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Platon(기원전 428/427~348/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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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로 번역된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 <티마이오스> 원고(1500년경, 이탈리아). 서양 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놓은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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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로 번역된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 <티마이오스> 원고(1500년경, 이탈리아). 서양 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놓은 플라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서양 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생 애〕 플라톤은 기원전 428 또는 427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명문가 출신인 아리스톤(Ariston)과 페릭티오
네(Perikione)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계는 기원전 11세기 아테네의 마지막 왕이었던 코드로스(Kodros) 로 거슬러 올라가며, 어머니 쪽은 초기 그리스의 정치가이며 시인인 솔론(Solon)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에게는 형이 2명 있었는데, 《국가》(πολιτεία, Politeia)에서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70/469~399)와 대화를 하는 아데이만토스(Adeimanos)와 글라우콘(Gloukon)이 그들이다. 그리고 누나인 포토네(Potone)의 아들 스페우시포스(Speusipos)는 플라톤이 죽은 뒤 아카데메이아(, Academeia)의 원장이 되었다. 플라톤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그녀의 삼촌이자 페리클레스(Pericles, 기원전 495?~429)의 열렬한 지지자인 피릴람페스(Pyrilampes)와 재혼하였는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안티폰(Antiphon)은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에서 대화 내용을 들려주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플라톤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는 전쟁과 정치적 격변에 휘말려 있던 시기였다. 기원전 404년, 30인 과두 정권을 이끌던 외숙 카르미데스(Charmides)와 외당숙 크리티아스(Critas)에게 자신들의 세력에 가담하라는 권유를 받은 플라톤은 잠시 동안 그들의 정치 행태를 주시하였으나, 그 무능력함과 폭력성에 환멸을 느끼고 서서히 정치에서 마음이 멀어졌다. 그 와중에 새로이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대를 걸었으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고발된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자 아테네의 현실 정치에서 완전히 멀어져 철학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할 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과 함께 잠시 메가라(Megara)로 피해 있다가 이후 12년 동안 이집트,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였다고 하는데, 그때 무슨 일을 하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일곱 번째 편지》에 의하면 40세경에 남부 이탈리아를 거쳐 시칠리아 섬의 동쪽 해안에 있는 시라쿠사(Siracusa)를 여행하다가 디오니시오스 1세의 처남 디온(Dion)을 만났다고 한다. 이 청년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훗날 플라톤 은 이 섬을 두 번이나 다시 방문하였다.
기원전 387년경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기원전 385년경 학문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관인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였다. 이곳에서는 좁은 의미의 철학만이 아니라, 수학이나 수사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들이 탐구되었다. 플라톤 역시 강의만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의 문답을 통한 공동 탐구를 하였다. 특히 아카데메이아는 이소크라데스(lsocrates, 기원전 436~338)가 세운 학원이 수사술(修辭術) 교육에만 집중한 것과는 달리 절도 있는 공동 생활과 학문적 논의 자체 및 훈련, 그리고 그리스의 현실 타파를 위한 참된 지적 지도자들의 배출을 설립 취지로 삼았다. 학원 설립 이후 40년 동안 이곳에서 많은 학문적 업적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학자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예를 들면 입체 기하학을 창시한 테아이테토스(Theaetetos, 기원전 417?~369)나 비례론 및 곡면체의 면적과 부피를 찾는 방법을 고안한 에우독소스(Eudoxos, 기원전 400?~350?) 같은 수학자들도 이 학원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 또한 아카데메이아는 법률 및 실질적인 법 제정에도 관심을 기울여, 이 학원의 많은 이들이 입법이나 정치적 자문을 위하여 여러 나라로 초빙되어 갔다.
