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構造主義

〔영〕structuralism · 〔프〕structurali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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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


모든 인식 대상을 기호 체계로 보고자 하는 주장. 현대 사상에서 의식과 기호, 의식학과 기호학의 양면성이 인 문 사회 과학 전반에 대조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인간 과 문화가 의식과 의식의 존재로서 파악되느냐, 아니면 의식보다 더 앞선 기호 체계나 기호적 유희의 산물로 보 느냐 하는 방법상의 논쟁이 근간을 이룬다. 전자에 속하 는 철학이 실존주의 현상학 · 해석학이라면, 후자는 구조 주의와 해체주의 기호학이 이에 해당된다. 구조주의는 해체주의와 다르면서도 기호학의 성격을 다소 지닌다는 점에서 반(反)의식학, 반(反)실존주의 반(反)현상학, 반(反)해석학이라고 볼 수 있다. 구조주의(structuralisme) 와 해체주의(déconstructionisme)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가 구조의 이름으로 확실한 인식론적 통일을 겨냥하면서, 인식 대상이 부분들의 집합으로 환원되지 않는 초월적, 선험적 전체성을 부각시키는 데 비하여 후자는 그런 인 식론적 통일의 전체적 구조마저 우상으로 여겨서 파괴시 키거나 해체시키고 종국적으로 진리의 인식이라는 생각 마저 없애려는 데 있다. 흔히 미국에서는 해체주의를 '후기 구조주의' 나 '탈구조주의' 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 조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들은 레비-스트로스(C1. LéviStrauss, 1908~ ), 라캉(J. Lacan, 1901~1981), 푸코(M. Foucaut, 1926~1984), 알튀세르(L. Althusser, 1918~1983), 바 르트(R. Barthes, 1915~1980) 등이고, 해체주의의 대표적 인물로는 데리다(J. Derrida, 1930~ ), 들뢰즈(G. Deleuze, 1925~ ), 료타르(J.F. Lyotard, 1924~ ) 등이다. 현상학과 해석학이 독일적인 것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 으로 이들 철학은 모두 프랑스를 중심으로 현재 그 세력 을 떨치고 있다. 〔사상적 특성〕 구조주의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구조주의를 반대하는 뒤프렌느(M. Dufrenne)는 구조주의를 일컬어 '논리적 실증주의' 라고 규정했는데, 이 정의는 구조주의에 대한 찬반의 태도를 떠나서 일반 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구조주의는 경험적 실 증주의를 거부하지만, 논리적으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 기 위해 모든 인식 대상을 체계로서 간주하려는 가정에 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즉, 구조주의는 레비-스트로스가 《구조론적 인류학》에서 지적한 것처럼 어떤 것이든지 완 전히 무정형하지 않다면 그 안에는 하나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떤 사실이나 대상은 겉으로 보면 혼돈스럽게 보일지라도, 내면적 조직을 구조로서 숨겨 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조주의는 경험적으로 체험된 의식 내용을 불 신한다. 그래서 느낌과 체험처럼 직관적으로 사태를 파 악하기보다, 어떤 현상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그 현상 의 복잡성 뒤에 숨어 있는 구조의 법칙을 발견하려 한다. 이런 발상은 자아를 내면적 체험 세계를 기술하면서 해 석하기보다, 자아도 하나의 타인으로 간주하여 거리를 두고 타자처럼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 는 이미 18세기에 루소(J.J. Rousseau)의 '나는 하나의 타 인이다' 라는 명제를 매우 중시하고 루소의 사상에서 구 조주의의 효시를 찾으려 하였다.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자로서 야생 사회의 탐색 연 구 결과 구조주의의 철학을 정립시켜 나갔듯이, 라킹은 정신과 의사로서 프로이드 사상을 구조주의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 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단적으로 인간 사유가 직관적으로 인간 존재를 정립한다는 철학 원리를 말한다. 