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
[생 애] 1821년 12월 12일 프랑스 루앙(Rouen)에서, 국립 병원 외과 과장인 아버지와 대대로 저명한 법관을 배출한 명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틀에 박힌 사람들의 이 야기를 다루고자 하였던 플로베르는 고등학생이었을 때인 1837년 《벌새》(Le Colibri)라는 작은 잡지에 첫 작품 을 발표하였다. 그는 가르송(Garcon)이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내어, 천박하게 여겨지는 견해는 모두 그의 탓으 로 돌렸다. 이 인물이 후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만심으로 가득찬 바보 같은 부르주아의 모습이다. 같은 시기 에 그는 공상적인 성격이 강한 단편 소설들을 썼는데, 현재도 아직 다 출판되지 않은 이 작품들에는 괴물, 폭음 · 폭식, 광기가 난무하는 세계가 등장한다. 이처럼 젊은 플로베르는 다른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행동을 끄집어내는 예리한 비판력과 함께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다. 1836년에 플로베르는 해변에서 그보다 열한 살이나 연 상인 여인을 알게 되는데, 악보 출판업자의 부인이던 이 여자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열렬한 사랑은 향후 그의 작 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플로베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841년 11월, 파리 대학의 법학부에서 사권 뒤 강(Maxime Du Camp, 1822~1894)의 인도로 사교계에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삶의 가치가 오직 순수한 예술에만 있다고 믿는 그의 이상주의적인 성격이 때문에 사교계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서서히 삶의 의욕마저 잃어 갔다. 1844년 6월에 그의 신경병이 간질임이 드러나고 한동안 거의 마비 상태가 이어진 후 플로베르는 사회 생활을 포기하였다.
1846년 1월 아버지가 사망하고 이어 3월에 사랑하는 누이가 출산 후 사망하자, 플로베르는 유산으로 루앙 근
처 센(Seine) 강가에 있는 크루아세(Croiset)를 매입하여, 어머니와 갓난 조카딸과 함께 그곳에 정착하여 작품 창작에만 몰두하였다. 1854년까지의 그의 생활은 애인이었던 루이즈(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그는 작품의 완벽성을 기하기 위하여 매일매일 갈등과 절망감을 느끼면서 고심을 하였다. 플로베르는 이 시기 동안 오직 두 번, 1849~1850년에 뒤 킹과 함께 이집트와 팔레스티나, 그리스 등지를 여행하였던 때와 1858년 튀니지에 있는 옛 카르타고(Carthago)의 폐허 옆에 한동안 머물렀던 시기만 빼면 저술을 중단한 적이 없다.
플로베르의 말년은 아주 비참하였다. 1875년 조카딸의 남편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재산을 모두 내어 준 이 후, 그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의기까지 소침해져서 극단적인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이 시기는 상드(George Sand, 1804~1876)와의 우정과 조카딸에 대한 애정만이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위안이었다. 1880년 5월 8일, 플로베르는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었을 때 책상 위에는 미완성의 원고들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작 품] 플로베르는 문학 작품의 절대적인 가치가 문체에 있다고 생각하여, 문장 하나를 다듬는 데 며칠씩을 보낸 작가였다. 그는 독자들이 대부분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등장 인물들의 욕망, 비속함과 자만심을 그 대화 내 용이나 몸짓을 통해 느끼게 하였다. 이 점이 플로베르가 지향한 작가의 객관성이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은 1857년에 출판되었지만, 6년에 걸쳐 마무리 작업을 한 소설이었다. 도덕과 종교를 훼손하는 책으로 간주되어 소송의 대상이 되었다가 결국 무죄 판결을 받는 과정을 거치며 즉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플로베르는 자신의 작품이 이러한 스캔들로 알려지게 된 것을 늘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다. 《보바리 부인》은 '지방의 풍속' (Moeurs de province)이라는 부제에서도 나타나듯이 당시 사회를 분석한 소설에 속하지만, 플로베르는 여주인공을 통해 후일 보바리즘(Bovarysme)이라고 불리는 사고 방식을 분석 하였다. 이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농부의 딸로 태어나 평범한 시골 의사와 결혼한 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소설로만 접한 파리의 화려한 생활을 꿈꾼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착각한 채, 오직 주위의 상황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실을 벗어나려고 간음을 하고 가족의 재산까지 모두 탕진 한 끝에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른 《살랑보》(Salammbo)는 1862년에 출판된 것으로, 19세기 프랑스 문학에 나타나 는 이국 취향과 동양풍의 조류에 속한다. 