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사제회 - 司祭會
[프]L'association des Pretres du Prado · [영]The Prado Priests Association
글자 크기
12권

1 / 3
앙투안 슈브리에 신부(왼쪽)와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이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생 풍 (St. Fons) 도표.
앙투안 슈브리에(Antoine Chevrier, 1826~1878) 신부가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1860년 12월10일 프랑스 리용(Lyon)에서 설립한 재속 사제회. 현재국제 본부는 리용에 있으며, 한국 사무실은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418-27번지에 있다. [창립자의 생애와 사제회 설립] 슈브리에 신부는 1826년 4월 16일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나 1843년 라르장티에르(Largentiere)의 소신학교에 입학하였고, 20세 때인1846년 성 이레네오(St. Irénée) 대신학교에 입학하였다.1850년 5월 25일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3일 뒤 리용의 변두리 라기요티에르(La Guillotière)에 위치한 성 안드레아(St. André) 본당 보좌 신부로 임명되었다. 라기요티에르는 론(Rhone) 강 건너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리용의 화학 공업과 금속 공업이 발전하자, 그 영향을 받아철강 공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려고 이곳에 모여들었고, 더욱 많은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철강 공업이 발전하였다.하지만 이곳의 거주민들은 당시 다른 공장 지대에 거주하던 이들처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며 비참한 생활을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용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다는지리적인 이유로, 이 지역에는 리용에 세워질 수 없는 빈민 수용소 등의 시설들이 설치되면서 리용과 구분되는고유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1830년부터는 카페와 카바레 등이 들어섬에 따라 빈민 지역으로서 더욱나쁜 평판을 얻게 되었다. 슈브리에 신부는 이러한 지역의 보좌 신부로 사목하며, 가난한 이들을 특별한 관심과애정으로 돌보았다. 1856년 슈브리에 신부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사건을 겪게 된다. 그해 5월에 론 강이 넘치는 엄청난홍수가 발생하였는데, 그때 그는 동료 신부들과 인명 구 조에 직접 나서며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목격하고그들의 가난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또한 같은해 6월에는 사제인 자신보다 더욱 가난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평신도 카미유 랑보(Camille Rambaud)와의 만남을통해 가난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생활로 옮기려는 열망을 키우게 되었다. 슈브리에 신부는 성탄절 밤 구유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신비를 묵상하는 가운데, 온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 그는 "프라도는 이 순간에 태어났다" 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한 슈브리에 신부는 '이 아름다운 육화의 신비' 에 비추어 가난을 실천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할 동료 사제들을 모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권위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있던 사제들은 슈브리에 신부의 뜻에 동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반대하였다. 그러자 슈브리에 신부는 많은 고민 끝에 본당을 떠나 랑보가 운영하는 '아기 예수 마을'(La Cité de I'Enfant Jésus, 이재민과 빈민 수용을 위한 주택촌)의 지도 신부로 활동하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마을 아이들의 교리 교육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며 활동하였던그는 얼마 후 시설의 증축과 발전, 그리고 운영에 더 많은노력을 기울이는 랑보와 의견 차이를 느끼고 결별한 뒤이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슈브리에 신부는 1860년 12월10일 동네에서 매우 평판이 나쁜 카바레 '프라도' (Prado)를 매입한 뒤 이곳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프라도회는 이날을 설립일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사제회의 성장] 프라도를 매입한 슈브리에 신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단' 의 형성이라는 이상을간직하면서 우선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 즉 산업화에 자리를 빼앗긴 어린이들의 첫 영성체 사업' 을 시작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매우 독특한 사제양성법을 고안하였다. 또한 그가 가진 사도적 직관은 프 라도에 머무는 가난한 아이들 안에서도 사제 성소의 싹이 트리라는 희망을 갖도록 하였다. 여러 명의 동료 사제들이 협력하러 왔지만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교회 책임자들의 반대에도 직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1865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소신학교를 프라도에서 개교하였고, 1877년 로마에서 4명의 신학생이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슈브리에 신부가 숙원하던 사업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프라도 사제회는 재속회로서 그 회원들은 소속 교구장의 인사 명령에 따른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사목적 배려를해야 하는 주교들을 돕는다. 