그런데 이 런 사유와 존재의 직관적인 등가 원칙이 라킹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내가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나는 존재 한다" 라는 라캉의 명제는 데카르트의 것과 전혀 다르다. 나의 존재는 나의 사유에 대하여 직관적으로 현존하지 않고, 사유의 세계는 존재론적인 현존과 관계하기보다 오히려 자아 중심적인 아집의 저항과 관계할 뿐이다. 때 문에 자아의 사유는 자기 존재의 무의식 구조를 밝히는 데 방해물일 뿐이다. 푸코의 철학에서도 이런 라캉의 반(反)자아적 사유는 여실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푸코는 1966년 6월 《비판》 (Crtique)에서 자기 철학을 '바깥에서의 사유' (la pensée du dehors)라고 명명하였다. 그런 사유가 지향하는 지대는 인격의 내밀성 대신에 무인격성, 자유의 윤리성 대신에 필연의 선험성, 정신적 가치의 현존 대신에 물질적 체계 의 법칙, 주체의 자각 대신에 주체의 소멸 등이 활개를 치는 곳이다. 푸코가 역사의 인식을 말할 때도, 역사는 인간의 창조적이고 지적 의도가 의지적으로 꾸려 가는 역사의 지성적 흐름이 아니고, 시대적 단층 안에서 공통 적인 인식의 체계와 구조가 어떻게 드러나지 않고 작용 하는가를 밝히는 '고고학' 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역사 학은 체험의 의미를 해독하는 역사 철학이나 지성사나 통사(通史)와는 거리가 멀다. 지질학자가 지질층의 공통 퇴적층을 조사하듯이 역사의 각 단층의 상이한 여러 모 습을 공시적으로 계열화한다. 그리고 지식이 지니는 공 통의 '인식성' (l'épisémè)이 무엇인가를 이 지층의 공시적 계열 안에서 설명한다. 그런 진술 체계를 작성하기 위하 여, 저자나 주체의 고유한 무게는 사라지고 각 시대 단층 마다 퇴적된 언어적 언표와 진술의 외형적 문법을 탐색 하는 것이 푸코가 말하는 고고학, 지식의 고고학이다. 예 컨대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다룰 때, 광기 자체의 내면적 개념과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세 시대, 르네상스 시대, 근대와 현대에 광기와 광인을 어떤 언어 체계, 문 화 양식으로 외면상 배열시켜 왔었는가 하는 것이 '지식 의 고고학' 에서 중요해진다. 이런 광기의 외면적 진술 문법은 비단 정신 의학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학, 철학, 문학, 사회학, 법학 등의 진술 논리와 일 맥 상통하는 공통의 '인식성' 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푸코의 사유 방식이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에서도 이런 외면성의 철학, 바깥에서 보는 철학적 사유는 예외가 아니다. 알튀세르 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기존의 변증법적 토대 위에 선 마르크스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알튀세르에 의하 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1845년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 제》(Thése sur Feuerbach)와 《독일 이데올로기》/(L'Idéologe allemande)의 저술을 분기점으로 구분된다. 1845년 이전 의 마르크스는 아직도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의 마르크스는 완전히 과학적 구조주의의 인식 이론으로 자기 구조를 형성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초 기 작인 《소외론》을 중심으로 인본주의(humanism적))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마르크스 사상을 감상적 인본주의 의 수준에서 요리하는 천박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소외 극복론의 인본주의, 변증법적 사고 는 역사를 객관적, 과학적으로 구조 진단하는 인식이 아 니라, 사회주의 혁명의 수립에 급급한 '거짓 인식' 이나 '몰인식' 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알튀세르는 역사 현 실과 사회 현실을 마치 칸트 철학이 자연 세계를 선험적 으로 인식하기 위한 도식을 발견했듯이 그렇게 인식하기 를 바랐다. 