이 작품은 기원전 3세기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일어난 포에니 전쟁기 에 봉급을 받지 못한 용병대가 카르타고에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반란자들의 우두머리와 그 연인인 카르타고 장군의 딸 살랑보가 여러 끔찍한 사건을 겪은 다음 결국 둘 다 죽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플로베르는 이 작 품을 쓰기 위한 역사적인 정보를 수집 ·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까지 갔을 정도였지만,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이라 기보다는 작가의 소년기 단편 소설에 이미 나타나듯이 잔인한 장면을 즐기는 상상력과 환각을 드러내는 소설이 다. 1869년에 출판된 《감정 교육》(L'Education sentimentale)은 자서전적인 면이 있는데, 루이 필리프 시대(1830~1848) 파리의 부르주아 계급을 묘사하였다. 프레데리크모로(Frederic Moreau)라는 주인공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상황에 이끌려 다니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그는 돈과 사치만을 추구하는 계급, 아니면 혁명을 일으키다가 권력자들과 타협하는 자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이 소설은 등장 인물들의 주관성을 통해 허구적인 세계를 설정하는 20세기의 소설을 예상하게 한다. 1849년, 1856년, 그리고 1873년까지 동일한 주제로
플로베르가 저술한 《생 앙투안의 유혹》(La Tentation de Saint Antoine)은 1874년에 출판되었는데, 작가가 일생동안 몰두한 이 작품은 호평을 받지 못하였다. 시적인 면이 강한 이 단편 소설은 은수자를 사로잡는 관능적이며 환각적인 이미지를 단계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1877년 재정적 어려움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세 편의 이야기 : 수도자 성 쥘리앵의 전설, 순진한 마음, 헤로디아스》(Trois contes, La légende de Saint Julien I'Hospitalier, Un coeur simple, Hérodias)를 냈다. 이중 <순진한 마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펠리시테(Felicite)는 불행을 말없이 받아들이는 인물로 플로베르의 극단적인 비관성을 나타내지만, 우롱하는 어조는 완화되었다.
그리고 미완성 작품이지만 1881년에 출판된 《부바르와 페퀴세》(Bouvard et Pécuchet)는 철학 콩트라고 말할 수 있다. 하급 사무원인 두 명의 주인공은 퇴임한 후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기로 결정하고 먼저 새로운 경작 방 법을 시도하여 보았으나 실패하자, 모든 지식을 다 수집하여 실패의 원인을 조사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작업도 실현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알게 되는 종교적인 이론, 과학적인 사상, 철학적인 체계, 교육관 등은 모 순되기도 하고 난해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이전의 직업으로 되돌아가서 모아 놓은 인용문들과 개요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작품을 통해 플로베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 있으 며, 이 두 인물의 어리석음을 묘사하기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과학 만능주의와 백과전서파적인 사고 방식을 조롱 하고 있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하였다.
[평 가] 플로베르는 자기 작품에 낭만주의적인 상상력의 일면인 폭력, 잔인함, 병든 환각을 즐겨 설정하였으며 문체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여 형식의 완벽성을 추구하였다. 그는 계속 변화해 가는 현실의 무질서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작가의 작업이라고 생각하였다. 작가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면 문학 작품은 문체의 힘으로 하나의 절대적인 사물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문체는 형이상학적인 의미 를 지니게 되었고, 플로베르에게 있어 이러한 창작은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플로베르가 자신은 사실주의 작가가 아니라고 부인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소설을 구성할 때 역사적인 정보를 정확하게 찾았지만, 그 역사적인 배경은 단지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설정하는 데에 만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플로베르의 작품 속 주인공은 언제나 환상을 품고 있으며 자신의 환상을 깨뜨릴 수 있 는 현실을 피하려다가 실패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이러니컬한 시선으로 주인공들의 헛된 갈망을 바라보면서 현 실을 이끌어 가는 어리석음 및 틀에 박힌 생각과 유행을 무분별하게 따라가는 사고 방식을 조롱하였다. 이처럼 그는 비관적인 인간관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름다움에 희망을 거는 작가이기도 하였다.
※ 참고문헌 Itinéraires Littéraires, XIXème siecle, Hatier, 2002, pp. 421 ~4471 Jean-Pierre Richard, Littérature et sensation, Seuil, 1954/ Jean Rousset, Forme et signification, José Corti, pp. 112~122/ C. Duchet, Travail de Flaubert, coll. Points, Seuil, 1983. [H. Lebrun]
플로베르, 귀스타브 Flaubert, Gustave(1821 ~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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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플로베르.
