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원 본당

豊水院本堂

글자 크기
12

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 2리1097 소재. 1888년 6월 20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 수 성심. 관할 구역은 횡성군 서원면 일대. [교 세]1888년 2,000여 명, 1937년 1,178명, 1954년 1,009명, 1959년 1,420명, 1965년 1,290명, 1970년 1,317명, 1975년 1,314명, 1980년 1,147명, 1985년 1,053명, 1990년 883명, 1994년 822명, 2000년 824명,2004년 884명. [역대 신부] 초대 르 메르(L.B.J. LeMerre, 李類斯) 루도비코(1888~1896), 2대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1896~1943. 10), 3대 김학용(金學用)시몬(1943. 10~1963. 4), 임시 신현봉(申鉉奉) 안토니오(1963. 5~7), 4대 이응현(李應鉉) 테오도로(1963. 7~1967.8), 5대 강대형(姜大亨) 토마스(1967. 8~1969. 5), 6대 딜레이니(R. Delaney, 도) 리처드(1969. 5~1973. 5), 7대 스캔런(R. Scanlon, 장) 레이몬드(1973. 5~8), 8대 켈리(M.Kelly, 모) 모티머(1973. 8~1976. 4), 9대 조응환(曹應煥)타대오(1976. 4~1981. 5), 10대 박용식(朴容植) 시몬(1981. 5~1983. 9), 11대 김한기(金漢起) 시몬(1984. 5~1988. 9), 12대 남궁민(南宮玫) 루가(1988. 9~1991. 4),13대 김승숙(金承淑) 요한(1991. 4~1992. 5), 14대 신동민(申東旻) 베드로(1992. 5~1995. 10), 15대 김태원(金泰元) 요한(1995. 10~2000. 1), 16대 김승오(金勝五) 아우구스티노(2000. 1~현재).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이후 신태보(申太甫, 베드로)와 40여 명의 신자들은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강원도에 정착하여 신앙의 씨앗을 뿌렸는데, 그들이 정착한 곳이 풍수원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 그 후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각지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풍수원으로 옮겨와 화전을 경작하거나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1886년 한불조약(韓佛條約) 체결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완화되자1888년 조선 대목구장 뀌텔(G.-C.-M. Mutel, 閔德孝) 주교는 르 메르 신부를 풍수원에 파견하여 본당을 창설하게 하였고, 이로써 강원도 최초의 본당인 풍수원 본당이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풍수원 본당의 관할 지역은 춘천,원주, 화천, 양구, 홍천, 횡성, 평창 등 강원도와 경기도일부를 포함한 12개 군의 29개 공소로, 신자수는 2,000여 명이었다. 초대 주임 르 메르 신부는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하는 한편,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공소를사목 방문하면서 본당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1896년 르 메르 신부가 풍수원 본당에서 분할된 원주(현 원동 주교좌) 본당 초대 주임으로 전임되면서 풍수원본당 2대 주임으로 정규하 신부가 부임하였다. 정규하신부는 1897년경에 12칸 규모의 초가 성당을 새로 지었고, 화천, 인제, 양구, 홍천 등지의 공소를 정기적으로사목 방문하였는데, 그 순방 기간만 3개월이 걸렸다고한다. 한편 정규하 신부는 독립 운동에도 관심을 가져,일본군을 피해 풍수원에 찾아든 의병들을 격려하며 그들에게 침식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1909년에는 저축한 돈과 신자들의 헌금을 모아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1910년 높이 5m, 건평 120평의 연와조 성당을 완공하였는데, 이 성당은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이자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다. 1910년 11월 위 텔 주교의 주례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고, '예수 성심'을 본당 주보로 정하였다. 새 성당이 세워짐에 따라 옛성당은 인재 양성을 위해 1910년 설립한 학교인 삼위학당의 교사로 활용되었고, 1912년 성당 뒤편에 사제관40평을 신축하였다. 1920년 9월 춘천의 곰실(현 죽림동 주교좌) 본당을,1923년 6월 홍천 송정(현 홍천) 본당을 설립 · 분할하였다. 1922~1923년에는 횡성 검두 공소에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연령회를 조직하여 1주일에 두 번씩 문답을 읽고 토론하였으며, 1930년3월에는 횡성 본당을 설립 · 분할하였다. 1939년 4월 춘천 지목구가 설정됨에 따라 풍수원 본당은 서울 대목구에서 춘천 지목구로 편입되었다. 