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클로스 Proklos(4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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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신플라톤주의의 아테네 학파에 속한 이교인 철학자.아테네 아카데미아의 원장. 가톨릭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으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그리스도교의 철학과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생 애] 프로클로스는 410년경 비잔티움(Byzantium,현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그는 리시아(Lycia)의 크산투스(Xanthus)에서 기초 교육을 받은 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이곳에서 수사학과 로마법, 수학 등을 배웠으며, 소요 학파인 올림피오도로스(Olympiodoros)로부터터 철학을 배웠다. 430년경 아테네로 간 그는 아카데미아에서 플루타르코스(Plutarkhos, 350~433?)와 시리아노스(Syrianos, 4~5세기경)로부터 철학을 계속 배웠고, 시리아노스가 죽은 후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테네 아카데미아의 원장으로 재직하였다. 말년에 이교신, 즉 그리스 신계의 최대 여신인 아테나를 섬긴다는 당국의 고발로 추방형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485년 4월 17일 아테네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술과 사상] 그의 많은 저술 중에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대화편 중 몇 개의 주석서, 과학, 종교, 철학 등에 대한 작품이 남아 있다. 이 작품들에서는 플로티노스(Ploinos, 204/205~270)의 '일자' (一者, )ἕν로부터의 유출(流出)을 변증법적으로 규정하고있는데, 그의 사상에는 신비주의적인 면이 있다. 플로티노스의 '일자' , '정신' (지성, νους)과 '영혼' (Ψυχή)이라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형이상학적 구상은 이것의취약성을 지적한 아멜리오스(Amelios)의 수정을 거쳐야하였다. 반면 아테네 학파의 견지에서 본 것은 얌블리코스(lamblichos, 250~330)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스콜라 철학적인 수정을 이미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플로티노스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완전히 초월적인 '일자'와 모든 사물의 원천인 '일자' 사이의 긴장을 간파하였고, 그래서 여러 저술에서 로고스를 전제로 고양시키려는 노력과, 최상위의 영혼과 하위의 영혼을 분리하려는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는 그노시스적인 부드러운 마음씨와 통하는 본질들의 다양성에 대해서는반대하였다.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는 본질에 있어서는 플로티노스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것이지만, 그에 비해 훨씬더 이교의 제례 의식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 플로티노스의 세 가지 '근본 실체' (φιλοσοφία) , 즉 '일자' , '정신' ,'영혼' 이 이루는 위계 질서는 두드러지게 발전된 반면과장되었다. 프로클로스는 플로티노스의 기본적 통찰에서 하나의 유형을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보면 플로티노스보다 더 풍부한 유형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함축성이 있다. 그 유형의 주제는 다양한 삼원론(triad)이다. 프로클로스의 출발점 역시 세 가지 '근본 실체' , 즉 '일자' , '정신' , '영혼' 이다. 각각의 위계에서 닮은 형상들이 나온다. '일자' 로부터 '헤나드' (henad, 단일자)들 즉 신들이 생겨나고, '정신' 으로부터 '지적 존재자들' 즉 정령들(daemons) 혹은 천사들이 생겨나며, '영혼' 으로부터 이를테면 인간의 영혼을 위시한 여러 영혼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다양한 삼원론의 활동에 의해 복잡한 상호 조직이 짜여지면서 일종의 우주적인 구조가형성된다고 하겠다. 실재(reality)는 전체가 조직으로 짜여 있으며, 모든 것은 각각이 지닌 존재의 단계를 가지고있다. 프로클로스에게 있어서 세계의 모든 '존재' 는 서로 모든 존재를 포섭하는 가운데 우주적이고 위계적이며상호 공감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 안에 저마다 그 고유한 본성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존재론은 물질적 요소와 신적인 것의 성질사이에 특별히 은밀한 공감 관계를 인정하고 정의하는것이며, 이에 따라 인간이 신적인 것에 영향을 주고 상호간 변모하는 유효한 실천(praxis)으로서 '신비술' (theour-gia)이 발전되는 것이다. 그러나 플로티노스는 후계자들에게 많은 문제들을 남겼다. 암블리코스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신플라톤주의가종교적인 성질을 띤다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신성(神性)들을 수용하려 하고, 칼데아인 신학과 오르페우스(Orpheus)의 저술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플라톤의우주에서 빈틈을 채우려는 철학적 관심을 플로티노스는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노력들이 프로클로스에 의하여 많은 수정을 거쳐 잘 다듬어졌다. 