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메이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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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Secta massonica · [영]Freemaso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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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단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중세의 숙련된 석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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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단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중세의 숙련된 석공들.

중세의 숙련 석공(mason) 길드에서 비롯된 단체.
인류의 지적 · 사회적 진보뿐만 아니라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향상을 위해 활동하기를 원하는 '훌륭한 품성을 지닌 자유인들' 의 결속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 단체의 번창과 쇠퇴의 역사를 보면 하나의 공동체로 파악하기 어려우며, 시대와 국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 · 예술적 운동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비밀 단체가 아니며, 그 구성과 내부 규칙, 의식에 관한 내용들이 이미 많은 문헌들을 통해 공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메이슨단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어려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함과 선입견이 혼재된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역 사〕 신화적 기원 : 상징적인 신화에 의하면 프리메이슨단의 기원은 세상의 창조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 즉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태양의 다양한 체제를 통해 프리메이슨단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하느님이 창조한 빛이 최초의 프리메이슨이며, 대천사 미카엘은 첫 번째 대지부(大支部)의 우두머리이고, 아담은 첫 번째 입문자였다. 프리메이슨의 관점에서 보면 아담은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아니라 비의적(秘義的) 전통을 형태화한 입문자의 조상인 동시에 그 전통을 후세에 전달한 인물로서, 결국 모세를 비롯한 구약성서의 모든 인물들이 아담의 후계자로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이다. 특히 프리메이슨단은 기원전 10세기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설한 것을 최초의 활동으로 경축하고 있기 때문에, 솔로몬 시대의 건축가인 히람(Hiram, 기원전 969~936)의 죽음은 프리메이슨단의 주요한 신화들 중 하나이다. 물론 이러한 신화는 단지 상징적인 가르침에 불과하다.
그 기원에 대한 다른 견해들을 살펴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뿌리를 찾는 주장도 있다. 오시리스(Osins)와 이시스(Isis)는 지고(至高)의 존재와 보편적인 자연을 상징하며, 파라오 시대에 훌륭한 건축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파라오가 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건축가 조합에 중요한 예술적 작업을 위임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엘레시우스(Elesius)와 피타고라스 학파(Pythagoreanism)에서, 혹은 예수 시대의 쿰란 공동체(Esseni) , 그노시스주의(Gnosticism) , 테라페우타이파(Therapeutai) 등에서 그 기원을 찾는가 하면 고대 로마의 미트라교(Mithraism)에서 찾기도 한다.
이처럼 고대의 단체들에서 프리메이슨단의 기원을 발견하려는 주장들은 사료의 부족으로 그 진실성 여부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각 단체들 내에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규약이 제정되고 비의적 전통이 전수되며 점차 신비적인 정신들이 발전하여 상징적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우주 내에서 인간의 위치를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통을 프리메이슨단의 기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중세 프리메이슨단의 탄생과 확산 : 중세 도시의 특징 중 하나인 길드(guild) 조직은 상인과 수공업자들의 동업 조합으로 중세 도시 특유의 경제 활동 형태와 성격을 규정하는 조직이었다. 상인 길드의 역사는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1세기 이후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면서 수많은 길드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 조합들이 프리메이슨단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단지 수도원과 성당, 성(城)의 건축 공사를 담당하였던 석공들의 조합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건축의 특성상 이 조합의 구성원들은 고도의 정신적 · 도덕적 · 기술적 덕성을 인정받는 장인들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건축기술에 관한 그들의 직업적 비밀은 철저하게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창조한 건축가인 하느님을 대신하여 성당과 관련된 건축에 종사하는 그들은 신성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그들의 노동은 하느님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0세기 초반 아일랜드에서 프리메이슨단이 설립되었으며, 12세기 중반에 절정기를 맞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프리메이슨단의 이단적 움직임에 대한 소수 성직자의 비난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단죄의 증거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1277년에 교황 니콜라오 3세(1277~1280)와 1334년에 교황 베네딕도 12세(1334~1342)는 프리메이슨들에게 면책 특권을 줌으로써 영주로부터의 예속에서 해방시켰다. 