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 학파 - 會學派

[라]Scholastica Franciscana · [영]Franciscan Schola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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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사상은 보나벤투라에 이르러 최고 절정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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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사상은 보나벤투라에 이르러 최고 절정기를 맞았다.


도미니코회 학파와 함께 13세기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철학과 신학을 주도한 거대한 사상적 흐름 중 하나. [성 립]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i, 1181/1182?~1226)의 영성을 발판으로 초기 스콜라주의, 특히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의 사상적노선에 충실하였던 프란치스코회 학파는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다소 보수적 색채를 띤 학파이다. 이 학파가 아우구스티노주의 거의 혼돈될 만큼아우구스티노적 전통에 강한 집착력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학설 간에 차이점이 없다고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토마스주의(Thomis-mus)가 정당한 학설로 인정받기 이전 파리에서 가르쳤던 모든 일반 스승들이 아우구스티노주의자들에 해당되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이전의 도미니코회 회원들 역시 아우구스티노 사상에 깊숙이 물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프란치스코회 학파가 우선적으로 그렇게 말해지는 이유는, 수에 있어서나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중세 아우구스티노주의를 그대로 답습하여 역사 안에서 계승 · 발전시킨 주요이론가들이 프란치스코회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노의 학설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의 사상을 받아들인 프란치스코회 학파는 그의 이론을 본래적인 것과는 매우 판이한 형태로 이해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학설에 첨가시켰다. 이 학파에서는 개체의 자유와 독창성이 강조되는 반면, 완성된 사상 체계인 토마스주의는 약간의 다양성 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회 학파는 학파의 영감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아우구스티노적 플라톤주의에 기초하였지만 커다란 차이점과 다양성을 드러낸다.이렇듯 개방된 체계로 몸체를 드러낸 이 학파는 스콜라학의 발전과 함께 근대적 성향의 철학적 주장들을 양산함으로써 마침내 스콜라학의 쇠퇴를 암시하였다. 13세기 중엽 이후 할레의 알렉산더(Alexsander Halesi-us, 1185?~1245)에 의해 파리에 프란치스코회 학파가 생겨났고, 1235년에 링컨(Lincoln) 교구장이 된 그로스테스테(Robert Grosseteste, 1175?~1253)를 중심으로 옥스퍼드학파가 창건된 이래 프란치스코회 사상 안에는 스콜라학의 전통이 늘 건재하고 있었다. 다른 인간 전통이 그렇듯프란치스코회 학파 역시 때로는 약화의 표지를 드러냈던것도 사실이다. 엄격하면서 생생하게 살아 있던 시기가있었다면 실망스러울 만큼 쇠퇴한 시기가 있었고, 다소평온한 시기가 있었던 반면 전통만을 고집하고 반복하는시기도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사상 역시 교회 안에서그리스도인 삶의 열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교철학, 신학과 같은 공동 운명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특히 역사 · 정치적 사건들은 프란치스코회의 영적 · 문화적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상의 흐름들을바꾸어 놓기도 하였다. [발 전] 프란치스코회 전통 안에는 영적인 생명력과지적인 탐구 사이에 강력한 보완 관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도자들의 목소리가 높지 않을 때는 문화적인 수준도 낮았다. 그러나 본연의 엄격한 삶이 꽃피어 날 때는지적인 삶 역시 괄목할 만큼 수준 높은 차원에 이르렀다.이러한 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역사 발전 과정은 크게 여섯 단계로 구분된다. 기원(1230~1250) : 프란치스코회 철학은 할레의 알렉산더 및 그로스테스테와 함께 시작되었다. 파리에서의원천적인 흐름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노적인 것이면서 초기 스콜라 학자들의 가르침을 따른다. 