플라톤이 말년에 시라쿠사의 현실 정치에 관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플라톤이 60세 무렵인 기원전 367년에 디오니시오스 1세가 죽자, 중년의 디온은 플라톤을 초빙하여 왕위를 계승한 디오니시오스 2세의 마음 속에 철인 치자(哲人治者) 사상을 심어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젊은 참주가 디온을 모반 혐의로 국외로 추방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무산되어 기원전 365년경 플라톤은 아테네로 되돌아와야 하였다. 그는 이후에 시라쿠사를 다시 방문하여(기원전 361/360) 두 사람을 화해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애초의 계획은 실패하였다. 67세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이후 13년간 활발히 학문 활동을 하다가 기원전 348 또는 347년에 향년 80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플라톤이 받은 철학적 영향들〕 그리스인들의 오랜 속담 중에 "주어진 것을 선용할지니" (To rtoupov si Trovelv)라는 말이 있다. 플라톤의 철학은 이 속담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것은 당시 아테네의 현실이었다. 그의 철학은 그 현실을 근원적으로 개혁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현실을 선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이 어떤 것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선용해야 할 것으로 주어진 것이 앞선 철학자들의 사상이었다. 그것은 디오게네스(Diogenes Laertios)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 · 가르침 · 격언》(III, 8)에서 볼 수 있다. 플라톤 철학은 "해라클레이토스적인 주장과 피타고라스적인 주장 그리고 소크라테스적인 주장의 혼합을 이루었다. 왜냐하면 감각적인 것들(To ciifenta)은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라, 지적인 것들(ro vonita)은 피타고라스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이며 시민적인 것들(To roiucum)은 소크라테스에 따라 공부하였기 때문이다." 이 평가가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말일 수 있다. 왜냐하면 플라톤 철학에서 핵심이 되는 것들은 위에서 언급된 것들과 분명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것들' 과 관련하여서는 《테아이테토스》(기원전 368년경)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이 대화편에서 소피스트(Sophis)들의 인식론적 주장을 내세운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기원전 485?~410?)와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기원전 540?~480?)가 함께 다루어진 것은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 모든 것은 끊임없는 흐름의 상태에 있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과 오직 지각되는 것들만을,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만을 존재하는 것들로 본 프로타고라스가 함께 다루어질 수 있는 한, 감각적인 것들' 을 헤라클레이토스와 연관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적인 것들 은 플라톤 철학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이를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 · 가르침 · 격언》에 서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0?~500?)적인 것이라한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15?~?)는 '사유됨' (VOELv)이 곧 '있음' (eivoa)이며, 사유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사유되는 것만이 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플라톤 철학의 기본 골격이기에, 그는 파르메니데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렇지만 사유되는 것들과 피타고라스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피타고라스가 몰두한 '수학적인 것들' (Tox ucemportkd)은 분명히 '지적인 것들' 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들 자체가 이데아 또는 형상들은 아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가 플라톤 철학에 미친 영향으로는 사물 내지 현상들을 수적인 일정한 비율로 한정되는 것으로 본 것, 그래서 이 우주까지도 수적인 질서를 갖는 아름다운 것(koopoc)으로 본 것을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디오게네스가 정치적이며 시민적인 것들' 을 소크라테스에 따른 것으로 지적한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지만, 플라톤 철학의 지극히 중요한 측면을 지적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것' (Tox moi.cuka)이란 '정치' (noing)와 관련된 것들, 즉 하나의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행위 또는 실천적인문제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윤리적인 개념들의 의미 규정에 오래도록 매달렸던 것도 알고 보면 이 실천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대화편들의 특징〕 플라톤이 철학을 시작한 것이 소크라테스의 사망 이후부터라고 해도, 철학자로서 활동한 기간은 적어도 52년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그가 쓴 대화편들은 위작으로 밝혀진 것들을 제외하면 28편 정도가 된다.
