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와요, 가스통 Poyaud, Gaston(187~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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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인 선교사. 세례명은 베다스토. 한국명은 표광동(表光東) .
1877년 10월 23일 프랑스 뤼펙(Ruffec)에서 태어났고, 1899년 9월 8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 였다. 1903년 3월 7일 사제 서품을 받고, 4월 29일 파리를 출발하여 6월 19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904년 4 월 용소막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프와요 신부는 열심히 선교와 사목 활동을 하였고, 그 결과 1910년 전임 될 때는 신자수가 부임 당시보다 400여 명 증가한 1,238명에 이르렀다. 이어 1910년 6월 원산 본당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그는 1917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활동한 것을 제외하고는 1921년 1월까지 원산 본당에서 사목하였다. 프와요 신부는 잦은 신부의 이동으로 혼란스러웠던 원산 본당에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수행하고 성영회 등 육아, 교육 사업을 전개하며 본당을 안정시켜 나갔다. 1920년 8월 원 산 대목구가 설정되고 베네딕도회가 신설 교구 사목을 담당하게 되면서 서울로 돌아온 프와요 신부는 클랭프테 르(J. Kleinpeter, 葛) 신부가 담당하던 재조선 일본인 사목을 전담하였다. 이와 함께 1933년까지 여러 가지 어 려움 속에서도 만주에 있는 일본인 교우촌을 매년 방문하였다. 한편 1931년에는 조선 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주 마가자(馬架子)에 있던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B. Bruguière, 蘇) 주교의 유해를 서울의 용산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그 후 1951년에 은퇴하여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관할하고 있던 대전 대목구의 주교관에서 생활하다가 1960 년 2월 28일 선종하였다. (→ 용소막 본당 ; 원산 본당)
※ 참고문헌  《뮈텔 주교 일기》 1~6권,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 《함경도 선교사 서한집》 I,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5/ 용소막 본당 100년사 편찬위원회, 《용소막본당 10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용소막 교회 , 2004/ Répertoire des membres de la société des missions étrangères 1659~2004, Archives des missions étrangères, Paris, 200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