1943년 10월 23일 47년간 주임 신부로 재임하면서 풍수원 본당을 반석 위에놓은 정규하 신부가 신부들과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사망하여 본당 뒷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1943년 10월에 3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학용 신부는1946년 12월 성심학원(옛 삼위학당)을 6년제 학교로 개편하여 교명을 '광동국민학교' 로 하였고, 1948년 홍천수곡리(현 양덕원) 본당을 설립 · 분할하였다. 또한 1952년 2월 금대 공소, 1957년 11월 창촌 공소, 1959년 5월 오상골 공소, 1963년 1월 새점터 공소 등에 강당을세우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963년 3월 김학용 신부는중풍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4월에 결국사망하였고, 5월부터 7월까지 신현봉 신부가 임시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응현 신부 재임기인 1963년 10월에는 광동국민학교에 인보 성체 수도회 소속 수녀 3명이 부임하여 교사로 활동하였다. 1969년 5월 교구 관할 구역 조정으로 풍수원 본당은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 소속으로 이관되었고, 6대 주임으로 딜레이니 신부가 부임하였다. 1972년 3월 광동국민학교 설립자를 횡성군으로 변경하여 공립 학교로 운영하게 하였다. 1973년 5월 딜레이니 신부가 사망한 후 7대 주임 스캔런 신부를 거쳐 8대 주임 켈리 신부, 9대 주임 조응환 신부가 차례로 활동하였다. 10대 박용식 신부재임기인 1982년 4월부터 9월까지 풍수원 성당을 유적지로 개발하자는 운동을 전개한 결과 11월 강원도 지방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1983년 9월부터 약 8개월간 원주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 · 관리국장으로 있던김종태(金鍾泰, 안드레아)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다가1984년 5월에 11대 주임으로 김한기 신부가 부임하였다. 김한기 신부 재임기인 1984년 8월에는 노후된 성당의 내 · 외부 보수 공사를 끝냈고, 1985년 7월에는 풍수원 성지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피정의 집을 신축하였으며, 성체 동산 14처 설비 공사를 시행하였다. 1988년은본당 설정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6월에 교황 대사, 교구장, 교구 사제단과 1,0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 미사 및 기념식과 유물 전시관 축성식, 성당 보수 공사 기공식 등을 거행하였으며, 횡성군의 지방 문화재 보수 계획에 따라 성당 벽돌을 교체하고 지붕을 해체하는 공사를 실시하였다. 12대주임 남궁민 신부 재임기인 1988년 12월에는 성당 보수와 종탑 보강 시설 공사를, 1990년 7월부터 9월까지는횡성군의 지방 문화재 보수 계획에 따라 성당 내외부 개선 작업을 실시하였다. 14대 주임 신동민 신부 재임기인 1993년 11월에는창촌 공소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1994년에는 수녀원을신축하였으며, 1995년 9월에는 가정 봉헌 기도소 성가정상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5대 주임 김태원 신부 재임기인 1998년 7월에는 금대 공소 축복식을 거행하였고,1999년 5월에는 역대 본당 신부들이 사용하였던 제의,성작, 성합 등 300여 점의 유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유물 전시관을 개관하였다. 16대 주임 김승오 신부 재임기인 2000년 11월에는 광동 분교(옛 광동국민학교)를 매입하였고, 2002년 5월에는 십자가의 길을 완공하였다.2003년 1월에는 도시인의 농촌 정착에 필요한 교육과지역 주민 · 학생들의 평생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풍수원 본당 생명 학교 를 열었고, 6월에는 제80회 성체 현양 대회를 원주교구장 김지석(金智錫, 야고보) 주교와춘천교구장 장익(張益, 십자가의 요한) 주교를 비롯한두 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전국에서 모인 5,0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거행하였다.현재 풍수원 본당은 강원도 횡성군과 함께 성당 일대를종교와 역사적 전통이 어우러진 테마 공원 '바이블 파크 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착실히 진행해 나가고 있다. (→ 김학용 ; 방영석 ; 원주교구 ; 정규하) ※ 참고문헌  <가톨릭 시보> 1963년 5월 5일자/ <가톨릭신문>1998년 7월 19일자 · 2003년 1월 19일자/ <평화신문> 1999년 5월23일자 · 2000년 7월 2일자 · 2002년 5월 26일자 · 2003년 5월 18일자 · 2003년 5월 25일자 · 2003년 6월 29일자/ 《경 향잡지》 964호(1943. 11) . 1246호(1972. 1)/ 《가톨릭 사전》/ 《뮈텔 주교 일기》 1~6,한국교회사연구소/ <정 규하 신부의 서한> (1)~(6), 《교회와 역사》226호(1994. 3)~231 호( 1994. 8), 한국교회사연구소/ 원주교구 30년사 편찬위원회, 《原州教區 三十年史》, 天主教 原州教區, 1996.[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