플라톤 철학의 전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이 대화편들의 저술 순서를 확정지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순서에 대한 플라톤 자신의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소피스테스)(Sophistes)와 《정치가》 (Politikos)의 경우만 외형상으로 《테아이테토스》와 연결되는 것으로 대화가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학자들은 문체상의 특징에 따라서 《소피스테스》, 《정치가》, 《필레보스》(Philebos), 《티마이오스》(Timaios), 《크리티아스》, 그리고 《법률》(Nomoi) 순으로 후기 대화편들을 꼽는다. 《소피스테스》를 후기 대화편들의 첫머리에 놓은 까닭은, 그것이 <테아이테토스>에 이어지는 것으로 플라톤이 말하고, 전기 대화편들의 마지막에는 《테아이테토스》와 《파르메니데스》가 놓인다고 흔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타고라스)를 포함하여 《향연》(Symposion)과 《파이돈》(Phaidon), 《국가》 등은 전기 저술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편의상 《테아이테토스)를 기점으로 대화편들을 전기와 후기로 나눈 것은, 이 대화편 이후 플라톤 철학이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한편 《테아이테토스》 이전의 대화편들 가운데 플라톤이 40세 이전에 쓴 것들은 소크라테스의 영향하에 있었던 초기 대화편들, 그리고 그 이후에 쓰여진 중기 대화편들로 다시 나뉜다. 그런데 이렇게 쓰여진 많은 대화편들에서 플라톤 자신은 한 번도 대화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화자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들이며,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화편들 속에서 플라톤이 단지 그들의 생각을 보고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어쨌든 대부분의 대화편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떼어놓고 플라톤을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철학을 하게 된 플라톤으로서는 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그의 철학적 재구성은 40세 이전에 쓰여진 초기 대화편들로 결실을 맺는다. 이 대화편들은 대개 윤리적 개념을 '정의하는 일' (opige000m)에 관련된 것으로 '논박' (élerxos)의 성격이 강하다. 이를테면 이 대화편들에서 소크라테스는 용기나 우정, 절제, 경건함, 올바름, 훌륭함 등에 대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Ti 6˚C∏)를 집요하게 묻는다. 그래서 이 대화편들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방법에 관련된 대화편들' 로 불린다.
중기 이후의 대화편들에도 대부분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만, 점점 플라톤의 철학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철학의 대변자로 그 역할을 차츰 확대하여 나간다. 그러다가 《소피스테스》와 《정치가》에서는 엘레아에서 온 손님이, 마지막 저술인 《법률》에서는 익명의 아테네인이 등장하여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며 대화를 이끌어가는데, 이들은 플라톤의 대변자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대화편들에서는 플라톤 자신의 철학이 개진되고 있다. 《테아이테토스》 이후의 대화편들에서는 그의 고유한 사상이 한층 치밀한 논리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형상 이론〕 《파이돈》에서 플라톤은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형상' (ei8os)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ovoia) 를 내세우는데, 바로 이 점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소크라테스적인 대화편들에서 '에이도스 나 '이데아' (16geu)는 '본질적인 특성' 정도로 볼 수 있을 뿐, '존재' 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파이돈》에 언급된 '형상 이론' 에 따르면, '있는 것들' 을 우리의 주관과 관련지으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가시적' 이며 '감각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인데, 이는 "인간들의 본성(miong)에 대응하는 것들로서 하는 말이다" (79b). 뒤의 것은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 (79d, 80b)이며, "한가지 모습(보임새)으로 있는" (78d) 것이다. 이를 '형상' 또는 '이데아' 라 한다.
이처럼 플라톤은 '있는 것들' 을 주관이 처하여 있는 조건에 상응하여 구분하였다. 오관의 능력을 인식론적으로는 감각적 지각 또는 단순히 지각이나 감각(dioneng)이라 한다. 이에 상응하는 대상들을 '감각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것들' 이라 한다. 또한 지성의 능력 및 이의 인식 작용(vonots)도 있고, 이에 상응하는 대상들을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들' 이라 한다. 플라톤은 이 둘 사이의 관계를 《파이돈》 100c~ 102b에서 사물의 형상 또는 이데아에 대한 "관여"(u'se5us. , 형상이 사물에 "나타나 있게 됨" (moppovoia) 또는 양쪽의 "결합"(ko1via)이라는 표현들을 써서 설명하였다. 그는 이 둘의 관계를 이런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함으로써 후에 아리스토텔레스(Anistales, 기원전 384/383-322/321)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형상 이론에 대한 철저한 검토 및 비판이 《파르메니데스》에서 이루어진 뒤, 《테아이테토스》 이후에 쓰여진 후기 대화편들인 《소피스테스》와 《정치가》에서는 형상들의 상호 결합 관계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 대화편들에 이르면 형상은 이미 "한가지 보임새"(uovoetong)로 나타나지 않고 결합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상 이론은 이 대화편들에서 보다 한층 발전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전기 대화편〕 《국가》는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정치 사상, 영혼에 관한 이론, 교육론, 예술론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방대한 대화편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다른 대화편들은 주로 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즉 《파이돈》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Gorgias) 등은 윤리적 문제에 주된 관심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화편들이 한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방법에 관련된 대화편들 : 윤리 문제를 다루는 초기의 짧은 대화편들은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공통점이 있다. 즉 먼저 훌륭함(덕, ipemin)을 정의하려는 물음이 제기되고 대화를 통하여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지만, 결국 그것 들 모두는 하나같이 부적절한 것으로 폐기된다. 대화자는 마지막에야 비로소 알아야 할 것들에 관한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스스로 보편적 앎에 이른다(産婆術, woneurin). 이 대화편들에서는 용기나 우정, 절제, 분별, 신에 대한 공경 등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렇듯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해결하기 어려운 물음들을 던지면서 대화 상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견해들을 끊임없이 '논박'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무지의 자각' 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문답법이며, 독자들은 이를 통하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혼(4o0^{2)의 보살핌' 이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 혼의 훌륭함이야말로 좋음과 나쁨에 관한 지식이라는 그의 확신을 배우게 된다.
