스 신부는 전통과 단절되지 않는 새로운 이념들을 펼쳤으며 철학과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인성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1807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 본토를 점령한 이후 시작된 남아메리카의 독립 열망과 함께 1810년 5월에 아르헨티나도 독립을 선포하였다. 이때 푸네스 신부는 아르헨티나 독립 혁명에 가담하여 혁명 정부의 일원으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819년과 1826년에는 헌법을 제정하는 의회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표하는 출판의 자유에 관한 법령, 지방 평의회 구성에 관한 법령 등 여러 법령의 반포에 조언을 하였다. 또한 조례를 개혁하고, 〈가세타〉(Gaceta), <엘 아르고스>(EI Argos), <엘 센티넬라>(El Centinela), <라 아베야 아르헨티나>(La Abeja Argentina) 등의 신문에 기고하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1829년 1월 10일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코르도바 주교좌 성당에 안치되었다. 〔평 가〕 푸네스 신부는 무엇보다도 대격변의 시기에 현실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정치인이었으며, 자신의 높은 학식을 통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봉사하였다. 민주주의자였던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매개로, 스페인 신학교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자유주의 정치가로서 종교를 존중하는 윤리적인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나아가 연방제 국가의 건설을 지지하였다. 푸네스 신부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스페인을 계속 아르헨티나의 보호자로 인정하고 아르헨티나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려는 교황청의 입장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의 보호는 국가의 주권과 관계된 것이며 따라서 혁명 정부가 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는 교회와 국가의 기원과 수단, 목표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나, 이 둘은 함께 움직이고 서로를 도와야 하는 것이었다. 하나인 보편적인 교회는 교황에게 순명하지만 스페인의 전통 속에서 보면, 교회는 교회 활동에 관하여 일정 부분의 권한을 국가에 부여하였다. 이에 반해 푸네스 신부는 교회권의 철저한 행사를 지지하였지만, 공공 질서와 종교의 수호를 위한 목적에 한해서 국가에 권한을 이양하는 것을 찬성하였다. 그는 교회와 시민권에 관한 다양하고 많은 글들과, 3권으로 된 《파라과이의 시민 역사에 대한 논문,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투쿠만》(Ensayo de historia civil del Paraguay, Buenos Aires y Tucumán, Buenos Aires, 1816~1817)을 남겼다. (→ 라틴 아메리카 ; 아르헨티나) ※ 참고문헌  E. Martinez Paz, 《NCE》 6, 2003, pp. 34~35. [宋炯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