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발 본당
舊把發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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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413-12 소재. 1973년 2월 10일 불광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 진관외동, 구파발동, 고양시 삼송동, 동산동, 지축동, 오금동, 신원동, 효자동,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 〔교 세〕 1974년 1,104명, 1980년 1,862명, 1988년 3,816명, 1993년 4,920명. 〔역대 신부〕 초대 홍인수 (洪仁壽) 세자 요한(1973. 2~1974. 5), 2대 최창화(崔昌 和) 토마스(1974. 5~1977. 12), 3대 손영일(孫榮一) 바르 나바(1977. 12~1986. 8), 4대 김홍진(金弘鎭) 세자 요한 (1986. 8~1989. 10), 5대 허영엽(許榮燁) 마티아(1989. 10~1994. 9), 6대 이영춘(李榮春) 세자 요한(1994. 9~현 재). 1971년 봄 불광동 본당 관할의 고양군 신도면, 벽제 면, 송추 일대와 진관내동, 진관외동, 구파발 지역에 거 주하는 신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파발 공소(회장 이규 봉)가 발족되었다. 이어 4월에는 현 본당 소재지의 대지 1,418.18㎡를 구입하여 건축 면적 120.52㎡의 임시 성 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한편 같은 해 5월부터 12월 까지 안동교구에서 파견된 데샹(Christian Deschamps, 차 기선) 신부와 라이얀(Noel Ryan, 양) 노엘 신부가 교대로 사목하였으며, 신자들은 구역 반장회, 푸른 군단의 셀 등 사도직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주일 학교와 학생회를 충실히 운영하는 등 공소의 기틀을 잡아 나가다가 1972 년 1월 불광동 본당으로부터 공소의 자립 운영권을 넘겨 받았다. 〔설립과 발전〕 공소를 자립적으로 운영한 지 약 1년이 지난 1973년 2월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본당 설정 이후 2년 간은 신심 단체의 구성과 재정의 자립 기반 조성에 주력하였고, 1974년 8월에는 본당 월보 《파발마》를 창 간하였는데 1986년 10월 폐간되었다가 1994년 1월부 터 복간되었다. 1975년 5월 본당 앞의 대지 99평, 건물 18평, 부속 건물 4평 정도를 구입하여 사제관으로 사용 하였으며, 1977년 5월에는 대지 56평, 건물 19평의 수 녀원 건물을 매입하여 같은 해 9월 15일 샬트르 성 바오 로 수녀회의 분원을 개설하였다. 이어 본당에서는 1980 년 9월부터 성당 개축 공사를 시작하여, 구 성당 건물을 철거하고 삼위 일체를 표상하는 삼각 지붕과 성서적 주제를 그린 스테인드 글라스를 그 특징으로 하는 새 성당 을 신축하였으며, 1981년 5월에는 돔 공법으로 석재를 활용한 성모 동굴을 조성하였다. 1987년부터는 내적 쇄 신을 꾀하고자 기초 공동체 육성책으로 반 단위의 조직과 친교의 증진, 신심 단체의 증설과 활성화, 피정, 강연 회 등에 주력하면서, 동시에 청년 연합회와 청년 성가대 의 창설, 청년 미사의 봉헌 등으로 청년층의 사목을 강화 하였다. 또한 1987년부터 '다울 야학' 를 개설하여 관내 에 있는 근로 청소년들의 상급 학교 진학과 교양 습득을 도와주고 있다. 1994년 2월 고양시 고양동, 벽제동, 대 자동, 선유동, 관산동, 사리현동, 내유동과 경기도 양주 군 장흥면 일부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고양동 본당을 분 리하였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가 톨릭 사전》 본당사 보유편, 1990.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