알렉산더는 안셀모(Anselmus Cantuariensis, 1033~1109), 베르나르도(Bermarus de Clairvaux, 1090~1153) 그리고 당시학자들의 가르침까지도 수용하였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아비천나(Avicema, 980~1037)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한편 옥스퍼드에서의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고과학적이었다. 이 학파는 12세기 샤르트르 학파의 상속자였고, 아랍인들의 사변을 매우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전 시대(1250~130) : 이 시기는 그리스도교 철학의황금기와 맥을 같이한다. 즉 새로운 종합의 시대이며, 건설적인 비판과 다양한 논의가 전개된 시대였다. 원천적인 철학의 이념들은 파리에 있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와 옥스퍼드에 있던 베이컨(R. Bacon,1220?~1292)에 의해 발전되었다. 스코투스(J.D. Scotus,1265/1266~1308)에게서 파리의 전통과 옥스퍼드의 전통은 통합되고 참된 철학 체계가 형성되었다. 오컴(Williamof Ockham, 1285~1349)의 철학에서는 논리학이 발전을거듭하면서 스코투스의 종합은 재고되고 비판되었다. 첫 번째 학파 시기(1330~1500) : 철학사에서 학파의 형성은 항시 위대한 인물의 지적 노력에서 유래된다. 알렉산더는 보나벤투라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유한 학파를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잘 알려진 학파는 스코투스와 오컴을 따르는 학파였다. 스코투스 학파는 14~15세기의 학파에 이르기까지 열성적인 제자들의 작은 모임에 의해 발전되었다. 동시에 당대의 제자들은 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전통 안에서 일치점을 모색하고 있었다. 강화기(1500~1700) : 정통 가톨릭에 대항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움직임은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의 활동을 강화시켰고, 어떤 면에서는 발전적인 연구를 위한 강력한 뒷받침 또는 반동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함께 옵세르반테스적 흐름의 결합(1517)과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이후 연구진의 재조직은 스코투스 학파의 재건을 합법화하였다. 와딩(L. Wadding)과 그의 협조자들에 의한 스코투스 작품들의 새로운 편집은 이 학파에 보다 근원적이며 생생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쇠퇴기(1700~1850) : 이 시대는 계몽주의 시대이며 합리주의, 사회 혁명의 시대이고 과학적 영역에 단초를 마련해 준 시기였다. 당대의 일반적인 상황은 스콜라 사상을 전혀 꽃피우지 못하였고, 수도회는 시민 권력으로 인한 세속화로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였다. 재생기(1850~현재) : 예수회원들과 교구 사제들에 의해 시작된 스콜라학의 일반적인 재생과 함께 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철학 역시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그 부흥은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여러 시도들은 고전적전통에만 국한됨 없이 그것을 벗어나 새로운 건설적인체계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였다. [주요 학설] 프란치스코회 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몇가지 고유한 명제 내지는 주요 학설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이 논제들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아직까지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첫째는 신앙과 이성 간의 비구분이다. 즉 아우구스티노적 관점에서 인간을 그 전체성과 구체성 안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통합성이 강조된다. 철학적 사변은 무엇보다 신앙의 진리를 관조하는데 있다. 따라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며 분리된 철학'(philosophia separata)은 인정될 수 없다. 프란치스코회 학파에 있어서 사변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주의적으로 그리스도교 철학이며, 이는 이교 철학과는 정면으로대치된다. 한마디로 이 사상은 유일한 지혜 안에 신학과철학을 정초하고자 한다. 둘째, 하느님 존재에 관한 후험적 논증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안셀모의 존재론적 논증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본질과 동일시되는 모형 관념(idaea exemplar)의 단일성을 주장하고, 창조물과 관련해서만 영원한 관념들의 다수성을 인정한다. 