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마소니 비온디, 피에트로 Fumasoni-Biondi, Pietro(1872~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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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푸마소니 비온디 추기경.
추기경. 제28대 포교성성(布敎聖省, 현 인류 복음화성)장관. 초대 주일(駐日) 교황 사절. 1872년 9월 4일 로마에서 태어난 푸마소니 비온디는교황청립 로마 신학원(현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 · 신학 · 교회법을 수학한 뒤 신학 박사 학위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897년 4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았고, 첫 임지는 로마의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SantaMaria in Cosmedin) 성당이었다. 1901년에는 포교성성 차관인 치아스카(Ciasca) 추기경의 비서가 되었으며, 1902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마르티넬리(Marinelilil) 추기경의비서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우르바노 대학교(PontificiaUniversitas Urbaniana)의 수사학 교수와 포교성성의 서기관(1904)도 역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이던 1916년 11월, 그는 인도 주재 교황 사절로 임명됨과 동시에 도클레아(Doclea)의 명의 대주교로 서품받았다. 그리고 3년 뒤인1919년 12월에 초대 주일 교황 사절로 임명되어 이듬해3월 동경(東京)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1년 정도 일본에머물면서 교황청과 일본 정부와의 우호를 증진하고, 일반 국민들의 이해를 얻는 데 노력하였다. 또 1920년 10월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과 대구 대목구를 순방하였는데, 10월 29일부터 11월 12일까지는 서울에 머물며총독부를 비롯하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 백동의 베네딕도회 수도원 · 약현 성당 · 가명학교(加明學校) · 약명학교(藥明學校) ·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 장호원 본당 · 제물포 본당과 박문학교(博文學校) 등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11월 13일에는 대구로 출발하여 며칠 동안 대구 대목구를 시찰한 뒤, 11월 18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1921년 4월 로마로 간 푸마소니 비온디 대주교는 그 해 6월 14일 포교성성의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1922년 12월에는 주미(駐美) 교황 사절로 파견되었는데, 미국에서 근무하던 10년 동안 미국의 외국인 사목에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 멕시코 정부의 종교 탄압으로 교황 사절이 추방되자 그곳의 교황 사절을 겸임하면서 멕시코 정부와 잠정적인 우호 조약을 체결하였다. 1933년3월 추기경으로 서임됨과 동시에 포교성성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사망할 때까지 28년간 포교성성 장관으로 활동하였다.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우르바노 대학교의총장도 겸임한 푸마소니 비온디 추기경은, 포교성성의책임자로서 많은 현지인 교구들을 설립하였다. 그리고제2차 세계대전(1939~1945)으로 어려워진 아프리카와아시아 지역의 선교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노환으로 1960년 7월 12일에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온디 ; → 일본 천주교회사) ※ 참고문헌 Missions Catholiques, Lyon, 1933/ 上智大學 편, 《カ卜 リ ツ 大辭典》 IV, 富山房, 1954/ <가톨릭 시보> 239호(1960. 7.24)/《경합집》: 52권 8호(1960. 8). 〔鄭鎮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