그렇다고 알튀세르가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알튀세르가 관심 갖고 자 한 것은 사회주의의 혁명을 위하여 어떤 조건 아래서 역사와 사회를 과학적(구조론적)으로 인식해야 하는가 하 는 인식의 문제이다. 그의 인식론은 스피노자의 철학처 럼 실천론과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역사와 사회를 거대한 기계 작동에 비유하였고 '저자가 없는 연 극' 에 비유하였다. 문예 비평가요 철학자인 바르트에게도 이런 생각은 나 타나고 있다. 바르트는 초기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거기에는 두 가지 까닭이 있었는데, 첫째는 사르트르의 반(反)부르주아지(anti-bourgeois) 사상 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사르트르가 본질주의 철학을 철저히 배격하는 논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실 상 부르주아 사상의 배격과 본질주의 철학의 부정은 맥 을 같이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본질주의 철학은 인간 성의 내면 가치의 불변성을 내세워 그 불변적 본질의 범 주 내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부 르주아의 생활 철학과 만난다. 후일 바르트의 철학 사상 이 실존주의를 버리고 구조주의로 탈바꿈하였어도 이 초 기의 지론은 죽을 때까지 견지하고 있었다. 이런 부르주 아들의 본질주의를 바르트는 '신화학' 이라 불렀다. 그런 데 바르트가 사르트르와 결별하여 구조주의로 이행한 까 닭은 인간 실존과 의식의 내면적 통일성을 포기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인간이란 개인적인 통 일체로서 표시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다원적인 복수로 서 살아간다고 보았다. '하나' 나 '일자' (一者)란 하나의 엉터리 신화일 뿐이다. 그의 저서 《싸드, 푸리예, 로욜 라》는 세 사람의 일관된 생애와 삶의 사상을 기술한 것 이 아니고 여러 가지 상충된 단편들로 나누어서 기술한 것이다. 바르트는 문학 작품을 저자의 인격과 내면 세계 의 표현으로 보는 아카데미의 비평에 철저히 반대하였 다. 예컨대 작품을 해설할 때 저자의 생애와 심리에 초점 을 맞추는 심리주의적 분석은 허위적이라는 것이다. 심 리주의, 인간주의 비평가들은 종종 작품 속의 심리가 생 활 심리 현상의 직접적 반영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 러나 정신 분석학의 이론에 따르면 작품 속의 심리 현상 은 실제 생활 심리와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생활에 결핍된 것의 전도된 보상 행위가 작품에 나타나는 경우 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를 1인칭의 주관으로 봐서는 안되고 텍스트 속의 3인칭의 '그이' 로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나는 하나의 타인이다' 라는 루소의 명제를 연상시킨다. 둘째, 구조주의는 해체주의와 마찬가지로 서구의 보편 적 이성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자신의 사상적 특성으로 삼고 있다. 이른바 서양 문화가 낳은 보편적 이성이 지나 치게 자기 중심적, 자폐적인 나르시즘으로 일관되고 있 음을 구조주의는 지적하고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서양 백인 중심의 문화 가치와 사고 방식의 제국주의적 우위성에 대하여 단순히 감상적 수준 에서가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비판한 최 초의 학자이다. 이른바 야만인과 문명인 사이의 사고 방 식의 기본 구조는 별로 큰 차이가 없음을 지적하고, 오늘 날 백인이 창조한 선진 과학 기술 문명도 필연적 역사의 산물이 아니고, 문화 전략의 다양성 속에서 우연히 솟은 사건일 뿐이며, 앞으로 또 다른 전략에 의하여 전도될 수 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 의는 서구 역사가 겨냥해 온 한 방향으로 나가는 역사 발 전의 동일화를 거부한다. 그는 '축적의 역사' 도 있지만 '정체의 역사' 도 있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반드시 행복하 지도 않다고 보았다. '축적의 역사' 는 산업 혁명 이후 갑 자기 생긴 문화 현상이지만, 후자는 신석기 혁명 이후 오 랜 세월 동안 전인류가 거의 같은 수준에서 공유하고 있 었던 문화였다. 