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토와 히야친토 Protus et Hyacinthus(?~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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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라벤나 성 아폴리나리의 누오바 성당에 프로토 성인의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성인. 3세기의 형제 순교자. 축일은 9월 11일. 이 두 성인의 순교일과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4세기의 순교자 명단과 초기 성무 집전 서들, 나폴리의 돌에 새겨진 전례력 등에 두 성인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350년경에 쓰여진 《로마 순교자 증언록》(Depositio martyrum)에는 프로토와 히야친토가 살라리아 가도(ViaSalaria)의 대성전에 묻혀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이들의 무덤은 4세기에 산사태로 매몰되었는데 교황 다마소 1세(366~384)가 보수하였다고 한다.1845년에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프로토와 히야친토가 합장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들의 묘실은묘비와 함께 훼손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었지만, 유해는 작은 묘실에 재의 형태로 안치되어 있었다. 이로써 이들이 화형으로 순교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인들의묘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순교자 히야친토 9월 11일에 묻히다" (D P Ⅲ IDUS SEPTEBR YACIN-THUS MARTYR), "순교자 프로투스의 묘" (SEPULCR-UM PROTI M) . 프로토의 유해는 팔라티노(Palatino)의산 살바토레(San Salvatore) 성당으로 옮겨졌고, 히야친토의 유물은 1849년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의 경당으로 옮겨졌다. 《성 에우제니아의 수난기》(Passio S. Eugeniae)에 따르면 프로토와 히야친토는 형제로서 귀족인 성녀 에우제니아(Eugenia)의 환관이자 시종이었고, 그녀를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그곳에서 프로토와 히야친토는 바실라(Bassilla)에게 보내졌는데, 바실라는 그들의 설득으로 개종하였다. 257년에 시작된 발레리아누스(253~260)와 갈리에누스(253~268) 황제의 박해 때 군중의 폭동이 있은 뒤두 사람은 체포되었고, 로마 신전에 희생 제물로 보내졌는데, 두 사람의 기도로 신전의 신상이 먼지로 변하자 그들을 화형에 처하였다고 한다.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서는 이 두 사람을 "그리스도교 법의 교사" 라고 부르며, 이들을 공경하는 전례는 초기에 곧바로 멀리까지 확산되었다. 베다 존자(Beda Vene-rabilis, 672/673~735)의 순교록과 사룸 전례(Sarum rite)의축일표에도 수록되어 있다. (→ 에우제니아) ※ 참고문헌 E. Hoade, 11, 2003, p. 7771 D. Farmer, OxfordDictionary of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408/ Bénédictins de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1991, p. 419.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