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Francesco di Giorgio(1439~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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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대관식>(시에나, 14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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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대관식>(시에나, 1471년).


이탈리아 건축가. 화가. 필사본 채색 삽화가. 조각가.메달 제작가. 르네상스적 개념으로 '만능인' (Homo universale)이었으며 15세기 후반 시에나(Siena)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가였던 프란체스코는 시에나는 물론 나폴리, 밀라노, 우르비노(Urbino)의 여러 궁정들을 드나들며 작업하였다. 1439년 9월 23일 시에나에서 세례를 받은 그의 할아버지는 동물을 기르는 농부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시에나 시청의 직원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공증인이자공학도였던 타콜라(Mariano Taccola)를 알게 되었다. 소년 시절의 프란체스코는 타콜라의 서재를 드나들며 기술적인 지식과 착상들을 배웠다. 그는 화가인 프란체스코디 바르톨로메오 알페이(Francesco di Bartolomeo Alpei)밑에서 견습공으로 있다가, 1464년에 보수를 받는 독립적인 화가가 되었다. 이후 그는 1475년까지 주로 화가와 필사본 채색 삽화가로 활동하였으며, 그 시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시에나의 피나코테카(Pinacocteca)에 있는 웅장하고 기품 있는 제단화 <성모 대관식>(1471)과<예수 탄생>(1475)이 있다. 1480~ 1490년대 이탈리아의 선구적인 건축가 중 한사람인 프란체스코는 특히 군사용 건물을 짓는 건축가로명성이 높았으며, 중세적인 요새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1476년부터는 우르비노에서 지냈는데, 1477년5월 우르비노의 공작인 페데리고(Federigo da Montefeltro,1444~1482)의 신임을 얻어 공작의 궁(Palazo Ducale)을위한 설계와 장식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가 세운 궁전과교회 건축은 우르비노 양식으로 널리 유행하였다. 특별히 그는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건축에 근거하여 알베르티 특유의 완만한 외벽이 지니는 간결함을 더욱 강조하여 새롭게 하였다. 프란체스코의 건축은 분절 없이 수평적으로 구조를 에워쌈으로써 단일체를이루는 '평면으로 구성된 견고한 입체감' 으로 정의할 수있다. 이것은 시에나에서 습득한 로마네스크 양식뿐 아니라 고대 건축을 스스로 해석하여 결합시킨 것이다. 우르비노에서 프란체스코의 중요한 업적은 공작의 궁을완성한 것과 함께 새로운 주교좌 성당, 성 베르나르디노 수도원(Cloister of St. Bernardino), 성 글라라 수녀원(Con-vent of St. Chiara)의 건축에 관여한 것이다. 1480~1481년경 공작의 궁 맞은편에 지어진 주교좌 성당은, 1781년의 지진으로 프란체스코가 지었을 당시의 모습은 현재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현존하는 자료에 의하면 팔각형의 드럼을 가진 매우 엄격하고 간결한 양식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480~1482년경에 지어진 성 베르나르디노 수도원은 프란치스코회를 위해 지어졌으며,페데리코가 죽은 후 묻히게 될 무덤이기도 하였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산처럼 육중한 외관을 지냈다. 한편 1482~1483년 프란체스코는페데리고의 딸이자 로베르토 말라테스타(Robeto Mala-testa)의 미망인인 엘리사베타(Elisabetta)의 주문으로 성글라라 수녀원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 최초로 날개 달린 파사드(facade)가 사용되어 바티칸에 있는 교황인노첸시오 8세(1484~1492)의 벨베데레(belvedere)의 전형이 되었다. 또한 수녀원의 돔을 얹은 중앙 집중식 설계는 17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1484년경 나폴리 왕국에 머물다 1485년 고향인 시에나 시의 요청으로 시에나에 돌아온 그는, 마치아레토(Maciareto)에 있는 다리를 보수하였으며 이탈리아 전역의 여러 건축 사업과 그에 따른 자문을 요청받았다.1490년에는 갈레아초(Galeazzo)의 요청으로 밀라노 주교좌 성당의 랜턴 부분을 계획하였으며, 파비아(Pavia)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만나 주교좌 성당 건축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말기에는 다시 시에나로 돌아와 도시 건축을 담당하였다. 르네상스의 많은 예술가가 그러하듯 프란체스코는건축뿐 아니라 장식적인 조각도 제작하였다. 그의 조각은1457~1461년까지 시에나에 머물렀던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의 영향이 다분하며, <십자가에서 내리심>(1474~1477)과 <채찍질당하는 예수>(1480~1485)를대표작으로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마치 회화와 같은느낌을 주며, 르네상스 조각 중 수작으로 꼽힌다. 또한그는 새로운 르네상스의 기술적인 관심과 고대 건축물과 의 관계 속에서 건축가가 지녀야 하는 태도에 대한 글들을 모아 도시 계획과 군용 건축물에 관한 <일반 건축물과 군용 건축물 연구》(Trattato di architettura civile e milita-re)를 집필하였다. 건축가이자 건축 이론가이며 15세기 후반기에 시에나의 대표적인 예술가였던 프란체스코는 1501년 11월 29일 시에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 참고문헌  J. Pope-Hennessy, Italian Renaissance Sculpture, Phai-don Press Inc., 2000/ C. Maltese, Francesco di Giorgio e il Palazzodella Signoria di Jesi, Casa di Risparmio di Jesi, 1986/ H. Millon, TheArchitecture Theory of Francesco di Giorgio, KArt Bulletin》, 1958, pp.275~261/ A.S. Weller, Francesco di Giorgio. 1439~1501, Chicago,1943. 〔鄭恩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