특히 요셉이 잡고 있는 양피지 위에 예수가 컴퍼스를 들고 설계도를 그리는 모습의 석공 문장은, 프리메이슨들이 교회에 봉사하는 특별한 인물로 여겨졌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프리메이슨단과 성전 기사회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사료의 부족으로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더욱이 지역 및 국가에 상관없이 건축 공사 현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석공은 '자유로운 직업' 으 로 인식되었다. 이때 '자유로운' 이라는 말은 면책 특권, 즉 영주의 봉건적인 재판권에 예속되지 않는 개인적인 직업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훌륭한 직업적 역량을 지닌 장인, 자유로운 정신과 뛰어난 기술을 통하여 무지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프리메이슨단은 15세기 이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이유는 다양하였으며, 이미 14세기 초부터 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우선 자연 재해, 전염병, 전쟁 등으로 인해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증대하였기 때문이며, 프리메이슨단의 이단적 의식(儀式)이 비난을 받으면서 교회와의 갈등이 고조되었고, 건축 기술의 변화, 건축 기술에 관련된 교육의 발전, 정치적 갈등 및 동업 조합에 대해 새로운 규칙들을 부과하는 근대 국가의 발전 등도 프리메이슨단을 쇠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8세기 사색적 프리메이슨단의 확산 :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연금술사, 성직자, 귀족 및 부르주아지 출신 등 정신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프리메이슨단의 성격은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받아들여진 석공들' 의 숫자는 증가하였지만 진정한 건축가는 드물게 되어, 17세기에 이르자 전통적인 프리메이슨은 소수로 전락하였으며, 그 결과 육체 노동자들의 '활동적인' 프리메이슨단은 사색적 혹은 철학적인 프리메이슨단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프리메이슨단의 쇠퇴인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즉 이전 시기의 비의적 전통을 담은 의식과 상징들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상적 탐구에 적용시킨 것이다. 특히 육체적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프리메이슨단은 다양한 정신적 흐름으로 분화될 수 있었으며, 탐구를 위한 상호 경쟁적인 분위기도 나타났다.
1717년 6월 런던의 네 개 지부에 속한 프리메이슨단은 전세계 모든 지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제적 관할권을 창설하고, 새롭게 결성된 영국의 대지부를 다른 모든 지부들의 모(母)지부로 선포하였다. 이러한 영국의 연합 대지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각국 지부들의 적법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심 기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합 대지부 창설과 더불어 1723년에 근대 프리메이슨단의 규범이 되는 새로운 헌장이 작성되었는데, 프랑스 출신의 위그노인 데자귈리에(Jean-Theophile Désaguiliers, 1683~1744)와 앤더슨(James Anderson)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국의 연합 대지부를 설립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이 헌장에서 과거의 프리메이슨단이 가톨릭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교황 지상주의(Ultramontanismus)를 따랐고 종교적 관용도 없었다고 비난하는 한편, 자신들의 신앙과 일치하는 도덕적 책임 유형을 설파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헌장에는 종교적 관용에 대한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때부터 프리메이슨단은 영국에서 급속도로 발전하였지만, 그 역사는 수많은 위기들과 분열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당시 국왕인 월리엄 3세(1689~1702)를 지지하는 프로테스탄트로 구성된 지부들과 그를 반대하는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된 지부들 간의 대립이 상당히 심각하였다. 다른 한편 요크(York)의 지부들은 1813년까지 런던의 연합 대지부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쳤다.
1725~1726년경 프리메이슨단은 프랑스로 전래되어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1740년 파리에만 10여 개, 지방에는 15개 정도의 지부가 생겼다. 1789년에 프랑스 프리메이슨단 본부인 '위대한 동방' (Grand Orient de France)은 파리에 60개, 지방에 448개의 지부를 두었으며, 단원들의 수 역시 총 7천 명에 달하였다. 마찬가지로 다른 유럽 국가들과 영국의 식민지들에서도 영국의 주도로 프리메이슨단이 확산되었지만, 각 국가들은 나름대로 대지부를 설립하여 영국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1717년에는 러시아에 최초의 지부가 설립되었으며, 1721년에 벨기에, 1728년에는 포르투갈, 1733년에는 미국(보스턴)과 이탈리아, 1736년 독일(함부르크)에 지부가 세워졌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슬라브족의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규모가 큰 비밀 모임과 신비적인 의식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었다.