셋째, 아우구스티노의 '배아(胚芽)의 이유' (rationesseminales)에 관한 이론을 받아들여 물질을 순수 가능태가 아닌 불완전한 현실태로 바라보며,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에 관한 이론 안에서 해석한다. 질료 형상 론(質料形相論)은 모든 실재에 적용된다. 따라서 하느님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학파는 창조된 만물의 질료 형상적 구성을 확대시켜영적 실체들의 근간에 가지적(可知的) 본성을 지닌 질료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연적 존재들, 특히 인간과 관련해서는 형상의 복수성을 주장한다. 셋째, 영혼의 기능은 토마스주의가 그것을 영혼 자체와구별하는 경우와 비교할 때 영혼과는 덜 밀착된 형태로존재한다. 특히 능동 지성과 수동 지성은 두 개의 기능이아닌 동일한 기능의 양면성으로 개념화된다. 넷째, 의식은 감각과 하느님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설명된다. 특히 조명 이론을 통해 설명되는 상급 이성은 분명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는 학설이다. 다섯째, 세계는 신앙이나 이성을통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부터' (ab aeterno) 창조되었다. 여섯째, 의지는 지성보다 우위적이다(主意主義, Voluntarismus). 인간의 삶은 하느님을 향한 신비적·애정적 상승(ascensus)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미래의 삶은 본질적으로 지성 작용보다는 사랑의 행위에 달려 있다. [의 의] 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사상이 최고로 발전한 시대는 1200년대이다. 그로스테스테와 할레의 알렉산더에서 출발한 이 사상은 보나벤투라에 이르러 최고 절정에 달하였다. 이후 마태오 다라스파르타(Matteo d'Aquasparta)와 존 페컴(John Peckham, 1220/1225?~1292) , 피에르 장올리외(Pierre Jean Olieu, Peter John Olivi, 1248?~1296) 등과 같은 거장들이 나타났고, 스코투스에 이르러서는 이사상의 거대한 종합이 마련되었다. 발전의 중심지는 파리와 옥스퍼드였다. 옥스퍼드에서는 특별히 그로스테스 테, 로저 베이컨, 오컴을 통해 고전 사상을 잇는 강력한사상적 흐름으로 발돋움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근대 과학의 창시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의 한 장(章)이다. 그리스도교 철학은 신앙인들에 의해순수 자연적인 도구로 다듬어지고 정당화된 모든 철학적이념에 적용되는 정의이다. 그리스도교 철학자는 신앙을이성의 영역과 구분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이성에 필수 불가결한 가치 있는 도움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사의 영역에 속한다. 분명 이 철학은 여타의 그리스도교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기에 나름대로 정당화된다. 그러한 정당성은 두 가지 요소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하나는 전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자극과통합성의 요소로 작용한 프란치스코회 정신이다. 이 사상의 한 주류인 프란치스코회 학파의 신학이 강조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아담의 죄와는 무관한 그리스도의 육화(incarnatio) 교리에서 잘 나타난다. 육화는 하느님의 최상 작품(summum opus Dei)이다. 그것이 죄로인해 기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부당한 사고이다. 육화 교의는 역사상 그리스도인 비전의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이는 죄악으로 좌우되는 선의 승리를 말하는 관념론적 정신에 대항한 스코투스 신학이이룩해 낸 신학적 쾌거이기도 하다. (⇦ 작은 형제회 ;- 베르나르도, 클레르보의 ; 보나벤투라 ; 스코투스, 요한네스 둔스 ; 안셀모, 캔터베리의 ; 알렉산더, 할레의 ;오컴, 월리엄의 ; → 스콜라학 ; 철학 ; 토마스주의 ;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 프란치스코회) ※ 참고문헌  김현태, 《중세 철학사》, 인천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4/ Enciclopedia Filosofica, Centro di Studi Filosofici diGallarate, vol. 3, Edipem, Roma, 1979, pp. 756~758/ J. Merino, Storiadella Filosofia Francescana, Edizione Biblioteca Francescana, Milano,1993/ E. Ponzalli, Storia della Filosofia Occidentale, vol. 1, Borla,Roma, 1987/ I. Tonna, Lineamenti di Filosofia Francescana, sintesidottrinale del pensiero francessoano nei sec. xiii~xiv, P.E.G. Ltd., Roma,1992. 〔金顯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