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넬, 빅토르 루이 Poisnel, Victor Louis(1855~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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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망즈 주교와 함께한 푸아넬 신부(오른쪽) .

드망즈 주교와 함께한 푸아넬 신부(오른쪽) .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빅토리노. 한국명은 박도행(朴道行) . 1855년 7월 13일 노르망디 지방의 생틸레르 뒤 아르쿠에(Saint-Hilaire-du-Harcouet)에게서 출생하였다. 모르탱(Mortain)의 블랑슈(Blanche) 수도원 신학교에서 소신학교 과정을 마쳤으나, 대신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약방에서 일하다가 1년 뒤 대신학교에 진학하였다. 졸업 전부터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기를 원하였지만 쉽사리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879년 6월 29일에 사제 서품을받은 뒤 이듬해 8월 17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81년 8월 3일에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어 프랑스를 떠났으나, 바로 조선에 입국하지 못하고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당시 조선에서 투옥되었다가추방된 리델(F.C. Ridel, 李福明) 주교를 만나 1년 동안그의 병간호를 하였다. 병이 악화된 리델 주교를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도중에 싱가포르에서 프랑스로 돌아가는다른 신부에게 그를 맡긴 뒤 나가사키로 다시 돌아와1883년에 드게트(V.M. Deguette, 崔東鎮) 신부와 함께조선에 입국하였다. 첫 사목 활동 지역으로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을 맡게된 푸아넬 신부는 1885년에 조선 교회의 경리를 맡아보던 뮈텔(G.-C.-M. Mutel, 閔德孝) 신부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경리 사무를 보면서 점차 발전해 나가는 교회의 앞날을 위해 토지를 사들였으며, 이러한 그의 노력은 지금의 명동 본당이 있게 한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돌우물골(石井洞, 현 소공동 인근)에 있던 경리계를 1885년에 새문안으로 옮겼다가1887년에는 종현으로 옮겼다. 1892년 종현(현 명동) 본당 3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며, 1896년 2월에 종현 대성당의 건축을 담당하던 코스트(E.J. Coste, 高宜善) 신부 가 선종하자, 그를 대신하여 공사 감독을 맡아 1898년삼연(三緣) 고딕 양식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어 1900년 9월 5일에는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들의 시복수속 작업의 일환으로 베르뇌(S.F. Berneux, 張敬一) 주교등 7명의 순교자(1899년 왜고개에서 발굴)와 다블뤼(M.N.A. Daveluy, 安敦伊) 주교 등 4명의 유해(1882년 남포 서들골에서 발굴)를 용산 신학교에서 명동 성당 지하 묘지로 옮겨 안치시켰다. 1901년 11월 2일에는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주교 등 3명의 유해를 삼성산에서지하 묘지로 옮겼으며, 1909년 5월 28일에는 남종삼(南鍾三, 요한)과 최형(崔炯, 베드로)의 시신을 왜고개에서발굴하여 지하 묘지로 옮겨 안치시켰다. 1917년부터 서울 대목구의 부주교를 겸하게 된 그는1922년 경성교구 청년 연합회를 발족시켰으며, 1924년에는 애긍회를 설립하여 자선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가운데 1925년 12월 26일에노환으로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명동 본당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 《M.E.P. 선교사 약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4/ 천주교 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천주교 평 양교구사》, 분도출판사, 1981.[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