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스, 요한 요제프 Fux, Johann Joseph(1660~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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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오스트리아의 교회 음악가, 음악 이론가. [생 애] 푹스는 1660년 오스트리아 히르텐펠트(Hirten-feld, 일명 Steiermart)의 농부 집안에서 3남매 중 첫째로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모나 유 · 소년기 생활, 그가 받았을 음악 교육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나는 이미 철 들기 전에 스스로 나의 빼어난 음악성을 확인하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음악가의 삶을 선택하였다" (《파르나수스로의 계단》 서문)라는 그 자신의 짧은 회상이 고작이다. 최근의 한 연구는 그가 1680년 그라츠(Graz)의 예수회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전 과정을 이수하기 전에 음악을 공부하러 이탈리아로 떠났다고 전한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웠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볼로냐 악파의 영향을 진하게 드러낸다.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푹스는 1696년 빈에 있는 쇼텐성당(Schottenkirche)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으며, 클라라 슈니첸바움과 결혼하였다. 1698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1658~1705)의 궁정 작곡가로 임명되었고, 1705년에는 빈 성 슈테판 주교좌 성당의 부악장이 되었으며, 1714년에 악장이 되었다. 그리고1713년에는 황후 아말리아(Amalia)의 궁정 악장이 됨으로써, 빈에서 음악가의 최고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세 자리를 혼자서 총괄하게 되었다. 1715년 선임자인 치아니스가 사망하자 궁정 악장이 된 푹스는, 1741년 사망할때까지 이 직책을 유지하였다. 1741년 2월 13일 세상을떠난 그의 유해는 성 슈테판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으나, 이후 이장된 무덤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작 품] 푹스는 우선 교회 음악 작곡가이다. 농부의 건강하고 정직한 성품에 탁월한 학식을 겸비하였던 그는적어도 70개 이상의 4~5성부 미사곡, 10여 개의 <레퀴엠>(Requiem), 80여 개의 <저녁 기도>(Vesperas), 모테트, 시편 노래, 찬가 그리고 11개의 오라토리오를 발표하며 18세기 가톨릭 음악을 주도하였다. 예컨대 1720년폴란드의 황후 엘레오노라(Eleonora)의 장례식을 위해작곡한 〈레퀴엠〉(K. 51)은 1943년까지 적어도 아홉 번재연되었으며, 미사곡 <비탄 속에서 위로자를>(In fletusolatium), <테 데움>(Te Deum, 1704)과 함께 그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그의 교회 음악은, 오라토리오를 제외하면 철저하게팔레스트리나(G.P. da Palestrina, 1525?~1594)의 아카펠라폴리포니 양식에 바탕을 둔 교회 음악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작곡가의 역사주의적 · 전통주의적 교회 음악관을 뚜렷하게 대변한다. 카논(canon, 한 성부가 다른 성부에 의해 엄격하게 모방되는 음악 형식)만으로 구조된그의 <성 카를로 미사곡>처럼, 푹스의 대위법적(對位法的) 교회 음악 전통은 빈의 바겐자일(G.C. Wagenseil,1715~1777)과 무파트(G.T. Muffat, 1690~1770) 등의 제자들로, 그리고 19세기의 슈타들러(M. Stadler, 1748~1833) ,섹터(S. Sechter, 1788~1867), 슈베르트(F. Schubert, 1797~1828), 리스트(F. Liszt, 1811~1886), 브루크너(A. Bruck-ner, 1824~1896)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한편 그의 11개오라토리오는 그가 음악적 진보주의자였음을 시사한다.이는 그가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 오라토리오를기교적 · 감각적인 오페라 언어로 창작하며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아리아(aria) 등 표현 폭이 넓은 새로운 기법들을 과감히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오라토리오는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가 펼쳤던 내적 쇄신 운동과 맞물 려 태어나 '교회적 오페라' 로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푹스는 18개의 오페라와 코렐리(A. Corelli,1653~1713)의 영향을 보여 주는 38곡의 트리오 소나타등 다수의 기악곡을 남겼다. 이는 스카를라티(D. Scarla-tti, 1685~1757), 빈치(L. Vinci, 1690~1730), 레오(L. Leo,1694~1744), , 페르골레시(G.B. Pergolesi, 1710~1736), 음멜리(N. Jommelli, 1714~1774), 마르티니(G.B. Martini, 1706~1784) 등 당시의 작곡가들이 오페라와 함께 교회 음악을작곡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푹스의 작품들은 대위법적폴리포니(Polyphony, 다성 음악)로 쓰여진 <미사 카노니카>(Missa Canonica)나 오페라 <엘리사>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출판되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새롭게발표되고 있지만, 그의 작품 전집은 아직 없다. 푹스는 탁월한 음악 이론가이기도 하였다. 유창한 라틴어로 저술된 그의 대위법 학습서 《파르나수스로의 계단》(Gradus ad Parnassum, 1725)은 레오폴트 모차르트(Leopold Mozart, 1719~1787)부터 베토벤(L. van Beetho-ven, 1770~1827), 슈베르트까지 많은 간접 제자들을 낳았다. 대위법이란 '음표 대 음표' 곧 '선율 대 선율' 에서유래한 개념으로, 다성 음악을 작곡하는 한 방법이다. 이기법은 화성을 강조하는 17~19세기의 호모포니(homo-phony) 기법과 달리, 일차적으로 각 성부들의 선율적 측면을 고려하는데 특히 14~16세기의 지배적 음악 언어였다. 그의 책은 주어진 선율(cantus fimus)에 대선율을만드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먼저 단순한 2성부에서 출발하여 더 많은 성부의 음악으로, 그리고 온음표 대 온음표(1:1)에서 2분음표 대 온음표(2:1)로, 그리고 4분음표 대 온음표(4:1) 등으로 변화의 폭을 확대하며 자신의 대위법 규칙을 제시하였다. 중요한 것은 강박에는협화음정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협화음은 약박자에 사용하되 협화음정으로 논리적 해결을 의무화하였다. 이 '화성적' 대위법 교재는, 후에 리만(H. Riemann,1849~1919)이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의 종지형을분석하여 기능 화성학을 완성한 것처럼, 팔레스트리나의폴리포니 음악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이해를 바탕으로집필되었다. 이 책은 현재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 가톨릭 음악)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음악은이》 2, 음악춘추사, 2000,pp. 94f, 251, 289, 296f, 4291 H. Federhofer, 《NGDMM》 7, pp. 43~461 A.Liess, (MGG) 4, PP. 1159~1075/ W. Gurlitt ed., Riemann MusikLexikon, Personenteil 2, Schott's Soehne, 1959, pp. 566~567. 王子 〔趙善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