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텐시아나 Pudent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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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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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덴시아나 성당(로마) .
초대 교회 시기 로마의 성녀. 동정녀. 축일은 5월 19일. 포텐시아나(Poctentiana)라)라고도 알려져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푸덴시아나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 4장 21절에 언급된 푸덴스(Pudens)의 딸로서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장례를 돕다가 16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또그녀의 아버지는 원로원 의원이었으며, 아버지와 함께순교하였다고도 한다. 문학적인 자료나 문서들과 전승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의 공통적인 부분은, 푸덴시아나가 교황 비오 1세(142~154/155?) 시기에 로마의 그리스도교공동체에 속한 부유한 집안의 어린 소녀였다는 것이다. 푸텐시아나라는 성녀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384년에 쓰여진 비명(碑銘)에서이다(Leopardus lector dePudentiana). 그러나 이것은 어떤 성인의 이름을 일컫는것이 아니라, 경배를 위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4세기에는 성당을 성인에게 봉헌하는 것이 관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의 푸텐시아나 대성전에 있는 옛 비명에는 "푸덴시아나 성당의 보호자이신 주님"(Dominus conservatorecclesiae Pudentianae)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비명에서 '푸덴시아네' (Pudentiane)는 '단정한, 정숙한' 이란의미의 형용사이기에 "단정한 성당의 보호자이신 주님"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푸덴시아네' 를 잘못 이해하여 푸덴시아나라는 성인을 만들어 낸 것이다. 7세기에는 역사적인 근거가 희박한 《푸텐시아나와 프락세데스의 행전》(Gesta Pudentianae et Praxedes)이 널리유포되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프락세데스는 자매인푸덴시나아가 "5월 19일 교황 비오 1세의 허락으로, 프리실라(Priscilla) 묘지에 묻힌 아버지 푸덴스의 곁에 묻힌뒤에, '동정 복자 푸텐시아나 라는 이름의 성당을 헌정하였다" 라고 한다. 그런데 이 행전에는 아버지 푸덴스가 이미 같은 곳에 성당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따라서 행전의 저자는 푸덴스가 세운 성당과 '푸텐시아나라는 사람이 세운 성당' 을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그 성당이 푸덴시아나라는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라고 생각하여 그 가 실재하였던 동정 순교자인 성인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이후 푸덴스와 푸텐시아나라는 이름이 혼용되어 사용되다가, 9세기부터 성 푸덴시아나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교회의 성인 명단에 수록되었다. 《로마 순교록》은 푸텐시아나, 푸덴스, 세나토르(Sena-tor) 성인을 5월 19일에, 프락세데스 성인은 7월 21일에수록하였으며, 푸덴스의 한 아들은 6월 20일에 수록하였다. 그러나 1969년에 성인들의 축일표를 개정하면서푸텐시아나 성당을 제외한 지역에서 그녀에 대한 공식적인 공경은 금지되었다. ※ 참고문헌 E. Hoade, 11, 2003, pp. 811~812/ J. Coulson,The Saints. A Concise Biographical Dictionary, Hawthorn Books, INC.,1960, p. 386/ Béne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 1991, pp. 420~421/ 《Cath》 XII,pp. 276~277.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