18세기 프리메이슨단의 괄목할 만한 확산은 다양한 경향을 지닌 내적 경쟁 관계를 유발하였다. 당시 위대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 은 모두 프리메이슨단으로, 특히 프랑스의 정치 철학자 메스트르(J.M.C. de Maistre, 1753~1821)는 프리메이슨단의 상징에 집착하면서 프리메이슨단을 '초월적인 그리스도교 에 편입시키려 시도하였는데, 이는 세속적인 가톨릭과 초보적인 프리메이슨단의 성격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바이스하우프트(J.A.Weishaupt, 1748~1830)는 '바비에르(Baviere)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 이라는 합리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진보주의 경향을 보이는 종파를 설립하였다. 이 종파에는 본느빌(N. de Bonneville, 1760~1828)과 부오나로티(F.G.M.L. Buonarroti, 1761~1837) 등의 프랑스 혁명가들 및 모차르트(W.A. Mozart, 1756~1791)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최근 연구에 의하면 베토벤(L. van Beethoven, 1770~1827) 역시 본(Bonn)에서 '계시를 받은 사람들' 에 속해 있었다. 한편 프랑스의 프리메이슨단이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비주의적 상징 체계를 지녔던 장미 십자 가단(La fraternité de la Rose-Croix)의 영향과 스코틀랜드의 의식을 전파하였던 램지(Michel Ramsay)의 영향이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석공들의 지위를 원용하여 프리메이슨단 내에 도제(徒弟), 직인(職人) 및 장인(匠人)의 세 지위를 도입하여 차례로 첫 번째 단계에서는 도덕적이고 박애주의적인 덕성, 두 번째 단계에서는 영웅적이고 지적인 덕성, 마지막 단계에서는 초인적이고 신적인 덕성을 가르친다고 강조하였다. 세계의 시민 혹은 18세기의 새로운 기사를 이상적인 프리메이슨으로 생각하였던 램지의 생각은 프랑스 귀족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지식인들로부터는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특히 그는 '정통' 프리메이슨단의 시각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신비주의적 입문 의식을 강조하여, 프랑스 프리메이슨단은 가톨릭적이고 귀족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프리메이슨단의 확산은 결국 교회의 비난과 감시를 받게 되었다. 특히 1738년에 교황 글레멘스 12세(1730~ 1740)는 프리메이슨들을 파문하는 교서를 발표하였으며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1902년에 발표한 교서에 이르기까지 교황들은 지속적으로 프리메이슨을 단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동안 프리메이슨의 숫 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미국 독립과 합중국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적 지적 쇄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콩도르세(M. de Condorcet, 1743~1794), 천문학자인 랄랑드(J.-J. LeFrangais de Lalande, 1732~1807)와 라플라스(M. de Laplace, 1749~1827), 철학자인 엘베티우스(C.A. Helvétius, 1715~1771), 작가인 라클로(P.C. de Laclos, 1741~1803), 마르몽텔(J.-F. Marmontel, 1723~1799) 등이 프리메이슨 단원이었고, 마찬가지로 몽테스키외(C. de Scondat Montesquieu, 1689~1755)는 영국 프리메이슨 백과사전인 《사이클로피디아 : 예술 과학 대사전》(Cyclopedia An Universal Dictionary of Arts and Science)을 번역하여 자신의 작업을 진행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리메이슨단이 직접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자극하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18세기부터 프리메이슨단 지부들을 중심으로 진보적인 정치적 사고들이 형성되고 발전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프랑스 프리메이슨단은 귀족 계급 혹은 명사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체제의 변화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J.-P. Marat,1743~1793), 바뵈프(F.-N. Babeuf, 1760~1797), 라파예트(M.-J.-P.-Y. R.-G. de Lafayette, 1757~1834), 미라보(H.-G.R. de Mirabeau, 1749~1791), 당통(G. Danton, 1759~1794), 쿠통(G. Couthon, 1755~1794), 데물랭(C. Desmoulins, 1760~1794) 등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은 프리메이슨단의 이념을 토대로 인간 존중 사상을 설파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를 전반적인 국가적 관심사로 끌어올렸으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공통된 의견을 수렴하였다. 그때부터 합리주의적인 경향을 지닌 지식층들은 프리메이슨단에 가입하는 것을 일종의 영예로 여기게 되었다.
