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자코모 Puccini, Giacomo(1858~1924)

글자 크기
12
푸치니.

푸치니.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 가문은 대대로 교회 음악가 집안이었다. 고조부인 자코모(Giacomo Puccini, 1712~1781)는 고향인 루카(Lucca)의 성 마르티노 주교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 겸합창 지휘자였으며, 궁정 악단의 악장직도 겸하면서 많은 미사곡과 모테트,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칸타타 등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루카의 음악과 음악가들을기술한 세 권의 광범위한 《음악 일기》(Libri delle musicheannue)를 남겼다. 증조부 안토니오(Antonio B.M. Puccini,1747~1832)는 자신의 아버지와 루케시(F.M. Lucchesi) 밑에서 음악 공부를 한 후 볼로냐(Bologna)에서 더 수학하였다. 필라르모니치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임명되기도 하였지만, 후에 자신의 아버지를 이어 성 마르티노 주교좌성당의 오르간 연주자 겸 합창 지휘자로 활동하고 궁정악단의 악장이 되었다. 수많은 교회 음악곡을 썼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1765~1790)의 죽음을애도한 위령 미사곡 <레퀴엠>(Requiem)이 가장 유명하다. 할아버지인 도메니코(Domenico Vincenzo Puccini,1771~1825)는 볼로냐와 나폴리(Napoli)에서 음악 공부를하고, 25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 성 마르티노주교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 겸 합창 지휘자가 되었다.1805년에는 나폴레옹의 여동생으로 토스카나(Toscana)대공비(大公妃)인 엘리자 공주의 궁정 음악가로 임명되었다. 그도 수많은 교회 음악곡과 기악곡들을 썼지만, 특히 푸치니 가문에서 처음으로 오페라 분야에서 재능을보인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아버지 미켈레(MichelePuccini, 1813~1864)도 역시 볼로냐와 나폴리에서 도니체티(G. Donizetti, 1797~1848)와 메르카단테(S. Mercadante,1795~1870)로부터 음악 수업을 받고, 가문의 전통대로성 마르티노 주교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 겸 합창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특히 아카데믹한 작곡 능력으로주목받은 인물이었다. 이런 선조들의 능력과 그들의 이름까지 모두 다 이어받은 자코모 안토니오 도메니코 미켈레 세콘도 마리아푸치니(Giacomo Antonio Domenico Michele Secondo MariaPuccini)는 1858년 12월 22일 루카에서 태어났다. 그는흔히 고조부의 이름만 상용하여 자코모라고 불린다. 미켈레 푸치니의 일곱 자녀 중 다섯째인 그는 5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나 루카 시에서는 형제들 중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를 성 마르티노 주교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미리 정해 놓고, 그가 교회 음악가로서 능력을 갖추었을 때 그 자리를 넘겨준다는 전제하에 마지(Fortunato Magi)를 오르간 연주자 겸 합창 지휘자로 임명하였다. 푸치니는 처음에는 마지에게서 음악 수업을받았으나 만족하지 못하여 아버지의 제자였던 안젤로니(Carlo Angeloni)가 맡고 있던 음악 학교에서 수업을 계속 하였다. 10세 때 소년 합창단원으로, 14세 때부터는 고향과 주변 고장들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약을 시작하여16세 때에는 오르간 경연에서 우승을 하기도 하였다. 그시절에 그는 오르간 즉흥 연주에서 기인한 작품들을 작곡하였다. 1876년에 베르디(G. Verdi, 1813~1901)의 오페라 〈아이다>(Aida, 1871)를 관람한 푸치니는 오페라 작곡을 결심하고 밀라노(Milano)에서 공부하려고 하였으나, 4년뒤에야 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사이에 한 작곡 콩쿠르에 참가하였다가 참담하게 실격당하였지만, <오케스트라 미사곡 내림 가장조>(Missa in A-flat, Missa di Gloria)는성공작이었다. 1880년 입학한 밀라노 왕립 음악원에서는 바치니(A. Bazzini)와 폰키엘리(A. Ponchieli, 1834~1886)로부터 배운 후 1883년에 졸업하였다. 이때부터그의 오페라 작곡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04년에결혼하였지만, 이 시기에 사랑에 빠진 유부녀 엘비라(Elvira Gemignani)와의 사이에서 1887년 아들 안토니오를 얻었다. 그의 오페라 작곡은 기복이 심하였으나,1891년에 토스카나 지방으로 이사한 후에는 많은 화가들과 작가들을 만나 교류를 가지면서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 1893)로 성공을 거두었다. 또 그가 만난이들의 교류 모임 이름이 보헤미아(Bohemia)라는 뜻의라 보엠' (La Boheme)이었기에 오페라 <라 보엠>(1896)을 작곡, 최고의 성공작이 되었다. <토스카>(Tosca, 1900)는 비평가들의 혹평과 관중들의 호평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나비 부인>(Madama Butterfly, 1904) 작곡 이후로는 약 6년간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작곡 활동이 어려웠으 나 <서부의 처녀>(La fanciulla del west, 1910) 이후 다시활발한 작곡열을 보여, <수녀 안젤리카>(Suor Angelica,1918),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 1918), <투란도트>(Turandot) 등 주옥같은 오페라들을 썼다. 1923년에 갑상선 이상으로 고통을 호소한 푸치니는,치료 중에 심장 쇠약으로 1924년 11월 29일 벨기에의브뤼셀(Brusels)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결식은 지휘자인 토스카니니(A. Toscanini, 1867~1957)가 주도하였고, 전 이탈리아가 애도하는 가운데 무솔리니(B. Mussoli-ni, 1883~1945)가 추도사를 읽었다. 교회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나 교회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보장받았던 그는 의외로 오페라로 명성을 떨쳤다. 교회 음악곡으로는 겨우 미사곡 하나(내림 가장조)와 위령미사곡 <레퀴엠>, 그리고 성모 찬송가인 <살베 레지나>(Salve Regina)와 몇 개의 오르간 곡 정도만을 남겼다.(→ 가톨릭 음악 ; 레퀴엠) ※ 참고문헌  F. Bonnavia, 《GDMM》 6, pp. 987~991/ R.M.Longyear, 《NCE》 11, p. 810/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Deutscher Taschenbuch Verlag, Barenreiter-Vlg/ 《음악 인명 사전》,세광음악출판사, 1994. [白南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