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에티오피아의 고대 수도인 악숨(Aksum)의 초대 주교. 에티오피아의 사도. 축일은 10월 27일.
프루멘시오의 생몰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4세기에 아리우스주의(Arianismus)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알 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에 근거하여 에티오피아에 정통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 번역가인 루피노(T.Rufinus, 345~410)가 프루멘시오의 형제인 에데오(Aedesius)의 증언을 듣고 기록한 것이 대표적인 자료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를 '아부나' (Abuna)라고 불렀는데, '우리 아버지' 라는 뜻을 가진 이 용어는 현재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대주교에게 사용되고 있다.
티레(Tyre)의 철학자인 메로피우스(Merophius)는 자신의 젊은 조카이자 제자들인 프루멘시오와 에데시오와 함께 340년경 인도를 향해 가는 길에 아프리카 해변에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습격을 받았다. 두 제자는 포로로 잡혀 악숨 왕국의 왕인 에자나의 노예가 되었다. 왕이 죽은 후 섭정을 하게 된 왕비는 프루멘시오를 총리 겸 왕자의 가정 교사로 임명하였다. 이후 그는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고, 로마 제국에서 오는 상인들에게 신앙 생활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왕자가 성장하여 통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왕자의 후견을 맡았던 에데시오는 티레로 돌아가 루피노를 만났다. 하지만 프루멘시오는 347년경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총대주교인 아타나시오(Athanasius Alexandrinus, 295?~373)에게 주교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결국 그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돌아왔다. 이후 그는
성서 및 전례문들을 에티오피아의 문화에 적절하게 번역하였다.
그러나 356년 아리우스주의에 호의적이던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337~361)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악숨의 지 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아타나시오를 추종하는 프루멘시오를 추방하라고 요구하였다. 아타나시오가 쓴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반박하는 호교론》(Apologia contra arianos, Apologia secunda, 357)에 들어 있는 이 그리스어 편지는, 루피노가 프루멘시오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자료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프루멘시오가 '페레메나토스' (Feremenatos), , '빛의 계시자' (Kasate Berhan)로 알려져 있다. 아타나시오가 프루멘시오를 주교로 임명한 일은 에티오피아 교회와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연결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시리아 출신인 프루멘시오가 자신이 속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는 것을 피한 것은 당시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가 아리우스주의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에티오피아)
※ 참고문헌 E. Cerulli, (NCE》 6, 2003, Pp. 16~17/ F.W. Norris, Encyclopedia ofEarly Christianity, E. Ferguson ed., Garland Publishing Inc., 1997, p. 4421 H.R. Reynolds, A Dictionary of Christian Biography, H. Wace · W.C. Piercy eds., Hendrickson Pub., 1994, p. 2871 G. Bardy, IV, p. 1659. [宋炯萬]
프루멘시오 Frumentius(?~380?)
글자 크기
1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