19세기의 변화와 단절 : 19세기 말에 이르러 각 지부들의 변화와 단절의 경향들이 명확하게 나타났다. 영국의 프리메이슨단은 왕실을 포함한 부유한 계층에서 단원들을 선발하여 정치적 권력과 연합하였고, 철학적 탐구보다는 박애주의적 원조에 정치적인 토론이나 사회 운동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동시에 영국의 연합 대지부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강제하며 보편적인 프리메이슨단의 사명에 충실하였다.
미국 프리메이슨단의 발전 역시 괄목할 만하였다. 전지역을 통합하는 대지부가 창설되지는 않았지만, 명사층에서 단원들을 모집하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의무에 열성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각 지부들은 점차 일종의 '단원들의 클럽' 처럼 변해갔다.
프랑스에서는 정교 조약 이후 프리메이슨단과 교회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위대한 동방' 은 정치적 운동과 관련을 맺어, 나폴레옹 1세(Napoléon I, 1804~1814/1815) 체제하에서 새롭게 조직되었고 거의 공식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지에 속한 명사들은 프리메이슨단에서 멀어졌으며, 중류 및 프티 부르주아지를 대상으로 단원 모집이 확산되었다. 프리메이슨단 지부들에 점차 자유주의적 사상이 스며들었고, 그 결과 개혁적 성향을 지닌 지부들은 1848년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공화국을 자신들의 이념의 결실이라 간주하였다. 나폴레옹 3세(Napoléon Ⅲ, 1852~1871)하에서 카르보나리당(Carbonari)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위대한 동방' 은 정부의 보호와 통제를 동시에 받았다.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진 프리메이슨단이 증가하자 점차 민주주의적 특성이 강화되고, 1870년 이후 공화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877년의 총회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의무 삭제를 결의하였고, 헌장의 첫 번째 조항을 수정하여 프리메이슨단을 박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단체로 규정하고, 진리의 추구 및 보편적인 도덕, 과학, 예술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신앙심을 몰아내고 구성원들에게 합리주의적 철학을 강요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영국의 프리메이슨단과의 결정적인 단절을 초래하였다.
제3 공화국하에서 프랑스 프리메이슨단이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활동의 본질은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사색과 연구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당시 의회에 제출된 수많은 법률안은 프리메이슨단 내에서 준비된 것이었다. 하지만 1940년 8월부터 비시(Vichy) 정부는 프리메이슨단의 활동을 금지하고 재산을 몰수하며, 공적인 기능들로부터 추방시키고 억압하였다.
프리메이슨단의 역사는 국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전개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차르(tsar) 체제에서 박해를 받 았으며, 소비에트 체제에서는 폐지되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금지되었다가 자유주의자들의 승리 이후 겨 우 발전할 수 있었으나, 파시스트 체제 및 프랑코(F. Franco, 1939~1975) 체제에서 다시 폐지되었다. 영국적 모델에 따라 발전하였던 독일에서는 1933년 나치 체제에 의해 폐지되었다.
〔현대의 프리메이슨단〕 오늘날의 프리메이슨단은 두가지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영국의 대지부가 인정한 '정규적인' 지부들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혹은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다른 하나는 앤더슨의 헌장에 나타나는 관용의 정신을 주장하는 지부들로, 개인 및 사회의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목적으로 정치적 문제에 대한 사고를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프리메이슨단은 합법적인 단체이며, 지도부는 공개 선언을 한다. 또한 반교회적 혹은 반정부적 존재가 되려는 의지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은 400만 명 정도의 단원들이 있는 가장 큰 규모의 프리메이슨 국가로, 미국의 역사에는 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들의 이상은 미국 초기 헌법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대다수의 대통령들이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 그들은 신앙을 의무로 규정하면서 자선 사업에 열중하고, 주요 관심사는 형제들 사이의 우정을 토대로 정적이며 물질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된 일종의 거대한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 지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종 분리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흑인들로 구성된 지부는 단 하나에 불과하다.
영국에서 프리메이슨단에 가입한다는 것은 하나의 명예이다. 왕실 가족은 물론 고위 성직자도 프리메이슨 단원이며, 그들은 공식적인 방법으로 그 단체의 존재를 보장해 준다. 또한 단원들의 인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형제애로 뭉친 프리메이슨 단원을 양성하여 존경받는 '신사' 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정규적인' 지부들은 영국에 7천 개, 캐나다에 600개, 뉴질랜드에 400개, 인도에 200개가 있으며, 인원은 총 100만 명에 달한다.