사제회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현대적 공업화가 함께 진행되자 노동자에 대한 사목을 활발하게 실천하였다. 특히 가톨릭 노동 청년회와 가톨릭 노동 장년회를 비롯한 노동 사목에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이주 노동자들을비롯한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중남미 · 아프리카 · 중동 지역의회원들은 여러 형태의 폭력에 저항하고 때로는 비참하게사는 국민과 함께 살면서 다양한 사목 형태로 복음화를위해 투신하고 있다. 2004년 4월 현재 전세계 55개국에약 1,300명의 프라도 사제들과 30여 명의 봉헌된 평신도가 있다. [영 성] 슈브리에 신부는 '이 아름다운 육화의 신비'에 비추어 가난의 은총을 간청하였다. 또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생활 그리고 그분의 사명에 일치시키며, 우리의 생활에 그분의 생활을 재생시키는 진정한 사랑' 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동일한 소명을 가지고 있는 협력자를 모으고 양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동일한 소명이란 가난한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또 그들 가운데서 뚜렷한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자기 봉헌에 참여한다는 소명이다(요한 10, 26 : 루가 4, 18 : 사제 직무 2항). 슈브리에 신부는 '복음' 을 생활 규칙으로, 그리고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도적 활동의 근원으로 삼도록가르쳤다. 그는 프라도회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버지를 알고 또 다른사람에게도 알게 하는 일, 우리는 오직 그 일을 위하여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 일이야말로 우리의 삶이요 사랑입니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만남으로써 자극과 재촉을 받게 된 프라도 회원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슈브리에 신부를 영적 지도자로 모시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고 성령에 의해 자신의 모습이 형성되도록 하는 데 투신한다.그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모든 면에서 충실히 따르고,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되기위해서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파견하신 것처럼 나도 여러분을 보냅니다" (요한 20, 21). 예수의 이 말씀은 슈브리에 신부가 끊임없이 묵상한 말씀으로, 그에게는 사제 가 받은 사명을 이해하는 원천이었으며 그 사명을 실천하고 생활화하는 방법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사제가 따라가야 할 길인 그리스도 생애의 특징을 구유와 십자가와 성체성사로 간추려서 정리하고 추구하였다. 슈브리에신부는 자신의 영적 가족의 양성을 위하여 《참다운 제자》라는 글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로서 '복음을 따라 사는 사제' 의 생활에 관한본질적인 자신의 생각을 전해 주고, 프라도 사제회의 기본 방향들을 제시해 준다. [한국 진출과 사도직 활동] 1973년 서울대교구에서는신학생 이용유(李庸儒, 베네딕도)를 프랑스 리용의 프라도 대신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이용유가 1975년 9월 한국으로 돌아와 명동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음과 동시에 프라도 1차 서약을 하면서 한국에서의 프라도 사제회가 시작되었다. 한국 프라도 사제회 회원들은 각 소속 교구에서 가난한 노동자 · 농민 · 재소자 · 장애우 · 외국인노동자들을 비롯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며, 가난한 이들이 자신들의 삶의조건을 인간화하는 복음적 투쟁에 동참하면서 그들의 그리스도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투신하고 있다. 회원들은가난한 이들이 모이는 많은 본당을 비롯하여 노동 사목 · 사회 복지 · 병자 사목 등 특수 사목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를 양성하는 전통에 따라 회원들은 신학교에서도 활동 중에 있다. 2004년 4월 현재 12개 교구에 종신서약 회원 13, 유기 서약 회원 40, 양성 중에 있는 회원28명 등 총 7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프라도 형제회] 프라도 사제회는 교구 신부들과 봉헌된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회에 봉헌된 평신도들을'프라도 형제회' 라고 부르며 슈브리에 신부와 함께 예수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아 프라도 사제회에서 동등한 회원으로서 생활한다. 한국에서의 프라도 형제회(BrothersFraternity ofPrado)는 1996년 10월 4일 서울 행당동에서 2명의 형제들이 공동 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그동안 한국에서 특별히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복음을 전하고 사도직 활동을 묵묵히 해 왔으며, 가난한이들에게 가해지는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그러나 2003년 봄 봉헌된 형제들이 모두 떠나 현재 한국 프라도 형제회의 성소를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 프라도 형제회 ; → 프라도 수녀회 ; 프라도 여성 재속회) ※ 참고문헌 앙투완느 슈브리에, 프라도회 역, 《참다운 제자》,가톨릭출판사, 1990/ 프라도 이브 뮈세 신부 편, 프라도회 역, 《슈브리에 신부의 영적 글》, 가톨릭출판사, 1996/ 장 프랑수아 식스,프라도회 역, 《슈브리에 신부의 삶》, 한국 프라도 사제회, 2001.[朱秀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