이 신석기 혁명 이후 각 문화는 환경에 따라 상이한 조제법에 의하여 문화의 다양성을 누려 왔 지만, 산업 혁명 이후로 인류사에 열등 의식과 이데올로 기적 투쟁 의식이 생겼다. 이것이 백인이 갖다 준 독약이 다. 푸코의 철학에서도 이런 다양성의 존중 의식은 예외가 아니다. 푸코가 주장하는 고고학적 방식은 레비-스트로 스와 별로 다르지 않다. 예컨대 푸코가 "고고학은 진술 들의 다양성을 축소시키려하거나, 그것들을 통일화해야 하는 단위로 묘사하려 하기보다는 그것들의 다양성을 상 이한 모습으로 나누려고 하는 비교의 분석이다. 고고학 적 비교는 단일화보다 복수화하는 결과를 갖는다" 라고 기술하였을 때, 구조주의는 다양한 사건들을 시간적 인 과 관계나 계기적 연쇄성에서 탐구하지 않고 어떤 사건 이 일어난 시대의 지층이 다른 시대의 지층과 어떻게 다 른가, 그 지층의 특성을 어떻게 계열화시킬 것 인가를 조명하고 있음 을 알려 주고 있다. 이 처럼 푸코의 구조주의 도 레비-스트로스의 그 것처럼 관계의 연결에 서 발견되는 변별성과 차이가 구조 인식의 기 본 단위임을 알려 준다. 알튀세르의 철학에서 도 이런 생각은 기본 요 구에 속한다. 알튀세르 도 역사를 헤겔처럼 절 대 정신의 동질적 개념 이 상이한 겉옷을 입고 역사에 등장한다는 사관에 반대 한다. 마르크스의 인식론의 위대성은 마치 갈릴레오가 서양 과학사에서 사고 방식의 '단절' 을 가져왔듯이 그런 단절을 역사 사회 과학에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알튀세 르의 의견이다. 따라서 구조론적 역사 인식은 그리스도 교나 헤겔주의처럼 동일화를 가져오는 역사 인식에서부 터 구조적 층의 다양성과 그 관계를 보는 단절과 비연속 을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자기 동일성이 근원적인 인간 인식의 개념이 아님은 라캉의 구조주의에서도 나타난다.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부름은 타자에 의한 명칭이 자아 의식보다 훨씬 정신 분석학적으로 선행함을 알려 주고 있다. 말을 갓 배운 아기가 스스로를 일컬어 '나' 라 는 1인칭을 쓰지 않고 자기 이름을 3인칭으로 말한다. '나' 라는 1인칭은 늦게 깨닫게 된다. 주체의 자기 동일 성이 최초로 주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이다. 다시 말 하면 타인이나 타자가 없으면 자기가 성립하지 않기에 동일성은 홀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고 변별적 차이에 의한 상징적 기초에 불과하다. 이 점은 인류학적으로도 자기 동일성은 사회나 집단이 자기에게 부여해 준 명칭 의 관계일 뿐이라는 생각과도 일치한다. 바르트 역시 이미 앞에서 암시된 바이지만, 문학의 이 해에서도 하나의 으뜸 줄거리가 있고 다른 것은 부수적 장식으로 등장하는 우연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한다. 한 문학의 텍스트 속의 요소들이 그 텍스트를 떠나서 다 른 것들과 연계되어서 이해되기보다 그 텍스트 속의 다 른 요소들과의 변별적 관계에서 읽혀져야 한다고 주장하 였다. 이것이 바르트의 텍스트 이론이며, 이는 데리다의 텍스트 이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셋째, 구조주의는 동질성의 체계보다는 다양한 관계의 체계 속에서 얽힌 그물 조직을 중시하기에, 다양한 요소 들을 존재나 실체로 보지 않고 기호로 간주한다. 내용이 나 내적 의미나 존재론은 모두 어떤 현상을 독립 단위로 분리시켜 놓고 보려는 재래의 사고 방식에서 나왔다. 그 래서 구조주의는 체계를 중시하되 동심원에 의하여 확장 되는 그런 체계가 아니고, 다양한 차이에서 가치를 찾고, 그 다양한 차이의 관계가 어떤 그물 조직으로 형성되어 있는가를 주로 밝힌다. 그런데 이 조직은 밖으로 노출되 지 않고 무의식이나 하부 구조로서 감추어져 있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한 사회의 사실을 과학적으 로 진단하기 위하여 그 사회가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언 어 교환, 물물 교환, 여성 교환 등을 시행하고 있는가 하 는 숨은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정신 구조와 사회 구조, 그리고 문화 구조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다. 차이 에 의한 가치 인식은 곧 교환에 의한 가치 인식과 같다. 왜냐하면 교환은 서로 다르기에 서로 융화하는 교환 체 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환 체계는 모든 문화와 사회의 기본인데, 그런 기본은 동시에 인간 정신 의 무의식적 하부 구조가 '이원 체계' (le binarisme)로 짜 여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런 무의식의 하부 구조가 라캉의 정신 분석에서 기 본 골격을 이룸은 당연하다. 