《변론》(Apologia)은 불경죄에 대한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연설을 보여 준다. 《크리톤》(Criton)은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찰하고 있다. (에우티프론)(Euthyphron)은 신에 대해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인 '경건' 을 주제로 하고 있다. 또한 《카르미데스》는 '절제' 를, 《라케스》(Laches)는 '용기' 를, 《리시스》 (Lysis)는 '우정' 을 논의한다. 이 대화편들은 공통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 충실하게 대화를 진행한다.
윤리에 관련된 대화편들 :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메논》(Menon)은 윤리 문제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 을 보인다. 《고르기아스》는 수사술의 본성적 가치에 관한 탐구에서 시작하여, 사람의 훌륭함(사람됨)에 필요한 것이 변론술인지 아니면 논리적 능력인지에 대하여 논한다. 고르기아스(Gorgias, 기원전 483?~376)는 수사술을 모든 기술 중 으뜸으로 쳤으나 소크라테스는 단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쾌락을 좋음의 기준으로 삼고 소피스트는 입법가처럼, 변론가는 재판관처럼 위장하며 변론가는 국가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아첨꾼이라고 지적한다(447a~461b). 이에 대하여 폴로스(Pholos)는 유능한 변론가는
한 나라의 독재자로, 자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반론을 폈다. 소크라테스는 이 견해를 "그릇된 것을 겪는 일도 나쁘지만, 그걸 가하는 일은 더 나쁘다"라는 역설로 거부하였다. 만일 수사술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건 무엇보다도 범죄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여 재판관의 마음을 돌리려할 것이기 때문이다(461b~481b). 하지만 칼리클레스(Kallicles)는 대중의 관습에서는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나쁜 일이지만, '자연의 관습' 에서는 힘센 자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며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이끄는 자들은 참된 치자(治者), 즉 민주주의를 보살피는 의사가 아니라 대중의 입맛에 맞게 민주주의를 요리하는 요리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481b~527c).
《메논》은 훌륭함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찰하였다. 전자의 문제의 답에 따라 후자의 문제의 답이 결정된다. 하지만 훌륭함에 대한 탐구는 어려운 일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탐구의 주제에 관해 무지하다면, 그가 그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며, 반면 그것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므로 탐구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 된다"라는 메논의 역설이 그 가능성마저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불멸하는 혼이 오래 전에 배운 모든 진리를 기억해 낸다면 메논의 역설은 해소될 것이다. 이에 대한 증명으로 소크라테스는 기하학을 배운 적이 없는 노예 소년이 수학적 진리를 인식하는 과정을 훌륭히 보여 준다. 결국 지식은 '상기'(기억, civopumas)이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훌륭함은 지식이며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 훌륭함이 지식이라면, 전문적인 교사가 있어야 하는데, 아니토스(Anytos)는 '훌륭함의 교사' 를 자처하는 소피스트들은 나라에 해가 되는 사기꾼이라고 주장하였다. 《메논》은 지식과 참된 판단을 구별하고, 훌륭함은 가르침이 아니라 신적인 섭리에 의해 있는 것처럼 암시하였다.
