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기아

[그]Φρυγία · [라 · 영]Phry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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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가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다녔던 프리기아.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프리기아의 마지막 왕 미다스의 기념탑 파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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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가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다녔던 프리기아.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프리기아의 마지막 왕 미다스의 기념탑 파사드.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Anatolia) 평원 서쪽에 있는 고대 지역명.
기원전 2000년대 말, 본래 트라케(Thrake, Thracia)계 사람들로 추정되는 프리기아인들이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Hittite) 제국이 와해되면서 중부 고지대로 이주하여 고르디 움(Gordium)에 수도를 세웠다. 기원전 12~9세기에 프리기아는 아나톨리아 반도 전역을 지배한 연합의 서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때의 문명은 히타이트인들로 부터 받은 영향이 크며, 후에 페르시아인들이 이용한 도로망을 건설한 것이 바로 이들이다. 고르디움은 기원전 9~8세기 프리기아의 수도로 큰 명성을 얻었다. 전설에 따르면, 농부 고르디우스가 이곳에 매듭을 묶어 도시를 세웠으며 후에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이 그 매듭을 풀었다고 한다. 고르디움은 기원전 7세기 시메리아인 (Cimmerian)들이 도시를 불태우고 아나톨리아에서 프리기아의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전까지 프리기아의 정치 중심지였다.
기원전 730년경 아시리아인들이 연합의 동부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권력의 중심이 프리기아 본토로 옮겨졌 다. 기원전 8~7세기의 독립 프리기아 왕국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아리안(Aryans)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그리스에 접해 있었다. 프리기아의 마지막 왕인 미다스(Midas, ?~?)가 자살하기까지의 간략한 역사가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30/420?)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원전 188년에 프리기아는 페르가몬(Pergamon)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아탈로스 3세(기원전 138~133)가 서거한 기원전 133년부터는 로마 제국 아시아 속주의 일부분이 되었다.
프리기아에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기원전 3세기 이전이었다. 요세푸스(F. Josephus, 37/38?~100?)는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기원전 223~187)가 2,000명의 유대인을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와 바벨론(Babylon)에서 프리기아와 리디아(Lydia)로 이주시켰다고 기록하였다. 이 유대인들이 군사적인 정착자가 되어, 프리기아 원주민들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도움으로 영토를 소유하여 건축을 하고 문화를 형성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면세의 혜택이 주어졌는데, 요세푸스는 이것을 근거로 안티오쿠스가 유대인에게 관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프리기아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에 기원전 62~61년에 프리기아의 아파메아(Apamea)와 라오디게이아(Laodicea)에서 헌금을 걷어 예루살렘 성전에 보냈으나, 로마의 총독 플라쿠스(Flaccus)에게 압수당하기도 하였다. 구약성서에 프리기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프리기아의 영토에 속하였던 "메섹" (창세 10, 2)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사도 행전 2장 10절에 의하면 프리기아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도 바오로는 제2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프리기아 지방을 두루 다녔다(사도 16, 6). 제3차 전도 여행 때에는 우선 터키 중부 갈라디아 지방 교회들과 그 남쪽 프리기아 지방 교회들(데르베, 리스트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을 돌아보고 나서(사도 18, 23), 에페소로 내려가 27개월 가량 복음을 선포하였다(사도 19, 8. 10 : 20, 31). 이때 골로사이 출신의 에바프라가 프리기아 지방의 주요 도시인 골로사이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 라오디게이아에 교회를 세웠다(골로 4, 12-16).
프리기아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사도 바오로에 의해서이며, 프리기아의 초기 신자들은 로마 제국의 지방 집정관들에 의해 모진 박해를 받았다. 2세기에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이단이 생겨났는데, 즉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자신이 성령의 대변자라고 주장한 몬타누스의 몬타누스주의(Montanismus)와 자신들을 '깨끗한 사람'(puri)이라고 부르며 배교한 신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한 노바시아누스주의(Novationismus)였다. (→ 노바시아누스 ; 라오디게이아 ; 몬타누스주의 ; 히에라폴리스 ; 히타이트족)
※ 참고문헌  I. Gafni, (EJ) 13, p. 4871 F.F. Bruce, (ABD) V, pp. 365~368. [金永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