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보이스 타운(BoysTown)의 설립자.
[생 애] 1886년 7월 13일 아일랜드의 로스코먼(Roscommon)에서 태어난 플래너간은, 1904년 18세 때 신부가 되고 싶은 열망을 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메릴랜드 주 에미츠버그(Emmitsburg)에 있는 마운트 세인트 메리 대학(Mount St. Mary's College)을 1906년에 졸업하고, 1년 후 뉴욕 주 던우디(Dunwoodie)에 있는 성 요셉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교로 유학을 갔지만 폐에 이상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왔다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1912년 7월 26일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Omaha) 대교구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오마하 대교구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였다. 이때부터 버려진 이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어 1914년 오마하에 노동자 숙소(Workingmen's Hotel)를 개설하였다.
플래너간 신부는 비록 사회 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버림받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피난처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당시 오마하 대교구장이었던 예레미아 하티 대주교의 허락을 받아 노동자 숙소를 포기 하고 1917년 12월 12일 고아들과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작은 집' 을 열었다. 그러나 교구와 본당에서는 더 이상 구호 기금을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스스로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플래너간 신부는 익명의 친구로부터 빌린 한 달 집세 90달러로 오마하에 청소년들을 위한 작은 집, 미래의 '보이스 타운' (Father Flana- gan's Boys' Home)을 열었다. 6명의 고아 소년들이 보이스 타운의 첫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에 한 번, 그것 도 최소한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였던 이 집은 불과 1달여 만에 50여 명의 소년들로 북적대는 장소가 되 었다. 소년들은 이곳에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이해를 받으며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플래너간 신부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소년들이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 하였다. 교육을 통해 소년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플래너간 신부의 신념대로 소년들은 새로운 삶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되었고, 보이스 타운은 지역 사회로부터, 특히 지역 사회 어머니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지원과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아무런 재정 지원 없이 시작한 플래너간의 작은 집은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 설립 4년 만에 1,300여 명의 청소년들이 혜택을 받았다. 종교나 인종에 따른 차별 없이 오직 소외된 소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집이 되고자 한 그의 신념과 정신, 그리고 열정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특히 1938년과 1940년에 보이스 타운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플래너간 신부와 보이스 타운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미국은 물론 전세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비영리, 초교파라는 초기 정신을 이 어 가고 있는 보이스 타운은 현재 미국 전역에서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비롯하여 고통받는 가족과 가정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1979년부터는 여자 아이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후 1947년에 일본 점령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맥아더(D. MacArthur, 1880~1964)의 초청으로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였던 플래너간 신부는, 정부 책임자들을 만나 복잡한 청소년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하였다. 일생을 고통받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하였던 플래너간 신부는 1948년 5월 15일, 독일베를린에서 과로로 인한 심장병으로 선종하였다.
[평 가] 평소 "나쁜 아이는 없다"라는 말을 거의 입버릇처럼 하던 플래너간 신부가 버림받은 아이들을 향해 품었던 사랑은 그가 남긴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혜택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과 따뜻한 옷, 그 리고 깨끗한 침대를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들은 음식보다 옷보다 물품보다 어머니의 다정함, 아 버지의 지혜로움, 그리고 가정의 사랑에 더 굶주려 있습니다."
플래너간 신부는 평생을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희생적 삶을 살았다. 그는 인도주의자로서 또 교육자로서, 보이스 타운 어린이들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 미국 ; 보이스 타운)
※ 참고문헌 N.H. Wegner, 2, PP. 61~62/ H.W. Casper, 5, p. 758. [李潤子]
플래너간, 에드워드 조지프 Flanagan, Edward Joseph(1886~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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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보이스 타운의 설립자 플래너간 신부(오른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