라킹에 의하면 인간은 생각 하는 존재라기보다 욕망하는 존재이고, 그 욕망 때문에 인간은 숙명적으로 억압을 당하게 되어 있다. 억압당하 지 않는 인간은 사회 생활을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이 '원 억압' (le refoulement originaire)이다. 라캉에 의하면 '원억 압' 은 도덕적 죄의식보다 늘 구조적으로 선행한다. 이 숙명적인 원억압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은유적으 로, 환유적으로 표현하는 우회의 길을 택한다. 이런 은유 와 환유가 인간의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언어의 상징적 기능에 의해서 인간에게 지불된 대가이다. 그래서 라킹 은 "언어 활동이 무의식의 조건"이라고 주장하였다. 푸코는 레비-스트로스나 라캉만큼 무의식의 개념을 즐겨 쓰지 않고, 오히려 정신 분석학이 '권력 즉 지식' (le pouvoir-savoir)의 도구가 됨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 러나 그의 철학은 구조주의적 지식이 암시하는 무의식적 지식 체계의 성격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문학 작 품이나 사유의 세계를 대변하는 문헌들이 저자의 주체적 생각이나 기록들이 아니고 익명적인 시대의 언어 활동이 그런 진술을 하게했다고 믿고 있다. '나' 라는 주체는 문 헌 속에 이미 사라지고, 시대의 공시적인 익명성이 만든 '인식성' 이 저자의 이름 아래서 진술될 뿐이다. 그 익명 적 역사의 인식성이 곧 고고학이고 무의식의 구조이다. 마찬가지로 바르트가 부르주아 사회의 감추어진 신화를 벗기는 작업은, 부르주아 사회가 언어 활동을 명석하게 제시하여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그런 명증 성 아래서 모든 기호 조작을 해나가는 신화를 부르주아 사회의 무의식적 행각으로 여기기 때문에 제기되었다. 그래서 바르트는 그 신화의 속임수를 벗기고 어떤 조작 도 없는 언어 활동을 하기 위하여 '영도(零度)의 글쓰 기' (1' écriture de degré zéro)라는 독특한 글쓰기를 제시한 다. '영도의 글쓰기' 는 어떤 신화적 암시도 배제한 행위 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글장이' (1' écrivant)와 '작가' (1' ecrivain)를 구분한다. '글장이' 는 관념주의자처럼 문장의 내용 전달에 치중하고, '작가' 는 언어의 능기(能記)와 함께 '영도의 글쓰기' 를 짜나가는 무목적의 언어 노동자 이다. 이런 태도는 구조주의의 다음 성격과도 연결된다. 넷째, 구조주의는 한결같이 의식과 주체의 존재를 불 필요한 장식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철학의 영역에서 주체의 소멸을 주장한다. 만약에 주체의 긍정이 철학이 라면, 주체와 의식의 소멸을 주장하는 구조주의는 하나 의 반(反)철학이 되는 셈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은 자유롭고 의식이 넘 쳐 흐르는 '생각' (cogito)의 개인을 아집의 덩어리로 여 겨 오히려 익명적이고 자연적이며 보편적인 물질의 그물 속으로 그 'cogito' 의 개인을 용해시키기를 바란다. 구조 인류학은 철학적 인간학을 부정한다. 이 점은 푸코의 반 (反)인간주의(1'anti-humansime)에서도 나타난다. 푸코의 반인간주의와 '인간의 종말' 사상은 레비-스트 로스와 통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집단의 회원들로서 사 람들은 각자가 개인으로서 느끼는 것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그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도록 허용 되거나 규정된 방식에 따라 느낀다. 내면적 감정을 생산 하기 이전에 관습이 외적 규범으로서 주어진다"라고 했 다. 이 인용은 레비-스트로스가 인간을 어떻게 익명의 규범 체계 속에서 해체시키려고 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 런 인간 주체와 개인적 실존의 해체가 푸코의 철학과 직 결된다. 푸코는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이 바닷가에서 사라지듯, 인간도 사라지리라" 고 예언하였다. 언어가 소 멸하면서 인간학이 구성되었기에 언어학이 부활되면서 이제 인간이 철학의 주제로서 사라질 차례가 왔다는 것 이다. 이런 구조주의의 반인간주의, 반휴머니즘은 알튀 세르의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두드러진다. 