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케, 장 Fouquet, Jean(1420?~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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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링 두 폭 제단화>. 안트웨르펜과 베를린( 오른쪽)에 나뉘어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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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링 두 폭 제단화>. 안트웨르펜과 베를린( 오른쪽)에 나뉘어 보관되고 있다.


15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 [생 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여러 요소를 프랑스에소개한 푸케는 1420년경 프랑스 투르(Tous)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생애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1443~1447년에 로마에 체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그는 초상화가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교황 에우제니오 4세(1431~1447)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전해진 다. 이탈리아 여행 동안 받은 영향으로 그는 원근법과 이에 수반된 고대 건축물을 섭렵하였다. 그러나 지극히 조각적인 그의 회화 양식은 프랑스 전통에 뿌리를 두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푸케는 프랑스 궁정에서 일하게되었다. 그의 첫 번째 후원자는 왕의 비서이자 재무 장관인 에티엔 슈발리에(Etienne Chevalier)로, 푸케는 그를 위해 약 60점의 전면 삽화로 이루어진 대형 《성무 일도서》(Book ofHours, 1452)를 제작하였다. 현재 이 책은 나뉘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으며, 가장 많은 부분이 상티이(Chantilly)에 있는 콩데(Condé)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믈룅 두 폭 제단화>(1450)가 안트웨르펜(Ant-werpen)과 베를린에 나누어져 있는데, 베를린에 있는 한쪽 패널에는 슈발리에의 초상이, 안트웨르펜에 보관된 다른 패널에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슈발리에가 흠모하였던 샤를 7세(1422~1461)의 애인 아네스 소렐(Agnes Sorel, 1422?~1450)이라는 소문이 있다. 푸케는 1474년에 루이 11세(1461~1483)로부터 왕의 무덤을 제작하라는 주문을 받았고, 1475년 왕실 화가라는 공식 칭호를 받았다. 그 무렵은 요세푸스(F. Josephus, 37/38?~100?)의 《유대 고대사》(Antiquitates Iudaicae)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두 권의 책에넣을 삽화들이 완성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푸케는 여기에 건축과 풍경의 거대한 전경들을 담았으며, 대기 원근법과 색조를 사용하여 구도의 통일성을 이루어냈다. 그는 1481년경 투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평 가] 세밀화이건 커다란 패널화이건 푸케의 작품에는 크기에 상관없이 동일한 건축적인 특징이 있다. 그가그린 인물들은 매우 명료한 선으로 구별되는 넓은 평면 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분명 철저한 장인이었으며, 그의드로잉은 조화와 명료함의 구성으로 알려졌다. 또한 형태에 대한 조각적인 감각은 차갑고 분리된 경향을 보이며, 그의 뛰어난 작품에서 이 같은 융합은 매우 인상적인무게감을 만들어낸다. 당시 푸케의 작업장은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하였으며, 특히 그의 작품은 조수였던 피에르 안(PierreHannes) 및 루이와 프랑수아로 알려진 그의 두 아들과같은 필사본 채색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뿐만아니라 부르주(Bourges)에 있던 세밀화가 콜롱브(JeanColombe)는 푸케의 작품을 모사하였다. 폴텐블로(Fon-tainebleau) 화파와 초상화가인 클루에(Jean Clouet, 1485?~1540?)도 푸케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홀바인(Hans Holbein der Jiingere, 1497/1498~1543)의 작품에도푸케의 초상이 등장한다. 그러나 17세기에 그의 양식은잠시 잊혀졌다가 18세기 말 낭만주의와 함께 다시 부각되었다. ※ 참고문헌  Jean Fouquet, The Hours of Etienne Chevalier, GeorgeBraziller Inc., 1971. 〔鄭恩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