《프로타고라스》는 훌륭함(사람됨)에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 준다. 이 대화편에서 유명한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이 하는 일이 '훌륭함의 가르침' , 즉 인생의 성공 및 훌륭한 나라의 완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그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훌륭함의 다양성과 단일성이 문제가 되는데, 프로타고라스는 용기를 제외한 모든 훌륭함을 지혜와 동일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용기 있는 자조차도 자신이 처한 고통과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하며, 그래서 모든 훌륭함은 쾌락과 고통을 헤아려 보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 또 "누구도 자발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역설이 있다. 즉 나쁜 짓은 잘못 헤아린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대화편들은 합리성을 기초로 한 훌륭한 인격 개발에 주된 관심을 두며, 이 개발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능인 이성을 마음에서 찾아내 그것에 의하여 좋음을 통찰하여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좋음이 무엇인가를 이성에 의하여 안다면, 그는 그것 이외의 다른 것은 추구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성을 통하여 좋음을 앎으로써 사람다움은 실현된다. 이런 의미에서 "훌륭함은 지식 이다."
또한 《국가》에서는 '올바름(正義, 8ucou-oovn, 올바른 상태)은 무엇인가? , 그리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 아니면 올바르지 않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 와 같은 윤리 문제를 다룬다. 올바름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이 저마다 제구실을 잘하고 다른 부분들의 기능에 간섭하지 않을 때 실현되는 조화로운 상태이다. 개인의 올바름은 혼의 세 부분, 즉 이성적 부분, 욕구적 부분 그리고 기개적(氣槪的, 격정적) 부분이 저마다 제 할 일을 할 때 실현된다. 한 나라도 구성원들 모두가 제구실(기능)을 잘할 때 올바르게 된다. 특히 올바른 상태는 개인에게는 이성이, 국가에서는 좋음의 형상을 통찰한 철학자가 지배할 때 이루어진다. 플라톤은 한 나라를 삼분된 혼에 상응하는 세 계층, 즉 통치자, 수호자, 시민으로 나누어 올바른 나라를 구성하였으며, 각 계층들에 상응하는 덕(훌륭함)들로 지혜, 용기, 절제를 꼽았다. 각 계층들이 저마다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올바른 나라, 이 나라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선자 정체(政體)' 이다. 플라톤은 이 이상적 형태에서 타락한 것들로 참주 정체, 과두 정체, 민주 정체를 들고 있다. 철인 치자를 위한 교육은 좋음의 형상을 통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긴 시간에 걸친 엄격한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즉 처음 10년 동안은 수적인 학문들(수론, 평면 기하학, 입체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을 학습함으로써 '추론적 사고 를 기르고, 그 다음 5년 동안은 보다 엄격히 '변증술' (辯證術)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형상 이론의 비판 : 《파이돈》과 《국가》에서 플라톤은 '감각의 대상' 에 충분한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감 각의 대상' 과 '지성의 대상' 의 관계를 '관여' 등의 용어를 빌려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의 대상인 자연에 관한 진리의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와 《테아이테토스》에 이르자 그는 '관여' 라는, 사물과 형상 사이의 관계를 한층 더 깊이 해명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파르메니데스》 제1부에서 젊은 소크라테스는 '하나와 여럿' 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관여설을 제안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어려운 반론으로 궁지에 몰린 것은 논리적 훈련의 부족임을 시사하였다. 그리고 제2부에서 파르메니데스는 논리적 훈련의 예를 제시하며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편다. 즉 관여설은 무한소급에 빠진다. 관여설에 따르면 여러 사물들에 단일한 술어가 붙을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단일한 형상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상 자체도 단일한 술어를 허용하므로, 그것은 또 다른 형상에 관여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무한히 진행한다.
《테아이테토스》는 '지식' 을 정의하려는 인식론적 문제에 관여한다. 플라톤은 먼저 '지식은 지각(감각)이다'는 주장을 검토한다. 프로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이 명제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지각되는 세계는 없으며, 따라서 확실히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모든 지식은 진리와 존재에 관여함으로, 존재를 파악할 수 없는 지각은 지식과 같지 않다고 하면서, 플라톤은 '지식은 참된 판단이다' 는 주장이 부적합하다는 것도 논의한다. 그리고 끝으로 '지식은 이성(로고스, 2^{nos)을 동반한 참된 판단이다' 는 주장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로고스 개념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정의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대화편은 결론없이 끝을 맺는다.
