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랭, 오귀스트 프랑수아 Poulain, Auguve-Fampsos(186~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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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랭.

풀랭.


예수회 신비 신학가. 저술가. [생 애] 1836년 12월 15일 프랑스 북서부의 항구인세르부르(Cherbourg)에서 태어난 풀랭은, 벨기에의 브뤼줄레트(Brugelette)와 파리의 생트주느비에브(Sainte Gene-vieve)에서 예수회가 운영하던 중학교를 다니며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파리의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22세에 앙제(Angers)에 있던 파리 관구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이후메스(Metz)와 앙제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행정직을 맡기도 하였다. 1881~1897년까지 앙제의 가톨릭 학부 행정과 제르세(Jersey)에서 수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그 후파리에서 예술가 협회를 지도하면서 수도회의 도서관 책임자로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가르치는 입장에서 교육학분야에 헌신하였고 영성 신학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예수 성심의 전달 :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신비》(Message duCoeur de Jésus : la mystique de saint Jean de la Croix, Toulou-se · Paris, 1893)라는 소책자를 통해 영성 신학에 관심을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에튀드》(Etudes)와 《프랑스 성직자를 위한 잡지》(Revue du clergé francais) 등에도 기고하였다. 그의 신비 신학에 관한 저서 《기도의 은총들》(Les graces d'oraison. Traité de théologie mystique, Paris,1901)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어 증보판(650쪽)이 아홉번이나 출판되었고, 유럽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풀랭은 1919년 7월 19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서와 사상] 풀랭의 대표적인 저서 《기도의 은총들》은 1922년에 제10판이 출판되었는데, 이 판에는 뱅벨(J.V. Bainvel)의 긴 해설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다음과같이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신비에 대한 예비질문들(1~2장), 신비적 일치의 일반 개념들(3~14장),계시와 현시들(15~19장), 관상가들의 시련들(20~23장)신비에 관한 보조 질문들(24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책을 집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참고 문헌들(25~32장)을 소개하였다. 이 책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영혼들이 지니는 신비적 일치의 근본적인 성격들과 하느님을내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내적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다루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이런 구성에 대해서는 저자가 두 번째 (비정상적인) 신비 체험에 지나치게 집착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풀랭은 중요한 장들과신비적 일치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명확히 하였다. 즉'하느님의 현존' (6장)은 영적 느낌과 연관이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조리 있고 체계 가 잡혀 있어 기호들을 서로 참조할 수 있게 하였고, 극단적인 판단을 허용하여 이차적 현상과 조화를 이룰 수있게 하였다. 풀랭은 이 책의 서론에서 신비 생활에 관심이 있는 영혼들과 영성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론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론은 추상적이거나 성찰적이지 않고 분석적이며 서술적이다. 그는 출발점에서 양심 지도에 대한 신중한 조사와 용어, 정의, 식별, 행동 규범 등을 정확히 표현하였으나, 이론에 지나치게 집착하였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술은 학문적이며 신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설명 또한 의심할 것 없이 정연하다.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세운 체계 안에서하나의 목록을 확실히 볼 수 있다. 그는 신학적 체계화에도전한 것으로 여겨지며, 그것은 긍정적이고 과학적인방법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 일부 주제에 대해서는 신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들로부터 피상적이며 신학을 조직화하지 못하였다는 비평도 듣는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신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898년 잡지 《에튀드》에 <신비의 염원들>(Les désidera-ta de la mystique)이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풀랭은 자신이 속한 예수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당대에, 영성 신학과신비 신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한 이론가이며 이 학문의 위대한 공헌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와 작업을 미래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업적이자 공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한 그를 공격하는 신학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그가 발표한 여러글에 대한 반대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즉 신비 생활로의부르심과 확장, 관상 생활의 체험, 기타 영적 체험, 하느님의 현시 등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그가 제시한 어떤주제에 대해서는 도미니코회 회원들이 신학적으로 불충분하다는 비난을 퍼붓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떠난 수년 후에 라 타유(M. de La Taille), 마레살(J. Maré-chal), 가리구 라그랑주(R. Garrigou-Lagrange, 1877~ 1964), 기베르(J. de Guibert) 등의 학자들이 출현하여 그가 제시한 주제들을 발전 · 심화시켰다. [평 가] '관상' (contemplation)이란 주제는 영성 신학에서 중요한데, 그가 쓴 이 주제의 글들은 상당히 무게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그의 시대에 중요한 것으로 대두되었던 주제들이 20세기 후반부터는 등한시되는 경우가 있으나, 영성 신학자로서 그가 시도한 기여는크게 존경받을 만하다. ※ 참고문헌  M.J. Barry, 《NCE》 11, p. 562/ H. Beylard, 11,p. 688/ H. de Gensac, XII-2, pp. 2025~2027/ J. de Guibert, 8, p. 1050/ 전달수, 《신비 체험과 현상》, 가톨릭 출 판사,1997. [田達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