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뢰머, 가브리엘 Frommer, Gabriel(1911~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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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가브리엘. 세례명은 루트비히(Ludwig).
1911년 8월 27일 독일 아이히슈테트(Eichstatt) 교구 라우터호펜(Lauterhofen)에서 태어났으며, 13세 때인 1924년부터 슈바이클베르크(Schweiklberg) 수도원이 운영하던 소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파사우(Pasau)의 레오폴디눔(Leopldinum)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1933년 5월 7일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34년 5월 10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그해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철학 대학에서 철학 과정을 끝내고, 파사우 대학교로 옮겨 1937년까지 신학 공부를 하였다.
1937년 8월 29일 7명의 동료 차부제 수도자들과 함께 한국으로 파견되어 덕원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한 후, 1938년 3월 29일 덕원 수도원 아빠스인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의 주례로 부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4월 30일에 서울 대목구장인 라리보(A.J. Larribeau, 元亨根) 주교의 주례로 덕원 수도원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1년간 신학 공부를 더 하고 1940년 회령 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여 1946년 회령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다가 1949년 덕원 수도원의 경리 담당 신부로 전임되었다. 1949년 5월 10일 덕원 수도원에서 북한 공산당에 체포되어 평양 인민 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8월 5일 옥사독 수용소로 옮겨져 1953년 10월 23일까지 감금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만포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북한, 중국, 러시아, 동독을 거쳐 1954년 1월 24일 독일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으로 귀환하였다.
프뢰머 신부는 수용소 생활 중 건강이 나빠져 한국으로 다시 파견되지 못하고 독일의 수도원에서 피정 지도, 수
녀원 미사 봉헌, 마리아의 도움 선교회(Maria-Hilf-Missi-ons) 지도 신부 등을 하다가, 1999년 1월 18일 슈바이 클베르크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 회령 본당)
※ 참고문헌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편, 《원산 수녀원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8/ A. Kasper · P. Berger, HWAN GAB(還甲), Miunsterschwarzach, 1973/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Erzabtei St. Ottilien, Schematismus 1924~1946, St. Ottilien/Todesanzeige von Abtei Schweiklberg, 1999.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