〔후기 대화편〕 후기 대화편들 가운데 첫머리에 있는 《소피스테스》와 《정치가》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대화편들로서, 표면상으로는 '소피스트' 와 '정치가' 라는 부류의 정의(定義)에 관련된 것이다. '소피스트 라는 부류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여러 측면에서 접근하여 그들의 본질적인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앞의 대화편이며, 참된 의미에서의 정치가인 '왕도적 치자' (王道的治者)가 해야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논리 정연하게 밝혀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뒤의 대화편이다. 하지만 이 대화편들은 형상의 인식과 관련하여 각각의 형상을 《파이돈》에서처럼 '한가지 보임새' 로만 이해(인식)하려는 데서 벗어나 여러 측면에서 접근하여, 형상들끼리의 관여 및 결합 관계에서 인식하는 고된 작업을 실제로 보여 주고 있다.
《티마이오스》는 플라톤의 우주론으로 '데미우르고스'(8nutoupyos)라 불리는 우주의 창조자가 '언제나 불변의 상태로 있는 것' 을 기본으로 삼아 이미 있는 질료들과 결합하여 우주를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럴듯한 이야기' 의 형식을 빌려 기술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기술적 관점에 입각해서 우주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그리스도교의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nihilo)와는 구별되는, 있는 재료를 갖고 만드는 기술적 창조관이다. 본래 '데미우르고스'는 '민중(ompos)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자' 즉 장인(匠人)을 뜻한다.
이 대화편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도 갖고 있다. 첫째, 물질에 관해서 구조적인 설명을 한다. 즉 그는 4원소인 흙과 공기, 불, 물의 구조를 정육면체,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로 설명한다. 둘째, 생성하는 세계의 모든 질서 및 구조의 지성적 원인으로 데미우르고스를 끌어들임으로써 기술적인 창조관을 보여 준다. 셋째, 자연에 관한 학문의 가설적 성격을 강조한다. 넷째, 데미우르고스의 지성적 활동이 우주에 합리적 질서를 부여하지만, 물질적 필연의 힘이 지성의 영역과 작용을 제한한다고 플라톤은 설명한다.
플라톤 말년의 최대 저술인 《법률》은 윤리와 교육, 법에 관한 플라톤의 완숙된 사상을 담고 있다. 이 대화편은 《국가》에서 설립된 이상적인 국가를 모범으로 해서, 현존하는 국가들이 채택할 수 있는 법률과 제도들의 실질적인 제정에 관여하는 현실적인 응용 형태의 저술이다. 말하자면 《국가》에서 수립한 국가는 으뜸가는 모범이지만, 《법률》에서 수립한 것은 차선의 현실적인 모형이다. 《국가》에서는 이상적인 '공유(共有) 국가 가 제시되지만, 《법률》에서는 '바른 분배' 에 의한 '공분(共分) 국가'가 제시된다. 이를테면 《국가》에서는 참된 의미에서 '하나인 나라' 의 규모를 말하면서도 단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한계로 정하나, 《법률》에서는 5,040세대라는 숫자를 명시하고 이들 세대에 땅과 집을 분배하는 방법까지 명시한다(737e). 플라톤이 입법가를 통해서 세우고자 하는 나라는 자유와 우애 그리고 지성 내지 지혜의 결합을 통하여 이룩되는 나라이다. 따라서 나라를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 《법률》의 중요한 과제이다. 각 국가에서 가급적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지혜가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필요하다. 이 대화편에서는 그 교육 과정이 상세히 제시된다.
〔그리스도교에 미친 영향〕 플라톤의 철학이 그리스도교에 미친 영향과 관련해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좋음의 이데아' (ni TOU dry0000 iv@co)와 '혼의 불멸' 이다. 좋음의 이데아 :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학문' 을 변증술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학문이 마치 갓돌처럼 모든 학문들의 맨 위에 놓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학문에서의 '최고의 앎 이 '좋음[善]의 이데아' , 즉 '좋음 자체' (orito to inya8ov)라고 단언하였다(《국가) 504e ~505a, 519b). 이데아들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이 '좋음의 이데아' 를 보게 됨으로써 비로소 '지적인 것' 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국가) 532b)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좋음의 이데아' 는 인식되는 것들에 진리를 제공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이 이데아는 인식과 진리의 원인이다(《국가) 508e). 이를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서 설명한다. 해는 보이 는 것들에게 '보임' 의 힘을 제공하며, 그 자체는 생성이 아니면서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인식되는 것들의 '인식됨' 이 가능하게 되는 것도 좋음으로 인해서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게' 되고 본질을 갖게 되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이며, 좋음은 존재가 아니라 지위와 힘에 있어서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국가》 509b).