프로클로스는 그리스도교의 감화력이 강한 시대에, 끝까지 그리스 철학의 전통을 옹호함으로써 '디아도코스' (Diadochos, 전통계승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시리아노스의 문하생으로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배운 후, 이론은 물론 실전에서도 '일자' 와의 신비적 합일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궁극적 실재인 '일자' 가 신이자 선이며, 자기의 윤리적 · 신학적 체계를 통일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는 진정한 첫번째의 '일자' 는 이름 부를 수 없는 '일자' 이고, 2차적인 '일자' 도 제3에 연결되지 아니하며, (이성적 영역) 그러나 모든 존재의 제1 원리가 된다고 하였다. '일자' 외에는 그 이상의 원리가 없다. '일자' 는 선이며 모든 사물의 제1 원리가 된다. '일자' 는 우주의 형상적이며 목적적인 원리이다. 마찬가지로 비참여적인 단자적 '정신' 과 참여적인 수준의 '정신' 이 있다. 그런데 '정신' 에 참여하고 초월적으로 그 자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비참여적인'영혼' 이 있다. 그러나 참여적인 '영혼' 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초월적으로 존재하고 세계 내재적인'영혼' 과 구분된다. 개별적인 인간에게 있어서도 그것을볼 수 있다. 그런데 '일자' 가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일자' 는 넘쳐흐르는 힘을 못 이겨 만유를 유출(산출 창조)하며 진행하고, 만유는 자기를 있게 해 주는 '일자' 로귀환한다. 창조에 의하여 영향받지 않고 창조하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비운동적 · 비참여적인 형언할 수 없는'일자' 에게 휴식이 있다. '일자' 의 주기적인(휴식→진행 →귀환) 창조성은 끝이 없으나 질서 있게 이루어지는 연속적인 연쇄성이다. '일자' 는 모든 것(형식과 내용)을 다신비적으로 창조한다. 결국 힘 있는, 무소부재하지 아니한 '일자' 이다. 인간은 지성과 실체적 대상의 두 가지 방식으로 신(神)에게로 가지만, 인간 이외의 만유는 신에게 직접 곧바로 간다. 이미지나 상징물을 통한 관상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것의 숨겨진 깊이 속에 '일자' 가 있으므로, 곧바로 직접적으로 동감자와 함께 신에게로 접근하는 방법(신비술=기도)을 프로클로스는 강조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신학 원리론》() 과 《플라톤의 신학》(Eis cnv IIAcirovos Beohonow)등 형이상학에 대한 저서가 있다. 특히 211개의 명제로되어 있는 <신학 원리론》은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을간결하게 설명하였다. 《플라톤의 신학》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해설한 것이다. 이 외에도 <물리학 요강》(Elemen-tatio physica), <악의 실체론》(De substantia mali) 등이 있다. 그의 저서들은 13세기 스콜라 학자인 뫼르베케의 기음(Guillaume de Moerbeke, 1215?~1286?)에 의해 라틴어로번역되어 중세 시대에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는 주요 원천이 되었다. [영향과 평가] 프로클로스는 독창적인 사상가라기보다는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자이자 주석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우호적이었지만,그에 의해 정리된 신플라톤주의는 일찍부터 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신플라톤주의와 그리스 교부 전통에서영향을 받아 신학을 체계화한 6세기경의 인물인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는 교의를 설명하기 위해 프로클로스의 견해를 이용하였고, 그래서프로클로스처럼 왜 지성적 '유' (有)들이 지성이 없는 단순한 '유' 들보다 우월한지를 설명하였다. 특히 프로클로스가 제시한 '긍정의 길 과 '부정의 길' 은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에 의해 발전되었고, 후에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에 계승되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1225~127)에게 연결되었다. 반면 프로클로스는 종교적인 철학자로 철학의 사변과무미 건조한 학문과의 종합을 시도하였고, 신을 통한 신앙과의 종합을 통해 하나의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에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중세에 많은 영향 을 미쳤다. 1 디오니시오, 아레오파지타의 ; 신플라톤주의) ※ 참고문헌 E.R. Dodds ed., Elememts ofTheoloy, Oxford, 1963/A.H. Armstrong ed., The Cambridge History of Later Greek and EarlyMedeaval Philosophy, Cambridge Univ. Press, 1970/ A. Patus, InPlatonis Theologian, Hamburg, 1981/ G.E. Morrow · J.M. Dillon,Proclos' Commentary on Plat Parmenides, Princeton Univ. Press, 1987/L. Sweeney, INCE》 11, Pp. 736~7371 정의채 · 김규영 공저, <중세철학사》, 도서출판 벽호, 1993(9판).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