독일의 프리메이슨단은 나치즘의 몰락 이후 재건되어,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경향들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 집중화된 하나의 조직체라기보다는 연맹체의 모습을 지닌 대지부에는 400여개의 지부들과 3만 명의 단원들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리메이슨단의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다. 여전히 영국의 영향력하에 놓인 수많은 지부들과 자유주의적 프리메이슨단 지부들 사이의 경쟁 관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교회적인 주장을 포기한 프리메이슨단과 가톨릭 교회 사이의 갈등은 거의 종식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에는 세 개의 대지부가 있다. 우선 위대한 동방' 에는 400여 개의 지부들과 2만 명 이상의 단원들이 있으며, 영국 대지부의 후견 및 프리메이슨단의 전통에 대한 교조적인 해석을 거부하면서 관용과 의식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프리메이슨단에 속한다. 그래서 학술적 토론 모임에 일반인들을 참석시켜 보다 높은 수준의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 또한 신앙에 집착하기보다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유로운 사상을 강조하면서 지적인 유토피아나 제한적인 믿음을 거부한다. 일상 생활에 기초한 그들의 행동과 성찰은 사회 도덕을 향상시켜 인간들 사이에 평등과 정의가 존중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위대한 동방' 은 유럽의 자유주의적 프리메이슨단 지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국가의 지부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번째로 1894년에 설립된 '프랑스 대지부' 에는 200여 개의 지부들과 만 명 정도의 단원들이 속해 있다. '위대한 동방' 과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의식 및 정신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프랑스 대지부' 는 정치적 활동을 거부하고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으며,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지적이고 감각적인 동기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대 문명에 대한 이해, 철학, 영적인 경험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대지부' 는 '세계의 위대한 건축가 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상징으로 간주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국가 대지부' 는 약 4천 명의 단원들이 있는데, 정치적 ·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접근을 배제하고 있다. 인간의 진보를 위해서는 일상적인 문제보다 입문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들은 입문의 메커니즘과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을 탐구한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개인의 권리들을 옹호하는 프리메이슨단은 좌익이나 우익 전체주의 국가들에서는 그 설 립과 활동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스페인, 포르투갈은 물론 쿠바를 제외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금지되고 있다.
〔활동과 상징〕 프리메이슨단의 독창성은 '입문 공동체' 라는 그 본질과 활동 및 상징들에서 찾을 수 있다. 프리메이슨단은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교리가 없기 때문에 하나의 종파로 규정할 수는 없다. 또한 권력을 쟁취하고자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도 아니다. 나아가 프리메이슨단은 어떠한 신앙도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도 아니다. 도제에서부터 직인을 거쳐 장인의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 각종 증거들을 검사하는 입문은 세상 속에서 기존에 지니고 있던 습관들을 포기하고 '빛' 을 발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러한 상징을 언어로 준비한다는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입문은 단순한 입회 의식이 아니라, 입문자들이 편견에서 벗어나 세속적 열정을 포기하는 대신 영적 · 도덕적으로 강화되기 위해 가장 훌륭한 수단들을 취하는 것이다.
프리메이슨단은 하나의 교리가 아니라 상징으로 인식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친다. 사람들은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상징들을 통해 이념적 선입견이 없이 세상을 보다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러한 상징들은 각종 도구, 도형, 숫자, 문자 등으로 나타난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상징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프리메이슨단은 그 상징들의 비밀을 누설할 수 없는데, 그것은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상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류의 지적 · 사회적 진보뿐만 아니라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프리메이슨단은,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원초적인 순수함을 간직한 하나의 사상적 흐름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 동업 조합 ; 메스트르, 조제프 마리 콩트 드)
※ 참고문헌  S. Hutin, Les Francs-Macons, Le Seuil, 1972/ Jacques Mitterrand · Serge Hutin · Alain Guichard, Franc-Maconnerie, 《EU》 9, pp. 934~940/ J.-A. Faucher · A. Ricker, Histoire de la Franc- Maconnerie en France, Nouvelles Editions Latine, 1967/ Christian Jacq, 하태환 역, 《프리메이슨》, 문학동네, 2003. [邊琪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