알튀세르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자 본론》과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학, 바슐라르의 인식 이 론, 소쉬르(F. de Saussure)의 구조 언어학, 라킹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선결적으로 요청된다. 이 마르크스적인 구 조주의자는 특히 라킹의 영향 아래서 인간이 주체라 부 르는 것은 하나의 '허구적 가상' 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다. 주체와 인식의 활동을 믿는 행위는 진실이 아닌 허구 적 상상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생기는 착각과 같다. 그 에 의하면 역사는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 라, 몰주체적인 경제 구조에 의하여 지 배된다. 그러나 그 경제 구조가 재래의 마르크스주의처럼 단순 하부 구조가 아 니고 언어 법칙처럼 다른 현상에 자리 이동을 하든지 '아나그람' (l'anagramme) 으로 표현되든지 또는 복잡한 '중층 결 정' (la surdétermination)으로 이루어져 있 든지, 아니면 '부재' (不在)한 구조론적 인과율로서 변형되기도 한다. 〔구조주의와 성서 비평〕 이상에서 살 펴보았듯이 구조주의는 그 범위가 광대 하고 이론적인 가설이 분분한 만큼 용어 의 사용에 있어서도 통일된 체계를 세울 수가 없는 실정이지만 언어학, 사회학, 인류학, 수학, 심리학, 자연 과학, 철학, 문학 비평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마다 시 도되었다. 특히 구조주의 언어학은 성서 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성서 근본주의자들에 반대하 여 성서 본문을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학문적으로 탐 구하는 성서 비평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성서 비평학 에 구조주의 이론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레 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과 바르트의 구조주의 문 학 비평, 그리고 특히 구조주의의 지평을 열게 한 소쉬르 의 일반 언어학으로부터 끌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전제 되어야 할 사항은 성서 비평학의 대상이 개별 본문들의 내적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구조주의 언 어학이 문장과 그 이하 단위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데 비 해 성서 비평가와 문학 비평가들은 더 큰 단위를 다룬다. 또한 구조주의는 역사적 고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 비평적 방법론들(고전적 문학 비평, 양식 비평, 편집 비 평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따라서 성서 신학의 역사 적 성격을 감안할 때 성서 비평학에서의 구조주의 역할 은 자연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성서 주석과 관련해서 구조 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 과제를 안고 있다. (→ 기호학 ; 논리 실증주의) ※ 참고문헌  Louis Millet et Madeleine Varin d'Ainvelle, Le Structuralismé(éd, univ, 1992)/ J.B. Fages, Comprendre Le Structuralisme, Privat, 1968/ Michel Richard 외, Penseurs pour aujourd'hui, Lyon : Chronique Sociale, 1985/ Christiam Descamps, Les idées philosophiques contemporaines en France, Bordas, 1986/ V. Descombes, Modern French philosophy, rans. L. Scott-Foox and J.M. Harding, Cambridge Press, 1988/ J. Sturrock, Structuralism and since, Oxford, 1979/ 김형효, 《구조주의의 사유 체계와 사상》, 인간사랑, 1989/ 소두영, 《구조주의》, 민음사, 1984. 〔金炯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