또한 이 이데아에 관한 좀 더 실질적인 언급도 볼 수 있다.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각 고 끝에 보게 되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 이다. 그러나 일단 이를 본 다음에는 이것이 모든 옳고 아름다운 것의 원 인이고, 또한 '가시적 영역' 에 있어서는 빛과 그 빛의 주인을 낳고, '지적인 영역' 에서는 스스로 주인으로서 진리 와 지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적 · 공적으로 슬기롭게 행하고자 하는 자는 이 이데아를 보아야만 한다(517b~c)
따라서 '좋음의 이데아' 는 그 자체로서 부족함이 없는 이데아들만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좋은 것들의 궁극적 원
인이다. 이 점에서 '좋음의 이데아' 는 마치 그리스도교에서의 하느님처럼 만물을 움직이는 목적인(目的因)으 로 '있는(~인) 것' 의 최고의 원리, 즉 '있는(~인) 것' 전체를 좋은(선한) 것으로 만드는 원리이다. 이런 '좋음의 이데아' 에 대한 생각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인 신이 선하다(좋다)는 것과 우주 만물 자체도 선하다(좋다)고 인정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나쁨)은 존재하지 않는가? 현실 세계에서 는 엄연히 악이 존재한다. 그러나 플라톤에게는 이데아만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현실 세계에 있는 악은 '있지(~이지) 않은 것' 으로 '좋음' 의 결여(privatio)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플라톤은 악의 일종인 죄도 '결여'로 이해한다. 결여로서의 악은 언젠가는 '좋음' 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물 가운데서 '좋음의 이데아' 를 관상함으로써 악에서 벗어나 행복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영원불멸하는 '좋음의 이데아' 를 관상하려면, 인간들한테도 불멸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불멸하는 혼' (마음)이다.
혼의 불멸 :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혼의 불멸' 에 대한 믿음이 우주 만물의 구조에 관하여 설명하는 형상 이론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한 논증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혼은 무수한 삶의 연속을 겪는다. 자연의 과정 은 순환적이며, 이런 순환은 삶과 죽음의 경우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죽음의 과정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삶은 결국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700~7e) . 둘째, '배움은 상기다' 는 이론은 혼의 삶이 육체에서 독 립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72e~77e). 셋째, 혼은 영원불변한 단일한 형상들을 관상한다. 혼은 형상들과 동류의 것이다. 따라서 혼은 불멸한다(78b~84). 넷째, 플라톤은 형상을 존재와 변화의 원인으로 제시하였다. 어떤 것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것이 뜨거움(형상)에 관여할 때, 즉 뜨거움을 가져오는 불(형상)에 관여할 때이다. 불이 뜨거움을 가져온다면, 불은 뜨거움의 대립자인 차가움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는 혼에도 적용된다. 인간은 삶에 관여함으로써, 즉 인간에게 삶을 가져다주는 혼을 가짐으로써 살아 있다. 그리고 혼은 삶을 가져오므로, 삶의 대립자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혼은 불멸한다(95a~107a) .
그렇다면 불멸하는 혼과 '좋음의 형상' 의 관계는 어떤가? "닮은 것은 닮은 것에"라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이 속담처럼 인간한데서 영원한 '좋음의 형상' 에 상응하는측면은 불멸하는 혼이다. 이런 혼이야말로 '좋음의 형상' 을 관상할 수 있는 인간한테 있는 신적인 요소이다. 특히 이것을 소크라테스는 '이성' , 플라톤은 '지성' (정신, vo0g)이라고 말하였다. 인간에게 있는 지성을 통하여 마치 '신' 과도 같은 '좋음의 형상' 을 관상하는 활동이야 말로 '행복' 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혼)의 본래적인 고향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이 세계 저편의 본질적인 좋음' (선)의 세계이다. 플라톤의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교의 견해와 일치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는 '영원한 행복' (visio beatifica)을 관상적인 삶(vita contemplativa)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 따라 설명하였지만, 그 정신은 오히려 플라톤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현실 세계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과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관한 아우구스티노(Augusitius Hipponensis, 354~430)의 말은 인간의 삶에 관한 한 전적으로 진리이다. "누구도 플라톤주의자들만큼 우리에게 가까운 자는 없다" (《신국론》8권 5장). (→ 그리스 철학 ; 변증법 ; 신플라톤주의 ; 실재론 ;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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